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기적은 언제

● COREA 2014. 4. 27. 11:44 Posted by SisaHan

경기도 안산 올림픽 기념관에 마련된 단원고 희생 학생들을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 조문 온 한 시민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하고 있다.

「구조 174」 언제 바뀌나! 통곡의 바다에서 아직도 기적을 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일주일을 넘겼다.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피해 현황 표에서 ‘구조 174명’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실종 난에 있던 숫자가 줄어 사망 난으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다. 매일 시신 발견과 수습 숫자만이 불어나는 허망함이다. 이 화창한 봄날에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처참하게 꺾여 우리 앞에 내던져지고 있다.
진도 팽목항은 통곡의 바다다. 이름 모를 시신이 건져질 때마다 부모들의 눈빛은 불안함으로 떨린다. 시신은 흰 천에 싸여 보이지 않지만 부패방지용 소독약 냄새에서 자녀의 죽음을 직감한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식의 얼굴을 확인한 뒤 터져나오는 외마디 비명, 울음을 참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소리로 진도 앞바다는 흔들리고 있다. 특히 세월호 선실에서 발견된 아이들의 상당수는 손가락이 골절되거나 손 밑이 퍼렇게 멍들었다고 한다. 갇힌 배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얼마나 벽을 긁었을까 싶어 목이 멘다.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참담함이 목까지 차오른다. 어른들의 욕심과 비겁함이 아이들을 찬 바다에 밀어넣고 말았다. 중고 배 수입, 무리한 증축, 화물 과적, 미숙한 조종, 무책임한 선장, 무능한 정부 등등 어른들의 잘못은 100가지도 넘는다. 그중 한 가지만 제대로 했어도 아이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뭍의 어른들은 맹세한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원칙 따위 우습게 여기고 대강대강 편하게 돈 되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해오던 삶을 이젠 그치겠다고. 그러니 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와 달라고 빌고 있다. 끝까지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본다. 기적은 유사 이래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니, 지금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자원봉사자-정부 충돌배경으로 민간기업 언딘 떠올라
‘수난 구조마저 민영화 체계로 전환시켰나’ 지적 나와

세월호 실종자 구조작업 과정에서 민간 잠수부와 정부 사이의 충돌이 발생한 배경에는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주도해온 민간기업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언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수난 구조마저 정부가 책임지는 민·관·군 협력체계에서 민간 기업에 위탁하는 민영화 체계로 전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가 언딘을 둘러싼 문제점을 6가지로 나눠 조목조목 짚어봤다.

1 언딘이 독점한 구조 작업
<한겨레> 취재 결과 민·관·군이 협력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수색·구조 작업을 민간 업체인 언딘 위주로 운영해왔다는 진술이 다양하게 나왔다.
해군특수전전단(UDT·유디티) 동지회의 김명기(36)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신속한 구조를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현장을 찾았지만, 해경이 막아 아예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천안함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정부 쪽과 핫라인이 구축되어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민간업체가 끼어 우리는 구조 작업에서 완전히 배제된 상태”라고 말했다.
민간 잠수부들의 단체인 황대영(61) 수중환경협회 대표의 진술도 마찬가지였다. “자원봉사를 하러 왔는데 해경 쪽에서 아예 상대를 안해줬어요. 언딘이 구조 작업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의 고명석 대변인은 이런 진술들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 고 대변인은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거센 물살과 제한된 시야로 물 속에서 10분도 채 안 돼 출수했다”며 “심지어는 입수도 안 한채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언딘은 이곳에 상주하며 합동구조팀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원봉사자들이 구조작업에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해명이다.

