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공약보다 품성을 뜯어보라

● 칼럼 2015. 3. 21. 17:39 Posted by SisaHan

요즘 모국 국회에서 국정조사 대상이 된 소위 ‘자원외교’와 논란의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전대통령측이 큰 업적이라고 내세웠던 국가적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가 물러난지 3년도 안돼 이명박 정부의 최대 비리와 실책으로 비판받고 있다. 자원외교라는 미명 하에 국민의 피땀으로 모아진 나랏 돈을 수십조 원씩 날려버렸고, 국토는 망가졌으며, 후세에는 뒤처리의 무거운 짐을 떠넘겼다. 그러고도 뭘 잘못했느냐는 투의, 눈 귀막은 몰염치가 아니면 판단력이 마비된 동키호테 같은 회고록이랍시고 펴냈다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의 재임 중 실정을 열거하자면 헤아릴 수가 없다. 가시밭길을 헤쳐 나와 영글어가던 민주 꽃봉오리에 찬물을 끼엊고 후퇴시킨 것 부터, 고위직들의 도덕수준을 전락시켜 공직사회의 물을 흐리고, 나아가 국민적인 도덕의식마저 무뎌지게 한 것 까지, 아마 가장 능력이 떨어지는 대통령 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해 ‘7.4.7’을 외쳤을 때 사람들은 ‘경제 대통령’을 기대했다.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G7) 진입’을 임기 중 달성하겠다는 공약은 그의 건설사 성공신화와 청계천 개발이 입증하는 듯 포장됐다. 그래서 5백만 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국민들은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순진한 국민들이 속았음을 깨달은 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럴 듯한 선거용 입발림 공약이 하나 씩 허언으로 드러난 때는 이미 그의 허풍잔치를 제어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현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가. 그 역시 ‘전쟁’으로 비유되는 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하느냐는 속설을 그대로 입증하듯, 수많은 공약들을 쏟아내 국민들을 현혹했다. 야당 후보가 내세울만한 공약까지 재빨리 ‘편취’해 자신의 것으로 선전했다. ‘반값 등록금’과 ‘4대 중병보장’ 등을 포함한 각종 복지공약에, ‘언론 민주화’와 ‘경제민주화’까지, 이른바 ‘행복 공약’은 당대에 모을 수 있는 구상들을 총 취합한 ‘장밋빛 공약의 백화점’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 둘 거둬들이고 뭉개버린 공약이 줄을 잇는다. 국민과의 약속을 파기하고도 일언반구 사과조차 없다.
‘정치인은 원래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G7 혹은 더 넓게 G20에 드는 나라에서 한국처럼 그렇게 심하게 국민을 속여 정권을 잡은 전례가 있을까. 그러고도 아무 탈없이 권좌를 지키며 지지율이 40%를 넘는다고 큰소리 칠 수 있는 나라 말이다.


이 기네스적인 한국의 선거풍토는 허풍에 너그럽고 ‘망각병’에 걸린 국민들과 이를 악용하는 정치인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후보자의 사람 됨됨이를 검증하는데 소홀한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지도자가 되겠다는 인물의 이력과 품성, 그동안의 삶의 자세와 철학, 헌신된 태도여부 등을 정확히 살펴보면 그의 정치비전과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패와 비리가 흔한 건설기업인 출신이라는 점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철학, BBK등 그의 주변에 떠돌던 음험한 소문들을 간과한 것은 이명박 후보 검증의 최대 실수였다. 장기 독재자 부친 아래 ‘궁중수업’만을 받았던 박근혜 후보의 소통과 대인관계, 용인술, 경세론 등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공약에만 눈을 팔았던 결과가 지금의 여러 후유증을 낳고있는 것이다.


