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칼럼 2014. 7. 31. 13:10 Posted by SisaHan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세월호가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지 백일이 되었지만 원인조차 밝히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고, 그 고철 같은 배를 사들여와 무법적으로 운행한 회사 대표를 대대적으로 수색해 잡지 못한 것도, 또 돌연 주검으로 발견된 것도 이상하고, 마지막 실종자가 발견된 지 24일 만에야 한 구를 수습한 것도 이상하고, 국회의원들이 국정조사를 하는데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이상합니다.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해 보이는 건 권력자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만 골라서 장관을 시킵니다. 세월호 사건 때 구조에 바쁜 해경 헬기를 타고 진도로 갔던 해양수산부 장관은 팽목항에서 수염을 기르며 유임되었는데, ‘바른말 하는 장관’으로 알려진 유진룡씨는 후임이 결정되기도 전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서 면직되었습니다. 마침 문체부 제1차관 자리도 공석인데 뭐가 그리 급했을까요?
 
국회의원들은 시간 낭비의 달인들입니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청와대와 싸우는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을 치른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대학에 특례입학 시키자며 정원의 1퍼센트를 특례입학 시킬 것인가 3퍼센트로 할 것인가 자기들끼리 다투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보도자료까지 내어 대학 특례입학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겠습니까?
청와대는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가 요청한 자료 205건 중 단 7건만 제출했다고 하니 청와대가 국회를 얼마나 무시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모욕을 당했으면 국회의원 300명이 모두 청와대로 몰려가 시위를 벌여야 할 텐데 국회의원들은 가만히 청와대가 장관으로 불러주지나 않을까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의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요체라 하지만, 이제 이 말은 코웃음을 부르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부가 권력과 역할을 나누어 갖고 상호간에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막는 ‘삼권분립’ 대신 대통령이 대표하는 행정부가 나머지 두 부서를 거느리는 ‘삼권불립’(三權不立)이 자리를 잡아가니까요.
 
참지 못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국회에서 노숙하며 농성하고,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학생들은 안산의 학교에서 여의도의 국회까지 뙤약볕 아래 도보행진을 하며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유가족들은 ‘4.16 참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고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위원회는 구성하되 수사권과 기소권은 부여하지 말자고 하니 진실이 밝혀지는 게 두려운 걸까요?
지난 5월 국회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는 청해진해운이 사고 당일 국가정보원에 세월호 사고를 보고했다고 인정했지만, 우리는 아직 왜 그 사고를 해경에 보고하기 전에 국정원에 보고했는지, 보고를 받은 국정원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세월호 사건, 지오피 총기 사건, 4대강의 오염, 재앙을 예고하는 잠실 제2롯데월드…. 수수께끼가 늘어날수록 분노와 절망도 자랍니다.
엊그제는 제헌절이었지만 태극기를 걸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헌법이 처음 제정, 공포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 ‘삼권분립’이란 말처럼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국민인 우리는 조국이 자꾸 낯설어집니다. 
삭막한 거리엔 무궁화가 어여쁘지만 봄마다 벚꽃 개화를 외치던 언론은 무궁화의 개화엔 입을 열지 않습니다.
 
< 김흥숙 - 시인 >


6월12일 전남 순천의 야산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세월호의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이 22일 밝혔다. 변사체 발견 때 이미 부패가 심해 식별이 어려울 정도였다니 실제 사망은 그보다 훨씬 전일 것이다. 그사이 정부는 유씨를 잡겠다며 군 병력까지 동원해 해안을 봉쇄하고 전국적인 검문·검색을 벌였으며, 반상회까지 열었다. 유씨가 머물렀다는 경기도 안성 금수원과 주변 건물 등을 압수수색했고, 유씨의 가족·친인척·측근들을 범인 도피 등의 혐의로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기소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꼴이다. 바로 전날인 21일에는 검찰이 유씨에 대한 6개월짜리 사전구속영장을 재발부받으면서 “추적의 꼬리를 놓지 않고 있어 검거는 시간문제”라고 장담도 했다. 대체 어떤 꼬리를 쫓고 있었는지 묻고싶다. 정보력과 수사력 모두 부실하기 짝이 없는 무능이 황당하고, 그 결말이 어이없다. 이런 국가기관을 어떻게 믿으라하나.
 
