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한인 이민사는 반세기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나 짧아도 결코 작거나 흐릿하지 않은 민주주의 열망과 조국사랑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군사독재로 모국이 엄혹했던 시절, 캐나다 동포들의 조국 민주화 투쟁지원과 헌신은 현대사의 기록으로, 또한 많은 한국민의 뇌리에 또렷이 새겨져 있다. 조국의 독재종식과 민주화를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들 가운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생존해 있다. 그로인해 일부는 조국 땅을 밟지도 못하다가 2천년 대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겨우 해금되어 고국을 찾을 수 있었던 분들도 있다. 그렇게 캐나다 동포들은 비록 밖에서 였지만, 조국의 민주화 도정에 소금 같은 기여를 했다. 칼바람 속에서 힘겹게 싸우던 야당과 재야와 수많은 민주인사들에게 격문을 보내고 용기와 의지를 붇돋웠던 민주 지킴이의 영예로운 발자취가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 자랑스런 족적이, 고국의 민주화 이후 할 일을 다한 듯한, 마치 표적 상실의 안도와 허탈 속에 사그러들고 잊혀져 가는 모습은, 이 땅에서 여전히 한국인으로 사는 우리를 마냥 아쉽고 안타깝게 한다. 그것은, 멀리서 보고 듣고 있기에 만은 너무도 속이 상하는 근래 모국 정치와 사회현실의 퇴행 내지 역행 소식들과, 그 와중에 목전으로 다가온 재외동포 참정권 행사, 즉 모국 선거참여가 눈앞에 다가온 때문이다.
조국은 이미 민주화된 ‘민주주의 성인국가’려니 하고 안도하며 방심한 사이, 정치는 너무 보수화되고 사회는 경직되고 남북관계는 아예 단절되어 버렸다. 정부가 장악한 언론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는 수십 단계 떨어지고 인권수준도 후진국으로 뒷걸음질 쳤다. 민주 퇴행의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민주 성인국이 된 게 아니라, ‘자라다만 민주미숙아국’, ‘민주 절름발이의 나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포사회에서 조국을 걱정하는 소리는 밖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잘한다고 박수를 치며 편드는 소리만 나돈다. 캐나다 동포들의 민주 열망은 이미 노쇠하고 허해진 것일까? 경제가 세계 15위권이면 다른 것은 어떠해도 좋다는 것일까. 그냥 두고보면 저절로 모국이 선진 복지국가가 되려니 하고 낙관하는 것일까?.
조국의 진정한 발전과 민주선진국을 소망한다면, 보고도 못 본 체, 혹은 공연히 나설 일이 아니라는 눈치꾼이어서는 안된다. 잘잘못을 분별해 역주행에 대해서는 호되게 야단을 쳐야 옳다. 앞서가는 민주국가에 사는 해외동포들의 질타가 오히려 어느 누구의 채찍보다 추상같고 반향이 클 수 있다.

마침 그런 계제에 야권 후원세력으로 출범한 ‘민주포럼’은 뜻있는 동포들의 기대를 모은다. ‘조국사랑’이라는 구실 하에 맹목적 보수 일변도로 흐르기 쉬운 이민사회에서, 모처럼 야권의 목소리를 낼 단체가 기치를 올려서다. 어느 사회든 한쪽이 비대하면 정상이 아니다. 편향된 시각만이 횡행하면 실체와 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고 편향된 견해와 행보에 길들여질 수 밖에 없다. 솔직이 이곳 동포사회에서 그간 친여-친정부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들은 활보했지만, 야성(野性) 단체는 보기 힘들었다. 동포들이 모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등 조국의 진면목을 정확히 아는데 필요한 정보 자체가 부족했다. 활동하는 주요 단체는 물론 주요 언론도 균형감각을 선도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더욱이 내년의 선거참여를 맞아, 동포들의 균형있는 판단과 주권행사를 위해서도 균형있는 목소리와 정보제공은 화급한 과제가 됐다.
균형있게 목소리를 내고 정보를 제공할 대상은 비단 모국의 정치에 관한 것만 일 수는 없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며 몸담고 사는 이곳 한인사회 쟁점들과 현안에 대해서도 시시비비를 가려서 때론 칭송하고 때론 질타하는 참된 외침이 필요하다. 그런 균형있는 견해와 비판이 활발할 때 우리 공동체가 건실하게 성장해, 다민족 사회에서 돋보이는 위상과 반열을 자랑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 후원조직에 앞서  발족한 토론토 민주포럼의 앞날이 주시된다.

