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외환위기 때는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었다. 부실기업만 도려내면 경제가 되살아날 거라는 기대를 하며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고 고통을 참아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그 성격부터 다를 뿐 아니라 훨씬 고질적이다.
가장 큰 차이는, 외환위기 당시는 한보나 대우 등 특정 ‘기업’의 부실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조선이나 해운 등 특정 ‘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둘 사이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외환위기 때 기아자동차는 부실에 빠졌지만 같은 업종인 현대자동차는 기아차를 인수해 경영할 정도로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실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복합적이며, 정부나 채권단도 더 넓은 안목으로 구조조정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외환위기 때 했던 대로 특정 부실기업의 재무 상태를 개선하고, 정부 주도의 ‘빅딜’ 등을 통해 위기를 해결했던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구조조정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실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본질을 외면한 채 ‘부실기업’의 재무 구조 개선에만 매달려선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사태의 심각성은 경쟁력 약화가 조선이나 해운 등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철강이나 석유화학, 전자 등 그동안 우리 경제를 떠받쳐온 주요 업종이 모두 비슷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잘나가던 자동차산업도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어느 업종 하나 믿고 기댈 곳이 없다. 우리 경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국제 경제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해당 기업에 있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도 당시의 국제 경제환경에서 더는 통하지 않던 차입에 의한 투자 확대와 기업 확장 전략을 고수했던 국내 기업의 시대착오적인 경영 행태 때문이었다. 지금의 위기도 대외환경 변화에 적응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는 외환위기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제때 통제하지 못한 금융기관의 책임은 훨씬 크다. 그리고 궁극적인 책임은 사실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관리해온 정부에 있다. 외환위기를 넘긴 2000년 3월 <금융·기업 구조조정 백서>를 발간한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의 감독 소홀과 미숙한 정책 대응 등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외환위기에서 별로 배우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폭탄 돌리기 하듯 구조조정을 미뤄오면서 부실 규모만 더 키웠다.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구조조정의 주체를 명확히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가 정부와 한국은행 등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는 실무 협의체에 불과하다. 이번 위기는 우리 경제의 바탕을 이루는 주요 업종의 총체적인 경쟁력 약화에서 초래된 만큼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채권은행 등을 망라한 범국가적인 대응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부터 위기의 본질과 심각성을 깨닫고 직접 나서야 하는데, 뒷전에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면서 남 탓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산업 구조조정’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너진데다 3당 체제로 갈라진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고, 노조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서로 공방만 벌이다 최악의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남북 관계까지 파탄 낸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제 경제마저 거덜 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시대착오적이고 무능한 대통령을 뽑은 대가를 우리 국민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이다.
< 정석구 - 한겨레 신문 편집인 >



이른바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진상 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청와대 지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보고받았다”고 공언한 뒤 검찰 수사도 별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배후의 몸통에 대한 추적은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상태라는 점에서 크게 우려치 않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진상규명 태스크포스의 지적대로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시간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번 사건은 국가정보원이 보수우익 단체들을 조정하는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고, 청와대가 권력의 힘으로 이를 뒷받침하면서 전경련 등 자금줄을 동원해온 은밀한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공판에서 드러난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박아무개씨 사례는 국정원과 보수우익 단체의 관계가 어제오늘에 형성된 게 아님을 잘 보여준다. 박씨가 2011년부터 2년 동안 1인시위 및 신문광고 게재까지 지시하며 보수우익 단체 7곳을 지원·지도해온 사실이 재판기록 등을 통해 밝혀졌다. 한 단체는 개혁성향 판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어버이연합과 국정원의 밀접한 관계는 이미 서울시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에서 공작에 동참한 탈북자에게 어버이연합이 경비 5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나 이른바 ‘박원순 문건’을 통해서도 제기된 바 있다.
세월호 참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12·28 위안부 합의 등 중요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색깔론과 폭력으로 권력의 돌격대 역할을 하도록 보수우익 단체를 사주해온 것이 청와대와 국정원이었다면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심각한 일이다.


검찰은 국정원 댓글사건과 ‘좌익효수’ 사건에서도 국정원의 명백한 불법 사실을 축소·은폐하는 바람에 여론의 지탄을 받아왔다. 이번 어버이연합 사건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인다. 경실련 등 여러 곳에서 고발했음에도 잠적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추적이나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수사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절대로 덮어서는 안 되는 사건일 뿐 아니라, 과반 의석이 된 야당들도 공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덮을 수도 없다. 증거인멸 시간을 주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검찰은 즉각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기 바란다.



미국인 57% “타국 문제 손떼라”

● WORLD 2016. 5. 14. 17:46 Posted by SisaHan

고립주의 공감… ‘트럼프 대외노선’ 지지 경향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 전액을 동맹국들이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인 절반 이상도 트럼프의 대외정책 기조인 ‘고립주의’에 공감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뿐 아니라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통령이 돼도 과거처럼 섣불리 군사적 개입을 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12~19일 미국 성인 20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지난 5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7%가 ‘미국은 국내 문제에만 신경쓰고, 각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또 응답자 41%가 ‘미국이 너무 과도하게 다른 나라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

미국 여론이 말해주는 ‘트럼프 현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군 주둔 비용 전액을 동맹국들이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인 절반 이상도 트럼프의 대외정책 기조인 ‘고립주의’에 공감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트럼프뿐 아니라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대통령이 돼도 과거처럼 섣불리 군사적 개입을 하기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 센터가 지난달 12~19일 미국 성인 20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지난 5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7%가 ‘미국은 국내 문제에만 신경쓰고, 각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또 응답자 41%가 ‘미국이 너무 과도하게 다른 나라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결과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8년 금융위기에 지친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불간섭주의’를 선호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가 유세 과정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편, ‘자국 방위는 각국이 알아서 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 유권자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응답자 49%가 ‘미국의 글로벌 경제 참여는 임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나쁘다’고 답하는 등 보호무역주의 선호 흐름이 강했다.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유세 과정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비판했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기존 입장을 뒤집고 자유무역 비판에 합류한 것도 이런 여론을 반영한 탓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공화당 거물급 인사들은 대선 후보로 확정된 트럼프에 대해 노골적인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일각에선 공화당 주류와 정반대 주장을 일삼는 트럼프에 대한 일종의 ‘길들이기’ 차원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CNN> 방송에 출연해 “지금 시점에선 트럼프를 지지할 준비가 안돼 있다”며 “물론 지지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을 단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본선 ‘캐스팅 보트’를 쥔 히스패닉계 표를 위해 히스패닉계에 영향력이 큰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나 히스패닉계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를 끌어안고 이민자에 대한 적대적 정책도 재고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2012년과 2008년 각각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존 매케인 상원의원, 그리고 ‘부시 가문’은 여전히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모두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조지 부시(아버지) 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퇴임 후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 지지 선언을 하지 않을 생각이며, 아들인 부시 전 대통령도 침묵을 지킬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