2 왜 UDT나 해경이 아니라 언딘인가
하지만 왜 현역 유디티의 잘 훈련된 해군이나 해양 경찰 등과 같은 공공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언딘이라는 민간 업체를 중심으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세월호 구조 작업은 참사 초기부터 줄곧 언딘이 주도해서 이뤄졌다. 특히 구조 작업 초기 주요 구조 및 시신 인양이 민간 잠수부가 한 일로 발표됐는데, 이들이 바로 언딘 소속 잠수부들이었다.
고 대변인은 지난 19일 이뤄진 언론 브리핑 질의응답에서 “여기서 말하는 민간 잠수부란 구난업체인 언딘을 의미한다”며 민간기업이 선체 수색 등 특수분야에서 더 전문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 입에서 군·경보다 민간 잠수부가 시민 구조에 더 우수하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3 정부는 수난 구조마저 ‘민영화’했다
애초 정부와 계약한 업체로 알려졌던 언딘은 사실 세월호의 소유주인 청해진해운과 계약을 맺은 업체로 드러났다.
고 대변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언딘은 정부가 아닌 청해진해운과 계약했다. 정부가 수색 작업을 총괄하지만 구체적인 계약은 선사와 맺는다“며 ”피해를 보상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여객선 주인인 선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딘 쪽도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구난업체는 일반적으로 선사와 계약을 한다“고 확인했다.
정부와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님에도 언딘이 합동구조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근거는 2012년 8월 전면개정된 수난구호법이다. 2012년 수난구호법이 개정되면서 “수난구호협력기관 및 수난구호민간단체와 협조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그리고 이때 법이 개정되면서 수난구호협력기관의 하나로 한국해양구조협회가 설립됐다.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수난구조활동에서 정부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됐다.
한국해양구조협회에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6개 조선사, 한진해운 등 7개 해운사를 비롯해 10여개의 민간 구난업체가 속해 있고, 이 가운데 언딘이 있다. 수난구호법에 근거해 한국해양구조협회는 수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해경과 함께 수색구조에 나서게 되는데, 이런 조처의 일환으로 청해진해운이 사고 발생 이튿날인 지난 17일 언딘과 계약을 맺고 구조에 나섰다.
결국 해경의 장비와 인력만으로 기존 해양사고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법의 취지인데, 여기서 공공의 장비와 훈련된 인력을 더 보충하지 않고 민간에 손을 벌리는 사실상의 ‘민영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그리고 김윤상 언딘 대표이사는 최상환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 김용환 전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과 함께 해양구조협회 부총재직을 맡고 있다.

 
4 언딘은 정말 전문성이 있는 업체인가
문제는 언딘이 정말 수난 구조작업에 전문성이 있는 업체인가라는 데 있다.
언딘의 주요사업 내용을 보면 선체 인양, 기름 유출 방제 등이 기록돼 있을 뿐 인명구조에 관한 내용은 없다. 언딘이 공개한 기존 사업 내역에서도 언딘이 인명구조 작업을 한 기록은 없다. 정부는 언딘이 국내 유일한 국제구난협회(ISU) 정회원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언딘에는 전문 구조인력이 없어 필요할 때마다 단기로 계약해 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04년 설립돼 2008년부터 구난업무를 시작한 언딘이 역대 최악의 해양 사고라고 불리는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구난업체로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게 적절한 지 의문이 제기된다.

5 언딘이 주도한 수색 구조 작업은 혼선 투성이였다
전문 구조인력이 없는 언딘이 주도한 수색 구조 작업은 혼선 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언딘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사재를 들여 가져왔지만 해경에 의해 투입이 거부된 다이빙벨을 23일 밤에야 급히 한국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에서 빌려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컷뉴스>의 보도를 보면, 기존 선내 수색작업을 지원했던 기존 ‘2003 금호 바지선’을 23일 언딘이 운영하고 있는 ‘리베로 바지선’으로 교체하면서 23일과 24일 수색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때는 나흘 밖에 안 되는 조금기(조류가 느려지는 시기)라 수색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했던 시기였다.
유디티 동지회가 가져온 머구리배도 사용하지 않았다. 유디티 동지회의 김명기씨는 ”17일 잠수시간을 늘려주는 잠수장비 머구리배 4척을 사고 현장에 가져왔지만 해경이 막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책본부는 나흘이 지난 21일 머구리배를 급히 다시 투입했다“고 말했다.

6 남는 의문점-언딘은 구조가 아니라 인양 계약을 맺었나?
언딘이 구조 작업에 무능함을 드러내면서 언딘이 청해진해운과 맺은 계약이 실종자 구조작업에 대한 계약이 아닌 인양 작업에 대한 계약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황대영 한국수중환경협회 대표는 ”왜 구조단체가 아닌 인양업체가 왔느냐“며 ”애초에 인명 구조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정부는 언딘이 청해진해운과 맺은 계약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언딘 쪽 역시 ”구체적으로 어떤 계약을 맺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허승 기자>


[한마당] 메이플라워와 한인사회

● 칼럼 2014. 4. 21. 19:19 Posted by SisaHan
미국의 건국 연원은 잘 알려진 것처럼 101명의 영국 이민자들이었다.
대영제국의 권력 전횡과 부패, 종교적 타락에 염증을 느낀 일단의 청교도 그룹은 1620년 일생일대의 결단으로 새 세상을 찾아 떠난다. 
당시 아메리카 신대륙 버지니아에 도착한 메이플라워호의 101명 외에 다른 한척의 배는 남아메리카로 향했다고 한다. 그런데 버지니아에 내린 사람들은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고 믿는 그야말로 순수한 신앙인들이었던 반면, 남미를 향한 사람들은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금 은 보화도 필요하다“는 물질주의에 경도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태운 두 척의 배가 서로 다른 땅에 도착한 뒤 4백년이 흐른 지금, 두 배의 당시 이민자들은 후손들이 사는 모습과 환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상상이 가능하다.
 
