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파리의 밤 달군 K-POP 열풍

● 칼럼 2011. 6. 19. 16:18 Posted by Zig
한국 K-Pop 가수들이 지난 주말 프랑스 공연장을 뜨겁게 달궜다. 애초 하루만 하려 했던 공연을 팬들의 폭발적인 반응과 요구로 하루 더 추가했을 정도다. 현지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K-Pop이 파리에서 성공적인 유럽 데뷔를 한 것은 그 열기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대세는 놀라운 확장세로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한다. 한국의 수출이 자동차와 전자상품을 넘어 이제 문화에까지 도달하게 됐다는 프랑스 언론의 평가도 나왔다. K-Pop은 이미 문화산업적으로 엄청난 비즈니스가 됐다. 그런 기대도 있지만 한류를 이어가고 한국 이미지를 알리는 얼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파고든 요인은 특유의 역동적인 춤과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국의 유망주도 발굴해 K-Pop에는 국경이 없으며 잘 기획된 상품으로서 콘텐츠 파워가 핵심이다. 다국적 그룹이 이끄는 글로벌한 사운드와 초국적 이미지로 세계 음반시장 변화에 대응한 대형 기획사들의 매니지먼트 전략이 뒷받침됐다. 오디션을 통과한 연습생들은 노래와 댄스, 연기, 외국어 등을 몇년간 훈련받은 뒤 한 그룹의 멤버가 된다. 여기에 유튜브·페이스북 등 새로운 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으면서 유통에서 국경의 장벽을 훌쩍 넘은 점도 한몫하고 있다.

<르몽드>는 K-Pop 전사들이 종종 초등학교 때 발굴돼 스파르타식 훈련을 하며 성형수술 같은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되기도 하고 몇년 만에 활동을 접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무대 이면에는 거대 문화자본과 철저한 경쟁 및 상품화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열기와 환호도 좋지만 아이돌 문화만 지나치게 부각하거나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상품뿐인 문화 콘텐츠 수출에 집착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하나로 묶어내도록 고민해야 한다.

소아미비로 앉은뱅이가 된 김인강,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와 지지리도 가난했던 가정,
오직 무학의 어머니의 인고와 사랑으로 그 아들은 살아남았다.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듯 싶다. 중증 장애 앉은뱅이, 거지처럼 버려질뻔 했던 그의 학력은 한 인생을 극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김인강은 재활원에서 참 스승 최화복 선생을 만난다. 그 때 인강은 겨우 10여 세 밖에 되지 않았다. 머리 좋은 인강이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밖에 없다는 것을 파악한 스승은 일반 중.고등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 당국의 편견과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게 한다. 그리고 인강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다. 수학이 그의 전공과목이다.
서울대학교를 졸업 한 후 1996년 미국에 유학, 버클리대학에서 6년 만에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 카이스트 교수로 발령받는다. 이후 첼리스트 박희령과 결,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카이스트 봉직 3년 후 서울대 수학교수로(2000년 가을). 2007년 40대 미만이 받는 ‘젊은 과학상 수상’. 2008년 고등과학원으로 옮겨 2011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에 하나 쯤 생길 수 있는 인간승리 이야기다. 나는 인강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숨죽이며 읽어 내려갔다.

김인강은 말했다.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한마디가 나를 사로잡았다. 경험에서 얻어진 생명력있는 명구(名句)다.
인강은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동정의 시선, 호기심의 시선, 경멸의 시선, 그 눈초리가 무엇이었던 간에 인강은 견디기 힘든 모욕감을 느꼈다. 눈총을 받아내기 위해 무감각을 연습했다. 뜨거운 물속에서 ‘이건 안 뜨겁다’고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았다. 정신적으로 견딘다 해도 상처가 남는다. 상처 위에 덧입혀져 무감각해질 때까지 버티는 동안 어느덧 인강의 마음은 딱딱해지고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대학에 들어와 성경공부를 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온갖 모욕을 당하시는 구절들을 읽었다. 마치 인강 자신이 당하는 것 같았다. 뺨을 때리고 침을 뱉고 희롱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했던 예수님의 고난을 인강은 자신의 처지로 이입시키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예수님은 그렇게 모욕을 준 사람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씀이 인강의 가슴을 쳤다. 완전한 용서, 완전한 사랑이었다.

