윤 당선 이틀만에...11일 법무부 가석방심위 결정

최 전 경제부총리, 국정원 예산 늘려주고 돈 챙겨

최지성 · 장충기, 박근혜 전 대통령 · 최순실에 뇌물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챙긴 혐의로 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오는 17일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수감됐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도 같은날 가석방된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최 전 의원은 오는 17일 실시되는 3월 가석방 대상자에 포함됐다. 법무부 가석방심사위원회는 11일 오후 2시부터 3시간가량 심사를 한 뒤 최 전 의원 등의 가석방을 결정했다.

 

최 전 의원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2014년 정부서울청사 부총리 집무실에서 국정원 예산을 늘려주고, 그 보답으로 이헌수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8년 1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9년 7월 대법원은 징역 5년과 벌금 1억5천만원을 확정했다. 최 전 의원은 형기의 80% 이상을 채운 상태다.

 

이번 가석방 대상자에는 최지성 전 실장과 장충기 전 사장도 포함됐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기소된 뒤 지난해 1월 징역2년6개월을 확정받아 수감 중이다. 이들의 형기는 내년 1월께 만료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먼저 가석방됐다.

 

이번에 가석방이 결정된 3명은 지난달 15일 열린 3·1절 가석방 심사위원회에서 가석방 여부가 논의됐으나 보류된 바 있다.

 

법무부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교정시설 과밀환경을 해소하기 위해 가석방을 확대해 진행 중이다. 강재구 기자

 

 최지성 전 삼성 부회장(왼쪽)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사장.

 

 

4년간 엎치락뒤치락 인연

 

문 대통령과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환담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

 

“오늘 아침에도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았다.”

 

지난 10일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는 기자회견을 하던 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대통령.” 윤석열 당선자가 문 대통령을 향해 “우리 대통령”이란 말을 이날 처음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10일 ‘당선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문 대통령이 강력히 사과를 요구하자, “우리 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없는 사정을 늘 강조해오셨다. 그런 면에서 우리 문 대통령과 저와 똑같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윤 당선자가 문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우리’라는 표현이 입에 붙었는데, 지난 2년 내내 극심하게 충돌했던 이들은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요.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집권과 동시에 윤 당선자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혔습니다. 고등검사장급이 맡았던 서울중앙지검장의 급을 다시 검사장급으로 ‘환원’하면서 차장검사급이던 윤 당선자를 승진시켜 임명한 것입니다. 전임자였던 이영렬 전 지검장(사법연수원 18기)보다 5기수나 낮은 윤 당선자(사법연수원 23기)가 발탁된 것은 당시 검찰 내에서 파격 인사로 통했습니다.

 

파격적인 인사는 윤 당선자가 2012년 대선때 불거진 국가정보원 댓글조작 의혹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이었고, 2013년 국정감사에서 ‘수사 과정에 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가 좌천됐던 것을 문 대통령 등 여권이 눈여겨보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중앙지검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유지를 원활히 할 적임자를 승진인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과제였던 ‘적폐청산’을 맡을 검찰의 ‘깐부’로 윤 당선자를 지목한 셈입니다.

 

‘검찰의 꽃’을 꿰찬 데 이어 윤 당선자는 2019년 7월엔 검찰총장 자리까지 오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적폐청산’을 한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청와대는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바로 지명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 논란 등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다는 반대를 무릅썼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에 적합하다고 옹호했습니다. 마지막 ‘허니문’ 기간이 아니었을까요.

 