국가기관이 제 할 일을 못하면 어떤 참혹한 결과가 빚어지는지는 세월호 참사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경찰·검찰은 참사의 주요 책임자인 유씨를 찾는 과정에서도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 5월25일 별장에서 유씨를 놓친 뒤 대대적인 주변 수색을 벌였다지만 정작 변사체는 한참 뒤 주민 신고로 발견됐다. 변사체를 발견한 곳이 유씨가 20일 넘게 머물렀던 별장 부근인데도 경찰은 유씨와의 연관성을 떠올리지 못한 채 노숙자 변사로만 처리했다. 주검 주변에서 발견된 가방이나 옷, 신발 등 유류품을 조금만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쉽게 알 수 있었는데도 놓쳐버린 것이다. 변사사건 지휘를 맡은 현지 검찰 역시 정황과 유류품을 살피는 초동수사의 기본을 망각한 채 단순변사로 판단했다. 검-경간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검찰 모두 기본 중의 기본도 무시한 채 대충 넘기는 잘못을 반복하면서 엉뚱한 ‘꼬리 잡기’에 수사력만 낭비한 꼴이다.
 
검경은 변사체 DNA와 지문 감식 결과 유씨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조차도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씨가 순천 별장에 마지막 흔적을 남긴 5월25일 즈음에 숨졌다고 하기엔 변사체 부패 정도가 비정상적으로 심하고, 사망 원인과 경위가 석연찮다는 이유에서다. 변사체 발견 뒤 신원 확인까지 40일이나 걸린 점 등을 들어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 정도면 그 자체로 위기라고 봐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이 유씨에게 있는 양 수사 분위기를 몰아 정부 책임을 가리려 들었다는 의심이 파다한 터에 그런 불신은 더 위험하다. 유씨 사망 경위를 제대로 밝히고, 세월호 참사 책임을 가리는 수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을 떼 불러보는 이름이 엄마다. 살다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나지막이 불러보는 이름이 엄마다. 생을 거둬들일 때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이름도 엄마다. 무엇보다도 죽음의 공포가 밀려올 때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말이 엄마다. 살려달라고….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단원고 아이들도 바닷물을 토해내며 마지막으로 내지른 외마디는 엄마였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이름을 내걸고 독사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무리가 있다. 대한민국 엄마부대 봉사단(엄마부대)이다. 이들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 단식농성장’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네요”, “유가족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의사자라니요” 등이 쓰인 손팻말을 들고 특별법을 반대한다며 집회를 열고 큰 행패와 소란을 벌였다.
 
우선 사실관계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의사자 부분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들이 요구하는 건 보상이 아니라 진실이다. 이들은 “의사자도, 대학특례도, 평생지원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힐 것과 책임자 처벌만을 바랄 뿐”이라고 여러차례 밝혔다. 그런데도 엄마부대가 의사자 운운하는 건 유족들의 뜻을 의도적으로 비틀고 오도하는 것이다.
자식을 잃은 엄마들은 요즘도 무척 힘든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서는 일주일째 한낮의 뙤약볕 아래 땀범벅이 되어 농성을 하고, 저녁엔 얇은 홑이불 하나로 견뎌내고 있다. 유족들이 이렇게 버티는 건 더이상 이 땅의 아이들이 내 자식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식 잃은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다른 부모들은 똑같은 슬픔을 겪지 말라고 밑도 끝도 없는 시간을 대신해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다.
 
