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내동댕이쳐진 공동체

● 칼럼 2014. 5. 4. 20:33 Posted by SisaHan
한국전쟁 개전 직후 서울시민에게는 결사항전의 메시지를 남겨둔 채 몰래 피난을 떠난 이승만의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박명림 교수의 역작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 피난 과정의 전말이 사뭇 희극적으로 자세하다. 6월27일 서울을 떠나 대구에 합류한 7월9일까지 13일간의 피난 기간에 ‘국가원수’ 이승만은 극소수의 참모, 수행원들만 데리고 사실상 혼자 튀었다. 
이승만은 정부에조차 행선지를 숨긴 채 아직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평화로운 삼남 지방을 혼자서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그는 서울이 점령되기도 전에 미국대사관을 통해 일본에 망명정부 수립까지 요청해놓았다. 즉, 일각에서 ‘국부’로 추앙되고 있는 이승만이 이 시기에 한 유일한 일은 인민군 한 명 없는 삼남 지방에서의 가열차고 경이로운 홀로 줄행랑, 이것밖에 없다.
후일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이 자신이 지시한 한강다리 폭파로 인민군 치하에 남아야 했던 서울시민들에게 어떻게 피의 보복을 벌였는지는 잘들 아시리라.
수치심에 떨며 사죄를 해도 모자랄 상황에 오히려 복수의 굿판을 벌였다. 상처받은 공동체의 치유를 위해서는 피를 토하는 사죄가 필요한데, 오히려 적반하장의 선전포고를 통해 상대의 피를 요구했다.
 
이승만이 보여준 이 궁극의 치졸함과 후안무치를 생각하다 보면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란, 정의란,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괴로운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승만처럼 위기의 순간에 공동체를 버리고 정의를 우롱한 자들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국가권력과 부귀영화를 독점해왔던 탓이다.
세월호 침몰 후의 상황이 더욱 참담하다. 정말로 이게 나라인가 싶다. 평소에는 서로 더 많은 권한을 주장하던 장관, 수석들이 저마다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도망치기 바쁘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은 힘없고 ‘빽’없는 이들에게 닥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무능하다. 희생자 구조에 실패한 정부에 국민들이 분노하자, 대통령은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신이 수장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늦었지만 분향소를 찾았고 국무회의 석상이긴 해도 사과도 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막상 그가 이끌고 있는 정부는 국민들의 추모 열기를 축소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족 사이에 사복경찰을 풀고 분향소 예산과 설치 장소는 최소화하더니 추모의 촛불집회마저 금지했다가 법원에 제동이 걸렸다. 누가 대통령의 진심을 믿겠나? 이 와중에 집권당과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좌파의 정부전복작전, 선동꾼 침투, 유족이 미개한 국민, 빨갱이들의 기획 음모, 제2의 5.18 대비 등등 온갖 적반하장, 증오의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사고 공화국’이었고, 그 책임을 특정 정치세력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 비극의 와중에 힘없는 국민들은 비극을 공유하는 정서의 공동체가 되었다. 적어도 과거의 정부와 집권세력은 이 비극의 가상공동체를 위무하는 시늉을 내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극복의 대책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이다. 이게 한국 사회가 그동안 지켜온 부끄럽고 민망한 최소한의 금도였다. 하지만 현 정부와 보수세력은 아예 적반하장 쪽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내동댕이쳐진 공동체 앞에서 그들이 최소한의 수치심도 버리고 끊임없이 종북좌파 등 증오의 언어를 호출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들의 영토와 기득권이라도 보호해야겠다는 탐욕의 발로가 아닐까? 
제발 그러지들 마시라. 애시당초 공동체의 정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해도, 금도는 지켜야 한다. 처연한 봄날이다.
<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순복음영성교회 성령집회
맥도날드 목사 등 은혜의 말씀

