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이 넘으면 머리 나빠지기 시작…훈련으로 향상

● 건강 Life 2020. 11. 18. 10:0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25년간 프로 체스경기 선수들 경기력 분석 결과

인간 뇌의 인지능력은 35세에 정점, 이후 횡보세

 

2018년 베를린에서 열린 월드컵 토너먼트 경기의 한 장면. 체스는 복잡한 인지 작업 패러다임을 갖고 있는 경기다. 뮌헨대 제공

                

사람의 일생은 생장성쇠의 곡선 그래프를 그려가는 과정이다. 시기가 다를 뿐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쇠락해가는 패턴은 신체 능력이나 정신 능력이나 마찬가지다.

물리적 힘을 쓰는 근육은 25, 골밀도는 30세 전후를 정점으로 이후 하락 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매일 다양하고 복잡한 정보를 시시각각 처리해야 하는 우리 뇌의 인지 능력은 일생 동안 어떤 패턴을 보일까?

프랑스 파리이공과대, 독일 뮌헨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 공동연구진이 체스(서양장기) 선수들의 경기력을 모델로, 사람의 일생에 걸친 인지 능력 변화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113일 발행된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내린 결론은 사람의 인지 능력은 35세에 정점을 찍고 이후 상당 기간 최고 수준을 유지하다 45세 이후에 서서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1890년부터 2014년까지 125년간 열린 24천회의 프로 체스 경기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이 소개한 기존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정보 처리 속도, 기억력, 시각화, 추론 등과 관련한 능력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떨어지는 반면,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일에 관한 능력은 50세 넘어서까지도 좋아진다. 전문가들의 경우엔 특히 연습, 훈련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엔 어떤 일의 성과를 결정하는 데는 지능과 연습이 함께 어우러져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체스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인지 능력의 변화 양상을 사람의 일생에 걸쳐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대상으로 체스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연구진은 몇가지 이유를 꼽았다. 우선 체스는 지각과 기억, 문제해결 능력이 모두 동원되는 복합적 인지 과정을 거친다. 둘째는 체스를 잘 하려면 타고난 지능뿐 아니라 훈련과 경험도 필요하다. 셋째는 체스 기록은 개인의 실력을 측정하는 데 필요한 정확하고 객관적 자료를 제공해줄 수 있다. 넷째는 선수들은 장기간에 걸쳐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누적 성적을 분석하면 연령에 따른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체스 선수들의 실력은 일생에 걸쳐 `' 모양의 패턴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대부분의 선수들은 실력이 20대 초반까진 가파르게 상승한 뒤 답보 상태를 보이다 35세 무렵 정점을 찍는다이후 대략 10년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유지하다 45세 이후 서서히 저하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25년간 치러진 체스 토너먼트 경기에서 각각의 선수들이 둔 160만개의 수를 컴퓨터가 계산한 최적의 수와 비교한 뒤, 선수 개인의 인지 능력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래프로 표시했다. 20명의 세계 챔피언, 이들과 대적한 4274명을 합쳐 모두 4294명의 그래프를 완성했다. 초대 세계 체스챔피언에서부터 2010년대 챔피언까지 모든 챔피언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켰다.

체스 선수들의 출생시기별 실력 비교. PNAS

갈수록 좋아지는 선수들 실력...디지털 기술 발전 영향 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또 다른 특징은 선수들의 실력이 20세기를 지나오면서 꾸준히 좋아졌다는 점이다.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은 1870년대 무렵에 태어난 선수들보다 인지 능력이 8% 가량 높았다. 특히 1990년대에 실력 향상이 뚜렷했다. 연구진은 이는 디지털 기술의 부상과 궤를 같이한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일원인 우베 순데 뮌헨대 교수(경제학)연구 결과를 보면 디지털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는 조건에서 자라난 현대인들이 인지 능력 발달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에 실력이 크게 좋아진 것은 새로운 정보기술과 함께 성능 좋고 저렴한 가정용 피시의 체스 프로그램 덕분에 많은 이들이 체스에 쓸모 있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의 한계는 체스 선수들이 대체로 특정 연령대에 들어서면 토너먼트 참가를 단념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이를 `선택 효과'라고 불렀다. 순데 박사는 선택 효과는 50세 정도부터 시작된다만약 선수들이 중단 없이 평생 동안 경기에 정기적으로 참가한다면 선택 효과의 영향이 줄어 전체적인 인지 능력 곡선이 다소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인지 능력 그래프를 일반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우며, 그보다는 인지 능력의 꼭지점을 보여주는 데 더 의미가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를 따른다면 이미 35세라는 분기점을 넘은 사람들은 인지 능력을 더 높일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간 셈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신경세포가 모여 있는 뇌의 회백질을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훈련시킨다면 뇌는 더 오랫동안 왕성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답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곽노필 기자


