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27일 3억원을 기부한 시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그런 좋은 뜻을 좋게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이야 ‘좋은 뜻’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판단은 국민 몫이다. 앞뒤 사정을 살펴보면 꼭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무엇보다 안 후보자가 기부금 4억7000만원 가운데 3억원을 총리 지명이 발표되기 직전에 냈다는 점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를 염두에 둔 ‘눈치 기부’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3억원 기부 시점은 5월19일로, 청와대의 총리 후보자 발표 사흘 전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당일이다. 사전 검증에 필요한 절차 등을 고려하면 안 후보자는 이때 이미 자신이 총리로 내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안 후보 쪽은 그 이전인 4월24일에 유니세프 쪽에 기부 관련 문의를 했다고 하지만 당시도 총리 교체가 기정사실로 굳어진 시점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기부금 3억원은 총리 지명에 대비한 ‘보험료’ 성격이 짙다.
 
안 후보자는 기부금의 진정성 문제가 불거지자 이번엔 변호사 활동으로 증식한 재산 11억원의 사회환원 카드를 내놨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낙마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곤란한 처지를 모면하려는 궁여지책의 재산 환원은 감동을 줄 수 없다. 오히려 총리라는 직책에 기필코 올라보겠다는 일념 아래, 자신의 오점마저 돈으로 사려 하는 발상 아니냐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안 후보자가 떳떳하지 않은 돈이라도 토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도 우려스럽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대법관 출신으로서 잘못된 전관예우 관행에 일조했다는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더구나 안 후보자 스스로 “내가 생각해도 수입이 많았다”며 재산 증식에 문제가 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안 후보자가 이번 일을 ‘옥에 티’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하루 1000만원’은 역대 인사청문회 사상 최고 액수다. 오죽하면 ‘황제 전관예우’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청와대는 임명동의 요청서에서 안 후보자가 ‘민관유착 적폐 척결’ 적임자임을 내세웠다. ‘전관예우의 최고봉’을 기록한 인물이 전관예우에서 비롯한 악습을 일소하는 데 앞장설 수 없음은 자명하다. 위에서 흙탕물을 흘려보내면서 아랫물이 맑아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마당] 문제는 길환영이 아니다

● 칼럼 2014. 6. 2. 16:53 Posted by SisaHan
공영방송을 장악하여 입맛대로 주무르려는 청와대와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청하는 하수인들에 대한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한국방송>(KBS)에선 기자에 이어 피디들까지 사장 퇴진을 외치고 나섰고, 정부의 언론통제에 대한 학계, 언론계의 비판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시도는 알다시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때 부활한 언론통제의 악습은 김인규(KBS)-김재철(MBC)-길환영(KBS) 등 ‘걸출한’ 어용사장의 계보를 통해 이어졌고, 그 결과 2014년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세계 68위로 곤두박질쳤다.
박근혜 정부의 시대착오적 언론통제는 마땅히 저지돼야 한다. 그러나 이는 공영방송 정상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문제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을 넘어, 이명박 정부가 짓밟고 박근혜 정권이 숨통을 끊어놓은 공영방송의 공론장을 되살리는 것이다. 공영방송은 이제 이름에 걸맞은 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환골탈태해야 한다.
사실 정권의 방송 장악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 기득권 세력이 수면 아래에서 줄기차게 추진해온 우민화 책략이다. 민영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공영방송마저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일에 용의주도하게 동원되고 있다.
 
