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광복절 태극기까지 뒤집었다…기미가요·이승만다큐 이어 방송 파문

광복절 경축식 전 좌우 바뀐 태극기 방송 내보내
KBS “제작자 실수 태극기 그림 반전… 진심 사과”

 
 
 
 
▲사진=8월15일 KBS 방송화면 갈무리
 
 

KBS가 광복절에 내보낸 날씨 예보에서 잘못된 태극기를 노출해 비판을 받고 있다. KBS는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작진의 실수로 방송사고가 불거졌다고 설명했다.

KBS는 15일 오전 광복절 경축식 직전  ‘KBS 뉴스 930’ 날씨 예보에서 건곤감리 위치가 잘못된 태극기를 방송에 노출했다. 광복절날 좌우가 뒤바뀐 태극기를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KBS는 15일 입장문을 내고 “태극기 이미지 표출에 실수가 있음을 확인하고 즉시 수정했다”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향후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KBS는 방송사고가 불거진 이유에 대해 “인물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장면에 맞추기 위해 제작자가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태극기 그림을 반전시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KBS는 광복절인 15일 자정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미가요 선율이 들어간 오페라를 편성해 비판을 받았다. KBS는 제작진의 불찰로 편성을 잘못 했다며 사과의 뜻을 표했다. KBS는 “당초 7월 말에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올림픽 중계로 뒤로 밀리면서 광복절 새벽에 방송되게 됐다. 바뀐 일정을 고려해 방송 내용에 문제는 없는지, 시의성은 적절한지 정확히 확인, 검토하지 못한 제작진의 불찰”이라며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 윤수한 기자 >

 

KBS노조 “박민 취임 1년도 안 돼 KBS 뿌리째 흔들려… 사퇴하라”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진행한 박민 KBS 사장. 사진=KBS
 
 

공영방송 KBS가 8·15 광복절 79주년에 방송사고, 편성 문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KBS를 두고 “NHK 서울지국”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5일 성명을 내고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 KBS’의 정체성이 낙하산 박민 사장 취임 이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15일 KBS에서 불거진 논란과 사측 해명을 강하게 비판했다.

KBS본부는 KBS가 15일 자정 기미가요 선율이 있는 오페라를 방영한 것에 대해 “낙하산 박민 취임 이후 KBS의 시스템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KBS는 올림픽 중계 때문에 방영 일정이 연기돼 오페라가 15일 방영됐다고 설명했는데 KBS본부는 “비겁한 변명이다. 그런 어설픈 설명으로 시청자게시판에 분노를 표출하는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했다.

KBS본부는 “가뜩이나 수신료 분리고지로 시청자들의 불편과 불만이 높은 지금, 프로그램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다른 위험은 없는지를 챙겨야할 시기에 이런 변명이 통할 거라고 보는가”라고 밝혔다.

KBS본부는 사측이 이승만 전 대통령 미화 논란이 있는 다큐멘터리 ‘기적의 시작’을 15일 방영하는 것을 두고 “실무진들은 영화 자체도 논란을 많이 담고 있을 뿐더러 독립영화 심사에서조차 혹평을 받은 낮은 수준에 KBS에서 방송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반복해서 제시했다”며 “사측이 편성권을 운운할 자격이나 실력이 있기나 한가”라고 지적했다.

KBS본부는 “이번 사태는 실력도 자격도 없는 낙하산 박민 사장이 편성권이 본인만의 고유 권한이라고 오도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KBS의 방송제작 시스템을 깡그리 망가뜨려 생긴 일”이라며 “(시청자게시판에) KBS를 일컬어 ‘NHK 서울지국’이라는 모욕적인 비유도 등장한다. 이런 상황에 오늘 밤 ‘기적의 시작’마저 방영된다면 이제 KBS는 ‘뉴라이트’ 방송이라는 딱지마저 붙게될 것”이라고 했다.

