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 특위)를 훼방하는 정부의 행태가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특위의 정식 출범을 한없이 늦추고, 조직과 예산을 축소하려 드는가 하면, 파견 공무원을 통해 특위 활동을 일일이 감시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무엇이 두렵고 켕기기에 이러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특위의 이석태 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특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그가 전하는 특위의 사정은 참담하다.
특위가 공식 활동을 시작하려면 조직과 예산이 정해져야 하는데, 정부는 2월17일 특위가 내놓은 조직·예산안의 처리를 한 달 넘게 미루고 있다. 특위 위원들은 5일 임명장을 받은 뒤 조사활동은커녕 실무직원 선발도 못한 채 안타깝게 시간만 보내고 있다. 참사 1주기인 4월16일 이전에 특위가 출범하려면 이번주 안에 조직·예산안이 확정돼야 하는데,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고 관련 부처 사이엔 협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특위 출범을 방해하고 고사시키려는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없다.


특위의 조직과 예산 축소가 검토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특위는 이미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의 문제제기 등에 따라 애초 구상했던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한 터다. 사업비는 38%나 줄였다. 정부·여당이 여기서 더 줄이려 든다면 특위의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렇게 특위를 파행에 몰아넣는 데만 열중한다면 비판과 저항은 피할 길 없을 것이다.


정부는 특위의 독립적 조사활동을 마뜩잖게 여기고 경계하는 모양이다. 1월에도 해수부 파견 공무원이 함부로 가공한 자료를 근거로 친박 실세라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특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헐뜯는 일이 벌어지더니, 며칠 전에는 파견 공무원이 특위의 주간 활동 내역과 다음주 활동 계획이 담긴 내부 문건을 청와대, 새누리당, 해수부, 경찰 정보과 등에 이메일로 유출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특별법의 명문규정을 어긴 위법으로, 특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행위다. 개인적 일탈일 수 없는 만큼 배후를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은 세월호 특위가 정상적으로 출범해 활동할 수 있을지가 의심되는 위기상황이다.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다짐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특위를 가로막는 온갖 행태를 멈춰야 한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고고도 미사일방어(사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로 불거진 우리 외교·안보팀의 수준 낮은 대응력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외교·안보 문제의 특성상, 실상보다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많은 시민이 장차 직면할 실망의 크기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의 정책 중 일반 시민으로부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분야가 외교·안보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홍보와 의전을 앞세운 화려한 정상외교가 불러일으키는 착시현상과, 경제·사회·정치 등 다른 분야에 비해 나아 보인다는 상대평가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호사도 오래갈 것 같지 않다. 한반도 주변 환경의 엄중함과 정부의 안이함이, 그간 정책과 홍보의 격차에서 기인한 호시절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2년을 되돌아보면, 외교적으로 어느 하나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을 찾기 어렵다. 단지, 원칙을 높이 내건 채 상대가 그에 맞춰올 때까지 기다리는 ‘천수답 외교’를 펼쳐왔을 뿐이다. 설거지를 하지 않는 바람에 접시도 깨지 않는, 운동경기에 비유하자면 나의 득점이 아니라 상대의 실점에 의존하는, 비가 오고 나서야 비로소 삽을 들고 나서는 방식으로 일관해왔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일본 정책이 대표적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선 신뢰-후 문제해결’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놓았지만, 실제로는 신뢰가 아닌 굴복을 강요해왔다. 일본에도 마찬가지다. 일본군 군대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북한과 일본의 자책골이 제때 터져주는 바람에 홈팬을 만족시켜왔지만, 그런 상황이 후반전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본을 두둔하고 우리나라를 헐뜯는 듯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차관의 최근 발언은 이런 방식의 외교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후다.