미국 상업 부동산시장에 '코리안 머니'…올해만 1조7천억원

● COREA 2020. 11. 18. 10:0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56천만 달러 상당 매입, 투자국 순위 103"저금리로 투자 여건"

"한국 투자자들 응찰가가 가장 높아한국 투자자들 경쟁심해 가격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얼어붙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한국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17일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분석업체인 리얼 캐피털 애널리틱스 자료를 인용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한국 투자자들이 156천만 달러(한화 약 17250억 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4천만 달러(13710억 원)보다 25.8% 급증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에 따라 거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액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투자자의 비중도 늘었다.

지난해 미국 상업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외국 투자자 중에서 한국은 10(3.7%)였지만, 올해는 3(8.6%)로 뛰어올랐다.

한국보다 더 많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국가는 캐나다와 독일뿐이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 당국의 자본 유출 제한 등의 영향으로 투자가 급감한 상태다.

WSJ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 한국의 투자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초저금리 상황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초저금리 때문에 금리에 기반한 환율 헤지 상품의 가격이 대폭 하락했고,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부담 없이 미국의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체 뉴마크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들은 2년 전만 해도 매년 부동산 가격의 2%를 환율 헤지 비용으로 지출해야 했지만, 최근엔 환율 헤지 비용이 0.1%에 불과하다.

WSJ은 최근 시애틀에서 매각된 6억 달러(6630억 원) 짜리 건물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 투자자들의 경쟁이 미국의 상업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건물을 구입하겠다는 12건의 문의 중 4건이 한국 투자자의 문의였다는 것이다.

당시 매각 업무를 담당한 뉴마크의 알렉스 포셰이 국제투자분야 대표는 "한국 투자자들의 응찰가가 가장 높았다""한국 투자자들이 가격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독살 당한 김정남 아들 김한솔, 미 CIA가 데려갔다"

● WORLD 2020. 11. 18. 09:5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계 미 작가 수키 킴, 반북단체 자유조선 인터뷰해 뉴요커 지 기고

"부친 암살 후 마카오 탈출해 대만-네덜란드행CIA 요원과 행적 감춰"

  홍 창 "그렇게 돈 많은 청년 만나본 적 없다"김한솔과 첫 만남 기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로 추정되는 인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피살된 뒤 아들 김한솔 등 남은 가족이 네덜란드로 도피하기까지 과정이 전해졌다.

김한솔의 탈출을 주도한 반북단체 자유조선은 그가 네덜란드에서 난민 지위를 얻길 원했으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데리고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은 16일 주간지 뉴요커에 기고한 '북한 정권을 뒤집으려는 지하운동'이라는 기고문에서 김한솔의 이 같은 도피 과정 등을 소개했다.

김 작가는 2011년 북한에 잠입해 평양과기대 영어교사로 일하며 겪은 경험을 책을 냈으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김정남은 앞서 20172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신경작용제 공격에 살해됐고 김한솔은 약 3주 뒤인 38일 유튜브로 무사히 피신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한솔의 영상을 올린 '천리마민방위'(현 자유조선)란 반북단체는 네덜란드와 미국, 중국, '무명의 정부' 4개국 정부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김 작가가 자유조선 멤버들을 취재해 작성한 뉴요커 기고문에 따르면 김한솔은 아버지 김정남이 피살된 직후 자유조선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에게 전화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그는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황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수사당국과 국제사회는 암살에 배후에 북한이 있다고 보고 있다.[AP=연합뉴스]

김한솔은 홍 창에게 자신의 집을 경비하던 마카오 경찰병력이 사라졌다고 알리며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마카오를 빠져나가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둘은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고 김한솔은 홍 창이 북한과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만남에 대해 홍 창은 김한솔이 명품 브랜드인 구찌 신발을 신고 있었다며 "그렇게 돈이 많은 청년을 만나본 적이 없다. 김정남이 생전에 많은 돈을 챙겨놨다"라고 말했다.

도움을 요청받은 홍 창은 자유조선 멤버이자 전직 미 해병대원 크리스토퍼 안에게 대만 타이베이공항에서 김한솔 가족을 만나 그들을 쫓는 이가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한다.

