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목민장로교회 정훈태 장로

눈은 이마 밑과 콧등 위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그 높이가 다르다고 하니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술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에 얼굴형태를 그리시고 가운데를 잡아 양쪽에 눈을 그리시자 모두 깔깔 대다가 차근차근 귀, , , 머리털을 그려 나가보니 얼굴이 되는 것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 눈은 얼굴 중앙에 위치해 있다 합니다. 버킹검 궁전의 휘장과 수많은 울타리 끝에 칠하여진 금빛에 매료 되었다가, 파리의 베르사이유 궁전에 가 보면 금이 금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웬만한 크기의 금은 금도 아닙니다. 눈이 높아진 것입니다. 로랙스 시계 본점에 들렸다가 몇 만 불에서 십만 불이 넘는 시계를 계속 보고 있자니 몇 천불 짜리 시계는 시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이마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파리의 거리에서 정교한 조각들이 건물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음에 감탄하여 조각품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다가 이태리 밀라노의 도우모 성당을 보고 난 후부터는 웬만한 조각품에는 카메라를 꺼내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간사한 우리의 마음 입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은 지금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며 보았던 알프스는 캐나다를 조금 낮추어 보게 되었습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하지않는 청년들에게 눈이 높아서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고보니 눈이 높아야 좋은지, 눈이 낮아야 좋은건지 저도 헷갈립니다. 물론 눈은 가운데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니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어쩌다 습관적으로 눈이 높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웃을 깔보는 듯한 느낌에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눈이 너무 낮아 아예 쳐다볼 생각도 없는 의욕상실증에 걸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눈 높이 하나에도 커다란 갈림길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무엇이 옳은지를 갈구합니다. 사실 우리들이 스스로 자부하는 지식이나 지혜는 너무나 초라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좀 모자란다 싶으면 낮추어 봅니다. 학벌, 명문, 학위, 그 무엇도 내가 제일이 될 수 없습니다. 재물도 마찬가지 입니다. 제법 돈이 있다고 큰소리 쳐 보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더 큰 부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높이 조절을 잘 해야 합니다. 진리의 눈은 우리들의 교만과 오만을 꾸짖습니다. 이 세상을 만들고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한번도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눈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저도 소위 명품을 넘치게 보았더니 이제 명품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눈이 높아진 것이 아니요 눈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세상 것에 눈이 어두워 세상 물결 따라 오르락 거리는 눈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웃을 섬기며, 삶에 힘들어 하는 이웃을 위로하며 도와 주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사진기도 사람의 눈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합니다. 은혜로 우리에게 두개나 선물해 주신 우리의 눈 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 만으로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숨겨진 진리를 찾을 줄 아는 우리의 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옛 선비들은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보았을 때는 그 눈을 물로 씻었다 합니다.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도 세상이 어둡다고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녔던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잠시 생각해 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던 그의 눈은 어떤 눈이었을까요.


