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탐욕자들이 부르는 동물적 재앙

● 칼럼 2024. 10. 4. 13:35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한마당]  동물적 탐욕의 재앙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런트(1885~1981)는 그의 방대한 저서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서 인류역사에 기록된 3,421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268년 뿐으로, 7.8%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1945년부터 1990년까지를 취합해 총 2,340주 동안 지구촌에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단 3주일 뿐이었다고 전했다. 인류가 사실상 전쟁과 함께 살아왔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옥스퍼드 대학의 맥스 로저 경제학 교수는 지난 600년 동안의 전쟁을 통한 사망률을 분석해 보니 요즘 우리는 특별한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마다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은 일정수준을 이뤘고,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최대값과 최소값이 20세기에 나왔지만, 전쟁 이후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서 요사이는 평균 산출된 전쟁사망자가 0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평화시대’라는 말을 실감하는가.  전혀 아닌 것 같다.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이스라엘은 최고의 우방인 미국 마저 ‘패싱’하며 무차별 살상전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 초토화 작전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정부군과 반군 대결 등 사상자 숫자가 제대로 집계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이 각처에서 날마다 벌어진다.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자신이 지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축복의 명령을 말씀한다. 그런데 금단의 열매를 먹고 사악해진 인간은 창조주가 강조한 축복의 언약에서 유독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대목에 마음이 꽂혀 용렬해졌는지 모른다. 유사이래 정복하여 지배하려는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남의 것을 빼앗고, 죽이고, 짓밟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습성을 지속해 오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는 그래도 균형이 이뤄진다. 동물의 왕 사자는 약한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사냥 하지만, 배가 부르면 눈앞에 멋잇감이 있어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계 스스로 공생 공존하는 섭리다. 허나 사람은 다르다. 배가 부르고 곳간이 넘쳐도 사냥감을 발견하면 또 다시 잔인하게 죽이고 탈취해 기어이 지배욕을 채우는 무한의 탐심을 발동한다. 

물론 사람의 인성이 다 같지는 않다. 아무리 상대가 허약해도 존중해주며 상생의 대상으로 삼는 선하고 자비로운 감성과 이성을 지닌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은 침탈이 아닌 화해와 평화를 추구한다. 그런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은 인간사와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돼, 선악의 판단보다 강자의 논리와 힘의 논리가 우선하고 횡행한다. 어쩌면 갈수록 심화되어 피아 갈라치기로 분열과 적대를 넘어 상대를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독존적 행태와 사악하고 뻔뻔한 자들의 논리로 ‘확장 진화’하는 세상이다. 

이스라엘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런 무모하고 독선적인 극단적 탐욕자들이다.막무가내 네타냐후는 전쟁을 멈추면 총리직이 위태롭다고 한다. 총리를 그만두면 곧바로 형사소추를 당할 부패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개인의 안위에 눈이 멀어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가 수많은 인명살상을 부르는 그야말로 비열하고 잔인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탄핵여론이 비등한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과 부인의 비리와 부정부패 의혹을 뭉개고 덮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검찰은 물론 국가 주요 권력기관들이 내로남불의 방패막이가 되어 국민을 위한 국정은 내팽개친지 오래다. 국정 최고 의결기구인 국무회의 마저 특검법안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보조기구로 전락한 상태다. 국가기관이 오로지 대통령 일가 범죄의혹 방어에 악용되면서 총체적 국정 난맥을 초래하고 있는 불행하고 몰상식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계엄 준비설까지 나도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무리한 혈세를 쏟아부어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한 시가지 군사퍼레이드를 곱잖게 보는 국민의 눈총과 불안은 그들 안중에 있을 리가 없다. 와중에 전쟁불사의 대 북한 적대발언을 수시로 내뱉는 것에서 동물적 충동공격의 위험성을 본다.

비루한 탐욕자들이 평화를 깨고 비참한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불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호벽은 아니다.  아무리 법과 제도와 윤리를 강조해도 탐욕의 리더십은 이를 교활하게 회피하고 무력화한다.  국민의 판단과 선택의 중요성을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는 이유다. 다수결 승자독식 구조에서 순간의 착각과 오판이 불러오는 미래는 불행과 퇴행과 저주의 동물세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늦게 후회하다 보면 주권자 자신의 탐욕이 결국 탐욕자를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닫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는 남는다. 

한달 남짓 남은 대선에서 미국인의 선택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 인류의 장래에 자칫 눈물과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해리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는 거짓선동과 적대정치를 만연케 하고, 기후협약 탈퇴로 지구촌의 기후위기를 가속화 시킨 장본인이다. 

