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을 다룬 <무산일기>가 부산영화제를 시작으로 트라이베카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유수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고픔에 지쳐 강냉이 한 자루를 사이에 두고 친구와 싸우다 친구를 죽이고 남한으로 넘어온 젊은이의 남한 내 생존 기록을 극도의 절제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이 영화는 과연 그 국제적 찬사에 값할 만했습니다. 특히 분신처럼 아끼던 강아지의 죽음을 주인공이 오랫동안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주인공 전승철은 125로 시작되는 탈북자 주민번호를 가진 까닭에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합니다. 벽보 붙이기나 노래방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관할구역을 침범했다고 주먹질을 당하고, 노래방에선 오해를 받고 쫓겨납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는 다른 탈북민들에게 사기나 치고. 그러다 보니 거리에서 주워 온 백구가 그의 유일한 마음붙이였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친구가 빼돌린 돈을 대신 차지하고 새 삶을 시작한 순간, 그 백구가 차에 치여 숨지고 맙니다. 주인공이 죽은 백구를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보았던 것은 그 속에서 폭력적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물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영화는 남과 북의 위정자들과 우리 사회가 북한 동포들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전승철은 강냉이 한 자루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와 죽도록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도 북한 정권은 체제 수호를 위한 핵개발에 매달리며 나 몰라라 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넘어온 남한 사회도 그를 품어주지 않는 것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승철뿐이 아닙니다.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어김없이 남한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차별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배제와 차별의 결과 그들은 스스로를 2류 시민으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북한 인권 전문가를 국가인권위원에 임명하고, 민간단체에서 북한 주민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킨다며 대북 전단을 뿌리는 것도 방치합니다. 그런데 유독 인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인권인 북한 주민의 생존권에 대해선 눈을 감습니다.

물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처럼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식량지원이 사실상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이 된다는 현실적 딜레마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식량 배분에 대한 모니터링을 허용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적 딜레마를 내세워 동포들이 굶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다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군사적 문제와 연관시켜 대북 식량지원을 회피하는 것을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여 2류 국민으로 만드는 것 역시 그들은 물론 우리 사회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 배제와 차별이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이나 프랑스의 이민자 폭동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소망스러운 것은 북한 정권이 북한 동포들의 생존을 감당하게 만드는 일일 겁니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우선 인도적 식량지원으로 당장의 식량위기를 넘길 수 있게 해주는 한편 체제에 대한 위협을 줄여줌으로써 가용자원을 체제 유지가 아닌 주민생활 개선에 투입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재개가 긴요한 까닭입니다.
올해 들어 북한은 다양한 경로로 대화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터를 통해서도 조건 없는 남북대화를 제기했습니다.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며 북한의 진정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만나야 합니다. 북한 동포의 인권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지금이야말로 남북한 주민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전면 전환할 때입니다.

<권태선 - 한겨레신문 편집인>

미군에 사살당한 오사마 빈라덴이 황급히 수장당한 아라비아해는 세계 제일의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빈라덴의 수장은 이 아라비아해의 파고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실마리는 미국이 그의 죽음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더 넓게는 아프간-파키스탄 전쟁, 즉 아프팍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느냐에 있다. 이는 지난 10년 넘게 전세계에 자상을 낸 테러와의 전쟁의 출구도 된다.

아프간 전쟁은 빈라덴과 알카에다 소탕을 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소탕이 10년 이상을 끌면서 아프팍은 ‘이슬람 성전지’로 바뀌었다.
애초부터 아프간은 이슬람 전사들인 무자헤딘과 이슬람 무장주의의 메카였다. 1970년대 말 소련의 아프간 침공에 맞서, 이슬람 세계의 피끓는 전사들이 모여들어 소련을 패퇴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중앙정보국이 파키스탄 정보당국을 통해 양성한 전사들이 탈레반이다. 또 아프간에서 싸웠던 무자헤딘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이슬람 무장조직의 근간이 됐다.
알카에다 소탕을 위해 아프간에 들어온 미국은 자신들이 키운 탈레반과 무자헤딘에 발목이 잡혀, 소련이 빠진 수렁에 빠져 있다.

