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밴스와 격론…백악관 정상회담 이례적 결렬


미국 측 광물협정 조인식, 오찬 취소하고 "떠나달라"
"한번이라도 고맙다고 해봤나" 젤렌스키 '태도' 비난

트럼프 "젤렌스키 종전 원치 않아, 미국 없이 싸워라"
"합의안 서명하면 처지 좋아질 것"…타협 기대는 유지

 

"(푸틴과 젤렌스키, 양측과 공히 보조를 맞추고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나는 푸틴과 같은 편이 아니다. 누구와도 같은 편이 아니다. 미국 편이다. (종전을 바라는) 세계 편이기도 하다. 나는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 푸틴에 대한 젤렌스키의 엄청난 증오는 이해한다. 그러나 타협안을 도출하려는 입장에서 그러한 증오는 일을 매우 어렵게 한다…." (트럼프)

"평화로 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은 외교에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이 좋은 나라인 것은 외교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일이다." (밴스)

"내가 물어봐도 되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JD, 당신은 지금 어떤 종류의 외교를 말하나." (젤렌스키)

"MR. 대통령(젤렌스키), 나는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외교를 말하는 거다. 백악관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싸우려는 건 무례한 행동이라고 본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나? 당신 나라의 파괴를 막으려 노력하는 (트럼프)행정부를 공격하는 게 예의인가." (밴스)

"전쟁 중에는 누구나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심지어 당신들도 그렇다. (전쟁터와의 사이에) 멋진 대양을 갖고 있어 지금은 못 느끼지만 언젠가 느낄 거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2025.2.28. EPA 연합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우크라이나 정상 간에 벌어진 '막장 설전'의 도입부다. 양쪽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두고 있는 미국의 지리적 이점 덕분에 전쟁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악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낸 지점이다. 애당초 격론을 벌일 자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심각하게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크라전 종전 방안을 확정 짓는 자리도 아니었다.

 

희토류와 가스, 원유를 포함한 광물협정은 서명식만 남긴 상태였다. 소파에 앉아 덕담이나 주고받고 서명식을 한 뒤 공식 오찬으로 이어졌을 자리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J.D. 밴스 부통령과의 언쟁하면서 '싸움닭'으로 변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정상 간 비공개 대화에서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을 두둔하는 데 실망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도 젤렌스키의 태도와 말은 외교적 선을 넘었다. 정확히 트럼프가 목소리를 높인 지점이다. 대화록을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어떤 논평보다 주고받은 말 자체에 사건의 진실은 물론, 향후 전망의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5.2.28. AFP 연합 

 

"우리가(미국이) 무엇을 느끼게 될지 말하지 마라. 우리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그걸 단정할 처지가 아니다. 우리는 매우 좋게, 또 매우 강함을 느끼게 될 거다. (…) 당신은 지금 좋은 처지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내밀 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 고성)

"나는 지금 카드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매우 진지하다. 나는 전시 대통령이다." (젤렌스키)

"당신은 수백만 인명을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국가와 이 나라에 대해 매우 무례하다." (트럼프)

"한 번이라도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나?" (밴스)

"여러 번 했다. 오늘도." (젤렌스키)

"당신 나라는 지금 큰 문제에 빠져 있다. 승리하지 않고 있다. 우리 때문에 (전쟁에서) 빠져나올 정말 좋은 기회가 있다." (트럼프)

"안다…. 우리는 강하다. 전쟁 시작부터 우리는 홀로였다. 고맙게 생각한다." (젤렌스키)

"당신들은 혼자이지 않았다. 우리가 멍청한 대통령(바이든)을 통해 3500억 달러(실제 1149억 달러)를 줬다. 군사 장비도 줬다. 당신과 당신 국민은 용감했지만, 우리 군사 장비가 없었다면 전쟁은 2주 안에 끝났을 거다." (트럼프, 다시 고성)

"푸틴이 '사흘 안에'라고 말한 걸 들었다." (젤렌스키)

"장담컨대 이렇게 하면 일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8일 백악관 입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2.28. UPI 연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백악관을 황급히 떠나고 있다. 2025.2.28. EPA 연합 

 