엄마봉사단은 요즘 보수 우파 단체에서 ‘주력부대’로 표현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사안들에 대해 나름의 주장을 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자식 잃은 엄마의 심장에 또다시 비수를 꽂는, 그것도 엄마의 이름으로 하는 짓만은 말아야 한다. 19일 서울광장 집회에서는 단원고 학생의 미공개 동영상이 공개됐다. 이 동영상에서 숨진 학생은 “진짜 살고 싶다. 아 무서워, 나는 꿈이 있는데…”라는 육성을 남겼다. 엄마부대 단원들도 이 동영상을 한번씩 보기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식을 한번쯤 떠올렸으면 좋겠다. 엄마의 이름으로 죽임의 언어를 구사하는 잔인한 짓은 더이상 말아야 한다.


[한마당] 누구를 위한 법인가

● 칼럼 2014. 7. 31. 13:05 Posted by SisaHan
15년 전 어린이 19명이 불에 타 숨진 씨랜드 참사 현장에는 여전히 불법 가건물로 가득한 캠핑장이 운영되고 있다.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청소년이 익사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캠프는 영업 중이고 여행사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사고가 날 때마다 온 국민이 울고 국화꽃이 쏟아졌건만, 그리고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건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참사는 반복되었다.
왜인가?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뒤 이뤄진 조사는 원인을 제공한 악덕 기업이나 개별 범죄자에 머물렀지 그 뒤를 봐 주던 정관계의 공모 구조를 밝히지 못했다. 또 현행법상의 위법 여부만 따졌을 뿐 안전과 관련된 법제도 전반을 점검하여 어디가 어떻게 부실한지도 밝히지 않았다.
형식적인 진상조사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재발을 막는 제도 장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국가는 사실상 ‘기억’의 소멸을 조장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이제는 이런 비극을 끝내야 하지 않을까? 잠시 눈물짓다가 일상으로 돌아와선 나와 가족이 언제 어느 바다에서, 건물에서, 휴양지에서 죽음을 당할지 모르는 위험사회에 떨며 살아가는 일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세월호 특별법, 아니 4.16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다.
유족들이 350만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4.16 특별법의 목적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고 안전사회를 세우는 것’이다. 왜곡되고 오해되는 것처럼 유가족들에게 특혜를 주는 법이 아니다. 특별법의 핵심은 ‘수사권·기소권을 지닌 독립적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이다. 이전의 진상조사가 겪었던 한계를 넘어 사태를 뿌리부터 규명하려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의지인 것이다. 
진상조사가 이뤄져 벌 받아야 할 사람들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벌을 받을 때, 권력자나 기업은 부패의 단맛보다 법의 엄정함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특별위원회는 재발방지 조처를 연구하여 정부에 권고하고 정부는 그 권고를 이행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이럴 때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재난공화국에서 안전한 사회를 시민권으로 보장하는 참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유족들이 국회에서 단식하며 요구하는 것이다. 
4.16 특별법은 유족들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법, 다음 세대를 위한 법이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복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법이다.
그러나 여야는 유가족의 법안이 아닌 자기들의 법안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야당은 기소권은 쏙 빼고 수사권만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은 수사권마저 못 받겠다고 한다. 여당은 조사기구에 수사권을 주는 게 “전례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전례가 없었기에 지금껏 사고의 진실 규명이 흐지부지되고 참사가 반복됐던 것이다.
 
이번 사고처럼 총체적인 재난 대응 부실의 원인을 밝히려면 청와대를 추궁해야만 한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는 검찰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국정조사에서 봤듯이 ‘VIP’ 보호에 급급한 새누리당이 주도하는 국조특위가 할 수 있을까? 국회가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할 수 있을까? 
특단의 사태에는 특단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제 국민이 일어나서 여야를 압박하고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되기 전날 이렇게 연설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산꼭대기에 올라 ‘약속된 땅’을 보았습니다.” 
4.16 특별법은 사람이 존중되는 안전한 나라로 가는 길이다. 우리에겐 그 길을 갈 충분한 힘이 있다.
< 오준호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