천수답 방식의 외교·안보 정책은 북한, 일본 정책에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1~2년 전부터 줄곧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고가 제기됐음에도 기회주의적 태도로 소일해오다가 발등의 불이 되고 나서야 호들갑을 떠는 사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대한 대응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미국의 1급 동맹국인 영국이 총대를 메는 바람에 부담을 크게 덜었다고는 하지만, 주체적 결정에 따라올 실익은 크게 줄었다. 사드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전략적 모호성’(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가지 부정’(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제3국 간섭 배제’(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와 ‘국익에 최우선을 둔 결정’(윤병세 외교부 장관)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도대체 이 문제를 결정하는 주체는 누구이며, 조율된 입장은 있기나 한 것인지 헷갈린다. 5월 열리는 러시아의 승전 70주년 기념행사가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주위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하고 있는 것도, 갈수록 초청한 쪽과 말리는 쪽 앙쪽의 불만만 키울 뿐이다.


천수답 외교와 ‘환상의 짝’을 이루는 것이, 국제정세와 상대를 살피지 않고 모든 걸 ‘우리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천동설 인식’이다. 좋은 예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중동을 다녀온 뒤 부흥회 간증에서 하듯이 쏟아낸 ‘제2의 중동 붐’이니 ‘하늘의 메시지’니 하는 말이다. 이야말로 중동이 겪고 있는 곤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기중심적 인식이다. 중동의 최부국 사우디아라비아마저 달포 전 신용등급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격하될 정도로, 중동의 거의 모든 나라는 지금 석유값 폭락으로 경제적 곤경을 겪고 있다. 또 ‘이슬람국가’(IS)의 발호와 이란 핵 문제로 인한 안보 불안이 이 지역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마당에 돈 벌러 “대한민국 청년을 나라가 텅텅 빌 정도로” 중동으로 보내자는 독려를, 이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외교는 국익을 걸고 상대와 겨루는 ‘총 없는 전쟁’이다. 천동설의 자기중심주의와 천수답의 소극성으로는 절대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경기다.
< 오태규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



박종범 이지성 씨.


세월호참사 유족 토론토 방문 간담‥ 많은 동포들 참석 위로·응원

세월호 참사가 난지 1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여전히 9명의 실종자를 남긴 채 선체인양이 과제로 남아있고 국회 조사특위 조차 제대로 출범하지 못하는 등 상처치유가 요원한 가운데 희생자 박예슬 양 아버지 박종범 씨와 김도언 양 어머니 이지성 씨가 토론토를 방문, 간담회를 가졌다.

3월21일 오후 노스욕시청 챔버홀에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에는 100명 가까운 한인동포가 참석, 여전히 규명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은폐의혹, 유족들의 아픔을 서로 나누며 격려하는 시간이 됐다. 메인홀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라져간 아이들의 꿈’이라는 주제의 희생자 박예슬 양과 빈하용 군 등의 작품 전시회가 열려 눈길을 모았다.
간담회를 주최한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세기토)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리본·배지 등 세월호 추모기념품을 나눠주기도 했으며, 일부 참석자들은 성금을 내 진행팀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 먼저 세월호 참사 전말과 의혹 등을 취합한 ‘진실은 가라앉지 않는다’와 고 박예슬 양의 꿈과 생전 작품을 담은 전시회 소개동영상 시청에 이어 두 유족의 간담이 진행됐다. 박종범·이지성 씨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 동포들의 도움을 호소하기 위해 용기를 내 왔다”면서 “남의 일이 아닌 후손들을 위한 일로 생각하고 적극 동참해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그간 전해진 구조부실과 진상규명 소홀 및 은폐의혹 등 세월호 참사 이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가족대책위의 투쟁 등을 생생히 전했다.


이들은 앞서 20일 오후 토론토대 빙행턴대에서 열린 이윤경 교수의 참사관련 발표와 기자회견 등에 참석했다. 또 22일 오후에는 윈저 한인교회에서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25일(수)은 밴쿠버에서도 동포들을 만났다.
< 문의: 416-726-6606, sewoltoronto@gmail.com >



세월호 유족 간담회에 많은 한인들이 참석해 관심을 보이며 응원했다.


