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2009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별 개정 교육과정 각론을 제시했다. 2009년의 총론에 따라 교과서별 개편 지침을 내놓은 것이다. 
각론 개발이 지난 3월부터였으니 불과 4개월 만이다. 출판사에는 내년 3월까지 교과서를 만들라고 하니 새 교과서는 1년 만에 만들어진다. 이건 과욕도 오만도 아니다. 제정신이 아닐 뿐이다. 
직전 교육과정 개정은 2007년 이뤄졌다. 그에 따라 각론이 제시되고, 교과서 제작이 이뤄져 이제야 일선 학교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임기 안에 이명박표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애꿎게도 출판사들은 2007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교과서를 제작하자마자 폐기하게 됐으니, 참으로 나쁜 정권이다. 
교과서 개정은 5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교과서는 지식 전달과 함께 아이들에게 세상을 이해하고 인식하며 평가하는 틀을 제시한다. 따라서 오로지 사실만을, 관점이나 시각에 따라 치우침이 없이 전달해야 한다.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총론 마련에 1년, 총론에 따른 각론(교과목별 개편 지침) 개발에 2년, 그리고 출판사들의 교과서 제작에 2년 등 5년의 기간을 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런 최소한의 준칙마저 짓밟는 이유는 정치적 고려 말고는 달리 설명하기 힘들다. 이 정권과 정권을 떠받치는 족벌언론, 재벌, 기득권 세력 등은 집권하자마자 친일·냉전·신자유주의 시각에 따른 교과서 개편을 집요하게 압박했다. 이들의 의도는 이미 제시된 사회과정 개편 시안에서 잘 드러난다. 일제 지배와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정당화하고, 인간을 상품화하고, 국가를 시장에 예속시키는 등 자신의 치부는 합리화하고, 권력과 부의 유지·확대를 제도화하는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도덕 교과서 지침은 충효와 복종을 강조하던 유신 시절로 돌아갔다. 학생을 정권 이념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추면서 세계 경제·금융 질서가 격변을 맞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를 지탱해온 달러 기축통화 체제가 큰 손상을 입었음을 뜻한다. 그런 만큼 실질적·심리적 충격이 얼마나 거셀지 가늠하기 어렵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차분하면서도 효용성 있는 대응이 각별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S&P의 결정이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이 재정적자 탓에 지출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경기가 침체하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는 데 있다.
 
미국 의회와 행정부는 최근 어렵사리 정부 부채한도 증액에 합의했지만, 증세를 확정하지 못해 재정적자 해소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완만한 회복세로 인식돼온 미국 경제의 침체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더블딥’(일시적인 경기회복 뒤 재침체)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미국 경제의 더블딥을 기정사실화하며 미국 주가의 추가급락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 정부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책적 한계상황에 빠져 있는 셈이다. 
유럽에선 이탈리아, 스페인 등으로 재정위기가 확산돼 국제 금융시장의 또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등은 대외변수에 취약한 우리 경제에 심각한 위협요소다.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지난 2~5일 코스피는 10.5%나 하락했는데, 이는 아시아 주요국 증시에서 가장 큰 낙폭이다. 지난 6월 말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31%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도를 나타내는 정부 발행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당국은 외환 유동성 확보에 유의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이 대외 위험도에 휘둘리지 않도록 안전성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달러화와 미국 국채를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온 외환 관리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 비중은 지난 3월 말 60.7%인 데 반해 우리는 그 비중이 지난해 말 63.7%로 상대적으로 높다. 정부는 외환보유액에서 달러화와 미 국채 투자 비중을 줄이는 등 다변화를 검토해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가 언론과 민주주의의 장래에 경종을 울리는 글을 실었다. 
영국에서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신문들의 도청 스캔들을 통해서 보수언론과 보수정권의 유착관계가 비판을 받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지난해 가을 중간선거 과정에서 언론과 정치권력, 대기업 3자 간의 ‘동맹’(융합·퓨전) 관계가 형성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언론의 사명보다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거대 미디어와 대기업, 그리고 보수권력은 항상 유착할 수 있는 공통의 이념적 기초를 공유하고 있다. 보수 이념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그 사명을 망각하는 순간 3자 동맹이 생겨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문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3자 동맹이 민주주의를 수출한다는 미국에서 현실화됐다는 것이다. 
이런 3자 동맹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우리의 보수언론과 보수권력의 유착관계는 이미 노골화된 상태이다. 
정부는 스스로 친기업임을 공언했고 보수언론과 ‘시장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대기업과의 관계도 유착 상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가을부터 조·중·동·매경의 종편 방송이 시작되고 광고 쟁탈전이 벌어지면 서로의 생존을 위해서 보수언론, 보수권력, (보수)재벌의 융합 혹은 동맹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언론·권력·자본의 “철의 3각 동맹”, 민주주의를 영원히 마비시킬 수 있는 괴물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미디어, 권력, 자본의 융합 현상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아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것 같다. 
미국의 보수 3자 동맹은 우선 대기업과 미디어 선거복합체(money-media election complex)의 형태를 취했다. 중간선거로 의회를 장악해서 오바마 정권의 진보 정책을 저지한다는 전략의 첫 단계다. 공화당은 선거자금으로 40억달러를 모았다. 친 공화당인 대기업들이 몇천만달러씩 내놓았다. 주로 후보들의 텔레비전 광고 비용에 썼다. 
신문이나 방송이 선거운동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탓에 후보들이 텔레비전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방 TV 채널은 선거 기간 중에도 저녁 30분 뉴스의 절반 이상을 후보 광고로 채운다.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알리는 선거보도가 별로 없다. 방송의 선거보도도 후보의 광고 내용을 해석하는 수준이다. 미국 언론의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므로 TV광고를 많이 하는 후보가 당선되게 돼 있다. 그러니 광고비도 엄청나게 뛰었다. 2008년 30초당 2천달러였던 TV 광고료가 지난해에는 5천달러로 뛰었다. 선거자금을 많이 거둘 수 있는 공화당이 단연 유리하다.
 