그 수렁의 깊이는 얕을지 몰라도, 넓이는 더 크다. 파키스탄까지 수렁이 됐기 때문이다. 아프간전의 여파는 파키스탄 탈레반을 탄생시켰고, 아프간과 접경한 북서변경주의 연방부족자치지역인 와지리스탄 등은 파키스탄군도 진주하지 못하는 사실상 독립국가가 됐다. 미군이 이 지역을 무인기로만 타격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 2009년 봄 파키스탄 탈레반은 연방부족자치지역에서 벗어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도시 부네르까지 함락하며 ‘파키스탄 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파키스탄은 다른 이슬람국가와 차원이 다르다. 인구는 1억6000만명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슬람권의 두번째이고, 백만 대군과 핵무기까지 보유했다.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위상이다. 걸프지역으로 들어가는 아라비아해에 접했다. 서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아프간과 옛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과 이웃하고 있다. 이제 하나로 묶인 아프팍이 이슬람주의 지대가 되면, 서방으로서는 아라비아해 접근이 위협받는다. 특히 새로운 석유지대인 중앙아시아 접근이 봉쇄된다.

미국은 빈라덴을 잡으려다 아프팍이 이슬람주의 지대가 되는 위기에 봉착했다. 이제 미국은 빈라덴의 죽음으로 아프팍 전쟁에서 탈출할 명분을 잡았다. 이미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은 공공연히 거론된 상황이다.
빈라덴의 죽음을 발표한 오바마의 기자회견에 앞서 한 미국 관리는 “알카에다가 없다면 우리는 탈레반과 타협할 수 있다. 탈레반은 여러 제3세계 내전의 단지 한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아프간 주둔 10만 미군 병력의 철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미국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적극 나서서 아프팍 정세가 안정된다면, 빈라덴의 죽음은 평화로 가는 길이 될 거다. 테러의 공포를 일상화한 고통스런 ‘9.11 시대’를 종료할 출구가 될 거다.

미국은 과연 그 길을 걸을 의지와 역량이 있을까? 알 수 없다. 미국은 파키스탄 군부와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에 건성으로 참가했다며 그들을 믿지 못한다.
나치 점령 프랑스에서 저항운동을 한 클로드 모르강은 저항운동가들의 희생과 결단을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이란 책에 담았다.
아프팍 전쟁을 종료하지 못하고, 9.11 시대의 출구를 못 찾으면, 아라비아해는 ‘꽃도 코란도 없는’ 빈라덴의 거대한 해릉이 될 것이다. 아마 이슬람 전사들이 그 무덤에 꽃과 코란의 성구를 뿌리며, 아라비아해의 파고는 더 높아질 것이다.

<한겨레 국제부 정의길 선임기자 >

[1500자 칼럼] 노남석의 생활칼럼

● 칼럼 2011. 4. 26. 15:31 Posted by Zig
우유와 달걀

많은 사람들은 제가 음식먹는 모습을 보면서 “야~ 참 복스럽게 먹는다~!” 라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어릴 때 나이드신 분들은 “밥을 복스럽게 먹어서 복받겠다!” 하셨습니다. 저의 형수님은 제가 ‘쩝쩝’소리를 내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삼촌은 정말 신사네!” 하면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무슨 음식이나 맛있게 먹어서 음식을 해주는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신이나서 음식을 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음식솜씨가 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그런데 저의 아들들은 저의 밥먹는 모습을 보면서 질색(?)을 하는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가끔 찬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김치하고 먹는 것입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못 마땅한 것 같았습니다. 오만상을 찌프리곤 했습니다. “아빠~, 제발 밥을 우유에다 말지 말아요!” “왜~ 어때서~” “그게 뭐예요?” “야~ 너희들은 Cereal을 우유에다 타서 먹지?” “……” “난 밥을 우유에다 말아서 먹는데 다를게 뭐냐?” “Oh~ boy~!” “그리고 아빠는 너희들 처럼 우유를 꿀꺽꿀꺽 마시면 금방 설사를 해~” “……” “그래서 이렇게 밥을 말아서 꼭꼭 씹어 먹으면 침이 잘 섞여서 설사를 안한다구~!” “에~이구~~!” “좀 이상해 보여도 이해를 해줘!” “그럼 아빠 혼자서 있을 때만 하세요” “알았어~”