10분 가까이 정상 간의 외교적인 대화가 아니라 말싸움으로 변했다. 좌중은 충격에 사로잡혔지만, 젤렌스키는 여러 차례 트럼프가 말하는 동안 이를 무시하고 끼어들어 자기 말을 섞었다. 고함이 이어진 까닭. 밴스가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이견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다퉈보자. 미국 언론 앞에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당신이 틀렸다고 본다"라고 하자 다시 "미국민에게 여러 번 감사하다고 했다"라고 말하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트럼프는 "당신 국민이 죽어간다. 병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당신은 '종전을 원치 않는다'라고 되풀이 말했다. 지금 당장 종전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면서 "타협하지 않으면 우리는 빠질 것이고, 우리가 빠지면 아무런 카드(선택지)도 없이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타협안에 서명만 하면 훨씬 나은 입장에 설 것"이라고 말해 종전 협상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트럼프는 "우크라가 어떠한 카드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우크라도 카드는 있다. 바로 트럼프가 관심을 보인 광물협정이다. 다만, 러시아 점령 지역의 포기와 우크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종전 방안에 대한 이견은 아직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이례적인 설전은 그 때문일 터. 젤렌스키는 격론이 정리된 뒤 곧바로 재회담을 희망했지만, 트럼프가 거부했다. 각료회의를 거쳐 젤렌스키에게 백악관을 떠날 것을 요구했고, 젤렌스키는 오찬도 들지 못한 채 현지 시각으로 밥때가 지난 오후 1시 40분쯤 백악관을 떠났다. 젤렌스키는 회담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강조했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 개선 의지를 내보였지만, "사과할 용의는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밴스가 문제 삼은 젤렌스키의 '태도'는 이전에도 노출됐었다. 개전 이후 미국을 비롯해 서방 각국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평화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각국의 지원을 당연시하는 태도로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지도자라는 점에서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리얼리티 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는 대화 말미에 "이건 멋진 텔레비젼(쇼)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한 쇼에 그치지 않고 3년을 넘긴 우크라전에서 극적인 순간의 하나였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2.28 AFP 연합

 

가속도 붙은 서방 분열, 미국없는 안보 대안 찾는 유럽

트럼프-젤렌스키 28일 회담 결렬의 충격파

유럽의 결속, 우크라의 젤렌스키 지지 강화
제대로 먹힌 젤렌스키 반격의 반전효과?
모든 것은 자국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
유엔 결의, 미국이 러 북한 편 들어 유럽에 반대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중앙)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회담에서 J.D. 밴스(오른쪽) 미국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설전이 발단이 돼 이날 회담은 결렬됐다. 2025.2.28. AP 연합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지난 28일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공동개발 협정 체결을 위해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의 역린을 건드린 ‘무례’를 범한 ‘죄’로 백악관에서 “쫓겨난”(<폭스 뉴스>) 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X(예전의 트위터)에 바로 올린 글이다. 이를 받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했고, 이후 그날 자정을 갓 넘긴 시각까지 유럽 정상들이 X에 올린 젤렌스키 지지 글은 31건이나 됐다.

 

유럽의 결속, 우크라의 젤렌스키지지 강화

 

정상들이 민낯으로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생중계된, 외교사상 매우 이례적인 그날의 충격적인 회담 결렬 뒤 유럽은 결속했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젤렌스키 지지도 “개전 초기와 같을 정도로” 치솟았다. 트럼프와 이날 설전을 촉발한 J. D. 밴스 부통령의 발언 장면을 지켜보며 약소국 국민으로서의 울분을 느꼈을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는 꿀리지 않은 젤렌스키의 “영웅적인” 대응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젤렌스키를 비판해 온 야당 지도자들도 그의 대응을 칭찬했다.

 

말로만 했던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는 외교를 통해 전쟁을 끝낼 것이라며 밴스가 대화에 끼어들자, 2014년 이후의 푸틴 공세를 전혀 막아내지 못한 외교가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며 반박한 젤렌스키의 그날 도발적 대응이 종전 뒤 바로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계산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거에 그에 대한 평판을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3월 1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전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5.3.1.UPI 연합

 

제대로 먹힌 젤렌스키 반격의 반전효과?

 

젤렌스키는 28일 회담을 트럼프 정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충격을 가해 여론을 바꾸고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회담 전부터 전쟁을 일으킨 쪽이 푸틴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고, 젤렌스키는 임기가 이미 끝났는데도 선거도 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는 자격없는 “독재자”라며 비판했다. 프랑스의 뉴스전문 TV방송 BFM에 따르면, 트럼프는 28일 회담 자체를 열지 않으려 했는데, 젤렌스키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워싱턴을 움직여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 회담이었다. 따라서 젤렌스키의 그날 발언은 벼르고 준비한 것이었다.

