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요나서를 읽어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도망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뱃사람들은 그 풍랑 속에서 살아 보려고 애를 쓰지만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선장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 풍랑의 원인이 누구 탓인지 제비를 뽑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뽑힌 사람이 바로 요나입니다. 풍랑이 무섭게 이는 동안에, 사람들이 살아보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할 때에도 요나는 배 밑에서 무관심하게 잠을 청하다가 이제 풍랑의 원인을 제공한 범인으로 뽑힌 것입니다. 이때 요나는 솔직하게 고백을 합니다. “이 풍랑은 내 탓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가는 중입니다.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십시오.”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고 나자 바다는 잔잔해졌다는 이야기가 요나서의 줄거리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요나는 그 풍랑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희생함으로 그 풍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요나서의 이야기가 성경으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곳곳마다 “내 탓입니다” 대신에 “네 탓이다” “너 때문이야”라는 원망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누구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곳에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남 탓하는 우리들의 습관은 바로 죄에서 기원하고 있습니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서 기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나서 보여준 최초의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죄는 그대로 유전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아내를 탓하고 아내는 뱀을 탓하며 하나님께 반항했던 조상들의 죄악을 그대로 답습하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내 탓입니다. 모두가 나 때문입니다.”라고 이실직고 했다면 아마 하나님은 용서해주시고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절 주일 전까지 주일을 뺀 40일간을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기간이라 생각하여 그 은혜를 생각하고 묵상하며 지내는 기간입니다. 저는 이 십자가의 고난이 왜 있어야만 했는가를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내 탓이다”라는 후회와 탄식의 기간이 아닐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잘못 되면 아무 죄도 없는 부모가 “내 탓이오”라고 합니다. 잘못 키워서…잘못 가르쳐서 그렇게 됐다고 스스로 가슴을 치며 탄식하는 부모님들을 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잘못 만들어서… 잘못 가르쳐서 사랑하는 내 백성이 죄를 지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탓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고난,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팔을 벌려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며 “내 탓입니다” 외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내 탓이오 하는 곳에 구원이 있습니다. 내 탓이오 하는 모든 곳에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내 탓이오”하며 남의 가슴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을 치며 반성과 회개의 기간으로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강성철 목사 - 우리 장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