이렇듯 하나님께 접붙혀진 순간 인강은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를 보고 놀렸던 아이들도 용서했다. 그리고 나서야 웃음이 회복되었다. 막혔던 기쁨의 샘물이 터졌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중중장애 앉은뱅이 소년이 대학교수가 된 과정을 써내려간 김인강을 읽으면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현기증이 일어났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가 걸어온 과정을 진솔하게, 솟아날 구멍이 없는 절망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견디어낸 그 힘의 원천이 피부로 느낄 만큼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것은 기독교 신앙이었다. 그는 삶에 지친 몸으로 인도 여행 중 캘카타의 마더 테레사를 만난다. 병든 자를 돌본다 해서 세상이 바뀌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니고 그저 작은 일에 충성할 뿐이라 대답하며 쪽지를 건네어준다. 거기엔 기도의 열매는 믿음이요, 믿음의 열매는 사랑이요, 사랑의 열매는 봉사요, 봉사의 열매는 평화라 쓰여졌다. 그 쪽지를 그는 마음 속에 간직한다. 믿음과 사랑과 봉사. 기독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의 핵심이다. 그냥 자꾸 연습할 수밖에 없다. 연습하다 넘어져도 또 일어나는 거다. 작은 일에 충성하며 김인강은 엄청난 삶을 살고 있다.

땅에 묻힌 하늘을 본 「기쁨공식」저자 김인강 교수는 수학공식을 만들고 풀어나가고 증명하고 해결하고 논리적인 추리로 예측해 나가는 그 속에서 사람답게 사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그의 기쁨 공식을 성서에서 찾아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함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김인강은 진정 땅에 묻힌 하늘을 본 사람이다. 최근에 발간된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민혜기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삼성이 한인 사회에 공식 등장했다. 추진중인 사업을 영상자료도 준비해 설명하고, ‘교민사회를 위해 기여도 할 생각’이라고 다짐까지 했다. 참 역사적인 일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이 땅의 한인이민사에 대기업 삼성의 ‘신고식’은 지금 껏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유수의 기업군 반열에 오른 삼성은 자랑스럽게도 한국기업이다. 하지만 한인 동포사회에서 삼성은 세계적 기업의 하나일 뿐 동포들과는 별로 연관이 없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만 보고 들어온 기업체였을 뿐이다.
캐나다 사회에도 삼성의 휴대폰이 유행하고 TV 냉장고 등의 삼성 가전제품을 매장에서 볼 수 있지만, 또 삼성의 캐나다법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삼성맨들이 한인사회 공식 석상에 등장해 얼굴을 내 보이고 동포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장면은 사상 처음 ‘발생’한 것이다.

지난 9일 저녁 한인회관에서 있었던 ‘동포단체장 간담회’ 자리에서다.
이날 참석한 1백여명의 동포사회 각계인사들은 처음에 덕담들을 주고받았다.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 단체장과 원로 등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겠다“고 한인회가 나서기는 근래 드문 일이었기에,  “새 회장단이 좋은 일을 하셨다. 고맙다” 한 원로는 그렇게 칭찬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농반 진반의 이야기였지만, “지금 껏 한인회 행사에서 나온 뷔페로는 최고급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차려진 성찬을 마친 뒤였다. 한인회는 음식을 삼성측이 준비했다고 나중에 알렸다. 삼성은 이날 참석자들에게 휴대용 USB를 일일이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행사가 끝난 뒤에는 자리를 뜨는 인사들의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삼삼오오 주고받는 말들은 “한인회 발전을 논한다더니 이렇게 끝나면 어떡하나? 결국 삼성설명회를 포장한 거였구먼!” “한인회 지붕이 새서 야단인데 그런 문제들은 언제 얘기 할려고!”…
참석자들의 불평 그대로 이날 행사는 ‘제주 7대 경관 캠페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제외하고는 ‘삼성 프로젝트 설명회’에 머물렀다. 사전에 20분을 약속했는데 너무 길어졌다‘고 한인회는 해명도 했다. 하지만 삼성 설명회가 끝난 뒤에 진행 예정이던 ’동포사회 발전 간담회‘는 기조연설에 나선 조성준 시의원도 삼성을 성원하는 말과 함께 ”한인사회가 뭉쳐야 한다“는 선에 그친 뒤로는 다른 발언자 하나 없이 곧바로 끝나버려 애당초 구색 맞추기였음을 드러냈다.

