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각에서 슬금슬금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의 위험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 동맹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의혹이 터지면서 소파 개정 요구가 줄기차게 제기됐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론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겠지만, 이제는 여론의 봇물이 터질 지경이라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미 동맹을 위해서도 소파의 환경조항은 개정돼야 한다. 동맹은 호혜적 관계 속에서 양국민이 서로 신뢰할 때 굳건해진다. 한쪽은 군림하면서 불평등을 강요하고, 다른 쪽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불만을 쌓아간다면 동맹은 허약해진다. 불행하게도 소파 환경조항은 우리가 주권국가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일방적이고 불평등하다. 환경 피해의 조사, 자료 공개, 치유와 배상 등 모든 면에서 미군의 선의에만 기대도록 되어 있다.
2003년에 개정·시행된 소파는 합의의사록에 ‘한국의 환경법령을 존중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고 특별양해각서도 체결해 미군의 환경관리 지침을 한국 법에 맞춰 2년마다 보완토록 했고, 건강에 대한 긴급하고 실질적인 위험에 대해 미군이 치유하도록 했다.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하나같이 추상적인데다 처벌과 책임 규정이 없어 미군으로선 불편할 게 없었다.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 매립과 토양 및 지하수 오염이 확인되더라도 피해 주민은 미군으로부터 치유와 배상을 받을 수 없다. 한국 정부로부터 배상을 받고, 한국 정부는 미군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지만, 그림의 떡이다. 1999년 캠프 롱 사건 때 강원도 원주시민들이 수개월간 천막농성 끝에 배상을 받은 것처럼 실력행사가 현실적이다. 조사 역시 고엽제 의혹이라는 긴박한 사태 앞에서도 미군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미국내 여론과 고엽제 피해 문제가 겹치지 않았더라면 미군이 양보했을지 의심스럽다. 문제가 심각한 캠프 마켓 등에 대해 미군은 여전히 오불관언이다.  독일과 미국 소파 본문엔 ‘독일의 환경법규를 준수한다’고 명시돼 있고, 보충협약에선 미군기지의 환경 조사, 정화 기준, 비용 책임 등을 독일 국내법에 따르도록 했다. 문제는 ‘국내법 준수’다. 미국내 한국인이 그러하듯이, 주한미군도 한국의 환경법을 준수하고 오염자 책임 원칙을 지키면 된다.

독일 정부가 지난 30일 17기의 원전을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7기 등 총 8기를 즉각 폐쇄하고, 2021년까지 대부분의 원전을 폐쇄한 뒤 비상사태용으로 3기만 1년간 더 연장가동한다고 한다. 이로 인한 전력 부족분은 풍력 등 재생에너지, 가스 등 화석연료, 그리고 장차 지금의 절반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에너지 효율 향상 등으로 보완할 방침이다.
독일의 이번 결정은 세계 원전산업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 원전 의존율이 40%에 이르는 스위스도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독일의 이번 결정에 대해 독일 산업계가 반발하고, 일부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폭풍을 피해 가려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이틀 전 정부 에너지정책 자문위원회도 “탈원전은 10년 내에 가능하다”는 최종결론을 내렸고, 그에 앞서 열린 16개 주정부 환경장관회의에서도 결론은 같았다.

독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탈원전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치밀하게 대비해왔다. 1998년 출범한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민당·녹색당 적록 연립정부 때 이미 “원자력 사용을 최대한 조속히 종료한다”는 원전 포기 방침을 정하고 그것을 자연친화적 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법까지 제정했다. 이에 따라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까지 5%대에서 2009년에는 16.4%까지 올라갔다. 그 뒤 기민련 주도의 연립정부도 원전 가동 기한을 8~14년 더 늘리는 등 계획을 일부 수정했으나 원전 포기라는 큰 틀은 유지했다. 지난해 수립된 기민련·자민당 연립정부의 원전 가동 12년 연장 조처도 원전 포기 틀 자체를 부수진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며칠 뒤 메르켈 정부는 부랴부랴 가동 연장 철회를 선언했지만 뒤이은 지방선거에서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총리 자리를 58년 만에 녹색당에 내주는 등 참패를 당했다. 시민들이 원한 것은 후퇴 없는 탈원전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 결정에는 물론 메르켈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하지만 독일의 탈원전 정책은 이미 1990년대부터 치밀하게 준비돼온 것이다.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었다. 에너지 전략에 대한 장기전망 수립과 시민적 논의가 우리에게도 시급한 까닭이다.

