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업등 불안에 아웃사이더들 반란
세계적 현상… 1930년대 위기 재현될 수도

“나는 투표결과를 세계화가 야기하는 계속되는 변화와 도전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세계화의 역류 현상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이날 스탠퍼드대학에서 열린 세계기업인정상회의에서 “세계화가 혜택도 줬지만, 우려와 공포들을 촉발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가 지적한 ‘세계화가 야기하는 계속되는 변화와 도전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에서 정치적 현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기성 정치세력과 체제에 도전하는 좌우파를 망라한 비주류, 아웃사이더 세력들의 부상이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그리스에서는 부채위기 이후 집권한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로마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오성운동, 스페인에서는 급진좌파 포데모사, 그리고 유럽 각국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극우 또는 우파민족주의 정당들인 영국독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네덜란드의 자유당,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노르웨이의 진보당, 핀란드의 핀란드인당, 덴마크의 덴마크국민당 등이다.
포퓰리즘으로 통칭되는 이들 세력과 정당들은 극좌에서 극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계화와 그 현상에 대한 반대이다. 이들은 현재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직업 안정성이 파괴되는 것은 세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브렉시트 투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탈퇴 진영은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영국독립당, 집권 보수당의 비주류 우파, 노동당의 비주류 좌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장외 좌파 세력 등으로 좌우파를 망라한 무지개연합으로 이뤄졌다. 또 그 동력은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주권 회복과 이민 제한이었다. 우파 진영은 이민 유입에, 좌파 진영은 탈규제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초점을 뒀으나, 그 근원은 현재 영국 중하류층들이 겪는 경제적 불평등과 직업 불안정성이다. 영국에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고 이민 유입이 적은 스코틀랜드가 잔류 쪽에 투표한 것은 그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의 최상위층 1%의 평균 소득은 1980년 전후 30만달러에서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에는 약 100만달러로 급증했다. 반면 중산층은 약 5만달러에서 6만달러, 저소득층은 줄곧 2만달러 내외에서 머물렀다.
스웨덴 경제학자 예스페르 로이네와 다니엘 발덴스트룀의 ‘소득과 부 분배의 장기적 추세’ 등 연구를 보면, 20세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서방 선진국들의 최상위 1% 계층들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30년까지 증가하다가 하락세로 반전한 뒤 다시 1980년을 기점으로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1930년에 20%에 달했다가 1980년에는 5% 수준까지 떨어진 뒤 다시 상승해 2005년 이후 17%를 넘고 있다.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한 1980년 전후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2차 세계화’가 시작된 해이다. 1980년은 대처 정부 주도로 영국이 머뭇거리던 유럽 통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기도 했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의 외교국방정책연구 분야 선임부소장 대니엘 플렛카는 “브렉시트는 1933년의 전면적 재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33년은 독일에서 나치의 득세 등 “분열된 정치, 분노, 위험스런 결정, 고립주의” 등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는 세계 역사가 겪은 20세기초 ‘1차 세계화’와 그 역류가 다시 재현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세계는 19세기말 이후 자유방임주의에 추동된 1차 세계화 과정 속에서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야기하다가 1차 세계대전과 1930년대 대공황을 겪었다. 이는 독일 등에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나치 정권의 탄생을 낳고, 이는 2차 대전으로 이어졌다.


유럽연합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정치경제연구유럽센터의 프레드리크 에릭손 소장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세계화의 시대는 확실히 끝나가고 있다”며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세계화에 대한 반란에서 정말로 놀라운 점은 그동안 개방 사회에서 엄청나게 혜택을 본 베이비붐 세대들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소득 감소와 실업에 시달리는 노년층과 저학력층들이 2차 세계화 이전의 상대적인 평등성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1차 세계화의 역류인 2차 대전의 전야를 방불케 하는 2차 세계화의 역류 분출을 보고 있다.