한때 김정은과 협상을 벌였기에 한반도 통일에 도움을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트럼프든 해리스든 공통점은 그들의 최우선이 정복과 지배에 능한 미국익(美國益) 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인이 명심할 일은 우수한 지도자를 택해서 한국익(韓國益) 최우선의 길을 열어가는 것 만이 정복과 지배를 떨치고 번영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목회칼럼] 테바(תֵּבָה) 를 타고 온 토론토

● 칼럼 2024. 10. 4. 13:3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테바(תֵּבָה) 를 타고 온 토론토

 

차재화 목사 < 토론토 동산장로교회 담임 >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면 아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성경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희집 경우에는, 큰 아이는 모세 이야기를 좋아하고, 작은 아이는 노아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고등학생인 큰 아이는 모세가 아기였을 때 갈대상자에 숨겨져 극적으로 살아 나는 장면을 좋아 하고, 초등학생 둘째는 노아의 방주 안에서 노아와 가족들이 동물들과 살아가는 모습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 두 가지 성경의 이야기들은 기독교 문화 뿐 아니라 비기독인들에게도 친숙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전체 관람가로 극장 상영도 하였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들이 좀 더 많이 만들어져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이 세상 가운데 역사하심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갈대상자에는 영화와 에니메이션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중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 원어의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테바(תֵּבָה)’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에서 두 번 사용 되었는데, 바로 ‘방주’와 ‘갈대상자’입니다. 히브리어 테바(תֵּבָה)는 상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을 때, 노아를 통해 방주라는 거대한 상자를 만들어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셨고, 요게벳을 통해 갈대상자를 만들어 아기 모세를 살릴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 해주신 테바(תֵּבָה)에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운전대와 동력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움직이고,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상자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멈추신 때에 비로소 노아의 가족들과 아기 모세는 상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방향과 속도 그리고 목적지까지 하나님께 철저히 맡겨진 삶이 바로 테바(תֵּבָה)가 주는 교훈입니다. 


저는 10년 전, 한국을 떠나 토론토에 왔습니다. 당시 5살 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경유행 비행기를 타고 늦은 밤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 도착한 날을 잊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때 저희 가족은 타고 온 비행기가 테바(תֵּבָ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테바(תֵּבָה) 를 타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며, 우리의 생각과 계획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보내시고 또 멈추라고 하신 곳에 테바(תֵּבָה) 통해 인도해 주시는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발굴위 'KOCAMH' 설치해 활동 개시

지난해 맥켄지 기념사업 이어 후속사업 나서

그리어슨, 맥래, 푸트  등 세 선교사 자료수집  

 

발굴위원회 위원장 이요환 목사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노회장 함진원 순례길교회 담임목사)가 캐나다의 한국파송 선교사 기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하고 ‘내한 캐나다 선교사 발굴위원회 (Korea Canada Mission Heritage: KOCAMH: 위원장 이요환 소금과빛 염광교회 담임목사)’를 출범시켜 활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캐나다의 첫 자비량 한국 선교사인 윌리엄 맥켄지 선교사 기념사업을 기대이상의 호응 가운데 마무리 한 바 있는 동노회는, 앞으로도 한국 파송 캐나다 선교사 발굴과 기념사업을 계속해 나가기로 하고 최근 제85회 가을 정기노회를 계기로 맥켄지 기념사업을 이끌었던 이요환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발굴위원회 ‘KOCAMH’을 발족시켰다.

발굴위원회는 이에따라 맥켄지 선교사의 순교사역에 영향받아 1898년에 캐나다장로교단이 처음으로 공식 파송한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 Grierson) 부부와 맥래(D.M.MacRae), 및 푸트(W.R.Foote) 선교사의 한국선교 업적 발굴을 후속사업으로 정하고 이들 세 선교사를 기리기 위한 자료수집에 착수, 이요환 위원장과 위원인 장성훈 목사(이글스필드한인교회 담임)를 포함한 7명의 목사가 지난 9월23일부터 26일까지 노바스코샤 핼리팩스를 서둘러 다녀왔다.

노바스코샤는 그리어슨과 맥래, 푸트 선교사의 출신지역으로, 맥켄지 선교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난해 기념사업회는 맥켄지 선교사의 가족묘가 있는 케이프 브랜튼에 가묘를 만들고, 핼리팩스 한인교회 내에는 기념동판과 함께 캐나다 선교사기념관을 세워 개관했었다.

발굴위원회 이요환 위원장은 맥레와 그리어슨 선교사 부부 자료는 전기가 출간되어 많이 알려진 상태인 반면 푸트 선교사에 대한 자료가 부족했었는데, 마침 핼리팩스 현지 도서관에 3박스나 되는 자료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확인차 방문했던 것이라며 “자료박스에서 푸드 선교사의 생생한 친필이 담겨진 글들을 보며 감동과 흥분의 떨림을 느끼기도 했다”고 발굴성과가 있었음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 이들 선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되었음에 감사하며 그들을 기리는 사업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하고 “기도와 물질적인 지원도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한국 파송 130주년을 맞아 추진한 맥켄지 선교사 기념사업의 경우 KPCA 동노회와 서노회 소속 40개 가까운 교회와 성도들이 후원에 참여했고, PCC 한카동노회와 소속 2개 교회, 그밖에 여러 선교단체와 기관 등이 동참해 기념관 개관까지 7만2천여 달러의 기금이 모여 사업을 진행했다. 또한 맥켄지 선교사 일대기 ‘케니프 브레튼에서 소래까지’(유영식 목사 집필) 책도 출판했었다.

맥켄지 선교사는 캐나다 최초의 자비량 한국 파송선교사로, 1893년 홀로 조선 땅을 찾아가 ‘조선 사람’으로 살며 소래교회를 세우고 순교해 한국 복음화에 밀알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희생으로 이후 캐나다인 선교사가 200여명에 달하게 됐고, 그중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곳이 바로 핼리팩스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