KBS본부는 “낙하산 박민 사장은 지금이라도 당장 ‘기적의 시작’ 방영을 취소하라”며 “광복절에 ‘나비부인’ 방영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고 물러나라. 그것만이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 윤수한 기자 >

 

 “KBS 광복절 기미가요, 친일정권에 공물 바친 것”

민주당 원내대변인 “광복절과 독립정신 대한민국 국민 향한 의도된 조롱”

 
 
 
 
▲KBS가 15일 0시에 방영한 나비부인이라는 오페라방송에서 기미가요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노종면 페이스북
 
 

광복절 0시에 기미가요를 방송한 KBS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KBS가 친일정권에 공물을 바쳤다”고 비판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5일 오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광복절 0시에 ‘기미가요’를 튼 KBS는 친일 정권에 순국선열을 조롱하는 ‘공물’을 바쳤다”며 “윤석열 정부의 노골적인 친일 행태가 공영방송마저 망가뜨렸다”고 비판했다.

노 원내대변인은 “광복절 79주년인 오늘 0시, KBS를 시청하던 국민은 눈을 비비고 귀를 의심해야 했다”며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화면을 채웠고, 일제 강점기 우리 선조들에게 강요되었던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흘러나왔다”고 설명했다. 노 원내대변인은 “KBS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편성한 것뿐이라고 변명하겠지만 광복절과 독립정신, 대한민국과 국민을 향한 의도된 조롱”이라고 비판했다.

노 원내대변인은 “윤석열 정부가 친일 매국 행태에 끓어오르는 국민적 분노에도 ‘마이웨이’를 계속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며 “대통령의 방송도 모자라 친일 방송을 만들려고 그렇게 기를 쓰고 KBS를 장악했느냐. ‘광복절 기미가요’는 친일 정권에 바치는 ‘공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되물었다.

KBS는 15일 0시 1TV에서 방송한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푸치니 나비부인 1부>에서 19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자코모 푸치니 작곡의 오페라 극을 보여줬는데, 결혼식 장면에서 기미가요의 선율이 나온다.  <조형호 기자 >

정부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적대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에서 ‘자유 통일’을 이룰 첫번째 과제로 명시한 것은 ‘국민 가치관과 역량’이다. 하지만 행간이 겨냥한 상대는 야당과 비판 세력으로, 이들을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 등으로 규정하고 편 가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국정 운영 동력이 흔들릴 정도로 윤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한 비판과 분노가 거센 상황에서 책임을 반대자에게 돌리고, 분명한 적대적 메시지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민들이 자유의 가치와 책임의식으로 강하게 무장해야, 한반도의 자유 통일을 주도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동’ ‘날조’ 등의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국민들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이고 “국민을 현혹해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도 했다.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반자유·반통일 세력’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4조에 반하는 세력이고 자유·통일에 반하는 세력”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는 등 정부 비판이 일부 세력의 선동 탓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보여왔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갈등의 진원지로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을 지목하는데도 ‘선동과 날조’ 탓으로 돌렸다”며 “자신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광복절 경축사에까지 드러낸 것에서는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섬뜩한 독기가 읽힌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도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축사에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적의만 가득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를 겁박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냐”고 따졌다.

지지층 결집용 경축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야당의 탄핵 요구나 ‘친일 프레임’ 공격 등이 강해지는데다, 여당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으니, 기댈 곳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밖에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진보 세력에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승준 임재우 기자 >

 

[사설] 광복절 두쪽 내고 국민 비판에 선전포고한 윤 대통령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가 15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연 광복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왼쪽)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경축식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
 

제79돌 광복절 기념식이 결국 둘로 쪼개져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등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경축식에 참석했다. 반면 광복회 등 대다수 독립운동단체들과 야 6당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역사 왜곡에 항의해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열었다.

그동안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광복절만큼은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통합의 마당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윤 정부 들어 육군사관학교 독립영웅 흉상 철거, 강제동원 등의 일제 책임 부정,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기관 장악 등 반헌법적 역사 왜곡 시도가 잇따른 결과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민간이 별도 기념식을 열기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로 쪼개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폄훼하는 윤 대통령의 친일 행태에 맞서 국민 대다수의 뜻을 대변한 독립운동단체들이 독자적인 기념식을 연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경축식은 기려야 할 우리 역사의 고갱이를 놓친 무늬만의 행사에 그친 반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는 62개 독립운동단체가 연 소박한 기념식에서 온전히 구현됐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자체 기념식을 연 이유를 밝혔다. 공감하는 국민이 매우 많을 것이다.

