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이버 검열과 ‘매운 고추’

● 칼럼 2014. 10. 28. 18:3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경찰과 검찰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카카오톡과 모바일커뮤니티 서비스 ‘밴드’를 압수수색하고 사이버 대화를 ‘실시간 모니터링’ 할 거라니 자신도 사이버 사찰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며칠 전 사이버 검열은 1980년대 신군부의 보도지침을 능가하는 ‘공안통치’라고 비난했는데, 1980년대나 오늘날이나 ‘검열’은 시민이 신뢰하지 않는 권력자가 시민들을 겁주어 제 불안을 쫓으려 취하는 조치입니다.
출판된 지 77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중국 공부의 필독서로 꼽히는 <중국의 붉은 별>에 ‘그는 내가 쓴 글의 내용이나 촬영한 사진에 대해 전혀 검열하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이 구절을 잊지 못하는 건 1980년대 초 신문기자로서 신군부의 검열을 받아본 아픈 기억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는 훗날 중국 초대 국가주석이 된 마오쩌둥입니다.
국민당 군대를 피해 1934년 10월부터 일년 동안 ‘대장정’에 나섰던 마오는 1936년 여전히 게릴라 군대를 면치 못한 홍군의 지도자로서, 국민당 정부가 내건 어마어마한 액수의 현상금을 목에 건 채 이 책의 저자가 된 에드거 스노를 만났습니다. 누가 봐도 불안한 상황이었지만 마오는 ‘태평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마오가 ‘태평스럽게’ 나다니고 스노의 글을 검열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신이 이끄는 홍군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병사들과 똑같이 생활했고 그들이 맨발일 때는 자신도 신을 신지 않았으며, 집회에서나 극장에서는 사람들 틈 아무 데나 끼어 앉았다고 합니다.
권력자들이 시민과 똑같이 생활하며 자나 깨나 시민의 복리를 생각하면 시민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아 사랑받지 못하는 권력자가 ‘검열’로 위협할 때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두려움에 떨며 ‘사이버 망명’을 해야 할까요?
2011년 지진해일로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 후쿠시마의 고철을 수입하는 나라, ‘절친’ 미국으로부터 ‘유사시’ 한반도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 나라, 22조원을 들여 수자원을 오염시킨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는 나라, 이런 나라의 시민들이 왜 ‘사이버 검열’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까요?
 
두려움은 삶을 위축시킵니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의 일년은 자유인의 하루보다 무가치합니다. 협박에 순응하는 시민은 시민이 아니고 노예입니다. 누가 뭐라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겁이 나서 카카오톡이나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으면 스마트폰을 쓰는 대신 직접 만나서 대화하세요. 대화란 원래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니 스마트폰이 없으면 더욱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하겠지요.
혹시 정부가 ‘세월호가 죽인 경제’를 살리려 이러는 거라면 다시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사이버 대화를 ‘실시간 모니터링’ 하려면 무수한 요원들을 고용해야 하고, ‘불온한’ 대화자를 모두 벌하려면 검경과 법관, 유치장과 교도소를 늘려야 하겠지만 이런 식의 ‘경제 살리기’는 ‘나라 죽이기’이니까요.
마오쩌둥은 ‘매운 고추’라는 민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노래의 주인공 고추는 먹히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채소의 나날을 혐오하다가 결국 채소들의 봉기를 이끕니다. 부당한 조치에 순응하는 사람은 먹히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채소와 다르지 않습니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은 ‘소시민.’ 지금이야말로 소시민들이 ‘작은 고추’가 되어 ‘작은 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줄 때가 아닐까요?
 