삼성은 이날 부사장, 법인장 등 고위 직원들이 나서 최근 온타리오에서 정치적 논란대상이 된 주정부 발주 신재생 그린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온주의 야당인 보수당이 정치적으로 근거없는 트집을 잡고 있고, 그래서 공연히 불안한 상황이 되면 은행융자 등에 차질이 생겨 사업추진이 어려워진다는 점 등을 동포들에게 알려 협조를 구한다고 했다. 사업이 잘 추진되면 앞으로 고용대상에 동포들도 포함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어떻든 박수로 이들을 환영했다. 모국의 세계적 기업이 하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다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이민 땅에도 한국의 대기업이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기술과 명성을 빛내면 더 이상 가슴 뿌듯할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자리를 뜨며 여기저기서 투덜거린 것처럼 참석자들은 왠지 찜찜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표정들이었다. ‘대 삼성’의 사업과 설명을 직접 접하고 대접도 받으니 싫지는 않다지만, 관심 밖이던 그들의 돌연한 등장이, 뭔가 뻔한 계산 속인 것만 같아서 일 게다.
지난해 체결했다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지역 정가에서 논란을 빚고, 그 사실이 주류언론에 보도되면서 정치문제로 비화하자 당황한 삼성의 눈에, 비로소 한인이민자들도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부랴부랴 “내용을 알려드리고 협조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 다급한 첫 등장의 배경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캐나다에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나와있다. 그들은 지상사협의회라는 모임으로 뭉쳐있다.그러나 한인사회와는 거리를 두고있고, 동포들을 대하는 그들의 평소 시선은 ‘해달라는 것만 많은 귀차니즘’으로 통칭된다. 
다수 동포들은 한국기업과 상품도 모국의 일부로 생각하며 애정을 보낸다. 해외진출 기업들이 잘 되면 모국도 부국이 되려니 염원하며-. 
그런데 그들의 행태를 보면 짝사랑일 뿐이라는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이웃 일본·중국의 기업들과 너무 대조된다는 지적과 함께.
모국의 기업들이 동포사회를 따뜻하게 뒷받침 해주고, 동포들이 모국기업의 든든한 애용가, 후원자, 홍보그룹이 된다면 서로가 시너지효과를 거두지 않겠는가. 그 것이야말로 ‘나눔과 함께 가기’의 작은 동족애 실천일 것이다. 삼성의 동포사회 첫 데뷔는 그래서 씁쓸한 상념을 던진다.

캐나다 한인 이민사는 반세기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나 짧아도 결코 작거나 흐릿하지 않은 민주주의 열망과 조국사랑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군사독재로 모국이 엄혹했던 시절, 캐나다 동포들의 조국 민주화 투쟁지원과 헌신은 현대사의 기록으로, 또한 많은 한국민의 뇌리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조국의 독재종식과 민주화를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생존해 있다. 그로인해 일부는 조국 땅을 밟지도 못하다가 2천년 대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겨우 해금되어 고국을 찾을 수 있었던 분들도 있다. 그렇게 캐나다 동포들은 비록 밖에서 였지만, 조국의 민주화 도정에 소금 같은 기여를 했다. 칼바람 속에서 힘겹게 싸우던 야당과 재야와 수많은 민주인사들에게 격문을 보내고 용기와 의지를 붇돋웠던 민주 지킴이의 영예로운 발자취가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 자랑스런 족적이, 고국의 민주화 이후 할 일을 다한 듯한, 마치 표적 상실의 안도와 허탈 속에 사그러들고 잊혀져 가는 모습은, 이 땅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사는 우리를 마냥 아쉽고 안타깝게 한다. 그것은, 멀리서 보고 듣고 있기에 만은 너무도 속이 상하는 근래 모국 정치와 사회현실의 퇴행 내지 역행 소식들과, 그 와중에 목전으로 다가온 재외동포 참정권 행사, 즉 모국 선거참여가 눈앞에 다가온 때문이다.
조국은 이미 민주화된 ‘민주주의 성인국가’려니 하고 안도하며 방심한 사이, 정치는 너무 보수화되고 사회는 경직되고 남북관계는 아예 단절되어 버렸다. 정부가 장악한 언론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수십 단계 떨어지고 인권수준도 후진국으로 뒷걸음질 쳤다. 민주 퇴행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민주 성인국이 된 게 아니라, ‘자라다만 민주미숙아국’, ‘민주 절름발이의 나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포사회에서 조국을 걱정하는 소리는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한다고 박수를 치며 편드는 소리만 나돈다. 캐나다 동포들의 민주 열망은 이미 노쇠하고 허해진 것일까? 경제가 세계 15위권이면 다른 것은 어떠해도 좋다는 것일까. 그냥 두고보면 저절로 모국이 선진 복지국가가 되려니 하고 낙관하는 것일까?.
조국의 진정한 발전과 민주선진국을 소망한다면, 보고도 못 본 체, 혹은 공연히 나설 일이 아니라는 눈치꾼이어서는 안된다. 잘잘못을 분별해 역주행에 대해서는 호되게 야단을 쳐야 옳다. 앞서가는 민주국가에 사는 해외동포들의 질타가 오히려 어느 누구의 채찍보다 추상같고 반향이 클 수 있다.

