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비겁을 벗어나는 길

● 칼럼 2014. 6. 2. 17:00 Posted by SisaHan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일대일>이 개봉했습니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나온 게 지난해 12월이니 반년도 못 되어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영화가 나온 겁니다. 김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위해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작노트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 대한 영화다. ‘나 역시 비겁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면서 이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매일 충격을 받는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살해되는 여고생의 이름이 ‘민주’인 걸 보면 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객 수를 점치긴 이르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김 감독처럼 ‘나 역시 비겁하다’고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비겁에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있습니다. 제가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앞장서서 청와대를 기쁘게 하는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청와대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쓰는 수동적 비겁자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 구조의 실패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한데 어울려 초래한 비극입니다. 능동적 비겁자로 밝혀진 선장과 선원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정, 부패, 부실에 눈감은 사람들, 정부와 기관들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한 우리 수동적 비겁자들도 공범입니다.
다행히 비겁하게 살던 사람도 비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잘못된 걸 보면 잘못됐다고 하고,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추구하면 비겁자의 삶을 끝낼 수 있습니다.
 
물론 비겁이 체질화되어 끝내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세월호 승객의 가족들이 여의도 한국방송으로 찾아갔을 때는 못 본 척하다가 그분들이 청와대 쪽으로 가니 그때에야 그곳에 나타나 사과한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려 하자 제작을 중단시켰다가 피디들이 총회를 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중단을 철회한 에스비에스의 높은 사람들이 좋은 예일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로 인한 전문성 결여라는 게 밝혀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 희생자 수습을 책임진 해양경찰을 해체한다고 전격 발표하여 유가족들을 망연하게 하고 곧바로 남의 나라 원자로 설치를 보러 간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한 날 재가동 승인된 국내 최고령 원전 고리 1호기의 수명을 10년 더 늘리려고 눈치 보고 있는 관계당국과 한국수력원자력, 이들 모두 체질화된 비겁을 보여줍니다.
 
한 나라의 권력자와 그 수하가 능동적 비겁에 젖어 힘없는 사람들을 길들이면 그 나라는 평형을 잃은 배처럼 기우뚱거리지만, 우리에겐 비겁하지 않았던 대통령 노무현이 있고, 그의 뜻을 이어가는 김기덕 감독과 무수한 동행이 있습니다.
게다가 열흘 후엔 비겁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지방선거입니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되고 ‘돈 있고 백 있는 사람 옆에 있어야 이익’이라지만 ‘돈과 백’을 거부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투표하면 비겁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 그래야 세월호 승객들의 희생에 답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보지 말고 사람 보고 투표해주세요! 비겁을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 투표입니다.

< 김흥숙 - 시인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주미 한국대사관 인턴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청와대는 이 사건이 언론에 등장하는 게 반갑지 않겠지만 1년이 지나도록 사건 처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21일 워싱턴 검찰청에 전화를 걸었다. 2주 전 한국 언론들이 미국 검찰의 늑장 처리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내보낸 이후 변화가 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사건을 계속 검토 중이고 말해줄 게 없다”는 것이었고, 수사팀 인터뷰 요청에는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내 분위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일각에선 법리적 검토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 사건과 관련해 법리적으로 검토할 부분은 두가지뿐이다. 하나는 ‘경죄’인지 ‘중죄’인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면책특권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법조인들은 이 사건은 복잡하지 않아서 경죄·중죄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이 정도 사건이면 이미 법리 검토를 서너차례도 더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외교면책특권은 적용 가능성 여부를 떠나 당사국(한국)이 행사 의사를 표시해야 효력을 발효하는 것인데, 한국 정부는 이미 이것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어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사건 처리가 미뤄지는 이유는 사건 수사나 법리 검토 이외의 다른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 정부의 수동적인 태도다. 대통령의 외국 순방 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수행원을 처벌할 경우 나중에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할 수 있다. 미국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콜롬비아 순방 때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성매매를 하다 들통나 미국으로 소환한 바 있다. 미국이 이번에 윤 전 대변인을 강하게 처벌할 경우 외국이 미국 관료를 처벌하는 선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한국 정부의 안이한 태도다. 우리 정부는 당시 미국 쪽에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으나 그 이후엔 사실상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 이후 외교 채널을 통해 신속한 수사를 요청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미국 법무부를 통해 사건 진행 경과를 파악하는 수준인데, 미국 쪽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셋째는 윤 전 대변인 쪽이 미국 검찰을 상대로 만만찮은 로비를 하고 있는 점이다. 현재 윤 전 대변인은 법무법인 에이킨 검프 변호인 4명의 조력을 받고 있는데, 이 법무법인은 워싱턴에서 로비력 1~2위를 다투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피해자 가족은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20대 딸을 가진 부모의 심정상 신원 공개 등 ‘2차 피해’를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의 감시 범위에서도 사실상 벗어나 있는 미국 검찰은 아마도 ‘시장의 논리’에 순응해 이 사건을 흐지부지해도 별 타격이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사건이 일벌백계는커녕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흐지부지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것을 보며 국가 기관은 왜 존재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약자 보호보다는 권력자들을 가급적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한 탓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년 전 이 사건과 관련해 “이 문제는 국민과 나라에 중대한 과오를 범한 일로, 어떠한 사유와 진술에 관계없이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히 사실관계가 밝혀지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에 다시 신속한 수사를 요청해 그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

< 박 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


세월호 참사의 고통과 상처는 그대로다. 참사가 일어난 지 40일이 넘었지만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은 여전히 피 흘리고 아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와 일부 인사의 비인간적인 망언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통과 상처의 근원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다. 유가족들은 자신의 고통에 앞서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과 절망에 죄스러워하며 가슴이 찢어지고, 생존자들은 희생자 가족들의 비탄 앞에 고개 숙인 채 자신의 상처는 미처 돌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처절한 공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고통은 마지막 한 사람의 실종자가 돌아오는 날까지 온전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통은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이 잘 안다. 세월호의 유족들이 그렇다. 유족들은 서로 챙기며 아픔을 어루만지고, 치유를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참극의 현장에서 다친 이들이 서로 피를 닦아주고 지혈하며 상처를 감싸는 상황이다. 지금으로선 외부의 다른 어떤 상담자보다 ‘상처 입은 치유자들’인 유족이 서로에게 더 힘이 될 것이다. 아득한 터널같이 계속되는 고통의 나날을 뼈저리게 공감하고 함께 몸 비비며 견디어줄 사람이 우선 유족 자신들인 까닭이다.
그런 마당에 성급하게 치유를 서두른다면 상처만 덧나게 된다. 가족들의 심리적 외상은 현재 진행중이다. 하루하루 더 크게 부어오르고 있다. 외상후 증후군으로 잘못 알고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덤볐다가는 되레 고통이 더 커질 수 있다. 지금은 상처에 메스를 들이대기보다는 함께 울어주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일상을 챙겨줄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세월호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시민사회의 자발적 움직임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경기도 안산에서 나타나고 있다. 피해자들 가까이에서, 피해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동체 안에서 아픔을 어루만져 치유하려는 민간 차원 치유 작업이다. 단시일이 아닌 안산에서 5년 이상 머물며 유가족·주민들과 긴밀하게 소통해 이들의 일상 복귀를 돕자는 ‘공동체 복원’ 혹은 ‘사회적 치유’ 모델이 추진되고 있다. 세월호 관련 기록을 모아 진상규명뿐 아니라 치유에 활용하고, 미술·건축·공연 등을 통한 다양한 심리치료와 지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프로그램이 구상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껏 보지 못한 의미있는 시도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들의 손길과 도움이 필요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