 

어떤 면에선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다. 외형상 젤렌스키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에 위압당하는 듯 보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여론을 반전시킨 효과가 더 컸을 수 있다. 회담에서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느끼는 안보위기를 미국도 장차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그런 얘기 말라”며 “당신은 지시할 입장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매우 불리한 처지다.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 우리에겐 카드가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 장면을 보며 유럽인들은 미국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면서도 젤렌스키가 얘기한 안보위기를 실감하며 미국의 태도에 한층 더 거부감을 느꼈을 법하다.

 

일론 머스크가 2월 11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2025.2.11. 로이터 연합

 

오르반 헝가리 총리만 트럼프 지지, 머스크 “백점 만점”

 

마크롱은 회담 결렬 뒤 “침략자는 러시아, 침략당한 쪽이 우크라이나인들”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나흘 전인 24일, 마크롱은 트럼프 취임 뒤 처음 그를 만나러 워싱턴으로 갔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당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종전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면서, 협상이 타결되면 자신이 직접 모스크바로 가서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고, 그것이 “몇 주 안에” 이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은 종전이 가져다 줄 “평화가 우크라이나의 항복이 돼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올라프 숄츠 독일총리는 “우크라이나 국민만큼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독일과 유럽을 믿어도 된다”고 했다.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CDU) 당수도 “우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이라며 “우리는 침략자와 피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스페인은 당신과 함께 있다.”(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당신들은 유럽 전체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스웨덴 정부) 조셉 보렐 전EU외교안보 선임대표는 젤렌스키를 무례하다며 질책한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짓”이라고 비난했다.

 

오직 한 사람,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만 X에 “강한 남자는 평화를 만들고, 약한 남자는 전쟁을 만든다”며 트럼프에게 “대통령, 고맙소”라는 글을 올려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는 “백점 만점”이라며 칭찬했다.

 

마크롱, 스타머 총리 얘기 받지 않은 트럼프

 

마크롱의 백악관 방문 사흘 뒤인 27일 키어 스타머 영국총리가 백악관에 갔을 때 트럼프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믿을 수 없다”며 젤렌스키를 “독재자”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이며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때 트럼프는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 프랑스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동의했으나, 회담 뒤 기자들에게 스타머가 요청한 미군 파견을 약속하지 않았고 전쟁시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보증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유럽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마크롱과 스타머, 그리고 트럼프는 회담 때 우호적인 언사를 주고 받으며 이견을 조정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속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국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

 

젤렌스키에 대한 혐오발언을 취소하며 협력하겠다고 했던 트럼프의 발언은 28일로 예정됐던 우크라이나 자원 공동개발협정 체결이 결렬된 뒤 그 진의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자원개발과 운영으로 얻을 이익의 절반인 5000억 달러를 내라고 젤렌스키에게 요구했다. 미국정부는 투자 자금의 2배 회수를 보장하라고 했다. 5000억 달러는 미국이 지난 3년간의 전쟁 기간에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의 5배에 가깝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안전에 대한 보장책이 없다며 이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트럼프는 그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크롱의 중재로 28일 회담이 열렸으나, 우크라이나 자원공동개발 이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 ‘거래’는 트럼프에게 의미가 없었다. 회담 결렬 뒤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는 마크롱과의 회담 때 미국은 35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며, 1000억 달러밖에 지원하지 않은 유럽의 3배 이상을 지원했다고 했고, 유럽은 그마저도 그냥 준 게 아니라 빌려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은 유럽이야말로 그냥 지원한 것이고 미국은 유상과 무상 지원이 섞여 있다고 반박했다. 독일의 키엘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이 지원한 금액은 1380억 달러, 미국은 1100억 달러다. 유럽과 미국의 지원금 비율이 6대 4로 유럽쪽이 더 많았다는 또 다른 기관의 평가도 있다.

 

당사국을 배제한 채 이뤄지는 미국 러시아 양 대국들의 합의는 약소국 처지의 우크라이나에겐 영토와 자원을 약탈해 가기 위한 ‘거래’로 비칠 수 있다.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마크롱을 만났을 때 실토했듯이, 모든 것이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월 24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하고 있다. 미국 결의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비판이 전혀 담고 있지 않아, 유럽이 수정안을 제시해 채택됐고, 미국은 기권했다. 2025.2.24. AFP 연합

 

2차대전 이후 질서 붕괴 “나토 6개월 뒤 사라질 수도”

 

마크롱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난 24일 우크라이나 관련 결의안들이 통과된 유엔 총회장은 ‘서방의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3주년인 그날 유엔 총회가 연 긴급특별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올해 안에 종결하고,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 우크라이나 영토보전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93개국 찬성으로 채택됐다. 미국은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등과 함께 이 결의안에 반대한 18개 국 중 하나였다. 중국과 인도 등 65개 국은 기권했다.

