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인 8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경기 용인시에서 지병을 앓아온 60대 노부부가 자식에게 짐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숨졌다. 병 수발을 해온 아들 부부와 손자들을 여행 보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노부부가 겪었을 고통, ‘미안하다 고마웠다’는 유서를 받아든 자식들의 슬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
노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의 노인 자살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한림대 고령사회연구소에서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2009년 우리나라 인구 10만명당 65살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77명으로 나타났다. 1990년의 14.3명에서 20년 만에 5배 이상으로 급증한 수치다. 한때 ‘자살왕국’으로 불렸던 일본의 10만명당 노인 자살자 수는 2007년 23.8명이었다.
그런데도 노인 자살은 당사자의 정신건강이나 가족 내부의 문제 등으로 치부되며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6.25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고난을 이기며 발전을 일궈온 이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쓸쓸히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31일에도 60대 노부부가 “더 이상 살 수 없어 세상을 떠난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한달에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을 받아 월세 30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온 부부였다.
이들의 자살은 노년 질병을 사회 의료체계가 나눠 맡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인 대부분이 국민연금 등 소득보전체계를 갖고 있지 못한 현실과 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4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3.3%)보다 훨씬 높다. 지난해 노인 550만명 중 373만명이 받은 기초노령연금은 단독가구 기준으로 월 9만원에 그쳤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더해 실태조사와 예방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일정 소득의 자식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대상에서 제외된 100여만명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공적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보면 국내총생산 중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7.5%, 2011년 6.9%, 2014년 6.6% 등으로 계속 낮아지도록 돼 있다. 이래 가지고서는 노인 자살률 최고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가 1980년대 군사정권 시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달 초 미국의 보수적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2011년 세계 언론자유도 조사 결과 한국은 196개국 중 7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그나마 “자유국가”의 끄트머리에라도 붙어 있던 지위를 상실하고, “부분 자유국가”로 강등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우리나라는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기 힘들게 되었고, 선진국이라고 자랑하기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순위로 따지면 중남미 카리브해의 자메이카(23위), 아프리카의 가나(54위)는 물론 이웃의 대만(48위)보다도 한참 아래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순위 하락보다도 우리나라의 지위 강등이다. 인권단체 겸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는 1980년부터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도를 측정해서 그 결과를 발표해 왔다.

법적인 환경과 정치적 영향, 그리고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하여 각 나라의 언론자유도를 계산하고 “자유국가”(녹색) “부분 자유국가”(노란색) “비자유국가”(보라색)로 분류했다. 보수단체라서 그랬는지 프리덤하우스는 과거 군사정권 때도 우리나라를 “부분 자유국가”로 분류했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는 “자유국가”로 격상하여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정치적 영향’ 부분에서의 낮은 언론자유도 점수가 계속되더니 급기야 올해 평가에서는 “부분 자유국가”로 그 지위마저 추락해 버렸다. 프리덤하우스가 그린 세계 언론자유도 지도를 통해 ‘녹색’ 대한민국이 1980년대의 ‘노란색’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다. 국제사회도 인정하는 분명한 역주행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자유 말살책에 대해 아주 보수적인 미국의 사회단체마저 ‘이건 아니야’라며 옐로 카드를 제시한 셈이다.