눈을 돌려 지금 한창인 토론토 한인회 선거를 살펴보자. 마치 ‘미니 한국선거’ 같은 모양새다. 서로 공약을 내걸고, 수천 장씩 선거인(유권자) 등록신청서 확보에 열을 돌린 세몰이도 닮았다. 하지만 현 이진수 회장을 포함해 그간 한인회장들이 내걸었던 공약을 기억하는 동포가 몇이나 되나. 그 공약이 이행됐는지, 알고 체크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장담컨대, 요란한 공약은 대부분 빈말로 끝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거기에 시비를 걸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곧 잊어버릴 테니까. 잊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여기서도 명심해야 할 것은 진실성과 정의감, 배려심 등 후보자의 전력과 품성, 평소의 헌신자세 여부다. 그가 그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했고, 이웃을 위해 무슨 일을 했으며, 주변에서 무슨 평판을 듣고 있는지가 진짜 중요하다. 사람 됨됨이가 괜찮으면 한인회 뿐 아니라 나라의 지도자가 된다해도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동포사회 앞날을 염려한다면, 눈을 크게 떠 그의 인품을 보고, 귀를 크게 열어 그의 주변 이야기들을 듣고, 발품을 빌어 후보들의 봉사이력을 뒤져보고 ‘싹수’를 판단하라! 그래서 수준미달이라면, 그래도 좋다면, MB의 추억처럼 한인사회도 당분간 정체나 후퇴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 교수들 주도의 연구용역에 조교로 일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묻고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놀란 것은 상당한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면담 대상자들이 자신은 뭔가 박탈당한 상태라 여기면서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후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 지위와 명성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이 피해의식과 불안감을 갖고 있으며, 자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이 언제나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기업 소유자들도 언제나 위기의식,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많이 가진 사람들은 잃을 것이 많으니 언제나 불안하고 빈자의 공격을 의식하여 공포감을 갖는 경향이 있고, 또 그들의 욕망 자체가 불안을 수반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최상층이 갖고 있는 불안감은 좀더 다른 연원을 갖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의 권력·부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쳐 얻어진 것이 아닌 데서 오는 원천적 불안감, 사회운동 진영이 그들의 과거나 도덕성을 거세게 공격한 것을 의식한 피해의식 등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 고전 <대학>(大學)에는 “편안한 이후에 능히 깊이 생각할 수 있다”(안이후능려:安而后能慮)는 말이 있다. 극심한 대립과 전쟁 상태에서는 깊고 멀리 생각할 수 없고, 당장의 생존에 급급하게 된다. 그런데 위기는 사실 주관적이다. 권력자 자신이 깨끗하지 못한 과거를 갖고 있고, 비판자들이 자신을 도덕적으로 부인하면 단순한 비판자도 ‘적’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포용하기보다는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없애려 할 것이다. 과거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 독재정권하에서 권력과 부를 누린 사람들은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었고, 그래서 권력을 잡은 후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집착을 하거나 자신을 비판하는 학생들까지 적으로 취급해서 탄압했는데, 그것은 결국 그들이 강한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해산 청구하고, 국정원과 검찰을 정치의 전면에 나서게 하고, 흠결이 많아도 대통령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들을 기용한 것은 이 정부가 국가의 미래나 장기 정책을 검토할 여유가 없고 쫓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정부에서 대통령 임기 안에 효과가 나오지 않을 사회정책, 즉 교육·복지·노동정책을 거의 펴지 못한 것, 통일을 ‘대박’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영세자영업자·비정규직·청년실업자 등 구체적 대상의 처지를 고려하면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그냥 ‘경제 살리기’만 주문처럼 반복하는 이유도 모두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부정의 과거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자기방어에 급급한 박근혜 정권하에서 3년을 더 견뎌야 하는 우리는 참 딱한 처지에 있다.
권력과 부를 가진 세력이 편안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정치공동체의 미래를 깊이 고민할 수 있고 멀리 보는 정책을 구상하고 또 실천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은 지지율 제고와 표를 얻기 위한 정략의 산물이어서는 안 되고 국민의 처지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숙고의 결과여야 한다. 그게 없을 때 ‘종북몰이’나 경제‘성장’에 집착하게 된다.


광복 70년이 흘렀다. 지난 70년간의 분단과 사실상의 전쟁 상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30년, 100년을 내다보는 보수 지도자나 세력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이제는 좀 편안한 마음을 갖는 지도자, 특히 자신감 있고 미래를 걱정하는 보수세력이 나올 때도 되었다. 그러자면 국민들이 ‘종북몰이’를 써먹는 정치가나 언론을 퇴출시킬 안목이 있어야 한다. 남남 화해를 먼저 해야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중국과 미국의 틈에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피해의식과 불안감이 없는 ‘보수’가 나와야 그와 맞수가 되는 진보가 만들어질 수 있다.
<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커지는 양상을 보인다. 자칫하면 한-미, 한-중 관계가 다 손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며 줄타기를 하려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의 명확한 태도 표명이 필요한 때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은 두 사안을 두고 차관보급 고위 공직자가 서울에서 공개적으로 상대를 견제하는 발언을 하는 데까지 왔다. 발언 내용도 이전보다 직설적이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16일 “중국 쪽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 달라”고 하자,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17일 ‘아직 배치되지 않은 안보체계에 대해 제3국(중국)이 강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맞받았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문제에서도 류 부장조리는 우리나라의 참여를 촉구했으나 러셀 차관보는 이 은행의 지배구조와 투명성 등을 문제삼았다.


이 가운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문제에서는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도 가입 움직임을 보이고 미국 안에서도 가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가입을 미룰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더이상 미국의 눈치를 본다면 은행 내 발언권 저하를 비롯해 국익 침해가 예상된다. 중국이 과도하게 주도하는 지배구조 등의 문제점은 참여해서 바꿔 나가는 게 현실적이다.


사드 문제는 균형외교와 동북아 평화라는 원칙에 따라 빨리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중국은 사드의 한국 배치가 ‘한국 안보 필요성을 너무 과도하게 벗어나’ 자국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본다. 사드가 배치될 경우 한-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정부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구축하는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엠디)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으며, 북한 위협에 대해서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엠디의 일부분인 사드 배치는 이 원칙에 어긋난다. 사드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사드 배치를 전제로 할 경우 기존 국방계획이 크게 바뀌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사드 배치 반대 뜻을 분명히 해 무익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바란다. 전략적 모호성은 미국이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면 못 이기는 체 따라가겠다는 기회주의적 태도의 표현일 뿐이다. 국방부는 17일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더 급한 일은 갈등을 키울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