공화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 역사상 가장 많은 선거비용을 지출했다.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고 상원에서도 의석을 만회한 이유가 있었다. 
이밖에도 친공화당의 대기업은 텔레비전 산업을 동맹으로 두고 있다. 미디어를 통한 선거의 승리였다. 
돈으로 선거 승리에 기여한 대자본은 대가로 정치 권력의 얼굴과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의회에서 시장주의와 부자 특혜를 옹호하는 법을 제정하고 이에 반대되는 입법을 저지한다. 선거 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후보에게는 선거자금을 거부한다. 
민주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알맹이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결정한다. 모든 국민이 평등한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돈 많은 부자들이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부자들의 민주주의”이다. 보수언론, 보수권력, 대기업의 동맹을 경계해야 할 이유다. 

<장행훈 - 언론인, 언론광장 공동대표>

 
요즘 한국의 지상파 TV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놀자판, 먹자판’ 이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연예인들이 떼거지로 스튜디오에 모여앉아 시시콜콜 떠들썩한 잡담과 ‘영양가 없는’ 수준 이하의 말장난을 벌이고, 시도 때도 없이 얽히고 설킨 불륜드라마가 종일토록 화면을 장식한다. 물난리가 났는데도 시끌벅적 농담 따먹기 프로들, 흥미일변도에 자극적인 오락물 일색이다. 심지어 뉴스마저도 ‘연성화’되어 맥빠진 나열로 흘러간다.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이슈들은 뒤로 밀려 일부러 관심권에서 떼어놓고 있지않나 의심이 들 정도의 뉴스편성이다. 시사고발 프로는 눈을 씻고 보아야 겨우 구석에서 찾을 수 있거나, 그나마 고리타분한 이슈, 아니면 물에 물탄 듯한 제작수준이 태반이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정권에 뒷덜미가 잡힌 언론은 시급하고 중대한 현안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뉴스와 분석들만 넘쳐났다.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사치요 때론 위태로운 일이었다. 특히 방송은 그야말로 ‘나팔수’에 충실해 정권의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은 철저히 배제됐다. 당연히 연예·오락과 스포츠 이벤트 보도의 비중이 높아져 TV는 웃음과 함성으로 도배됐다. 나라가 태평성대임을 보여주는 최고의 가장행렬이 연일 화면을 통해 벌어졌던 것이다.
글자그대로 ‘바보상자’요, 국민은 ‘바보’나 ‘졸’ 신세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날이면 날마다 웃고 즐기는 프로그램에 정부 찬양 일색이니, 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어 세상이 정말 즐거운 곳이구나, 살기좋다 하며 무념(無念)으로 생업에 전념하거나, 아예 화면은 현실과는 전혀 딴판이니 관심을 끄고 미디어 밖의 담론에 귀를 기울이며 속 끓이고 살든지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곤혹스러움이 있었다.
그런데 21세기도 10년이나 지난 이 마당에, 방송의 그런 ‘국민 바보만들기’ 행태가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각 방송사 소속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대통령의 특보출신, 혹은 절친한 후배가 KBS·MBC, YTN 등에 입성을 시도할 때부터 오늘의 ‘바보상자 가장행렬’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주요 비판·고발 프로그램 말살과 치열한 기자정신의 언론인, 일부 정치성향 연예인 퇴출 등이 이어지더니, 친일인사 미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정치권 도청사건을 일으키고…, 국민의 방송이며 사회 공기(公器)여야 할 방송의 ‘타락’이 끝이없다.  멀리 영국, 그리고 전세계에서 벌이는 ‘언론황제’ 머독 그룹의 신문과 방송이 보여주는 추태를 경쟁이라도 하듯 따라하고 있다.  
언론의 가치는 진실과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에 있다. 인간이 누릴 자유와 행복권과 공정·공평한 세상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정치의 대척점에 선 언론에게도 지상명제인 것이다. 그래서 파헤쳐 알리고, 때로는 비판하고, 앞서가며 비전제시도 필요하다.
그런 언론의 사명과 역할은 언제 어디서나, 사회체제가 어떠하든, 공동체가 크든 작든, 불변의 것이어야 한다. “언론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던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 시대나, 사관(史官)에 화살을 쏜 조선 연산군의 폭정 아래서도, ‘종편’이 보상물로 오가는 한국의 현실에서도…
그 것은 또한 이민 동포사회라고 다를 바가 없다. 삶에 지치고 분망한 동포들에게 청량제 같은 언론은 되레 절실하다. “설마 여기서야 어떠랴”하는 언론의 타락과 오도(誤導)는 동포들 자존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짓밟고 이민겨레의 미래를 혼돈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근자 많은 이들의 지적과 한탄을 듣는다. 내년의 모국 선거 참여를 앞두고 잦아진 정치행사에 동포언론 관계자들이 깊숙이 발을 들여놓은 행태가 과연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중간자로 좌정해 정확한 논점을 제시해도 부족할 터인데, 그렇잖아도 갈등이 우려되는 터에 몇 안되는 한인언론이 편향으로 흘러 한쪽 편들을 들기 시작하면 동포사회 이전투구가 심화되지 않겠느냐는 간곡한 질타다.
정말 엄중히 귀담아 들을 일이다. 그 질타는 모국의 극우를 본따 시대역행적 ‘친북’이니 ‘종북’을 거론하며 과도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일부 단체장도 마찬가지다. 특정정당의 활동을 하라고 뽑아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