역사적 정통성을 상실한 반쪽 경축식에서 윤 대통령은 공허하고 편향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고 한 건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인식이다. 그러나 분단 극복의 실효적 방법론이 빠진 번지르르한 수사에 그쳤다.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흡수통일 의사를 노골화했고,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흡수통일이라는 이념적 푯대만을 강조하며 국민 생존과 직결된 평화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독단적 주장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척결해야 할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세웠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흉기”라며 “사이비 지식인”과 “검은 선동 세력”에 “우리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야당과 비판 세력을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더니, 이제 ‘반통일 세력’ 딱지까지 붙였다. 또 이념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한 것이다. 그러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적 통일을 주장하면 반통일 세력이라는 건 얼토당토않은 궤변일 뿐이다. 반면, 역대 대통령들의 경축사에 빠지지 않았던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전혀 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통합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열만 부추기는 한 국가지도자 자격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한겨레신문 >

 

일제강점엔 면죄부 주고 '흡수통일' 다짐
'식민 모국' 살뜰히 챙기는 세심함 돋보여

일제 가혹사 은폐하고자 '광복' 의미 왜곡
광복은 '자유 향한 투쟁'이라는 궤변 주장

흡수통일 천명하고 대화하자?…이율배반
청소년 세대, 반공·반북 교육 본격화 예고

일본 마이니치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 전무"

 

윤석열 대통령의 제79회 광복절 경축사엔 일본도 강점도 식민지도 없었고, 북한과 자유통일만 있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잔혹했던 35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고 조국을 되찾게 된 걸 축하하는 국경일인 만큼, 마땅히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일제의 강점과 식민 통치, 그리고 민족의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어야 했지만 윤 대통령은 일제 잔혹사를 망각 속에 묻기에 바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4.8.15 [대통령실 제공] 연합

 

일제도 강점도 식민도 없는 광복절 경축사

'식민 모국' 살뜰히 챙기는 세심함 돋보여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미 "일제 강점기"란 표현을 포함해 사실상 일제 식민지 과거사를 통째로 들어냈던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올해 경축사에선 아예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는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어 '초현실적'이란 인상을 줬다. 일제가 1910년 조선의 국권을 침탈해 45년 패망해 물러날 때까지의 잔혹했던 시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한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취임 첫해인 2022년 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선 그나마 "일제 강점기"란 표현이 모두 4차례 나왔다. 그 중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라거나 "조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캄캄한 일제 강점기"란 표현이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엔 "국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한 암흑의 시기"라고만 언급했다. 올해엔 "국권을 침탈당한 이후"라거나 "국권을 잃은 암담한 상황"이 전부였다. 누구로부터 국권을 침탈당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딱 한군데에서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됐다"란 표현을 써가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제국주의 세력의 국권 침탈"이란 말도 썼지만, '일본' 제국주의란 점은 애써 숨겼다. '식민 모국' 일본을 살뜰히 챙기는 윤석열의 세심함과 배려가 돋보인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파티'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가 임시정부 요인과 광복군의 사진 앞에서 임정 요인 맞추기 과제를 하고 있다. 2024. 08.15 연합

 

일제 가혹사 은폐하고자 '광복' 의미 왜곡

광복은 '자유 향한 투쟁'이라는 궤변 주장

'광복'이란 표현을 썼지만, 광복이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인데도, 윤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가해자 일본을 은폐하고자 "우리의 광복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결실이었다"라거나 "1919년 3·1운동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일치된 열망을 확인했다"는 등의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날 경축사에서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그리고 교육·문화 분야와 외교, 군사적 독립운동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펼쳤다"고 말했지만, 이를 막연히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주장함으로써 한반도를 강점하고 한 민족을 억압, 수탈했던 일제를 타도하고 국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란 본질을 숨겼다.