 

미국이 러시아 북한 편 들며 유럽에 반대

 

이날 미국은 조기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따로 냈는데, 러시아의 침공을 양국간 ‘분쟁’으로 바꾸고 우크라의 영토보전이나 주권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러시아를 배려한, 러시아를 위한 결의안이었다. 유럽이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분쟁을 다시 침공으로 바꾸고 우크라의 영토보전과 주권에 대한 내용을 넣은 미국안 수정안을 제안해 통과됐다. 하지만 미국은 수정된 ‘미국 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 미국의 이런 ‘변신’은 불과 얼마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북한 편을 들어 유럽의 결의안에 반대하다니.

 

속도 더 빨라진 전후질서 붕괴, 대응 서두르는 유럽

 

이미 무너져 가고 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축돼 온 국제질서가 도널드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그 질서의 한 축인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지난 2월 12일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재한 채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 이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차기 독일총리로 유력한 메르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오는 6월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국 이익만을 쫓는 대국들의 거래에 따라 국제질서가 하루 아침에 급변할 수 있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그것이 대국들,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깎아먹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경고들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트럼프 집권 기간에는 그런 추세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메르츠는 미국이 유럽을 버릴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마련돼 있다며 유럽 공동방위 강화를 강조했다. 스타머 영국총리의 말대로 유럽은 그럼에도 미국이 함께 해 주기를 바라겠지만, 미국이 떠나갈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8일 회담을 전후해서 이미 2번이나 만난 유럽 정상들은  2일과 6일 다시 만나 대응책을 논의한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헌재 결정만 남은 ‘윤 탄핵심판’ 전망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본인의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탄핵 재판이 2개월의 11차 변론으로 종결되고 이제 선고만 남았다. 윤 대통령은 끝까지 “비상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합법적 권한 행사”라고 주장했지만 법조계에선 ‘만장 일치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올 거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고위 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파면되는데 다수의 헌법 전문가들은 두달여간 탄핵 재판을 통해 대통령의 파면 사유가 충분히 입증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전 국민이 비상계엄을 지켜봤고, 국무회의 절차의 위법성이나 정치인 체포 지시 등 탄핵소추 사유가 여러 경로로 충분히 입증됐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만장일치 인용 결정이 내려졌는데, 그와 비교했을 때도 사안의 중대성이나 법률 위반 여지가 큰 사안이기 때문에 8 대 0을 예상한다”고 했다. 

 

전직 고위법관도 “핵심쟁점인 계엄 선포 요건 자체가 안 되므로 헌법 위반이 분명하고 이외 쟁점들도 입증이 됐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만장일치가 나왔는데, 이 경우는 사안이 더 명백하고 중대하다”고 짚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부장 출신인 김승대 변호사는 “법적으로만 따졌을 때 사실관계, 증거조사도 필요없을 정도로 위법성이 입증이 됐고, 대통령직을 더 수행하지 못할 정도인 게 맞다. 기각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11차 변론에 입장해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 대통령 쪽이 주장한 ‘경고성 비상계엄의 정당성’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위헌·위법한 계엄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될 특단의 사정이 있는지, 위법성을 조각시킬 수 있는지 대통령 쪽은 제대로 주장조차 못하고, 이에 대해 논증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경고성 계엄이라는 것은 법적인 용어도 아니다. 사후적 변명 등은 내심의 의사일 뿐이고 객관적 행위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위헌성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데, 윤 대통령 쪽 대리인단이 계엄의 정당성을 다투고 위헌성을 부정하는 데 치중했던 것 같다”며 “오히려 대통령 직의 수행이 안될 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라는 부분에서 재판관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안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 재판 선고 일정의 남은 변수는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 임명 건이다. 27일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마 후보자 불임명이 국회의 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판단이 나오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 후보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면 마 후보자의 탄핵 재판 합류 문제가 발생한다. 마 후보자가 윤 대통령 탄핵 재판에 합류하려면 변론기일을 추가로 지정해 갱신 절차를 거쳐야 한다.