떳떳한 부모·정의로운 나라위해 도와달라
세월호 유족 토론토 간담 “부정부패 춤추면 진실은 숨어”

“해외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된 것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대한민국 국민도 하나가 되지 못하는 데 해외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대한민국은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기를 내 왔다. 캐나다 여러분이 도와달라” “4.16 참사가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고 해경이 제대로 구조했다면, 아이들은 살았을 것이다. 우리도 여기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9명이 바다 속에 있다. 힘 없는 유가족을 도와달라”
세월호 참사로 졸지에 세상을 뜬 예슬이의 아빠와 도언이 엄마는 3월21일 노스욕 시청 챔버홀에서 열린 캐나다 동포와의 간담회에서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있는 것 같고, 막 집에 뛰어 들어오는 것 만 같다”고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가시지 않음을 전했다. 이들은 얼마 전 벌인 도보행진까지 지난 1년 가까운 세월동안,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몸부림 친 고통과 은폐·호도에만 급급한 정부와의 싸움으로 맺힌 한을 전하며 “떠난 아이들이 남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버티며 아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지난 1월1일 출범한 조사특위가 정부여당의 무책임한 태도로 여지껏 예산도 없이 전혀 활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진상을 밝혀달라는 우리 유족을 향해 종북 좌파니 빨갱이라고 까지 욕하는 사람들은 상관없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들도 엄마 아빠일 텐데 우리들 엄마 아빠가 빨갱이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빨갱이라는 얘기가 아니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11반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250명이 희생된 단원고가 10반까지 있었기에 세월호 지원해주시는 모든 분들을 단원고 11반이라고 한다.”면서 “여러분 모두가 11반이 되어 응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도언 엄마 이지성 씨는 아이의 생존 친구들이 가끔 카톡을 보내와 “엄마 건강하세요. 밥 잘드셔야 해요” 하고 위로해 주기도한다고 전하고 “그 아이들은 세월호가 출항 당시부터 밥 먹을 때 국물이 넘칠 만큼 기울었었다고 증언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출항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밝혔다. 또 “침몰 때 물에 뛰어들어 해경을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당시 123정이 외면하고 오지 않았고, 겨우 헤엄쳐 갔더니 먼저 탄 사람들로 자리가 없어 난간을 붙들고 살아왔다고 했다.”고 전하는 등, 두 유족은 해경의 외면과 다이빙벨 등 구조 방해, 국정원 관련의문, 수사기관과 정부여당의 진상규명 소홀 및 은폐의혹, 국정조사를 비롯한 후속작업 미흡과 및 책임회피 등을 집중 소개했다.
이날 여러 참석자들도 질문에 나서 격려의 말을 전하면서 참사 직후의 구조상황과 의혹, 휴대폰 데이터 및 각종 영상기록 삭제, 성금사용 여부, 향후 연대방법 등을 물었다. 이들은 국민 성금은 유족측은 받지 않았고, 사회복지단체가 받아 가지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유족들은 단 한푼 받은 적도, 사용한 적도 없고 금액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모든 유족이 참여하는 포괄적 사단법인이 출범할 예정으로 있고 국민성금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해 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사고경위와 처리는 달랐어도 비슷한 처지의 천안함 유족들과 연대하는 부분이 있다고 소개하고 “사고처리 이후 가슴 아팠고 놓쳤던 부분에 대해 실수를 줄이도록 도움을 받고있다”고 밝혔다.


정치 지망생이라고 밝힌 한 캐나디언도 질문에 나서 “감춰진 진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지성씨는 “우리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은 CCTV 기록을 담은 PC 등 중요한 자료를 폐기용 자루에 넣어 놓은 것을 발견한 사실, 가족들이 압수신청을 하고서야 휴대폰 영상자료 등 중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 PC에 국정원 자료가 뜨는 것 등 셀 수가 없다”고 공개하고 “정부와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았다. 해외언론이 먼저 5·18진실을 알렸듯이 해외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슬이 동영상이 TV에 방영된 이후부터 휴대폰이 전해지지 않았던 일을 전한 박종범씨도 “유족들은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제 1년이 다가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은폐와 폐기는 늘어나며, 부정부패가 춤을 추면 진실은 뒤로 숨게 되어있다”고 지적하고 “세월호 인양과 진상규명을 위해, 떳떳한 부모,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가족대책위와 함께하며 적극 도와달라”고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세월호 인양촉구 범국민 서명 동참(petition.sewolho416.org), 유족과 실종자 가족 활동 동참 및 알리기 등에 해외동포들이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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