제가 어릴 때는 우유가 아주 귀했습니다. 저는 우유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6.25 동란 후에는 분유를 학교에서 도시락통에다 배급을 주었습니다. 배가 고픈 아이들은 손으로 분유를 움켜쥐고 입에 털어 넣으면 입주위는 온통 분유로 범벅이 되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변소(요즘엔 변소라고 하면 질색을 한다던데 그때는 분명히 변소였다)에 드나들기 바빴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분유를 밥 위에다 찌는 것이었습니다. 밥솥에서 쪄낸 분유를 과자처럼 깨물어 먹었습니다. 우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없어서 못 먹던 우유가 살이 찐다! Cholesterol이 많다! 하면서, 그 좋은 Milk fat을 몽땅 제거한 Skim milk를 저희도 마시고 있으니… 또 어떤 사람들은 피부에 좋다고 우유를 목욕통 속에 퍼붓고 목욕을 한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두번째는 아내가 방금한 따끈따끈한 밥을 접시에 퍼주면, 저는 냉장고에 가서 날달걀을 한개 꺼내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얼굴부터 찡그렸습니다. “아빠~ 또~?” “미안! 이 달걀에는 아빠의 어릴 때 추억이 담겨있으니까 너희들이 이해해라!” 접시에 담긴 밥을 약간 옆으로 밀어내고 가운데 공간을 만든 다음에 달걀을 깨서 넣습니다. 소금을 뿌리고, 옆에 밀어 놓았던 따끈따끈한 밥을 달걀 위에 덮고 정성스럽게 비빕니다. 그리고 나서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저의 생각은 어느듯 50년 전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불평을 해도 이해를 바랄 뿐 밥을 달걀에 비벼 먹는 습관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먹는 게 귀했던 시절에 달걀을 지져서 도시락 반찬으로 싸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저의 도시락 반찬은 항상 국물이 줄줄흐르는 김치였으니까요! 후에 누군가의 기발한 Idea에 의해서 구제품으로 나온 병에 든 음식(지금 생각해 보니 Baby food였던 것 같다)을 먹고 난 후에 병에다가 김치를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간혹 버스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의 가방을 무릎에다 받아주었는데, 그 때 잘못하면 김치 국물이 여학생의 치마에 흐르는 경우도 발생하곤 했었습니다. 너도 나도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오가는 인정은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달걀은 일년 중 생일 때나 아니면 죽도록 아플 때 한개 얻어 먹으면 다행이었습니다. 어쩌다가 달걀이 한개 생기면 동생들과 함께 밥을 모두 커다란 냄비에 넣고, 그 귀중한 달걀을 깨서 넣고 비비고 또 비벼서 노란 색갈이 골고루 섞인 다음에 누가 더 많이 먹을세라, 한 숟갈씩 차례로 돌아가면서 퍼먹었습니다. 밥알에 노란 색갈만 묻어 있으면 천하일미였습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 동생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어머니는 따끈따끈한 달걀을 한개 제 손에 쥐어주시고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그게 무슨 대단한 영양식이라고… 그러나 제 손에 쥐어주신 따뜻한 달걀은 음식이 아닌 보약(?)이었습니다! 아니 어머니의 사랑이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똑같았을텐데, 입시준비를 하는 저에게만 달걀을 주셔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우유에 밥을 말아먹고, 따끈따끈한 밥에 달걀을 비벼서 먹을 때, 저는 추억을 먹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에 사는 이 녀석들아~! 너희들이 애비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수필가 - 어진이의 이민수기 필자>

