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서해에 국가는 없다

● 칼럼 2016. 7. 4. 16:49 Posted by SisaHan

북방한계선 근처로 몰려오는 중국 어선을 바라보며, 서해의 어부들이 묻는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여론에 밀려 정부가 무력시위에 나섰다. 단속이 효과가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정부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벌어지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한-중 관계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결과다.
중국 어선들은 북방한계선을 타고 들어왔다가 단속을 하면 북쪽으로 피신한다. 북한 경비정이 내려오지 못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2009년 ‘대청해전’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북방한계선으로 내려온 북한 경비정을 우리 함정이 격침시켰다. 201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 군의 최우선 목표는 북방한계선 사수다. 목표를 달성했다.
결과는 어떤가? 북한은 단속할 수 없고 우리 어선은 접근하기 어려운 틈을 타, 중국 어선들이 몰려왔다. 긴장의 바다가 중국 어선들 입장에서는 기회의 바다가 되었다. 평화의 바다가 되지 않으면 중국 어선을 단속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서해에서 긴장의 파도가 친 것이 벌써 9년째다. 어민들의 절망이 깊다. 정부는 언제나 지원대책을 말한다. 늘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고기를 못 잡고 관광객이 오지 않는데,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해양 생태계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한강 하구의 생태계가 깨지면 결국 서해 중부지역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민들은 답을 알고 있다. 아니 누구든지 이성의 눈으로 보면 출구를 알 수 있다. 여당 의원과 여당 소속의 인천시장이 ‘남북공동어로’와 ‘남북해양시장’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2007년의 10.4 선언을 파기해 놓고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에라도 답을 안 것이 어디인가? 환영할 일이다.
다만 남북공동어로의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돈을 주고 북한 어장을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동어로 수역은 바다의 비무장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 말이다. 누구의 바다가 아니라, 공동의 바다를 만들자는 것이다. 북방한계선이라는 직선을 고집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점선의 지혜를 받아들여야, 남북 어부들의 협력이 가능해진다. 경제적 접근만으로 어렵고, 평화와 경제가 어우러져야 한다.


공동어로 수역을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이익이 있는 곳에 다툼이 있고, 그곳에서 호혜의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 연평도 앞바다가 충돌의 바다가 된 이유는 그곳이 바로 황금어장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바다를 공동번영의 바다로 전환한 해외 사례들이 적지 않다.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누구나 답을 안다. 박근혜 정부가 현실을 보기를 바랄 뿐이다. 서해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연계가 왜 문제인지를 알려준다. 서해처럼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모두스 비벤디(잠정협정)의 지혜다. 비핵화에 모든 현안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서해는 역설의 공간이다. 냉전의 현장으로 변한 서해가 한반도에서 시들시들 말라죽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언제나 평화의 꽃은 갈등의 땅에서 핀다. 관계가 악화되면 접경은 전선으로 변하지만, 관계가 개선되면 접경에서 협력이 시작된다. 서해에서 무너진 평화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어부들이 삶을 지속하는 것, 그것이 서해를 지키는 일이다.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 어부들에게 정부가 답할 차례다.
< 김연철 -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 >


[칼럼] 곳곳에 ‘박근혜 리스크’

● 칼럼 2016. 7. 4. 16:48 Posted by SisaHan

총선 뒤 한 심리학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권력, 후기 구도에 집착”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 기사(김태형 <프레시안> 인터뷰)를 봤다. “두려움이 많고 불안감이 큰 유형이라 세상에 방어막을 치고”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간의 여러 심리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신공항’ 논란에도 사과를 끝까지 거부하는 걸 보면 역시 이런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이 협치할 자세가 안 돼 있으면 ‘정치’ 자체가 소모적 정쟁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3당 체제의 국회 대표연설이 모처럼 정쟁 대신 정책경쟁이 됐다며 박수를 받고 있지만, 문제는 역시 대통령이다.

진행 중인 갈등 사안의 상당수가 대통령 때문에 안 풀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세월호 문제를 보자. 특별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맞서 있는데 주무부서인 해양수산부 새 장관이 지난해 11월 취임한 이후 대통령을 대면해 세월호관련 얘기를 한적이 한번도 없단다. 논란의 핵심 쟁점은 결국 대통령의 당일 행적인데, 부끄러운 짓 하느라 한눈판 게 아니라면, 대통령과 참모진 모두 사건 발생 직후 안이하게 판단하는 바람에 구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대강의 행적이라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진심으로 사죄할 자세만 갖는다면 국회와 특조위 안팎에서 그렇게 맞부딪칠 필요도, 보는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이유도 없다.


아직도 해법을 못 찾은 누리과정 예산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공약’이라고 성역시하는 바람에 한정된 예산을 놓고 초등생 형과 유치원생 동생 몫을 놓고 싸움 붙이는 꼴이 됐다. 대통령만 ‘집착’을 버리면 여야 간, 정부-지자체 간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예산 배분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미세먼지 문제처럼 국민 건강을 위협해 대책이 시급한 사안은 ‘집착’하기는커녕 다음 정권에 떠넘겼다.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를 내뿜는 경유 값, 화력발전 문제를 장기과제로 넘기면 그때까지 ‘그냥 견디라’는 말밖에 안 된다. 비겁한 책임회피다.