< 김흥숙 - 시인 >


[한마당] 실제적 진실과 진영논리

● 칼럼 2014. 10. 28. 17:56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일찍이 헤겔은 어느 책에선가 “신문은 근대인의 아침기도”라는 제법 근사한 말을 남겼다지만, 요즘 현대인의 아침은 스마트폰의 알람 혹은 푸시로 날아오는 뉴스 속보 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가 ‘점령’한 지 오래다. 그러니 신문이 온전할 리 없다. 아침기도는 커녕 지는 해를 마주한 나그네처럼 마음만 분주하다.
그래도 신문들이 여태 신줏단지처럼 시렁 위에 모셔두거나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게 있다면, 사실의 확인, 확인된 사실의 보도라는 원칙이다. 
“논평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사실은 신성한 것”(<가디언>)이라든가, “신념은 사실을 통해서만 말한다”(<르 몽드>)는 따위 레토릭들은 의견에 앞서 사실이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는 민주적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말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모든 천상의 언어는 지상의 연옥을 만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시험’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 사고 발생 한 달이 돼가던 5월13일, <한겨레>는 두 면에 걸쳐 ‘세월호 여섯 가지 소문과 사실 확인’ 기사를 내보냈다. 그 소문들은 1)사고 당일 오전 7시20분 <한국방송> 자막에 ‘구조 요청’이 떴다. 2)‘에어포켓’이 있었다. 3)침몰 원인은 잠수함 충돌이거나 어뢰이거나 좌초다. 4)탈출하다 손가락 골절된 시신들 다수 발견됐다. 5)외부 불순세력이 개입해 정치공세를 벌인다. 6)정부가 일부러 ‘다이빙벨’ 투입을 막았다는 것 등이다. 
당시 에스엔에스 등을 온상으로 창궐하던 대표적 풍문들을 꼼꼼히 검증해 무엇이 사실인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기사가 나가자 소수의 악플과 비난이 다수의 공감과 격려를 압도하는 듯 보였다. 사실과 의견의 경계를 애써 무시하려는 ‘어떤 사람들’은 기사를 쓴 기자들을 주저없이 ‘기레기’로 매도했다. 그런 반응은 주로 <한겨레>를 ‘자기편’이라고 생각해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서 나왔다. 그들 중엔 대놓고 ‘절독’을 들먹이며 ‘위협’하는 부류도 있었다. 사실이야 어떻든 자신들의 확신만을 기사로 쓰라는 노골적인 압력으로 들렸다. 그런 악다구니에 놀라 왜 그런 기사를 썼냐고 은근히 따져 물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일부 ‘내부자’들도 없지 않았다.
그때도 이미 세월호 사건은 진영논리에 휘말리고 있었다. 무엇이든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사회에서 이 사건 역시 무사할 수는 없었다.
 
‘기레기’라는 낙인에 괴로워하던 후배 기자들이 지난 11일 이 기사로 큰 상을 탔다.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이 주는 ‘과학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56개 출품작을 심사한 전문가 27명은 <한겨레> 기사를 “실제적 진실 확인을 막아온 음모와 거품을 제거”하고, “과학적 분석 및 확인을 통해 여론의 방향을 잡”았으며,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진보-보수 진영의 득실을 따지지 않고 균형감각을 잡은 뛰어난 보도”라고 평했다.
재난 기사로 받은 상에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신문의 미덕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확인받았다고 자평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지면에서 훤히 드러나 보이는 광고 매출 감소, 페이지뷰로 신문들의 온라인 밥줄을 움켜쥔 거대 포털들, 우르르 뭉쳐 다니며 ‘힘’을 쓰는 에스엔에스, 매사에 작동하는 진영논리가 얽혀 돌아가는 현실 앞에서 사실과 의견 사이에 놓인 둑은 조금씩 몰래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는 먼저 사실이 있은 뒤에야 의견이 있는 것이라고 의연하게 언제까지나 말할 수 있을까.
아침에 현관문을 여니 하필 재활용 쓰레기로 내놓을 사과상자 위에 막 배달된 신문 뭉치가 무심히 던져져 있다.
< 한겨레신문 강희철 사회부장 >


[사설] 무법·탈법 총동원한 사이버 검열

● 칼럼 2014. 10. 21. 15:5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검찰이 인터넷상 허위사실 유포를 단속하겠다며 위법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공개된 대검찰청의 9월18일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 자료를 보면, 정치권력의 뜻에 맞추겠다고 법 규정이나 기술적 한계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검찰의 ‘맨얼굴’이 생생하다.
 