공영방송의 현실을 보라. 그곳은 개그맨, 연예인, 스포츠맨의 영토이지, 다른 나라, 예컨대 독일의 경우처럼, 예술가, 학자, 정치인의 영역이 아니다. 
그곳은 연예인의 사생활 잡담, 개그맨의 객쩍은 수다, 막장 드라마의 악취, 휴먼다큐의 값싼 감상주의, 건강에 대한 끝없는 협박, 맛있는 곳과 놀러 갈 곳에 대한 유혹으로 가득하지만, 어디에서도 우리 사회가 다다른 참담한 현실과 국가가 처한 냉엄한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그곳은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이 완전히 소거된 탈역사의 공간이다. 세계와 사회를 인식하고, 역사와 시대를 성찰하는 지성의 공간은 오늘날 한국 텔레비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이 이처럼 사회적 비참은 철저히 외면한 채 거짓 행복의 가상을 매일매일 안방에 실어 나를 때, 그것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치적 사안에 대한 왜곡보도보다 훨씬 더 치명적이다. 보도 조작은 단면적이고 주기적임에 반해, 우민화는 전면적이고 일상적이며, 왜곡보도는 목적의식적으로 이루어짐에 반해, 우민화는 부지불식간에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수행하는 이런 전면적 우민화는 본능적으로 이성적 토론을 기피하는 -“말 많으면 공산당”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보수의 뿌리 깊은 지적 열등감과 반지성주의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무지상태에 묶어두어야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묘한 패배주의가 보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권력만 잡으면 빗장을 걸어 공론장을 폐쇄시킨다. 왜 그들은 열린 공론장을 두려워하는가? 왜 그들은 자유로운 공론장에서 갈등과 대립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가?
방송의 민주화를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의 우민화를 저지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권의 방송 장악은 공정한 보도를 망치지만, 방송의 총체적 오락화는 대중의 의식을 잠재운다.
 
우리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채 오락물의 부드러운 유혹에 굴복하여 날마다 탈정치화된다. 그리하여 사회적 비참은 도처에서 창궐하는데도, 사회변혁을 위한 물적 제도적 조건은 이미 갖춰졌음에도, 사회변혁의 실천은 부재한 부조리한 현실이 지속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분출되지 못하는 것이다.
<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 >


계열사 일사분란한 분리·합병… 승계준비
자금 확보·이 부회장 경영능력 입증 숙제

재계에서 조용히 확산되던 이건희(72) 삼성전자 회장의 ‘건강이상설’은 이번 입원으로 일정 부분 확인되는 분위기다.
삼성그룹 수뇌부는 향후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이 회장의 퇴원 여부가 확실치 않아 언제까지 자리를 비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회장이 장기 국외체류 기간에도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이 경영 지휘부(컨트롤타워) 구실을 해왔지만, 중대한 의사 결정은 이 회장이 직접 내렸다는 것이 삼성그룹 쪽 설명이었다. 최근 본격화된 삼성그룹 사업구조 개편 역시 이 회장의 재가 없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삼성 안팎에선 설명한다. 이 회장이 직접 결정내리지 않는 경우에도, 이 회장의 포괄적인 위임 아래 경영활동이 이뤄져왔다.
 
이미 이 회장의 건강 문제에 대비해 삼성이 차근차근 준비해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경제계에선 최근 삼성그룹 구조 개편과 인사 이동 등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삼성전자는 2011년 말 삼성LED를 합병하는 등 부품 부문 계열사들의 구조 개편을 시작했다. 최근 제일모직과 삼성SDI 합병, 삼성 금융계열사 구조조정 등 사업구조 개편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것 역시 이 회장의 건강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은 물론 후계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설명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올해 안에 이뤄질 삼성SDS 상장으로 이 부회장은 그룹 승계 자금 확보의 길까지 열렸다.
특히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데 눈길이 쏠린다. 삼성전자 중심의 사업구조 개편은 곧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재용(46) 부회장의 공식 소속사인 삼성전자는 삼성그룹 전체 이익의 70%가량을 내고 있다. 4대 그룹 소속 핵심 관계자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구조개편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헤쳐모이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막판 터잡기 차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래전략실 팀장들의 전면 교체 역시 삼성전자가 핵심 열쇳말이다. 2010년 이 회장의 경영 복귀 뒤 출범한 미래전략실에서 근무한 팀장들 대부분이 삼성전자 등으로 이동했다. 
경제계에선 삼성그룹의 3세 승계 작업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가 이 부회장에게 남았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 재계 1위인 삼성그룹을 넘겨받을 능력과 자질을 과연 갖췄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을 이 부회장 스스로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삼성그룹은 위기에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그룹 이익의 70%를 내고, 그런 삼성전자 이익의 70%는 스마트폰에 쏠려 있을 정도로 극도의 편중 상태다. 이런 가운데 스마트폰 성장세가 둔해지고 있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은 최근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에 대해 “뭐가 괜찮나, 별로였다”고 말한 바 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승계 자금 역시 확보해야 한다. 삼성SDS 상장으로 1조원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을 경우 내야 할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도 이 부회장 체제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순환출자 방식으로 제조사와 금융사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지분구도를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삼성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적잖은 자금이 필요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 계열사 간의 이합집산을 보면 변화 속도가 ‘마하경영’이 분명하다. 지배구조 변화 등이 삼성전자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위기를 타개하는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할 시험대에 올라선 셈”이라고 말했다.
< 김진철 기자 >


