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말은, 요즘 답답하고 안타깝고 분통터져 하는 한국과 한국인들이 진작 음미하고 새겼어야 할 금언일 것 같다. 더구나 사람들의 실망과 충격은 상식의 초월 범위가 커질수록 심각한 법이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답답하고 안타깝고 생각할수록 치밀어 오르는 분통이, 어찌보면 ‘자신을 잘 몰랐던 데서 오는’ 착각과 주제넘은 오만의 허상 탓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위치와 수준과 격(格)과 속성을 깨달아 ‘나 자신을 아는’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는다면, 그나마 희생자들의 넋이라도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 즈음부터 부쩍 거론되기 시작한 단어가 소위 ‘국격’이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경제대국이라는 것, 전쟁의 참화에서 반세기여 만에 남의 나라를 돕는 부국이 되었다는 것, 짧은 기간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민주 모범국 이라는 것, 선진20개국(G20) 정상회담의 의장국을 맡을 정도로 선국지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것… 거기에 세계를 주름잡는 스마트폰에 자동차에 조선강국에, 한류가 지구촌을 휩쓸게 된 나라-, 대한민국은 이제 잘 사는 선진부국으로 당당히 세계 어디에나 내놓을 수 있고 인정도 받는 ‘고수준 국격’의 가슴 뿌듯한 나라였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세월호 침몰 참사와 그 이후는 그런 ‘국격’의 허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자부와 자만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지, 사상누각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처럼, 한국의 초라한 치부와 총제적 부실의 현주소가 우리들 스스로에게는 물론 세계 구석구석까지 순식간에 전파된 것이다.
국제사회 주요 외신들은 ‘후진국형 사건’ ‘부실대처’ ‘무능정부’라는 말로 비꼬며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5백명 가까운 승객을 태운 대형 여객선이, 먼 바다나 악천후도 아닌데 갑자기 침몰한 것도 의아하거니와, 선장과 선원들이 생명구조는 나 몰라라 하고 맨 먼저 탈출해 버린 희대의 무책임성도 토픽감이 됐다. 말로는 구조를 외치면서 허둥대다 결국은 시신만을 하나 둘씩 건져내고 있는 현장의 탄식과, 대통령에 총리가 나서 큰 소리 치고도 야유나 받는 정부의 난맥과 무능, 거기에 참다못해 청와대에 읍소하겠다는데 진압병력으로 가로막고 채증에 나선 경찰까지, 진짜 ‘전쟁이 터졌다면’ 어찌될지 아찔하기만 한, 총체적인 후진과 불신의 속살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동안 구조작업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믿을 수 없어서 직접 나왔습니다. 당신들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건가요. 1분 1초가 아깝다던 대통령은 어디 갔나요. 나도 지치고 힘들고 이러는 모습 보여 창피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창피합니다. 부모로서 아무것도 못 해줘서 창피합니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이 창피합니다.” 어느 실종자 가족은 경찰벽 앞에서 그렇게 울부짖었다.
 
참사 이후 SNS에 회자되며 우리에게 스스로의 참 모습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자조의 질책들은 끝없이 쏟아지고 있다.
“승객에게는 선실이 안전하다면서 도망간 선장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6.25 때 국민들에게 안심하래놓고 서울을 몰래 빠져나가 한강다리를 폭파했던 이승만도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세상인데…”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병사가 죽었는데도 책임져야 할 함장이며 지휘책임자들이 처벌은커녕 승진을 거듭하며 당당히 살고있지 않는가” “민주선거를 짓밟은 댓글 공작, 대화록 불법유출, 간첩사건 조작 등 국기문란의 책임자들도 꼬리자르기로 면피하고, 모르쇠 대통령은 감싸기만 하는데…” 
지도자들이 책임은 피하면서 말만 앞세워 국민을 속이고 강압을 일삼는 현실, 사회전반의 도덕적 해이와 권모술수의 풍토가 이번 참사에 오버랩 되어 국민적 성토로 나타난 것이다. 이같은 권력에 대한 불신에 더해 그들에 장악되고 영합하며 실상을 외면하는 언론에 대한 반감 또한 극명하게 표출됐다. 오죽하면 실종자 가족들이 “방송카메라를 내려놓고 자원봉사자들 뒷바라지나 하라”고 기자들을 힐난하면서 BBC·CNN이나 중국 언론 인터뷰에 기꺼이 나선다니, 불신의 도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한국호의 침몰’ ‘언론의 침몰’ 자화상이다.
 
불신이 불신을 부르고 적대화 하는 사회는 글자 그대로 사상누각이다. 언제 무너질지, 폭발할지 알 수 없다.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믿는 이 시절까지도 우리가 외화내빈(外華內貧)의 늪을 헤어나지 못한다는 이 현실은 정말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며 고난은 축복이라고 했다. 우리 모두가 그동안 잊고 지낸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꺼내놓고, 깊이 되씹어야 한다. 국민적인 각성 위에 무엇보다 지도자들의 참회와 솔선이 화급하다. 뼈를 깎는 분발로 하나씩 바로잡고, 원칙과 정의를 세워나간다면 우리의 저력은 다시 빛을 발하리라 믿고 싶다.
 