문 대통령의 신뢰는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을 때 거듭 확인됐습니다. 문 대통령은 배우자 김건희씨와 함께 청와대로 온 윤 당선자에게 “저도 기대를 많이 합니다. 잘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윤 총장님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또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이렇게 처리해서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끝까지 지켜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에 내정하면서 양쪽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가족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당시 윤 당선자는 직접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조 전 장관이 부적합하다는 보고를 하겠다고 하자 청와대는 인사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격앙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국 전 장관이 조기 사임하자, 문 대통령은 2019년 10월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 개혁을 희망했습니다.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습니다”고 심정을 말했습니다. 윤 당선자와 함께 검찰개혁을 하겠다는 계산이 빗나갔다는 토로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임명했고, 추 전 장관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검찰 인사권을 두고 이에 항명하는 윤 당선자와 정면 충돌했습니다. 2020년말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추진하면서 ‘추-윤 갈등’ 혼란이 극심해졌지만, 문 대통령은 정치적 중재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징계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징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인 해결을 멀리하는 사이, ‘검찰 개혁’을 둘러싼 윤석열 검찰총장과 여권의 충돌이 연일 뉴스를 장식했고 역설적으로 윤 당선자의 정치적 몸값은 날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윤 당선자는 2020년 1월 <세계일보> 차기대선 여론조사에서 야권 주자 1위로 급부상했었는데, 이제 차기 대권을 넘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야권 차기 주자로 언급되는 윤 당선자를 두고 202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규정하며 현직 검찰총장의 정치행보를 앉히려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두달 뒤인 2021년 3월4일 윤 당선자는 검찰총장 직을 사퇴합니다. 윤 당선자는 퇴임의 변을 통해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했습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는 짤막한 메시지만을 내놓으며,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애써 지키려 했던 ‘임기제 검찰총장’을 윤 당선자가 걷어찬 것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습니다.

 

양 쪽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적폐청산’의 상징으로 윤 당선자를 불러들였지만, 윤 당선자를 가장 강력한 ‘야권 대선후보’로 만든 셈입니다.

 

이제 관심은 윤석열 당선자의 ‘우리 대통령’이란 친밀한 표현이 언제까지 갈지 입니다. 윤 당선자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좋든 싫든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40%가 넘는다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노무현-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와 떼어 놓으려고 ‘우리 대통령’이라는 서늘하지만 치밀한 전략을 쓴 것인지, 자신을 검찰총장으로 앉혀준 것에 대한 고마운 본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윤 당선자는 지난달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할 것이다”고 답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다음날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으로 몬 데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분노’를 표했습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당선자가 그동안 대통령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런데 나중에 검찰이 나서면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완 기자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과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 잠정합의

부위원장에 권영세 전 선대본부장 논의…권은 “수락뜻 없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맡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국민의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과 안 대표 쪽 인사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오후 만나 이런 방안에 잠정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쪽은 인수위 부위원장에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을 임명하는 쪽으로 논의했으나 권 의원은 아직 최종 수락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권 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부위원장을 맡지 않겠다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 쪽 관계자는 “윤 당선자와 안 대표에게 보고가 이뤄졌고, 최종 결재가 남은 단계”라고 전했다. 양 쪽은 인수위원 24명의 명단도 의견을 나눴으며, 인수위 안에는 안 대표 쪽 인사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자는 13일 인수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인수위 핵심 인선을 먼저 발표하고, 다음주 안에 인수위 인선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이다. 오연서 배지현 장나래 기자

 

청와대, 윤석열 당선자에 북한 · 우크라 안보현안 브리핑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현안 설명

북 미사일 시험발사와 우크라이나 현안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 마련된 당선자 사무실에서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접견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가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12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에게 외교안보 관련 사안을 브리핑했다고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차기 정부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안보 현안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외교안보 관련 사안에 대해 브리핑했다”고 전했다. 최근 미사일 시험발사 등 북한 관련 동향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외교안보 주요 현안을 브리핑했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은 정부 교체기에 외교안보 현안에 빈틈없이 대응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의 외교와 안보에 대해서는 대선이 끝나면 당선자 측과도 잘 협력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주시기 바란다”고 지시한 바 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도 지난 10일 상임위원회에서 “차기 정부 출범 시까지 국제사회 및 유관국들과 긴밀히 소통‧협력하면서 긴급한 외교‧안보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차기 정부가 관련 현안에 신속히 대처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완 기자

 

‘여가부 폐지’ 공약 놓고 국민의힘 내부 의견도 분분

 김종인 “여가부 폐지, 갈등 구조 촉진 가능성”