“예로부터 광대는 건들지 않았다.” 정치평론가 공희준의 말이다. 맞다. 교회가 권력의 중심이던 16세기 유럽, 프랑수아 라블레는 풍자소설을 통해 “악마에게 잡아먹혀라, 더러운 사제들아!”라고 질러댔다.
18세기 탐관오리가 판치던 이 땅에서도, 양반의 위선을 조롱하는 봉산탈춤이 뭇 백성의 분을 풀어줬다. 하지만 해코지 입은 광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 조선 중기, 자신을 풍자한 남사당패를 의금부로 끌어가 혼쭐낸 왕 연산군 말고는. 그런 보복은 미치광이나 할 짓이라는 이야기다.
코미디언 김미화, 수난의 연속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연한 SBS 프로그램 사회를 본 것이 화근이었다. 그 방송 사장으로부터 ‘김미화는 친노가 아니다’라는 확인서를 받고, ‘친노’라고 모해한 몇몇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이겼지만 소용없다. ‘선동꾼’ ‘좌익운동가’라는 무도한 빨간색 색칠하기는 여전하다.
이런 일각의 광기에 이성 회복을 촉구해야 할 거대 방송사 경영진은 되레 부화뇌동하며 ‘김미화 죽이기’에 일조하고 있다. 코미디언을 무대 밖에서까지 우습게 여기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것이 분뇨·가스통을 들고 지저분한 위세를 떨치는 ‘애국’ 진영만의 행태는 아닌 듯하다. 재담꾼 김제동은 <한겨레>  ‘직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사회를 맡았을 때 “십자포화 안티를 맞았다. 한쪽에서는 명계남·문성근 같은 훌륭한 사람들을 놔두고 너 따위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회고했다.
엄숙주의 탓이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석연찮게 사라졌다. 재미가 없다는 제작진 내부 평가가 구실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그 유행어, 마음에 안 든다’는 여당 의원의 압박 때문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안윤상의 재기 넘치는 성대모사만 나오면 큰 웃음이 터진다. 그러나 진정한 재미는, 흉내 대상 인물의 호칭은 다 생략해도 이명박만은 ‘대통령’ 직함을 꼭 넣어주는 센스다. 행여 각하가 노여워하실까 염려한 탓이리라.
또한 요즘 이래저래 유명한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 얼마 전 ‘욕설 쓰는 연예인’이라며 김구라의 퇴출을 요구했다. 무명 시절 ‘뜨기 위해’ 거친 표현을 삼가지 않은 과오, 유명인이 돼 거듭 참회해도 소용없다. 고상하지 않은 ‘육체의 언어’를 쓴 죄는 밥줄 끊어 마땅한 중죄로 본 연유다.

1970년대 ‘후라이보이’ 곽규석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멋대로 휘갈긴 그림을 보고 “피카소 작품이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다 ‘남산’에 불려가 사달 났다. ‘공산당원 피카소’의 정체를 몰랐던 탓이다.
이런 저열한 시대에 독재자와 맞서 싸우다 훗날 보수정치인이 된 이들, 요즘은 곽규석이 아닌 다른 코미디언의 숨통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자신이 싸운 괴물과 닮지 말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당부, 마치 이들을 겨냥한 듯하다.
폼 잡고 심각한 말을 해도 대중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그래서 동정도 받는 코미디언. 이들을 울리는 세력의 온전한 노후는 없었다.
곽규석에게 공포감을 안긴 그때 그 지도자는 흉탄에 맞아 죽었고, 두상이 흡사하다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을 막아 이주일을 낙담케 한 당대 지도자는 여태 ‘전재산 29만원뿐인 영세민’이라며 조롱받고 있다. 김미화는 “더이상 코미디언을 슬프게 하는 사회가 안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를 호소 아닌 경고로 새겨듣는 이가 진정 현자일 것이다. < 김용민 시사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