마침 필리핀 마닐라에 있던 크리스토퍼 안은 곧바로 이동해 타이베이공항에서 김한솔 가족을 만났다.

홍 창이 김한솔에게 '검은색 티셔츠와 LA다저스 모자를 쓴 남자를 스티브라고 부르면 대답할 것'이라고 접선 방법을 알려줬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안과 김한솔, 김한솔의 여동생은 영어로 대화하고, 김한솔과 김한솔의 여동생이 어머니에게 한국어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김한솔의 키는 178정도로 보였다.

김한솔 여동생은 영어가 유창해 '평범한 미국 10' 같았다고 크리스토퍼 안은 기억했다.

김한솔 어머니가 김한솔에게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고 묻자 김한솔은 크리스토퍼 안을 가리키며 "에이드리언을 믿기에 그도 믿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안은 개별 방이 있는 공항 라운지에 김한솔 가족을 들여보냈다.

김한솔 여동생과 어머니가 한방을 쓰고 크리스토퍼 안과 김한솔은 옆방을 썼다. 김한솔은 크리스토퍼 안에게 조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낚시하러 갔던 일을 비롯해 조부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자유조선이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카인 김한솔(왼쪽)과 자유조선 대원 크리스토퍼 안이 함께 찍은 사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후 홍 창으로부터 김한솔 가족을 받아들일 국가로 3개국과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 왔고 또 시간이 지난 뒤엔 "한 국가가 김한솔 가족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표를 끊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외곽 스히폴 국제공항으로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김한솔 가족이 비행기에 탑승하고자 게이트에서 표를 검사받는 순간 항공사 직원이 돌연 "너무 늦게 와 탈 수 없다"고 외쳤다.

크리스토퍼 안이 아직 탑승 중인 승객이 있다며 항의했으나 먹히지 않았고 김한솔 가족은 라운지로 돌아왔다.

몇 시간 뒤 라운지에 나타난 것은 CIA 요원 2명이라고 한다. 한 명은 '웨스'라는 이름의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백인이었다고 크리스토퍼 안은 밝혔다. 이들은 김한솔과 대화를 요청했다.

CIA 요원들은 다음 날 다시 나타나 '훨씬 친절해진 태도'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웨스라는 요원은 김한솔 가족과 동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안은 김한솔과 헤어지기 전 홍 창의 지시에 따라 '보험용'으로 함께 셀카를 찍었다.

암스테르담 스히폴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한솔 가족은 정식 통로가 아닌 공항 내 호텔로 연결된 옆문으로 빠져나왔다. 김한솔은 홍 창에게 전화해 '옆문'으로 나가도록 자신들을 데리고 갔다고 말했다.

홍 창은 김한솔에게 난민지위 신청을 원하는지 물었고 그러고 싶다는 의사를 확인한 뒤 자유조선 멤버와 변호사를 호텔 로비에 보냈다.

그러나 김한솔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키 김은 "여러 관계자가 CIA가 김한솔과 그의 가족을 모처로 데려갔다고 말해줬다"면서 "(김한솔 가족을 데려간 곳이) 네덜란드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부친이 살해되자 마카오를 탈출한 뒤 대만, 네덜란드로 향한 김한솔. 반북단체인 자유조선은 김한솔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밝혔다.[연합뉴스]

기고문에는 지난해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에 대한 홍 창의 설명도 자세히 실렸다.

북한대사관에 있던 누군가로부터 '탈북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홍 창 등 자유조선의 일부 핵심 멤버들이 구출 작전 중에 아예 대사관을 장악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이 인사는 북한에 있는 가족이 처형당할까봐 납치되는 것처럼 꾸미길 원했다고 한 소식통이 수키 김에게 전했다.

그러나 습격 사건 당시 스페인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 것이 탈북 희망자를 겁먹게 만들었다고 홍 창은 전했다. 경찰을 속여 돌려보낸 뒤 계속 대사관 전화가 울리자, 당초 도움을 요청했던 이 인사는 "그들이 알고 있다"고 소리치며 탈북을 포기했다고 한다.

홍 창은 북한의 비밀 통신의 암호를 풀기 위해 대사관에서 컴퓨터와 하드드라이브 등 전자장치를 가져나왔고, 미국에 돌아온 뒤 자신을 찾아온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에게 이들 장비를 건네줬다.

북한의 컴퓨터에서 찾아내는 정보가 더 강한 대북 제재로 이어지기를 희망했으나, 그는 컴퓨터를 돌려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