[1500자 칼럼] 흐뭇한 비누거품

● 칼럼 2011. 6. 6. 13:17 Posted by Zig
엄마 손에는 지팡이 대신 부피가 큰 헝겊 양산이 들려있다. 언제부터 짚고 다녔는지 꼭지 부분의 고무가 다 닳아서 귀에 거슬리는 쇳소리가 난다. 작년에 엄마를 만났었으니 양산으로 바뀐 것은 아마 그 후 부터였을 것이다. 가벼운 지팡이를 다시 써보도록 권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그쯤에서 물러서며 ‘노인’이라는 호칭이나 ‘지팡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엄마가 혹시 상처를 받으신 게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나이에 순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인이 엄마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회적인 변화의 물결 때문일 수도 있다. 젊고 예뻐지는데 대한 강박에 가까운 집착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편안함을 반납하는지도 모른다.
타박타박 걸으며 양산 지팡이에 의지해 차에서 내려서 찜질방까지 들어가는 길이 마치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만큼이나 멀고 길게 느껴진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 턱은 왜 그리 높은지, 인도의 보도블록은 또 왜 그리 울퉁불퉁하고 고르지 못한지, 나는 오늘에서야 지팡이 짚은 노인의 시각으로 주변을 인식하며 새삼 가슴이 저린다.
그렇게 탈의실까지 왔다. 그런데 세상에, 5월 중순에 누비바지에 내복이라니. 그나마 덜 여위어 보이던 몸집이 내복과 누비바지 덕분이었음을 알아차리고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한 줌 부피로 줄어든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게 엄마는 수줍은 듯 변명처럼 말을 흘리신다.
 “추워서 입는 게 아니야, 이래봬도 이게 안주머니까지 있어 얼마나 편하다고.” 두꺼운 껍질을 차례로 벗어놓자 엄마의 몸이 가벼워지는 만큼 내 가슴은 무거워진다.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나 싶은 자책 때문일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마다하고 혼자 휘적휘적 욕탕으로 걸어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위태로워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욕탕까지 또 한 고개를 넘었다는 듯 엄마는 굽었던 허리를 펴신다. 잠시 동안이지만 엄마 입장에서 행동해보니 당연한 줄 알고 살던 세상이 불편한 것 투성이다. 욕탕의 깔개 의자는 자질이 플라스틱인데도 노인이 들기에는 턱없이 무겁다. 목욕은 시작도 안 했는데 기진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어 샤워버튼을 누르신다. 샤워기는 한 번 누르면 잘해야 십여 초 동안만 물이 나오게 되어 있어 수없이 눌러야나 제대로 씻을 수 있다. 아마 물을 절약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인 듯하다. 에너지 자원을 생각하면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오늘따라 노약자에 대한 무심함에 속을 끓이게 된다. 보다 못해 샤워기를 빼앗아 엄마 머리에 대 드렸다. 빳빳하던 고집이 슬그머니 수그러들더니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맡기고 다소곳이 앉아계신다. 머리를 감겨드리고 내친 김에 몸까지 씻겨드렸다. 살갗이 이리저리 밀려다녀서 비누칠하기가 쉽지 않다. 하얗게 비누거품이 이는 때수건을 살그머니 앞쪽 가슴께로 가져가니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며 움츠리다가 포기한 듯 힘을 빼셨다. 탄력을 잃어 쳐진 살갗을 한 켜씩 들추어가며 비누칠을 했다. 흐뭇한 비누거품들이 안개꽃처럼 피어났다가 스러져갔다. 손끝에 전해오는 말캉거리는 촉감이 참 좋았다. 어린아이가 제 엄마 몸에서 느낄 것 같은 행복감에 잠이 오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엄마와 목욕하러 다녔는데도 나는 엄마의 젊은 몸은 기억하지 못한다. 수증기가 뽀얗게 서려있어 숨이 차던 기억과 물이 너무 뜨겁던 기억, 그리고 살갗이 얼얼하도록 밀어 아프던 기억밖에 없는 걸 보면 내게 목욕하는 일은 그리 즐거운 추억이 아니었나 보다.