갈릴리 예수와 오늘의 교회

정해빈 목사 (알파한인연합교회)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에 속한 분당두레교회에서 목회하시다 최근에 은퇴하신 박철수 목사님, 책을 많이 쓰시고 공부를 많이 하신 목사님께서 몇 년 전에예수는 좌파다라는 글을 신문에 쓴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예수님의 사역과 공생애를 살펴볼 때 굳이 표현하자면 예수님은 좌파이셨고 진보적인 분이셨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경제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체제로부터 억압받던 갈릴리 지역에서 대부분 활동하셨고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죽어서 가는 천당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만드시지만 우리들의 헌신과 참여가 동반되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세부 조항을 만들어서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가지고 일반 백성을 억압하던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셨고, 갈릴리를 통치하던 헤롯 왕과 로마 제국을 비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조건없는 식사를 하셨고, 그들의 질병과 아픔을 치유하셨습니다. 갈릴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셨고, 그 결과 로마와 예루살렘 성전 지배자들의 폭력에 의해 잔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폭력에 의해 처형당하셨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도 정치, 경제, 종교의 폭력에 반대하고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오늘날의 교회들이 대부분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소위 보수주의, 근본주의, 복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신앙을 어떻게 표현하든 그 내용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메시지는 교회성장, 개인경건, 성공과 리더쉽, 긍정적인 사고, 위로와 축복, 월간 잡지 [좋은 생각] 같은 곳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단들이 모였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선출과 관련된 비리로 세상의 지탄을 받고 있고, 세계 최대 교회라는 어느 교회는 목사와 부인과 자식들 사이의 가족 분쟁으로 시끄럽고, 대부분의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식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신다면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교회성장, 개인경건, 성공과 리더쉽, 긍정적인 사고, 위로와 축복, 좋은 인간관계 같은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비전을 갖지 못한 교회를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전세계 인구를 기독교인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복주의, 배타주의 선교를 하는 교회를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 경제 불평등으로 인한 빈부격차, 전쟁과 폭력, 환경 위기로 인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교회, 불의를 비판하고 고난받는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는 예언자의 정신과 제사장의 정신을 가진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갈릴리 예수의 정신이 살아있는 교회가 바른 교회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의 정신을 완벽하게 따르는 교회는 없겠지만 갈릴리 예수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자비로우시고 진실하시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는 교회, 지역 사회를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정의를 위해 일하는 교회,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회, 보수주의가 아니라 진보주의 입장에 서있는 교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지구를 아름답게 가꾸는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고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 새로운 꿈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교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워쉽캐나다  2011 예배자 훈련학교 성황리 마쳐

예배 본질 회복 하나님과 마음 통하는 예배 드려야

 


진정 당신은 예배자 입니까?’( 12:1)라는 주제로 영성과 음악적 공교함을 겸비한 예배-찬양사역자 양성에 주안을 둔 Worship Conference ‘2011 예배자 훈련학교가 워쉽 캐나다
(Worship Canada:대표목사 박광배) 주최로 18일부터 20일까지 밀알교회(담임 노승환 목사)에서 열렸다. 각 교회 찬양팀과 찬양인도자, 찬양사역을 희망하는 이 등 모두 65명이 참가하는 성황 속에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사흘간 경배와 찬양 및 말씀의 은혜와 함께 각 클래스별 강의와 훈련이 진행됐다.

강의 진행은 찬양그룹 좋은 씨앗의 이유정 목사를 메인 강사로 최중우,정지혜(건반), 원익준(드럼), 채성훈(일렉기타), 구교진(베이스), 장준혁(엔지니어), 김정태, 정충대, 이승혜(보컬) 강사 등이 부문별로 나서 전체강의와 클래스별 8강의 등을 폭넓고 수준높게 소화했다. 특히 이유정 목사는 첫날인 18일 전체강의에 이어 19일 낮 목회자들을 위한 스페셜 클래스 강의도 인도했다.


이 목사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라는 전체강의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진리라고 볼 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사랑의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이며 예배가 무너지면 모든 것, 이웃사랑도 무너진다고 상기시켰다.

이 목사는 이어예배는 하나님과 전인격적으로 만나고 마음이 통하는 자리이며, 마음이 통하면 하나님이 뜻을 다 이루시겠다고 예배의 비밀을 말씀하셨다고 덧붙이고, “마음이 통하려면 예배의 본질, 즉 기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진정성에 목숨을 걸고 집중해야 하며, 예배를 마음으로 드리고 우리의 중심인 마음이 통하여 예배의 본질이 회복되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우리의 삶과 비전과 사역 등 모든 문제들 이루어 주시고 살리실 것이라며 본질을 회복한 진정어린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원리를 거듭 강조, 참석자들에게 큰 도전을 주었다.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한 찬양사역자 및 사역 지망생들은
악기 클래스를 통해 다루는 기술을 업그레이드 하고, 무엇보다 단순한 기술이 아닌 진정과 기쁨으로 목숨을 다해드려야 할 찬양과 예배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됨에 큰 감명과 보람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컨퍼런스는 20일 오후 참가자와 강사 및 스탭이 모두 함께 은혜 속에 드린 파송예배를 끝으로 일정을 마치고 내년 컨퍼런스를 기약했다. < 문의: 647-802-5378, 416-567-8997, www.worshipcanada.ca > 
7개 교회 첫 연합활동

2011 니카라과 단기선교 체험기              

임수택 목사(갈릴리장로교회)

 


중미선교회가 주관한 이번 단기선교는 7교회(갈릴리, 니카라과, 등대, 새순, 소망, 영락, 참좋은 복된교회)에서 지원한 단기선교사 52명이 하나가 되어 지난 6 30()부터 7 9()까지 열흘 동안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Managua)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돌아왔다.