그 논리에 따르면, 자연히 윤 대통령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표적은 일제에 의해 같은 고난을 겪은 동족 북한이 된다. 그는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며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가해자 일본은 봐주고 화살을 북한으로 돌린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등에서 지난달 말 수해로 집을 잃은 어린이와 학생, 노인, 환자, 영예 군인 등을 평양으로 데려가 피해복구 기간 지낼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밝혔다. 2024. 08.10 [조선중앙통신=연합]

 

가해자 일본엔 면죄부…화살은 북한에

'자유 통일'은 '북한 흡수통일'과 동의어

그러면서 '자유 통일' 추진을 선언했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공언이다. 그런 의도를 담았는지, 올해 경축사는 지난 두 차례와는 달리 처음으로 " 2600만 북한 동포"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오늘, 헌법이 대통령에게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책무에 의거해서, 우리의 통일 비전과 통일 추진 전략을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 그리고 국제사회에 선언하고자 한다"면서 3대 전략 △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 △ 북한 주민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 △ 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를 들었다. 북한 흡수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에서 수구 극우 보수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심리전을 통해 북한 체제를 흔들어 놓는 한편, 흡수통일을 위한 국제사회 여론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실에선 이를 '8·15 통일 독트린'으로 규정했다.

 

광복절인 15일 오후 자유통일당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8·15 국민혁명대회'를 열고 있다. 2024. 08.15 연합

 

흡수통일 천명하고 대화하자?…이율배반

청소년 세대, 반공·반북 교육 본격화 예고

이렇듯 '흡수통일'을 천명해놓고도 윤 대통령은 "재작년 광복절의 '담대한 구상'에서 이미 밝힌 대로 비핵화의 첫걸음만 내디뎌도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계속 추진, 그리고 단절된 남북 대화를 위한 실무 차원의 '대화 협의체' 설치를 제안해 이율배반의 태도를 보였다.

특히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며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하는 이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을 "검은 선동세력"이라고 규정짓고 특히 청년과 미래세대를 상대로 북한 흡수통일 '의식화'를 위한 "첨단 현장형 통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뉴라이트의 친일 매국 교육에 이어 반북, 반공 교육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작년 경축사에선 현 남북관계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의 대결"로 규정한 뒤 국내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있고 그들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도 현 정부를 반대하고 비판하면 모두 '공산전체주의 세력'이고 '반국가세력'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윤 정권은 출범 후 지난 2년 3개월 동안 '바이든/날리면' 발언 이후 MBC 등 비판언론 탄압과 대통령실 경호처의 '입틀막' 사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등 야당 정치인과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수사 등을 통해 검찰독재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빙자한 '자유전체주의'의 본색이 들통났다.

 

일본 패전일인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본도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2024.8.15 연합

 

일본 언론, 일제 과거사 언급 부재 주목

마이니치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 전무"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총 50회 등장했고, 이는 지난해 경축사 27회, 2022년 경축사 33회보다 많이 늘어났다. 뒤이어 통일(36회), 북한(32회), 국민(25회) 등이 많이 언급됐고, 대한민국(18회), 국제사회(10회), 북한 주민(10회), 인권(10회), 통일 대한민국(10회), 자유 통일(9회) 등 표현도 썼다.

당연히 일본 언론도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 과거사 언급이 없는 데 주목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한국 대통령 연설에 일본 비판 없어'란 기사에서 "(한국)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서는 역사 문제 등을 둘러싼 대일 비판을 담는 사례가 많았으나 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이 전무했다"며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과 관련한 생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한국 대통령 광복절 연설에서 대일 관계 언급 없어'란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 행사 연설에서 대일 관계나 역사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극우 산케이신문도 "연설의 대부분을 통일 문제에 할애, 대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2024. 08.15 연합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 없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최악의 경축사"

한편,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날 정부의 광복절 기념식 참가를 거부하고 별도로 진행한 기념행사에서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라며 "준엄하게 경고한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으며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논평을 통해 "일본의 반성과 책임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최악의 경축사"라면서 "일본이 껄끄러워하는 민감한 사안에는 알아서 스스로 언급을 피했고, 북한 33회, 통일 36회를 언급하면서도 항일이라는 표현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기념관장 임명 문제로 사상 처음 광복회가 정부 기념식에 불참하는 초유 사태를 맞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회피했다"며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항일독립지사에게 차마 낯을 들기 어렵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 이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