마침 그런 계제에 야권 후원세력으로 출범한 ‘민주포럼’은 뜻있는 동포들의 기대를 모은다. ‘조국사랑’이라는 구실 하에 맹목적 보수 일변도로 흐르기 쉬운 이민사회에서, 모처럼 야권의 목소리를 낼 단체가 기치를 올려서다. 어느 사회든 한쪽이 비대하면 정상이 아니다. 편향된 시각만이 횡행하면 실체와 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고 편향된 견해와 행보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다. 솔직이 이곳 동포사회에서 그간 친여-친정부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활보했지만, 야성(野性) 단체는 보기 힘들었다. 동포들이 모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등 조국의 진면목을 정확히 아는데 필요한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활동하는 주요 단체는 물론 주요 언론도 균형감각을 선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의 선거참여를 맞아, 동포들의 균형있는 판단과 주권행사를 위해서도 균형있는 목소리와 정보제공은 화급한 과제가 됐다.
균형있게 목소리를 내고 정보를 제공할 대상은 비단 모국의 정치에 관한 것만 일 수는 없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며 몸담고 사는 이곳 한인사회 쟁점들과 현안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려서 때론 칭송하고 때론 질타하는 참된 외침이 필요하다. 그런 균형있는 견해와 비판이 활발할 때 우리 공동체가 건실하게 성장해, 다민족 사회에서 돋보이는 위상과 반열을 자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 후원조직에 앞서  발족한 토론토 민주포럼의 앞날이 주시된다.

뜻있는 동포들의 민주 열망을 되살리고 결집해 조국의 정치·사회 등 모든 부문의 민주적 발전을 독려하며 지켜나갈 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모국과의 연계로 한인 동포사회의 균형있는 발전과 번영에 일조하면서, 캐나다 사회에서의 동포권익과 활동무대 확장에도 힘쓸 일이다. 당장 중요한 것은 내년 선거를 맞아 모국정치의 현주소와 여·야정책의 균형있는 판별자료를 동포들에게 제공하고 인식시키는 일이다. 아울러 야당세력이면 야당답게 확실한 태세를 갖추고 연대노력을 펴는 것도 큰 현안이다. 벌써 일부에서 ‘관제야당’ 소리가 나옴을 직시해야 한다. 캐나다의 뿌리깊은 야성전통과 ‘진짜야당’ 성향의 인사들이 곁눈질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새 출범에는 의례 과한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일단 나팔을 불었으면 최소한의 열의와 존재감은 동포들에게 보여줄 일이다. 그저 기를 꽂는데 만족하거나, 모국정치권에 선을 대 ‘재수 좋으면 한자리 노리고’ 식의 계산 속만 엿보인다면, 머잖아 힐난에 직면할 것이다.
원래 야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광보다는 가시밭길이다. 그만큼 정력과 결기가 필요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