< 정의길 선임기자 >


칼럼 제목이 너무 살벌해서 놀라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죽기를 원했던 엘리야의 고백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가 로뎀 나무 밑에 누워 있으면서 죽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가 지금 죽기를 원할까요?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겨루어 놀라운 승리를 거둔 불의 선지자, 엘리야가 왜 지금 연약하고, 힘없는 모습으로 죽기를 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이것을 영적 지도자의 탈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탈진(burn-out)이란 말은 영어 단어 그대로 다 타버렸다는 말입니다. 1970년대 초부터 정신분석가인 허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탈진’(burnout)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로 탈진에 대한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탈진 연구가들은 탈진이 주로 사람을 돕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회복지사, 유치원교사, 교사, 특수학교 교사, 간호사, 의사, 정신과 의사, 경찰 같은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들 역시 사람을 돕는 일이 주 업무이기 때문에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탈진이란 몸도 마음도 다 타버려서 남은 것이 없으며, 더 이상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회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를 넘어서 이제 더 이상의 의욕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때, 또한 아무도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알아주지 않을 때, 자신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주저앉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감의 결여, 의욕상실, 인간관계의 두려움, 사명감 상실, 자기비하, 실패의식, 자존감 상실, 등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없다는데 더 힘이 드는 것입니다. 심하면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습니다.
주변에 많은 목회자들이 탈진으로 지쳐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탈진을 경험했던 목회자로서 이 탈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몸부림치는 목회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역이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토론토 요한계시록 연구회」(토요회)가 마련하는 ‘요한계시록 세미나’가 열립니다. ‘토요회’는 2년째 이필찬 교수를 모시고 세미나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올 해는 이 교수님을 다시 모시고 6월21일부터 밀알교회에서 신학적 논쟁거리가 많은 종말론에 대한 세미나를 갖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7월에는 해외한인장로회 캐나다 동노회 교육부 주관으로 <공관복음의 통일성과 다양성>이란 큰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공관복음을 해석하고 설교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 주제로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세미나들은 목회자들이 잠시 사역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동역자들이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잃어버린 열정과 비전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혹시 탈진을 예방하거나 혹은 치유할 수 있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 사역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강성철 목사 - 우리장로교회 담임목사 >



옛날에 학교 다닐 때, 일본문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일본 영화라는 과목을 택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처음 본 영화가 구로사와(Akira Kurosawa) 감독의 ‘라쇼몬(Rashomon)’이었다. 스토리도 간단해 보이면서, 돈도 들이지 않았고, 출연 배우도 많지 않고, 촬영 장소도 몇 곳 되지 않았는데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이후로 기회가 있으면 그의 영화를 찾아보았다. 그 때 본 영화가 ‘이키루’, ‘7인의 사무라이’, ‘요짐보’, 등의 옛날 흑백영화였고, 당시 이곳 극장에서 상영한 ‘가게무샤’, ‘난’, ‘꿈’등을 보았다. 그는 참 운이 좋은 영화감독, 예술가였다. 세계적인 감독으로 명성을 떨쳤을 뿐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대로 마음껏 만들 수 있는 여건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가 김기덕 감독을 이야기하면서 구로사와 감독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니스 영화제>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 당시의 일본영화계와 오늘 날의 한국영화계를 부분적으로나마 비교하고 싶기 때문이다.


구로사와의 ‘라쇼몬’은 1951년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일본영화 최초로 상을 받았다. 그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일본영화계는 난리였다. 그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영화가 가장 좋은 매체라고 알고 있었고, 권위있는 국제 영화제에 입상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는 다른 작품을 보내기로 거의 결정했는데, 때마침 베니스 영화제와 관계가 있는 이태리 여성이 일본에 있어, 그들은 그녀에게 후보작을 보여주었다. 뜻밖에 그녀는 구로사와의 영화를 선택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고 이상한 작품이기에..


내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이곳 토론토 영화제에 출품한 ‘섬’이었다. 그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 초대받아 상영된 작품이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멋진 영화였고, 무엇보다도 여태껏 내가 보아온 한국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출발한 토론토 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급속히 자라는 동안 그의 영화는 계속 초대를 받아 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섬’으로 시작해서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사마리아’, ‘빈집’, ‘시간’ 등이 꾸준히 초청받았다. 그처럼 자주 초청 받은 감독도 없으리라. 마치 영화만 만들면 초대받은 것 같다. 영화제는 아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이곳 극장에 상영되어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사마리아’로 2004년에 베를린 영화제, ‘빈집’으로 2004년에 베니스 영화제, 아리랑으로 2011년 칸 영화제,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 사실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도 드물지만 짧은 시간에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러한 재능있는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들려 해도 투자자가 없고, 어렵게 만들어도 국내에서 상영할 극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최근 들어 너무 잠잠해, 한국영화계, 나아가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쳐 영화 만들기를 결국 포기하지 않았나 생각 들기도 했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토론토에서 하는 Toronto Korean Film Festival 프로그램을 받았다. 무심히 펼쳐보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Stop’. 그가 가장 최근 2015년에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그 이전에 ’One on One’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그가 아직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여간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한일합작으로 나와 있고, 일본어에 영어자막으로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배경으로 한 것이지만,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 상영할 계획이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사실 요즘 한국영화 대단하다. 재미있고 잘 만든다. 툭하면 1000만 관객 돌파한다고 한다. 영화는 돈을 벌기 위해 만드는 하나의 상품이다. 그리하여 대박나기를 바란다. 누가 어떤 영화를 보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그 틈새에 세계적인 영화제가 인정하는 영화가 숨을 쉴 틈 하나 만들 여유가 우리는 없는가?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