“이제 됐다, 그만해라”는 소리에 놀라 버튼을 눌러 맑은 물로 헹궈드렸다.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에 나란히 누워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어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거라는 길 위에 이민을 떠난 후 내가 버리고 간 시간들이 조용히 쌓여있다. 엄마의 볼이 홍옥처럼 빨갛게 빛난다. 나는 엄마의 발갛게 익은 얼굴이 싱그럽다는 생각을 잠시 한다. 엄마의 한때 꽃 같던 젊음을 나는 지금 그렇게 만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발그레한 혈색이 행복한 노년의 빛깔이기를 조심스레 빌어본다.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한국 문인협회 회원>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이라는 괴물 때문에 줄곧 가위눌려 지내고 있는 느낌이다.
핵산업은 한번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그동안의 이익 전체를 훨씬 능가하는 손해를 입힐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구를 거주 불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어놓을 게 분명한 프로젝트이다.
핵산업 추진세력이 이것을 모를 리 없다. 그들은 핵발전의 절대 안전성을 되뇌면서도 진심으로는 그렇게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오염되면 자본가나 권력자라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 끔찍한 짓을 계속해왔고, 지금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상황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양심적 과학자·전문가들의 사회적 발언이다. 정부나 핵산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어용학자들의 상투적인 발언이 아니라 독립적 연구자들의 발언이야말로 가장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원자력에 관련해서 구해볼 수 있는, 그런 발언이나 문헌은 거의 전부가 해외의 연구자나 전문가들에 의한 것이다. 물론 국내의 자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반핵운동 단체에 속한 시민운동가들, 즉 비전문가에 의한 실무적 문건이다. 따라서 이 문건들도 최종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은 해외의 관련 전문가들이 쓴 자료이다.
물론 외국의 과학자들이라고 해서 발언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연구라는 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국가 혹은 자본의 요구와 연계되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원자력 관련 연구는 그것이 국가주의 혹은 군사적 논리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60년 이상 핵산업이 성행해왔는데도 지금 인류사회에는 인공 방사능이 과연 얼마나 어떻게 사람과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설(定說)이 없다.
이렇게 된 것은, 간단히 말해서, 권력에 의한 정보의 독점과 독립적 목소리에 대한 억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핵산업 추진세력은 끊임없이 방사능 피해의 규모를 축소·은폐하려 하면서, 심지어는 미량의 방사능은 생명체에 유익하다는 주장까지 해왔다. 이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는 연구자들은 예외없이 수난을 당하거나 노골적인 박해를 받아왔다.
오늘날 세계보건기구(WHO)조차 방사능 피해에 대한 독자적인 견해를 발표하는 데 심각한 부자유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도 방사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몇몇 양심적인 과학자·전문가들의 의로운 결단 덕분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 피해가 10~20년 뒤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방사능의 가공할 피해를 알지 못하고, 또 그동안 행해진 무수한 핵실험, 원자력발전, 열화우라늄폭탄 따위로 세계 전역에 방사능 오염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비단 원자력기술뿐만 아니다. 갈수록 첨단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오늘날 독립적인 과학자의 존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 속의 과학자들은 점점 더 자본과 국가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이 개탄스러운 상황이 극복되지 않는 한, 과학기술은 인간다운 삶의 증진에 기여하기는커녕 삶 자체를 근원적으로 망가뜨리는 악마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악마의 도구가 되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과학기술의 인간화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과학자가 진정한 ‘시민과학자’일 것이다. 그런 시민과학자를 볼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이다.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