< 김종천 편집인 >


슬프다. 참 많이 슬프다. 80년 5.18 때는 분노가 컸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분노보다 크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살릴 수도 있었을 수많은 어린 목숨을 결과적으로 바다에 수장시킨 이 정부의 대처 과정에 대한 의혹이 가중되면서 그 실상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조난 및 구조 과정에 대한 정보는 통제되고 있고, 희생자들의 항의는 경찰력에 의해 봉쇄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이미 바닥 틈으로 물이 들어와 서서히 침몰하는 중이었다. 스며드는 물에 의해 매년 1만6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비자연적인 이유로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지만, 이번처럼 외부의 충격을 받아 배에 작은 구멍이라도 나면 선실 바닥 사람들 수십, 수백명이 한꺼번에 죽기도 한다.
대한민국호의 바닥 틈은 옛날에 생긴 것도 있고, 더러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큰 틈은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만들었다. 이 두 정부는 김·노 정부가 틀어막으려 했던 틈을 더 크게 벌려 놓았다. 사고 배에서 탈출한 선장 1호는 이승만이다. 그때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국민들에게 배를 지키자고 거짓말을 한 다음 자신들은 탈출했다. 미국이 우리 배를 구제했다고 주장하면서 책임을 지기는커녕 공을 강조하던 그는 자애로운 아버지 이미지로 연기를 하다가 결국 국민들에 의해 쫓겨났다.
 
이· 박 정부의 핵심 국가기관, 금융기관, 권력자들은 무수한 범법 행위를 했다. 이 모든 범죄의 윗선은 거의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고 제대로 처벌된 사람도 없다. 이 두 정부의 최고위층 상당수는 거의 크고 작은 범법 이력을 가진 자들로 채워졌고, 공직에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재력가들이다. 이 두 정부는 김·노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각종 안보, 재난관리 대책, 중요 국가 정보를 거의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거나 필요할 때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해당 분야에 아무리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편이 아니면 갈아치웠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소신을 갖고서 국정원 범죄를 수사하던 검찰 총수를 핵심 국가기관을 거의 총동원하여 찍어낸 혐의가 있다. 국가의 윗자리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으로 채웠고, 기업의 아랫자리는 모두 1·2년 계약의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이·박 정부는 기업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는 신호를 확실히 주고 있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은 안중에 두지 않는다. 소신과 전문성 대신에 오직 충성만이 중요한 세상에서 의인은 사라졌고 아마추어들이 판쳤으며, 국민의 안전을 돌보아야 할 공직자들은 오직 위만 쳐다볼 뿐 2·3등칸 국민들을 관심 밖으로 돌렸다. 혹 몇 사람이 배의 바닥에서 물이 들어온다고 소리지르면 경찰과 검찰이 ‘종북파’라고 겁박을 한다.
 
선상 ‘극장’에서는 파티가 열렸고, 언론은 ‘행정안전’을 ‘안전행정’으로 바꾸었다는 식의 그들의 그럴듯한 말과 연출된 행동만 비췄다. 선상 무대의 주역들은 개인용 구명보트로 탈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을 본 대한민국호의 말단 선원들은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버렸다.
권력자들이나 대기업의 범죄가 단죄되지 않고, 국민들이 그것에 항의할 수 없는 사회에서 관료조직은 억압기구에 불과하고, 국민의 주권은 상실된 상태이며, 사회는 이미 파괴되었다. 이번 사고에서 도망간 선장·선원은 윗사람들을 보고 따라한 사람일 따름이고 기업이 그들을 대우해준 대로 행동했다. 사회가 파괴되면 작은 사고도 대참사가 되고, 대참사의 희생자들은 주로 선실 바닥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배의 본격적인 침몰은 이제부터다.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학부 교수>


[사설] 시스템은 없고 질타만 있다

● 칼럼 2014. 4. 27. 12:29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세월호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승객 구조 방기 행태를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질타했다. “강력히 책임을 묻겠다”며 공무원들도 질책했다. 대통령의 강경한 발언은 전반적으로 질책과 처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런데 왠지 공허하다.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침몰한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다. 정부의 재난구호 시스템과 위기관리 능력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초동대처는 미흡했고 부처들 간에 협업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재난대응 매뉴얼들은 결정적 순간에 멈춰버렸다. 정부는 일사불란해야 할 때 허둥대고 일목요연해야 할 때 오락가락했다. 이 점에서 청와대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남 얘기 하듯 선장 욕하고 공무원 질책하기에 바쁘다.
 
박 대통령은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과 초동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반성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청와대다. ‘재난관리 업무 일원화를 위한 통합시스템 구축’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이는 취임 뒤 안전행정부 산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타워를 맡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요즘 날마다 목도하고 있는 바대로 이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비판과 질책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수리하는 일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안보 외에 재난사태 위기관리 사령탑 기능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청와대 지하 벙커에 설치된 첨단 상황실에는 주요 정부기관으로부터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재난 현장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자상황판이 돌아갔다. 재난에 대한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로 이 기능은 없어지고 말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복원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안에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천금 같은 93분’이 속수무책으로 허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보는 것은 비약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강성 발언이 지지율 관리엔 득이 될지 모르나 상황 수습엔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선장•승무원을 욕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강력한 처벌’을 거론하며 현장 구석구석 깨알 같은 문제들을 지적하는 데 몰두하면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움츠러든다. 당연히 사고 수습이나 대책 마련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관료사회에선 오히려 책임질 일은 회피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는 일만 하려 드는 ‘복지부동의 논리’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일부 관료들이 국민 정서나 상식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