북핵에 대응한답시고 개성공단을 덜컥 폐쇄한 것은 두고두고 짐이 될 것이다.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위안부 문제까지 ‘불가역적’으로 일본에 양보하고, 앞으로 사드 배치 부담까지 떠안으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1994년 6월 백악관에선 전쟁 위험을 감수하고 북한 영변 폭격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우리 국민은 새카맣게 몰랐다.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대통령의 잘못된 대외정책이 평화와 안전에 대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시대 흐름과도 맞지 않고 보수언론조차 반대하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국제적 평판 하락은 둘째 치고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커 대통령의 ‘가족사 미화’ 욕심에 학생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3당이 대표 연설에서 재벌개혁에 공감한 데서 보듯이,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방안이라며 집착해온 ‘노동개혁’도 이젠 국회에 맡겨야 한다.


기업 소유주(오너)의 독단적 경영이나 잘못된 판단이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치는 것을 ‘오너 리스크’라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면 그것이 곧 ‘대통령 리스크’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협치 대상은 극우에 가까웠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폭식투쟁하는 어버이연합류의 극단적 세력을 활용하려 청와대 행정관까지 붙여주고, 민주와 종북도 구분 못 하는 박승춘류의 군사독재 잔존세력을 임기 내내 끼고 살았다. ‘말은 협치, 행동은 편가르기’식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박근혜 리스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 김이택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하면서 ‘브렉시트’가 이 시대의 혼란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의 ‘소련 해체’와도 일맥상통하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의 브렉시트’라는 조합은 ‘1929년 대공황 이후의 파시즘 득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브렉시트의 파장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브렉시트는 진로를 예측할 수 있는, 그래서 지구촌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브렉시트는 일단 영국의 문제다. 이슈 자체가 ‘영국 독립’이라는 선동적인 구호와 연결돼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세계 5위 경제권인 나라가 독립을 말하니 우습지만, 브렉시트 지지자들의 머릿속엔 과거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이 자리 잡고 있다. 옛 기억이 현재와 미래보다 앞서는 현상은 모든 고령자에게 흔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나라의 진로를 왜곡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영국은 근대 세계의 주역이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이 합쳐 국민국가의 한 전형을 만들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세계화에서 다른 나라보다 늘 한발 앞섰다. 이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경제력에서 미국·중국·일본·독일 등에 현저히 뒤지는 것은 물론 한때 세계가 주목했던 ‘영국적인 것’의 매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브렉시트 소동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근대 영국’의 해체를 내보이는 사건이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스코틀랜드 독립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21세기 세계에서 영국 모델이 설 자리는 좁다.


브렉시트 소동은 또한 이민·난민 문제가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브렉시트 투표의 최대 이슈는 영국 인구의 13%까지 커진 이민자 문제였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를 쓴 이언 모리스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민·난민 등 이주 문제는 기아·전염병·국가실패·기후변화와 더불어 역사의 방향과 내용을 바꿀 수 있는 다섯 기수(또는 묵시록) 가운데 하나다. 과거 게르만족의 이동은 지금 유럽의 토대가 됐고 미국 역시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지난해 세계 이민자 수는 2억4400만명으로 2000년보다 41%나 늘었다. 난민도 6530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구촌 이주자들의 다수가 유럽으로 향하는 것은 유럽이 역사의 최전선에 있음을 뜻한다. 유럽이 이들을 받아들여 발전의 동력으로 삼지 못한다면 이들은 거꾸로 유럽을 집어삼킬 수 있다. 브렉시트 지지자처럼 이들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다. 이민·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만이 지구촌의 지도국이 될 수 있으며, 영국은 그 대열에서 이미 탈락했다.


브렉시트는 아울러 세계사의 큰 물줄기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유럽 통합이라는 역사적 실험은 꾸준히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한 나라·정파·이념·세대 사이의 갈등이 수시로 불거지면서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이는 유럽 통합이라는 이상의 문제라기보다 유럽이 전성기를 지난 늙은 대륙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전처럼 세계사를 짊어지고 갈 역량이 없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유럽연합이 ‘더 큰 유럽’이 아니라 ‘다른 유럽’ ‘단단한 유럽’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은 타당하다. 지구촌을 이끌던 미국과 유럽 사이의 연대도 매개자인 영국의 이탈에 따라 약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역시 늙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브렉시트를 노골적으로 칭찬하는 것은 약해지는 미국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의 패권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 분기점이 미국에서 출발한 2008년 경제위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동아시아는 브렉시트 소동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어느 나라든 독선적이어서는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국민국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나라 안팎의 주체들과 협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자를 포함한 인구 문제에 대한 고민은 동아시아 사회의 생존과 발전에도 근본적이다. 우리에게는 통일 문제가 여기에 직접 연관된다.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바라보는 데까지 진전된다면 역사의 큰 흐름은 급격하게 동아시아 쪽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때 가서 돌아보면 브렉시트 사태가 한 분수령이었음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 한겨레신문 김지석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