 

김 변호사는 “변론 종결이 된 사안에 대해서는 종결 당시 재판부가 판단하면 되기 때문에, 마 재판관 임명이 탄핵 선고에 미칠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헌재 근무 경험이 있는 판사도 “마 후보자가 임명이 된다고 해도 8인 선고로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탄핵 선고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탄핵 판단은 8인 재판부가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헌법재판연구원장 출신인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쟁점도 많지 않고, 평의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각 사유에 대해 이유를 쓰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3월7일이나 늦어도 11일 전에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빠르게 국가 혼란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헌재의 의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

 

조갑제, 윤석열 최후 진술은 “특수부 검사의 가장 타락한 모습”

 

 
 
지난 26일 유튜브 조갑제티브이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을 두고 보수 논객들도 비판을 쏟아냈다.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2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윤석열의 최후 진술은 잘 짜여진 ‘간첩을 잡자’는 캠페인 광고”였다고 평가했다. 정 전 주필은 “윤석열이 굳이 간첩을 잡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오로지 속이면 속일 수 있는, 대통령 말발이 먹히는 보수 진영의 국민들을 자신의 탄핵 방벽으로 세우자는 얄팍한 그러나 분명히 먹히는 그런 술수적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전 주필은 이어 “윤석열의 열정적 연설을 들으면서 그는 결코 민주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면서 윤 대통령은 “타인과의 소통적 대화를 거부하고 독재적 세계를 자신의 주변에 만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협애한 자기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 전 주필은 윤 대통령을 향해 “자신이 감행했던 일들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조용히 감수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규재 페이스북 갈무리

 

조선일보 출신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어제 연설은 대부분이 과장이고 왜곡이고 거짓말”이라고 했다.

 

조 대표는 이날 유튜브 조갑제티브이(TV)에 올린 영상에서 “비상계엄령을 펴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자가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광장에 나와가지고 부정선거 음모론에 넘어가서 ‘스탑 더 스틸’(Stop the Steal)이라는 망국적 구호를 흔들면서 대한민국은 부정선거 하는 나라라고 세계에 선전하고 있는 무리들, 그리고 법원에 난입해 구속된 자들을 향해 격려를 보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이라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이게 사람이 할 얘기냐”라며 “특수부 검사의 가장 타락한 모습을 어제 약 1시간 남짓한 연설로 보여줬다. 구제불능의 인간이란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을 편드는 사람들이 반국가세력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헌법재판관들에게는 어제 연설이 ‘이 사람을 격리하지 않으면 또 비상계엄령을 펴겠구나’하는 확신을 줬을 것”이라며 “8 대 0으로 파면해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계엄의 재발을 막을 책임이 헌재에 있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게 또다시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 한겨레 송경화 기자 >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 권한쟁의심판 선고

 

 
2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모습. 연합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감사원의 직무 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감사원이 선관위의 ‘전·현직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해 직무 감찰하는 것은 위헌·위법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 권한이 없다는 취지인데, 헌재는 대통령 소속 하에 편제된 감사원이 선관위를 감찰할 경우 독립적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공정성·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27일 오전 대심판정에서 선관위와 감사원 간 권한쟁의심판 선고 기일을 열고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이렇게 결정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 2023년 5월 선관위 전·현직 고위직 4명의 자녀가 경력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선관위 감사에 착수했다. 이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는 위법하다고 주장했고, 반면 감사원은 선관위 역시 직무감찰 및 인사감사 대상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감사를 수용하면서도 지난 2023년 7월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을 행정기관을 대상으로만 한다는 헌법 97조를 근거로 들며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장치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설치괸 선거관리위원회도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에게 선관위에 대한 직무감찰권이 부여돼 있지 않은 이상, 이 사건 직무감찰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것으로서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에 관한 권한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헌재는 “다만 분명하게 해야 할 것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에서의 배제가 곧바로 부패행위에 대한 성역의 인정으로 호도돼선 안 된다”며 “선관위는 지난해 내부 감사관을 외부인사로 임명했다. 이런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함으로써 선관위의 자체감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선관위 쪽 대리인은 지난 변론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이 ‘부정선거 의혹을 맹신한 윤석열 대통령이 이에 대한 단서를 잡기 위해 선과위를 압박하고자 실시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선관위 쪽 대리인은 지난달 최종변론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감사원의 직무감찰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잘못 맹신한 윤 대통령과 관련됐다는 것이 비상계엄 사태로 명확해졌다”며 “윤석열 정부의 (선관위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은 정권 초기부터 시작됐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감사원”이라고 말했다.

 

이날 헌재는 결정문에서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감찰이 가능해지면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결정문에 “대통령은 감사원장과 감사위원을 임명하고 있으며, 정당민주주의 하에서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서 해당 정당의 정책이나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될 가능성이 있는 바, 대통령 소속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도 있다”고 썼다.  < 한겨레 오연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