 서병수 등 국힘 내부 “다시 들여다보자” 주장

 이준석 “당선자 공약 비판 말라” 내부 단속도

 당선자 대변인 “인수위에서 진지하게 논의”

 

 

20대 대선 결과 2030세대 여성들의 ‘역풍’이 확인되면서, 국민의힘 내부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놓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11일 여가부 폐지 공약과 관련해 “아동과 가족, 인구절벽에 대해 따로 부처를 만들겠다고 하고, 성의 문제가 아닌 휴머니즘의 철학을 반영해서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공히 그곳에서 다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사회복지문화 분과가 주로 논의를 하고 기획조정 분과와 조율을 거쳐 윤 당선자에게 최종 결과가 보고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선 공약을 그대로 실행하는 방안과, 부처는 유지하되 기능을 통합하거나 강화하는 ‘플랜 비(B)’도 같이 논의될 전망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려면 민주당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탓이다.

 

당내에선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5선인 서병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여가부 폐지라는 공약, 다시 들여다보자”며 “차별, 혐오, 배제로 젠더의 차이를 가를 게 아니라 함께 헤쳐 나갈 길을 제시하는 게 옳은 정치”라고 전했다. 조은희 서울 서초갑 국회의원 당선자도 전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여성가족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윤 당선자가 후보 시절 내놓은 대표 공약을 쉽게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많다. 여가부 폐지 공약이 ‘성별 갈라치기’였다는 점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우려도 있다.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에 “전적으로 당시 후보자가 결단한 것이다. 이 결단은 여가부에 대한 국민의 여론과 시대정신을 따른 것”이라며 “이것을 젠더 갈등, 여성 혐오인 것처럼 무작정 몰아간 것은 오히려 민주당이다. 여기에 국민의힘이 편승해 접전으로 끝난 대선 결과의 원인을 잘못 분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대표도 “우리는 더이상 야당이 아니다. 당선자의 공약을 직접 비판하지는 마라. 바로 혼란이 온다”고 밝혔다. 김가윤 기자

우크라 전쟁이 부른 지정학 폭풍

 

독, 강해지면 스스로 파괴세력화

힘 약해질 때 주변 강국이 발호해

우크라 전쟁 뒤 독일 재무장 촉발

이후 유럽 세력균형 재편 가능성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오랜 숙적 독일의 재무장을 부르고 있다. 6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 등이 베를린의 운터덴린덴 거리에 있는 국립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평화 콘서트 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 전쟁은 지난 세기의 프랑스혁명보다도 더 큰 정치적 사건인 독일혁명을 상징한다. (…) 휩쓸려가지 않은 외교적 전통이란 이제 없다.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세력균형은 완전히 파괴됐다.”

 

1871년 프로이센이 프랑스를 상대로 한 보불전쟁에서 전격적으로 승리해, 빌헬름 1세가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통일을 선포하며 독일 황제인 카이저에 즉위했다. 당시 영국의 야당인 보수당 대표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 전 총리는 의회에서 독일 통일이 근대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지정학적 폭풍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예측대로 통일된 독일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인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주역이 됐다.

 

독-러 반전의 역사, 거듭될까?

 

독일 지정학의 핵심인 ‘독일 딜레마’를 디즈레일리처럼 적확하게 지적한 이는 없었다.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한 독일은 인구나 영역에서 유럽의 최대 국가이다. 현재도 독일은 인구 8천만명으로 유럽 경계선에 있는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유럽 최대 인구 국가이다. 지금 독일 영토는 과거의 독일 영역의 절반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가 독일 통일 때 배제됐고, 폴란드의 서부, 현재 러시아의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 체코의 일부, 크로아티아 북부와 이탈리아의 북동부를 포함하고, 심지어 루마니아의 일부까지 독일계 주민이 살았다.

 

이런 독일은 유럽에서 항상 딜레마를 제기했다. 독일이 커지면, 독일 자체가 유럽의 세력균형을 파괴하는 최대 세력이 됐다. 양차 대전은 그 결과이다. 하지만 독일이 너무 분열되어 허약해지면, 주변 강국들이 발호해 이 역시 세력균형을 파괴했다. 독일이 200개 이상의 국가와 공국으로 분열됐을 때, 프랑스의 나폴레옹 전쟁이 일어났다. 2차 대전 뒤 소련이 동유럽을 점령하고 위성국가로 만든 것 역시 독일이 패망한 결과이기도 하다.