프리덤하우스는 그러한 평가의 요인을 간단히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뉴스와 정보 내용물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공식적인 검열이 증가하고 있고, 온라인상에서의 반정부 혹은 친북 표현물 삭제가 늘어났으며, 언론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측근들을 주요 방송사 요직에 앉혀 정부가 방송사 경영에까지 간섭해 왔다는 것이다.
바깥에서도 나름대로 꽤나 정확히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디 그것뿐인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그동안 불법부당한 조처들이 줄을 이었다.
온갖 불법과 편법들을 총동원하여 사람을 바꾸고 프로그램을 바꾸고 심지어는 법을 바꾸어가면서 정부와 정권에 유리한 언론 구도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정부와 권력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는 검열에 가까운 심의로 철퇴를 가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제위원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물을 걸러내는 검열기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정권의 보은인사로 자리를 꿰찬 낙하산 사장들은 공영방송사를 정권의 홍보기관처럼 만들어버렸다.
이런 한국의 현실을 보고 외국에서 올해는 심하게 감점을 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국격이 한참 떨어져버린 것이다. 누가 우리나라의 국격을 외치고 있고 또 떨어뜨리고 있는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 강상현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검찰이 지난달 12일 발생한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했다. 이번 사태는 2009년 7월7일과 지난 3월4일 디도스 공격을 감행했던 집단이 장기간 치밀하게 준비해 실행한 것으로, ‘북한이 관여한 초유의 사이버 테러’라는 것이다. 검찰은 북한 당국이 관리하고 있는 아이피 가운데 하나가 이번 공격에 사용됐다는 점 등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일부 보안 전문가들은 이런 검찰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사이버 테러를 당할 정도로 우리의 보안 시스템이 허술하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이번 농협 사태는 관공서 등 다수의 누리집(홈페이지) 운영을 일시적으로 방해하는 기존 디도스 공격과 달리 특정 기관에 대해 공격을 집중하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수백대의 좀비피시로 데이터 과부하를 일으켰던 것과 달리 장기간 조종한 좀비피시로 정밀 타격을 가한 것이다. 좀비피시에서 공격 명령이 내려지면 유기적으로 연결된 프로그램이 순차 공격을 하는 구조로 설계돼 농협 전산망은 데이터 일부가 영구 유실될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검찰의 발표대로 북한이 이러한 사이버 테러를 주도한 것이라면 이는 무차별적인 도발로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기에는 여전히 미심쩍은 점이 없지 않다. 검찰은 상당한 규모의 인적·물적 지원 없이는 실행하기 어려운 범죄라는 점도 북한의 소행을 뒷받침한다면서도 공격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보안 전문가들은 아이피 조작이 가능한 만큼 아이피만 가지고 농협 사태의 범인이 이전 디도스 공격과 동일범이라고 하기엔 근거가 약하다고 지적한다. 또 앞선 디도스 공격도 북한이 개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황적 결론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검찰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보안 시스템과 보안 의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난해 9월부터 원격조종으로 좀비피시를 만들어 입력 정보를 낚아채고 도청 프로그램까지 사용됐는데도 보안당국과 농협 모두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이나 디도스 공격을 당하고도 차단했다는 아이피를 통해 또 공격을 당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보안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과 주요 기관 역시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어제 파키스탄 은신처에서 미군에 사살당했다.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지 10년 만이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세계를 흔들어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도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구심점을 잃은 알카에다 조직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빈라덴의 죽음이 테러 없는 세상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비무장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3000여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9.11 테러의 주모자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한 미국의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빈라덴 사살을 두고 “정의가 이뤄졌다”고 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빈라덴의 죽음이 테러조직의 와해로 직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테러 없는 세상이 저절로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카에다의 전사 빈라덴을 만든 것은 사실상 미국이다. 1979년 소련이 중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 아프간을 침공하자 미국은 이슬람 무장세력을 양성해 대적했다. 빈라덴은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경도된 그가 반미로 돌아선 것은 1991년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이 여군이 포함된 30만의 미군을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장기 주둔시킨 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와 알카에다는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폭파 기도에 이어 1998년엔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을 폭파했다. 9.11 사태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엔 서방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양극화와 아랍세계의 좌절감도 큰 영향을 끼쳤다.

9.11 사태 직후 미국은 탈레반 정권에 빈라덴의 인도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아프간을 침공했다. 탈레반 조직도 중앙아시아 원유들을 인도양으로 실어내는 아프간 내 송유관 건설을 위해 미국이 양성한 세력이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이에 맞선 테러가 빈발했다. 결국 미국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자신이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둔 셈이 됐다. 이것이 9.11 사태 이후 전개되는 불안정한 세계의 실상이다.  빈라덴 사살이 미국에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거둔 최대의 성과이자 그 전쟁을 정당화해주는 사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그 성과에 우쭐해 자신의 힘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로 활용해선 안 된다. 오히려 대내외 정책과 테러와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아프간 침공 명분이 사라진 만큼 신속히 아프간에서 철군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 아프간 파병부대도 조속한 철수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