준비단계에서 단기선교 후보자들은 7주 동안 매일 성경 3장씩 읽기와 4Km 뛰기 그리고 매주 한 번씩 금식기도와 스페니쉬 언어훈련과 사역훈련을 소화하여 영적으로는 성령 충만함과 육적으로는 강인한 체력을 가지고 선교에 임하도록 준비하였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은 선교가 선교지 뿐만 아니라 선교를 감당하는 선교사에게도 영육간에 큰 유익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번 니카라과 단기선교는 세 가지 면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었다.

첫째, 청년학생들이 현지에서 준비수련회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

각 교회에서 연합된 청년. 학생들은 대부분 서로 얼굴도 모르고 처음 보는 형제자매들이었다. 수련회 첫 날은 주로 서로 알고 친해지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오후에는 선교현장에서 사용되는 어린이 사역과 드라마, 워쉽댄스 등을 실습하고, 저녁시간에는 집회를 통하여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이 쓰실 만한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목적이 있었다. 금식하며 준비해 온 집회인지라 학생들은 첫 날부터 회개와 눈물로 시작하였다. 둘째 날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헌신에로의 결단이 주제였다. 학생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기도하며, 주님 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짐하는 참으로 뜨거운 밤이었다. 우리가 낯 모르는 민족을 위해서도 선교를 하는데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이 먼저 은혜를 받는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둘째, 연합선교가 큰 효력을 나타냈다.

처음 7교회의 연합이라고 했을 때 사람마다 과연 하나됨을 이룰 수 있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교회 출신이라 일사분란하게 선교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공통점으로 이미 하나 되어 있었고, 선교라는 공동의 목적으로 투철하게 무장된 사명감으로 인하여 출발하는 날 드린 토론토에서의 헌신예배를 통하여 강력한 연대성이 느껴지더니 선교사역이 진행 될수록 그 연대감은 마치 전쟁터의 전우애처럼 강해져 갔다.

연합의 효과는 선교 현장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찬양팀이 스페니쉬로 찬양하는데 있어서 니카라과 한인교회에서 참여한 10명의 학생들은 유창한 언어로 현지 집회와 찬양을 도왔고, 영어한국어까지 유창하여 1세와 2세를 막론하고 의사소통의 통로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연합팀의 각양 은사(기도, 설교, 태권도 사범, 교사, 의사, 언어, 컴퓨터 전문가, 반주자, 요리사 등)를 가진 많은 인원들은 여러 분야에 걸쳐 폭 넓은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고, 현지 한인교회의 현대식 예배당과 선교관과 식당과 체육관은 우리에게 훌륭한 안식처요 영적인 처소가 되었다. 선교 재정도 한 교회가 감당할 때에 비교하면 부담은 적었으나 그러나 전체로 보면 큰 규모의 예산으로 선교에 소용되는 비용을 집행할 수 있었다.


셋째
, 선교의 놀라운 열매이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놀랍게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돌아왔다. 현지 교회에서 참석한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곳에 선교팀들이 미국에서 종종 들어오지만 이번 캐나다 연합 단기선교단 만큼 영적이고, 강력하며, 친밀감이 느껴지는 팀은 처음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일주일 동안 200명의 환자를 치료했으며, 1000명의 어린들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며, 4군데의 현지인 교회를 중심으로 수천 명의 마을 주민들에게 예수를 알리고, 집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


계획된 선교 사역을 다 마친 날 밤, 우리 선교단에 현지인 여자 중학생 두 명이 찾아 왔다. 그리고 자기들이 준비한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축복송을 한국말로 또박 또박 불러 주었다. 모두들 감동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선교를 수행하느라 고생한 단기선교사들과 우리를 파송하고 밤 낯 기도로 후원하는 교회 교우들 모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이 마지막 날 현지인 어린 자매의 입을 빌려 들려 준 것으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