3남매 승계 상당부분 교통정리
삼성전자·생명 지분이 관건

삼성가 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은 삼성그룹에서 어떤 위상과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까? 삼성의 속내는 이 회장의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남매에게 안정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삼남매가 74개 계열사 전체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은 그룹의 규모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기업들을 지배할까? 대개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가 되는 기업을 활용한다. 삼성에선 이 기업이 삼성에버랜드다.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보면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각종 계열사로 이어진다. 삼남매가 현재 삼성그룹에서 가지고 있는 계열사 지분은 시장에서 평가액이 6조원이 넘는다. 특히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남매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을 각각 25.1%, 8.4%, 8.4% 보유하고 있다. 삼성SDS의 지분율도 삼남매가 각각 11.3%, 3.9%, 3.9%다. 이 외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지분 0.6%, 이부진 사장은 삼성종합화학의 지분 4.9%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일감 몰아주기,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이용해 이 지분을 취득했다. 큰아들인 이 부회장은 이 회장으로부터 1995년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았다. 이 중 증여세로 16억원을 납부하고, 남은 돈으로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을 각각 12만여주, 47만주 매입했다. 이 두 기업은 급격히 성장했고, 이 부회장은 불과 2년 만에 보유 지분을 매각해 563억원을 손에 쥐었다. 이 부회장은 이 돈으로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 제일기획의 전환사채를 매입했다. 이 중 에버랜드의 전환사채는 훗날 헐값 발행 논란을 일으켰다. 이부진, 이서현 자매도 당시 발행된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을 인수했다.
 
결국 삼남매는 편법으로 불린 자산으로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인 삼성에버랜드의 최대 주주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했다. 하지만 아직 숙제는 남아 있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20.8%), 삼성전자(3.4%), 삼성물산(1.4%) 등의 지분을 상속할 경우 상속세가 5조원이 넘고, 이들 지분이 시장에 그대로 나갈 경우 총수 일가 지배권이 약해진다.
삼남매는 앞으로 보유한 지분을 매각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거나 상속받을 수 있도록 실탄(현금)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이미 지난 9일 삼성생명이 계열사와 삼남매가 보유한 삼성자산운용의 지분 100%를 매입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로 인해 삼남매는 643억원의 현금을 마련했다. 특히 삼성SDS의 상장은 삼남매에게 2조원대의 차익을 남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그룹의 사업구조 재편은 이미 지난해부터 활발했고 승계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던 참이었다. 작년 9월 삼성SDS가 삼성SNS를 흡수합병했고,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은 에버랜드로 넘어갔다. 삼성SNS 대주주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SDS의 지분율이 기존 8.81%에서 11.26%로 늘었다. 올해 4월엔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을 흡수합병했다. 석유화학의 지분 33.18%를 보유했던 이부진 사장은 합병 법인의 지분 4.91%를 확보했다. 삼성의 사업 재편이 최근 9개월간 8번에 이른다. 잇따른 사업 재편으로 삼남매간 교통정리는 상당 부분 이뤄졌다. 이 부회장이 전자·금융을 맡고, 이 사장이 호텔·유통, 이서현 사장이 패션 분야를 담당할 것이 확실시된다. 건설·화학 분야는 아직 불명확하다. 결국 그룹 경영권의 3대 ‘세습’은 완성 단계다. 이들이 이끄는 삼성은 어떤 모습이 될까.
< 윤형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