 

독일은 너무 커져서도 안 되고, 너무 분열돼서도 안 된다는 ‘독일 딜레마’의 지정학이다. 2차 대전 뒤 전승국들은 이런 독일을 제어하기 위해 다양한 족쇄를 채웠다. 독일을 분단하고, 오스트리아를 다시 분리하고, 독일의 과거 영토를 박탈했다. 애초에는 독일을 4개로 분할하려 하다가, 서방은 소련의 팽창 앞에서 ‘서독’으로 긴급히 재건했다.

 

2차 대전 뒤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는 독일 딜레마까지 고려한 복합적 산물이다.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가 “소련을 막고, 미국을 개입시키고, 독일을 억누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규정했다. 전후 자본주의 진영의 최대 위협인 소련을 막기 위한 미국 주도의 동맹을 만들려면, 유럽 내 지정학적 경쟁의 근원인 독일을 제어하고 유럽의 단결을 담보하는 장치가 필요했고, 그게 나토였다.

 

독일은 그 안에서 순치됐고, 그렇게 순치된 독일은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자 미국에 의해 ‘통일’이 허용됐다. 베를린 장벽 붕괴 뒤 독일의 통일에 대해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나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하기도 했고, 소련은 나토의 확장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전후 독일은 유럽 최대의 경제국이 되어 유럽의 경제를 책임지고 통일도 이뤘지만, 한가지 금지선은 남겨뒀다. ‘재무장’이었다. 독일 스스로 원하지 않았고, 주변국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독일 딜레마의 지정학 부활을 시험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의회에서 국방비를 두 배로 늘리고,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전투기를 구입하고, 전략적인 에너지 비축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연간 국방비 지출을 나토 회원국의 목표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맞서 독일 대외정책의 선회를 선언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정학적 의미는 열강들의 세력권 각축의 부활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통적 세력권 부활을 도모하자, 독일의 재무장을 촉발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2차 대전은 1차 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자신의 세력권을 다시 탈환하려는 전쟁이었다. 나치 독일은 독일의 지정학적 공간인 ‘레벤스라움’(생활권)을 다시 세워 확장하려 했고, 소련을 상대로 이루려고 했다. 이는 소련의 반격으로 동유럽 전체를 소련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냉전의 패전국인 러시아는 이제 다시 러시아의 지정학적 공간인 ‘루스키 미르’(러시아 세계)를 다시 탈환하려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촉발했다. 이는 러시아의 오래된 숙적인 독일의 부활을 부르고 있다.

 

누가 러시아를 막을 것인가

 

2차 대전 전야에 유럽에서는 불만에 찬 독일을 견제할 세력이 없었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철수했고, 영국은 쇠약해진데다 유럽 대륙에 개입하지 않는 ‘영예로운 고립’이라는 전통적인 대유럽 정책을 고수했고,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 뒤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허약해진 프랑스와 신생독립국들만이 독일 주변에 있었다.

 

지금의 유럽은 어떠한가? 도널드 트럼프 이후 미국에서는 나토 무용론이 거론되는데다 중국을 막기 위해 인도-태평양에 집중하려고 한다. 영국은 허약한데다,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유럽 대륙 국가들과 불화 중이다. 불만에 찬 러시아를 누가 견제할 것인가? 장기적으로 보면, 독일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나토를 중심으로 한 서방 동맹이 단기적으로 강화될 것은 분명하다. 그 중심 역할을 독일이 맡을 수밖에 없다. 독일의 재무장 등 역할 확대는 장기적으로 독일 세력권과 러시아 세력권의 충돌로 갈 개연성이 크다.

 

여기서 디즈레일리의 말을 변주해보자. “여러분들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세력균형은 완전히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 딜레마의 지정학을 부활시키며, 유럽의 세력균형을 재편할 것이다.     정의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