“마지막대에 우리의 초점은 종말이 아니라 온천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주님을 담대히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자” 
순복음 영성교회(담임 김석재 목사: 1 Westside Dr., #1, Etobicoke, M9C 1B2)가 4월25일부터 27일 주일까지 사흘간 김석재 담임목사와 저스틴 김(Justin Kim) 전도사, CAMP(The Canadian Association of Ministries & Paspors) 설립 총회장인 존 맥도날드 박사 등 3명을 강사로 개최한‘Kingdom Now 성령집회가 풍성한 은혜 가운데 열려 많은 성도들에게 도전과 회복의 시간이 됐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말씀, 치유, 선교’(마4:23)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성령집회는 첫날인 25일 저녁 저스틴 김 전도사(The founder of Justin Kim Ministires 대표, Fresh Fire Conference설립자)가 ‘11시59분입니다’(요엘 2:28~32)라는 제목으로 설교, “성경에 예수님 오실 때가되면 달이 핏빛같이 변한다고 하신 것처럼 종말적인 징조가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부흥을 사모하며 열방에 나가 마지막대에 타락하고 상처받고 악한 영에 빠진 친구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여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이뤄나가자”고 역설했다. 
26일은 김석재 담임목사가 ‘하나님 나라의 치유’(롬 14:17)라는 설교에서 “하나님 나라의 치료는 성령의 권능을 입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므로 회개를 통해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한다.”고 강조, 성령충만의 굳건한 믿음으로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음을 전했다.
 
27일 주일은 존 맥도날드 박사가 ‘성령충만 성도의 삶(The Holy Spirit in the Life of the Church: 행 2: 1~12)’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마지막대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하며 순종의 삶을 살라고 주문했다. 이번 사흘 저녁 집회를 통해 참석 성도들은 큰 은혜를 누리며 많은 치유의 체험을 했다.
특히 간증에 나선 강혜숙 권사는 80년 된 천식이 그치고 평생 빨간 김치를 못먹던 혀마름병이 나았으며, 잠을 많아야 1시간30분 정도 잤으나 이제 6시간을 자게 됐고 허리통증이 사라지는 등 4가지 고침을 얻었다고 소개했다.
순복음영성교회는 그외에도 심장병, 불면증, 우울증, 두통, 위역류성 식도염, 천식 등으로 고생하던 이들이 치료받았다고 밝혔다.
 
< 문의: 416-414-9191, 416-554-9191 >


끝없는 위로의 발걸음: 세월호 침몰참사 안산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올림픽 기념관에 추모객이 끝없이 몰려 인근 고찬 초등학교 운동장에까지 줄지어 늘어선 추모객 행렬.

해경도착 50분 뒤 “기다리래”

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 16일 오전 10시 17분. 한 단원고 학생이 보낸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라는 마지막 카톡 메시지는 사고 발생 14일이 지났는데도 가슴을 찢어지게 한다. 
당시는 해경 구조정이 도착하고도 50분 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퇴선 명령만 전달됐더라도 이 학생은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이미 퇴선 명령을 내려야할 선장과 주요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지 40여분이나 지난 후였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 침몰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탑승객의 카카오톡 메시지 400여개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공개된 메시지들을 보면 배가 기울기 시작하던 8시 52분 무렵 학생들은 “쏠리는 것 장난 아니다”, “신난다. 페이스북에 올리면 재밌겠다”며 배가 침몰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8분 뒤인 9시께 배가 20도 가량 기울기 시작하자 “구명조끼 입어”라는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고, “진짜 타이타닉 같아”, “제발 살 수만 있으면” 이라는 절박한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선내 방송은 “단원고 학생, 선생님 여러분. 현재 위치에서 절대 이동하지 마시고 대기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고, 학생들은 “예”라고 순진하게 카톡에 올리고 있었다. 이어 30분 후 배가 50∼60도 기울고 구조정이 도착할 무렵에도 학생들은 “살아서 보자.”, “구명조끼 입고 있어”라는 메시지들만 오갈뿐 전혀 밖으로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구명조끼만 있고 선내에 가만히 있으면 구조해 줄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해경과 전남 어업지도선이 침몰당시 찍은 동영상도 28일 뒤늦게 공개됐다. 동영상에는 사고당일 오전 9시28분께 승선인원 14명인 100t급 경비정 123정이 현장에 도착한 뒤 세월호 주변을 맴돌았다. 해경 가운데 어느 누구도 선실내로 들어가 구조활동을 하는 모습은 목격되지 않았다. 더구나 해경은 당시 세월호에 400∼500명이 승선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구조를 위해 보낸 선박은 경비정 한척과 소형헬기 2대 뿐이었다. 구조된 생존자 174명 가운데 해경이 구조한 인원은 절반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어업지도선에 딸린 단정 2척과 민간어선 2척에 의해 구조됐다. `초동대응 미흡’이 아니라 `초동대응 무시’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뒤늦게 공개된 카톡의 내용과 동영상은 국가 재난대응의 허술함을 또다시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국민의 분노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이런 국가, 이런 공무원을 믿고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한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