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정보협정) 체결을 보류했다. 다름 아닌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국민 여론 수렴이나 국회 동의 절차도 밟지 않고 국무회의에서 변칙적으로 처리했던 것이니 당연한 조처다. 앞으로 국회에 먼저 설명한 뒤 절차를 밟겠다고 하지만, 한-일 정보협정의 위험성과 여론은 충분히 드러난 만큼 이 기회에 아예 폐기해야 한다.
 
한-일 정보협정은 그 필요성은 물론이고 추진하는 배경이나 그 결과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실 일본이 확보하고 있는 과학정보는 그렇게 탐낼 수준이 아니다. 아울러 한-미 동맹 차원에서 실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득실을 따진다면 북한 군사정보는 일본으로 흘러갈 게 더 많다. 북한 정보는 한국만큼 많이 확보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정부가 엉터리 이유를 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보협정은 한-일 군사동맹은 물론 한-미-일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을 위한 밑돌 구실을 한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본토를 보호하고, 중국의 확장을 저지할 목적으로 이 정책들을 추진해왔다. 문제는 전진기지로 최적지인 한국이 일본과의 군사협정을 극력 꺼린다는 점이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다. 일본은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한번도 버리지 않았다. 왜구의 수많은 노략질과 임진·정유왜란에 이어 결국 1910년 한반도를 병탄해 수탈과 유린을 자행했다. 그러고도 진솔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영토분쟁을 도발하고 역사왜곡을 남발했다. 침략의 면에선 6·25전쟁을 도발한 북한과 다를게 없다. 게다가 요즘 핵무장까지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줄기차게 한-일 군사협정을 재촉했다. 3각 군사동맹과 MD체제 구축이 자국의 이익 관철엔 최선이지만, 한국의 처지에선 경제적 명줄이 걸린 중국과 군사적 갈등이나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
 
이처럼 위험천만한 협정을 멋대로 추진했으니 책임 규명을 피할 수 없다. 국방부는 협정 자체에 소극적이었다고 하고, 외교통상부 역시 졸속 처리에 반대했다고 하니 결국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로 눈길이 쏠린다. 아무리 미국에 맹종한다지만, 국가 안전과 국익을 위험에 빠뜨릴 짓을 밀어붙였으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 해도, 국가 안보와 관련된 안건을 국민도 국회도 무시한 채 변칙 처리한 김황식 국무총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핵심 측근이라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 이어 ‘상왕’으로 불리던 이 전 의원마저 법의 심판대에 섰다. 
지난해 12월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이미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이 전 의원이 구속되면 면책특권을 받는 이 대통령을 빼놓고는 주변 실세들이 거의 예외 없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가히 역사상 가장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망가진 정권’임을 만천하에 확인시키는 셈이다. 공인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염치도 없이, 대의보다 개인의 이익을 챙기는 데 골몰해온 집단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전 의원은 단순히 현직 대통령의 친형일 뿐 아니라 이른바 ‘몸통의 몸통’으로서 현 정권의 중요 인사까지 좌지우지하는 상왕적 지위에 있었다는 점에서 역대 대통령 가족들의 범죄와도 차원을 달리한다. 어찌 보면 동생의 양해 내지 방조 속에 대통령 형으로서의 권한을 맘껏 누려온 셈이다. 대통령을 “명박이”라고 부를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부려온 그에 대한 단죄에 이 대통령이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은 일단 이 전 의원에 대해 솔로몬저축은행과 미래저축은행, 코오롱그룹 등에서 수억원을 받아 쓴 혐의를 집중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 포스텍의 부산저축은행 500억원 투자 개입 의혹 등 8가지 의혹을 집중 추적하겠다고 밝혔듯이 5년 내내 쌓여온 그의 비리 의혹은 차고 넘친다.   대통령의 ‘측근 법무장관, 후배 검찰총장’ 체제 아래서 이제껏 정권의 눈치를 봐온 검찰이 과연 성역 없이 수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전직 대통령 친형 수사에선 수백억원 계좌설까지 만들어내며 칼을 휘두르더니, 계좌에서 돈뭉치까지 발견된 현직 대통령 친형한테선 ‘장롱 속’에 묻어뒀던 돈이란 코미디 같은 해명서 한 장 받아놓고 꾸물대던 검찰이기 때문이다.
 
“국가재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긴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도덕성이 마비된 대통령과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라는 듯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받아 쓴 형, 두 형제의 행태가 무더위보다 더 국민을 지치게 한다. 이 전 의원은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지만 민생고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두 형제의 파렴치한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죄상을 털어놓고 참회 어린 고백으로 국민의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대통령의 형 된 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칼럼]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없다

● 칼럼 2012. 7. 10. 16:27 Posted by SisaHan
아는 친구들 중에 아버님의 사업이 기울어 1980~90년대에 빈손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들이 두어명 있다. 부잣집 도련님이 하루아침에 이국땅에서 가게 점원 또는 빌딩 야간청소부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낸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다. 그러나 20~30여년 지나 그들은 큰 가게를 운영하거나 사업체를 중국, 베트남까지 확장한 사업가가 되어 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미국이니까, 아버지나 나도 체면 따지지 않고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지, (시선 많은) 한국에서라면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로 있었을 것”이라며 “미국은 5년만 열심히 일하니 대부분 기반을 잡을 수 있더라”고.
그러나 그 ‘아메리칸드림’의 역사는 20세기로 종말을 고한 것 같다.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여러 한인들을 만났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7명 중 1명이 불법체류자(서류미비자)라고 한다. 그리고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무작정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여전히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2008년 촉발된 미 금융위기가 미국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지만, ‘아메리칸드림’이 깨지기 시작한 건 이미 그 이전부터였던 것 같다. 70~80년대에 엄청나게 쏟아지던 미국 이민자들도 이제는 매년 그 수가 줄어 한인타운에선 한인들만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은 이제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가 많다. 열심히 일하면 집 사고, 자동차 사고, 아이들 좋은 대학 보낼 수 있었던 소박한 ‘아메리칸드림’은 이제 대학을 졸업한 자식들이 다시 한인타운으로 유턴해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형태가 늘면서 빛이 바랜다.
최근 퓨리서치 조사를 보면, ‘자식들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답한 미국인은 조사 대상자의 47%로 절반이 안 됐다. 미국 경제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인 2009년의 62%보다 더 낮은 수치다. 실질 실직자 2600만명, 국민 8명 중 1명이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품지원)를 받는 곳에서 ‘희망’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정서적으로 빈부격차에 덜 분노하는 나라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출연한 영화 ‘파 앤 어웨이’를 보면, 어느날 사람들이 주인 없는 넓은 벌판(오클라호마)의 출발선에서 총소리에 달려가 깃발을 꽂으면 그 일대의 넓은 땅이 자기 땅이 되던 서부개척의 역사를 지닌 미국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그런데 미국 센서스 통계를 보면, 1979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인 소득 상위 1%의 소득은 275% 늘어났는데, 같은 기간 하위 20%의 소득은 18% 늘어나는 데 그칠 정도로 미국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계층 상승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 자료를 보면, 점수가 낮은 고소득 가정 학생보다 점수가 높은 저소득 가정 학생이 대학을 중도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경제학자들은 미국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지금의 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7년 상원의원 시절 “아메리칸드림을 재생시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지금도 그 말을 반복하고, 앞으로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 권태호 - 한겨레 신문 워싱턴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