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수를 통째로 넘길 셈인가?

● 칼럼 2018. 5. 8. 19:26 Posted by SisaHan

연초에 한 일본 외신기자를 만났다. 그는 올해 지방선거의 의미를 일본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탄핵이나 대선, 개헌과 남북정상회담 이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지방’ 수준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 정치로 생각하면, 자민당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계기가 될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단순한 지방선거는 아니지요?”


<한겨레>라는 지면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것을 무슨 바람 정도로 고깝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보가 역사를 발전시킨다면, 보수는 정치의 수준을 결정한다. 나는 진심으로 경쟁 없는 정치는 언제나 위험하며, 진보와 보수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정치의 발전과 국민의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4·27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상호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냉전의 종식’을 의미한다. 세계적 시간대에서 냉전은 한 세대 전에 사라졌지만, 한반도에서는 그것이 지연되었다. 이 기이한 지체 현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제적, 국내적으로 그것을 바라는 정치 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환경이 변화했다.
국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패권적 대립보다는 상호 간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면서 자국의 문제를 선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정세적으로 보면 미국은 시리아 전쟁이 보여주듯 복잡하게 얽힌 중동 문제의 해결과 러시아의 팽창에 버거워하고 있고, 중국은 심각한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강사회를 이룩함으로써 중국몽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마련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있다. 두 나라 다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시선이 변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남남갈등을 유발하기도 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제는 상대를 옥죄기만 해서는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데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세계사적 시간대와 한반도의 시간대가 매우 근접하게 되었다. 세계사적으로 한 세대 전에 종식된 냉전이 이제 드디어 한반도에서도 종료되려는 순간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의 표준시를 하나로 맞추겠다고 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정치 세력만이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 비핵화 로드맵이 없기 때문에 위장평화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신념의 표현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라 문제가 된다. 남북이 비핵화를 합의하고 선언했다면, 로드맵은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라는 것을 보통의 시민들도 안다. 게다가 북-미 회담 일정이 지방선거 이후가 아니라 5월 말이다. 그때는 트럼프마저 김정은이 써준 대로 받아 적었다고 할 것인가?


지방선거는 원래 집권 세력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가 크고, 남북 간 이슈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준 예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홍준표 대표는 불필요한 정치적 승부수를 걸었다. 정상회담의 성과를 인정하되 확실한 북핵 폐기를 강조하는 것이 좋았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지. 우리는 못한 것을 비판하는 거예요.’ 이편이 시원시원한 성격의 홍 대표에게도 어울리고, 보수도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나라를 통째로 넘긴 것은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한 일이고, 국민들의 뇌리에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자유한국당은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후보들이 선거 구호를 감추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홍 대표는 보수를 통째로 넘길 셈인가?

< 김관후 - 서강대 글로컬 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


[한마당] 족벌들의 장돌뱅이 근성

● 칼럼 2018. 5. 1. 19:58 Posted by SisaHan

양반과 천민이 엄격히 구별되었던 조선시대 반상제도(班常制度)에 따르면 영낙없는 천민, 쉬운 말로 ‘상놈’ 집안의 상것들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가졌고 쥐었기로서니, 아래 직원들을 그렇게 상스럽게 대하고 노예처럼 다룰 수가 있을까. 정상적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몰상식의 극치다. 설령 조선시대였다 해도 하늘같은 양반들 조차 노비들을 그렇게 매일 욕설로 부리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 집안에서 유별나게 병적인 한 사람에 그친 게 아니라, 식구들이 하나같이 그런 성격과 행태를 일상 다반사로 일삼았다니, 참으로 말문이 막힌다.
재벌이 가진 돈과 권세가, 사람들 누구에게나 주어진 천부적이고 존귀한 인권과 인격조차 깔아뭉갤 정도의 불소불위 존재일 수는 없는 일이다.
모국을 다녀올 때마다 가능하면 그 비행기를 타곤 했다. 그래도 국적기라는 안도감에 더해, 맘이 편하고 귀가 편하고, 입맛에도 편하기에 이용하고 했지만, 설마 그 대주주라는 자들이 저런 망나니 집안이었을 줄이야!. ‘대한’이라는 단어를 박탈하라는 빗발치는 주장에 쌍수를 들어 찬동하는 맘이 생겨나고도 남는다.