검찰이 내놓은 사이버 명예훼손 대응방안의 상당수는 기술적·법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다. 검찰은 회의자료에서 문제가 되는 글의 삭제를 포털에 직접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통신망법은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불법정보를 삭제·차단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정요구를 하거나 법원의 판결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정상적인 심의절차나 법원의 판결을 뛰어넘어 자체 판단만으로 포털에 삭제나 차단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초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 없다. 검찰은 또 특정 단어를 검색하거나 조회수가 급증한 글을 찾는 방법으로 실시간 인터넷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역시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명예훼손의 당사자도 아닌 검찰이나 경찰이 인터넷 게시글을 검열할 권한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회의에선 여러 관계자가 이런 점 등을 들어 검찰 쪽 방안에 난색을 표했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되레 회의 뒤 포털이 협조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종주먹을 들이대면서까지 민간업체를 윽박질러 그럴싸하게 포장한 대책을 보란 듯 내놓는 형국이다.
 
검찰이 이렇게나 무리하게 일을 벌이려 드는 이유는 자명하다. 검찰 회의자료에는 대책회의 이틀 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 두드러지게 강조돼 있다. 이번 단속이 박 대통령의 말 때문에 서둘러 추진됐음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우선 단속할 대상이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니, 실시간 인터넷 검열이 주로 대통령에 관한 것에 집중되리라는 점도 불 보듯 뻔하다. 헌법 원칙이나 법 규정은 내팽개친 채 대통령의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듯한 검찰의 모습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 정부 들어 수사기관의 개인신상정보 감시가 크게 늘었다. 이동통신사가 지난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개인신상정보 건수는 1000만건이 넘어, 이명박 정부 때 같은 시기의 두 배에 이른다. 카카오톡에 이어 또다른 메신저서비스인 네이버 밴드도 대거 압수수색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무도한 사이버 검열을 대체 어디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것인가. 


[사설] 나라 망신 시킨 ‘산케이 사태’

● 칼럼 2014. 10. 21. 15:5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기사를 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지난 8일 정보통신망법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뒤 나라 안팎에서 비난과 반발이 거세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옥죈 일이니 비판은 당연하다.
 
이번 일은 이미 국제적 논란이 됐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유감의 뜻과 강한 우려를 밝혔다. 미국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와 “한국의 관련 법에 대한 염려”를 재확인한다며, 이번 사태를 주시하면서 한국 정부와도 접촉했다고 내비쳤다. 일본은 물론 외국 주요 언론도 한국의 언론 자유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신시대나 군사정권 때 한국을 보는 시선이 꼭 이랬다. 박근혜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여론통제 시도가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30~40년 전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그로 인한 외교적 손실도 만만찮다. 이번 일로 일본은 한국을 공격할 좋은 소재를 얻게 됐다. 군대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관계의 현안은 한쪽으로 밀쳐지게 됐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는 데서도 일본이 우월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이 기회에 한-일 관계의 난항 책임을 한국에 돌리려 할 것이다. 정부가 이런 결과를 염두에 두기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케이 기자 기소는 법리나 판례, 국제적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구가 명예훼손의 형사처벌 제도를 폐지하도록 권고하고, 폐지하는 나라도 늘고 있다. 대법원도 국가기관과 공직자의 업무에 관련한 의혹 제기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정책 결정이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일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공적 관심사에 대한 보도에선 언론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돼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산케이 기사가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부실한 선정 보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사가 문제 삼은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은 공적 업무 수행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직업윤리에 대한 비난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이유까지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자 수사에 착수했고 기소까지 강행했다. 
이번 일이 정치적 기소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사정들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국제적 망신이다. 명예훼손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 죄다. 박 대통령은 나라 망신만 시킬 이번 일을 이쯤에서 접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