하나님만 의지한 버지니아의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기 전에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먼저 짓고 예배를 드린 뒤 삶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전제군주의 권력횡포와 부정부패, 오염된 종교의 사슬을 끊고 인간다운 삶의 새 사대를 열어 가면서 이웃사촌으로 대화와 토론, 논쟁과 협의, 그리고 조정을 거쳐 합의안을 만들고 힘을 모아 외침에 투쟁하며 나라를 건설했다. 조지 워싱턴을 첫 대통령으로 뽑은 당시의 인구는 고작 4백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 소국이 모국인 영국을 제치고 지금 세계를 주름잡는 민주주의 대국, 미국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미국이 신앙의 힘으로 강대국이 됐다는 종교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세운 첫 이민자들의 철저한 각오과 실천의 힘- 바로 그 청교도 정신이 후손에게 남긴 유산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신들이 피부로 겪은 모국의 부정과 불의를 자계하고 냉철하게 배제한 새 삶과 새 세상을 개척해 나가면서 그들은 신앙에서 비롯된 정신적 무장과 경험적 교훈을 한시도 잊지 않았음을 본다. 
미국의 사례를 들어 이민자 된 우리네 형편을 대비하고 논하는 것은 무리요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통분모가 없지않다는 관점에서, 한번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볼만 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슨 사연이 있든 모국을 떠나 이민의 삶을 택한 기저에는 채워지지 않은, 또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었기에 현실을 벗어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민 땅이 한국보다는 앞선 나라인 캐나다인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캐나다에서 일군 새 삶에서 지난 날의 부족과 불만들을 변화시킨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이민자들이 황무지에 모국을 능가하는 대국을 일궜다는 데, 우리는 뒤진 나라에서 앞선 나라로 옮겼으니 그 몇 배 나름의 ‘유토피아’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은가. 정신적으로 든 물질적으로 든, 모든 면에서 옛 시절을 능가하는-.
안타깝게도 반세기를 맞았다는 10수만의 우리에겐 ‘아직’ 그런 자긍심을 찾을 수 없는 것 같다. 아니 모국을 능가하기는커녕 더욱 추종하고 흉내 내고, 때론 못된 짓도 감싸기에 바쁜 잘못된 모국사랑에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보면 민망한 모습을 도처에서 본다. 
이 곳에서도 우리들 신앙심은 깊어 교회와 사찰은 수두룩하지만, 일제치하 자주 독립정신을 심었고 국난에 분연히 일어섰던 의로움의 기백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국의 세속화된 현실만을 뒤따르는 것일까.
 
국민을 섬겨야 할 공무원이 대접받고 군림하려는 구태와, 또 그들을 맴돌며 은덕을 바라는 일부 인사들의 비윗살이 보는 이들을 거북하게 만든다. 관존민비의 ‘전통’이 이민 땅에 기생하는 걸까. 
단체마다 다툼과 말썽이 끊이지 않는다. 사색당쟁에 익숙해진, 그래서 서로 파탄나고 만 속성이 살아있는 걸까.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권력의 오만과 일탈, 역사왜곡을 나무라는 소리는 작아지고, 오히려 두둔하고 대변하는 이들이 큰 소리 치는 이상한 현상이 판친다. 친일의 후예들, 독재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온 것일까. 
잡은 자, 쥔 자들 그들만의 동아리에서 해치우면 오케이, 한탕 지나가면 그만이라는 방자함은 저쪽과 이쪽이 너무도 닮은 꼴이다. 다수권력의 논리가 철칙이 되고 온갖 매체가 한 패거리 한 목소리로 찬양나팔을 불면서, 반대이론에는 눈감기나 종북몰이 둘 중 하나인-.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최근 한 신문사 출신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낸 이민사 작업에서도 얼핏 그런 자태가 보인다. 측근 둘러세워 해치우기에 제머리 깎기, 그리고 자화자찬의 평가까지가 엇비슷하다.
 
다시 메이플라워호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모국을 과감히 떨쳐냈고, 모국의 불의에 과감히 대적했고, 마침내 능가해 이제 훈수를 두는 그들 이민 대선배들 처럼 왜 우리는 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네 후손들은 조상을 뭐라고 평할까. 이민 유입이 줄면서 주변에선 “불황에 큰일” 이라는 아우성이 들린다. 어찌 우리는 모국을 떨쳐내고 훈계하고, 능가하지 못하는가. 그저 모국만 쳐다보고 꽁무니만 쫒는다는 이야기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