다시 되새기는 말이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불어 단어다, 원래 노블레스(Noblesse)는 ‘닭의 벼슬’을 의미하고 오블리주(oblige)는 ‘달걀의 노른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 두 단어가 모인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닭의 본분이 자기 벼슬을 자랑함에 있지 않고 알을 낳는데 있다는 뜻으로, 사람에 적용한다면 명예와 지위에 합당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명제요 가르침으로 쓰인다.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 조각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칼레’에 가면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명언의 유래가 전한다. 시민 6명이 목에 밧줄을 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시청 앞 광장의 이 조각품은 칼레의 자랑이고, 프랑스의 긍지라고 한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항복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장기간 저항했던 죄로, 시민대표 6명이 처형을 자원하면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겠다는 영국왕 에드워드 3세의 겁박에 직면한다. 어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칼레의 최고 부자인 외스타슈드 생 피에르라는 사람이 선뜻 나서자 칼레시장인 장데르가 나섰고, 이어 부자 상인인 피에르 드 위쌍이 나서고 또 그 아들도 아버지의 위대한 정신을 따르겠다며 나서 마침내 7명의 용감한 시민이 목에 밧줄을 매고 영국군의 처형을 자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처형장에 모여 한 명을 제비 뽑아 제외하기로 약속한 다음 날 아침, 맨 처음 자원했던 외스타슈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그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자살한 뒤였다. 외스타슈드는 일곱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으면 다른 사람들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자신이 먼저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정을 전해들은 영국 왕이 처형명령을 거둬들여 남은 6명은 모두 살았고, 의롭게 죽은 외스타슈드를 포함해 귀족의 의무를 다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 말에도 있는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 혹은 ‘귀인은 귀인 다워야 한다’ 는 경구와 일맥상통한다. 가진 만큼 넉넉하고 품격있게 행동하고 높은 만큼 고매함을 보이는 처신을 하며 아랫 사람을 품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인간적 도리와 세상사의 순리를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또한 달리 표현하면 ‘사람이 그릇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뜻과도 같다. 그릇, 곧 그의 인품이나 자질의 도량(度量)을 넘어서는 재물을 가졌거나 권좌에 앉으면 감당하지 못해 탈이 날 것임을 예고한다. 최근의 사례만 들어도 이명박이 그랬고, 박근혜가 그랬다. 그릇이 되지 못하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그 지위와 책무의 중압에 눌려 허둥대다 파멸로 치달은 전형들이다.


요즘 잇단 재벌들의 추태를 보면, 족벌의 상스러움이 결코 대한항공만이 아닌, 가진 자들의 일반적 속성처럼 보여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본분과 책임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고 저급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국정농단을 부른 정경 유착, 노조파괴에 나선 반사회성, 사법을 우롱하는 유전무죄 행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변하지 않는 부패와 비리의 역사, 한화의 조폭적 일화들, 폭로가 이어진 막말 폭행 사주들이 한 둘이 아니다. 상도의(商道義)나 직업윤리, 품격의 경영철학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한낱 장사치 혹은 장돌뱅이들의 근성만이 대를 잇는 재벌들은 언제까지 원시시대를 즐길 것인가.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성경의 시편(73편) 기자는 그들의 말로를 이렇게 경고한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 김종천 편집인 >


한국 문화의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문명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무역 규모가 세계 10위를 넘나들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경제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무수한 한국 제품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고 케이(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한류를 이루며 자랑스럽게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해주는 나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문화적으로 크게 마음 써온 것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었다. 한국인은 누구이고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수히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런 고뇌와 논의의 결과 우리는 한국 문화의 특질을 세심히 볼 수 있게 되었고 민족적 자존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중심부 문화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모든 문명수입국들이 겪는 문화적 고뇌로 대단히 방어적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칫하면 폐쇄적인 보호막으로 둘러지고 심지어는 열등의식의 삐뚤어진 행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고 끝내는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 오늘의 자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여전히 지난날의 관성에 빠져 있는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의식과 문화에 대한 시각을 아직도 민족적인 것의 굴레에 가두고 글로벌한 시각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한 예로 우리는 한국의 역사라고 하면 으레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병자호란도 청나라가 쳐들어와 인조가 항복하였다는 사실 못지않게 왜 청나라가 명나라와 싸우다 말고 조선을 침공했는지, 임금을 무릎 꿇렸으면서도 지배하지 않고 인질만 데리고 철수하는 데 그쳤는지도 면밀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조선왕조의 존재감이 살아난다.