뜻있는 동포들의 민주 열망을 되살리고 결집해 조국의 정치·사회 등 모든 부문의 민주적 발전을 독려하며 지켜나갈 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모국과의 연계로 한인 동포사회의 균형있는 발전과 번영에 일조하면서, 캐나다 사회에서의 동포권익과 활동무대 확장에도 힘쓸 일이다. 당장 중요한 것은 내년 선거를 맞아 모국정치의 현주소와 여·야정책의 균형있는 판별자료를 동포들에게 제공하고 인식시키는 일이다. 아울러 야당세력이면 야당답게 확실한 태세를 갖추고 연대노력을 펴는 것도 큰 현안이다. 벌써 일부에서 ‘관제야당’ 소리가 나옴을 직시해야 한다. 캐나다의 뿌리깊은 야성전통과 ‘진짜야당’ 성향의 인사들이 곁눈질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새 출범에는 의례 과한 기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일단 나팔을 불었으면 최소한의 열의와 존재감은 동포들에게 보여줄 일이다. 그저 기를 꽂는데 만족하거나, 모국정치권에 선을 대 ‘재수 좋으면 한자리 노리고’ 식의 계산 속만 엿보인다면, 머잖아 힐난에 직면할 것이다.
원래 야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영광보다는 가시밭길이다. 그만큼 정력과 결기가 필요한 길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어제 동생 박지만씨와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의 관계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본인이 확실히 밝혔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며 더이상 해명이 필요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박씨가 직접 해명한 것도 아니고, 친박 의원들이 전언 형식으로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누나에게 해명했다더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당히 넘어갈 사안은 분명 아니다.
지금까지 야당과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은 “신씨와 박지만씨,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아주 긴밀한 관계”이고 “박씨 부인 서향희씨는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였다가 삼화저축은행 사건 직후 사임”했으며, “박씨는 신씨가 연행되기 두 시간 전에도 같이 식사를 했고, 구속 뒤에는 면회도 몇차례 갔다”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도 “박씨와 신씨가 58년생 동갑으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는 것과 면회 사실 등은 시인하고 있다. 다만 “로비를 하거나 비리에 연루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신씨의 행태에 비춰보면, 이런 해명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무리다. 그는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 보좌관에게 매달 300만원씩 1억원,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의 동생에게도 매달 500만원씩 1억8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문건에 나와 있다고 한다. 신씨는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였던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에게도 4년간 매달 300만원씩 건넸다. 신씨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아무 대가 없이 정치권에 돈을 뿌렸을 리는 없다. 더구나 올해 1월 신씨가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과 만난 뒤 삼화저축은행이 우리금융지주에 인수돼 살아났다는 주장도 있어 그를 둘러싼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동생 부부가 이런 정도로 비리의 핵심 인물과 각별한 사이였는데도 전화로 몇마디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니 그걸로 끝”이라며 국민에게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매우 오만한 태도다. 박씨가 그 정도 친한 사이라면서 신씨에 대한 구명로비를 전혀 한 적이 없는지, 서씨는 고문변호사라면서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는지, 돈은 얼마를 받았는지 등 미심쩍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검찰이 한창 수사중인 상황에서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중앙지검은 여러차례 권력의 그림자도 밟지 않고 비켜 간 전력이 있다. 이번에는 ‘미래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뭉개려 해선 안 된다. 박 전 대표도 수사에 영향을 주는 발언은 자제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후임으로 성 김(51)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를 내정했다. 그가 차기 대사로 오면, 1882년 양국 수교 이래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외교관이 주한 미국대사가 된다. 그의 임용은 지난 3월 중국계로 첫 주중 미국대사에 내정된 게리 로크의 사례에 이어, 상대국의 정서와 소통, 일 수행 능력을 중시한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독특한 외교관 임용 스타일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미국 외교관인 그가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의 독특한 이력과 능력이 특히 최근의 경색된 북-미 및 남북 관계 개선에 어떤 힘을 발휘할지 기대를 걸게 한다. 한편으론 그가 미국의 대북 및 동아시아정책 일선 실무책임자로 오래 일해왔기에 앞으로 새로운 솜씨를 보여줄지 의구심 또한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민 1.5세대로, 두 나라 모두와 교감할 수 있는 정서의 소지자인 내정자는 역대 어느 대사들보다도 더 큰 소통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미국의 대북정책 일선 실무책임자로서 미국 조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대북관계 전문가다. 바로 이 점이 특히 기대를 걸게 한다. 2003년 주한 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이 된 뒤, 한국계 첫 국무부 한국과장, 6자회담 대표 등을 거치면서 10여차례나 방북한 그는 다시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로 발탁돼 대사 직급으로 승격됐으며, 오바마 정권에서도 그 임무를 계속 맡아왔다.
그러나 그가 이제까지 대북 전문외교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것은 실무 차원이다. 6자회담 수석대표와 대북특사로서의 능력은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제대로 발휘할 기회조차 없었다. 이제 주한 대사직까지 초고속 승진한 그가 실무 차원 이상의 지휘능력을 어떻게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짚어둘 것은, 주한 미대사의 긴요한 역할들 가운데 하나는 한국 사회 여론을 편견 없이 고루 청취해서 본국 정부에 전달하는 일이다. 대북정책의 경우 집권세력과는 다른 시선과 주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최근 미국의 귀는 한쪽으로만 열려 있었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사실을 토대로 한 올바른 관계를 바랄 수 없다. 성 김 내정자는 자신의 성공적인 대사직 수행을 위해서도 새겨듣기 바란다.

국가경쟁력 지수와 관련해 세계적인 공신력을 갖고 매해 주요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고 있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서 2011년 국가경쟁력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교육경쟁력은 59개 국가 중 29위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기준으로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의 교육경쟁력이 2010년에 비해 6단계 상승했기 때문에 한국의 교육경쟁력이 크게 높아졌다고 선전을 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속이는 발표다. 한국의 교육경쟁력은 2007년에 29위였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온 이후 2008년 35위로 떨어졌고, 2009년 36위, 2010년 35위를 하다가 2011년 들어 겨우 2007년 수준을 회복했다. 즉, 이명박 정부 들어 학교교육이 황폐화될 정도로 과도한 경쟁으로 몰아넣었지만 교육경쟁력은 더 떨어졌거나 이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는 과도한 경쟁 교육에 대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교육경쟁력 평가에서는 덴마크가 1위를 했고, 아이슬란드·핀란드·스웨덴·벨기에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형성했다. 이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에서 경쟁을 추구하지 않고, 초·중학교 과정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교육과정의 수준에 도달하도록 돕고, 고등학교 과정 이후는 각자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제대로 찾아가도록 돕는,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나라들이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가 모두 교육경쟁력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구미 국가들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경쟁을 강조하는 영국이나 미국은 17~18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국제경영개발원이 교육경쟁력의 지표로 삼고 있는 요소들이다. 정량적 평가지표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 교육비, 영어 숙달도, 중등학교 취학률,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 등을 보고 있고, 정성적 평가에서는 기업인들의 평가를 중요 평가지표로 반영하고 있다. 철저하게 교육 내적 지표가 아닌 교육 외적 지표를 중시하고, 학생이나 교사, 학부모 등 교육 당사자가 아닌 기업인들이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 나라 교육이 국가경제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를 중심에 둔 평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유럽 나라들이 수위에 오른 결과는 교육의 경쟁력이 ‘경쟁’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우리의 신화에 경종을 울린다.

같은 북유럽 국가들도 나라별로 조금씩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이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덴마크 교육을 보게 되면 모든 교육이 철저하게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를 찾아가며 자신에게 맞는 공부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전체 교육의 20%를 차지하는 대안교육(자유교육)에도 75%의 재정지원을 해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선택 폭을 넓혀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애프터스쿨’이라는 1년제 대안학교를 두어 고등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 진로를 못 찾고 자아를 발견하지 못한 아이들이 쉬고 방황하며 탐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등학교와 대학 사이에도 ‘포크스쿨’이라는 과정을 두어 비슷한 역할을 하게 한다. 아이들을 절대로 채근하거나 경쟁시키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덴마크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한 중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은 이러한 덴마크 교육체제를 덴마크 경제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신뢰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변함없이 교육에 대해 높은 비율의 공공지출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덴마크 교육경쟁력은 물론이고 국가경쟁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경쟁력이 경쟁을 통해서 달성된다는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한 아이 한 아이가 자기에게 맞는 교육을 자신에게 맞는 시기에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방향으로 교육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살고 우리 교육의 경쟁력도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정병오 - 좋은 교사운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