역사책에서 고려왕조는 무수히 많은 침략을 받은 왕조로 기록되어 있다. 거란의 요나라, 만주족의 금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그리고 홍건적의 침입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서 보면 중국 대륙이 북송, 요, 남송, 금, 원, 명 등 여섯 왕조가 뒤집어지는 와중에도 고려왕조는 475년간 이어간 대단히 슬기롭고 건강한 나라였다. 원나라의 사위 나라가 된 것도 불명예만은 아니다. 그 막강한 몽골의 27년간 일곱 차례 침공을 막아내고 결국 협상을 통해 ‘칸’의 지배를 받지 않고 대원제국의 사위 나라로 대접받는 것으로 전쟁을 마감하였다.
인간이 만든 밥그릇 중 자기를 능가하는 것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중국 자기의 역사는 4세기 초보적 청자인 고월자로부터 시작되어 10세기에는 퍼펙트한 청자를 만들어냈다. 이는 중국 문화의 위대한 발명이었다. 고려는 이 중국의 청자를 벤치마킹하여 11세기가 되면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만들어냈다. 이후 어느 나라도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 고려마저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면 세계 청자의 역사는 중국의 문화로 국한되고 말았을 것이다. 고려는 더 나아가 12세기가 되면 상감기법을 개발하여 청자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구현하였다.
그럼에도 소더비와 크리스티 옥션에서 송나라 청자는 고려청자보다 몇십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질로 따져서 한 치 꿀릴 것이 없고 희소성을 따지자면 고려청자가 더 귀한데 왜 국제시장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 파리의 기메 뮤지엄에서 중국실, 일본실에 비해 한국실의 비중은 비참할 정도로 초라하다. 실로 억울하기 그지없다. 중국은 그렇다고 치고 왜 한국 문화가 일본의 반의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글로벌 마인드의 선구적 노력이 없었다.또 중요문화재를 제외한 일반문화재는 해외 반출이 자유로워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해야 한다.
서구에는 서양인 중국문화 전문가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서양인이 볼 수 없는 중국 문화의 진수를 알기 쉽게 가르쳐준 것은 중국인 임어당(林語堂·린위탕)이었다. 그는 “한 다리로는 서양, 한 다리로는 중국을 딛고 한마음으로 우주를 향해 글을 썼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과 기백을 갖고 있는 학자·문필가가 나와야 한다.

< 유홍준 - 전 문화재청장, 명지대 석좌교수 >


지금 온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한다. 남북한 전쟁 상태가 종식되고 화해와 평화의 길이 어렴풋이 보인다. 70년 적대와 갈등을 끝내자는 숨막히는 순간이다.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므로 물이 들어왔을 때 조심스럽게 노를 저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인 노릇을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운전자론’이 현실화하고 있다.
남북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가 흔히 분단체제라고 부르는 한반도 문제는 실제로는 분단/전쟁 체제이고 여기에는 식민지 청산(탈식민), 종전, 분단 극복, 통일, 동북아 평화 등 중첩되지만 별개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남북 분단이 과거 동서독처럼 단순히 이념 대립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면 북한이 붕괴하거나 전쟁으로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 미국과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이나 한국의 냉전 보수세력은 그렇게 기대하고 주장해왔다. 그것은 틀렸다. 그리고 가능하지도 않다.


한반도 분단은 일제 식민지 체제의 극복(자주독립국가 수립)의 실패를 의미한다. 지구적 탈냉전, 90년대의 심각한 경제위기와 기근을 겪고도 북한이 붕괴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6·25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체제를 지켰다는 기억과 민족주의의 힘 때문이다.
남북은 피비린내 나는 3년간의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그 이후 70년 가까이 (준)전쟁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것이 남북의 소모적 대결을 끝내는 첫 단계다. 그런데 한국전쟁은 남북 간의 전쟁이 아니라 미·중이 개입한 국제전이었기 때문에 종전, 더 나아가 남북 화해와 평화 문제는 미·중이 가장 중요한 당사자다.
종전도 너무 엄청난 진전이지만, 그렇다고 종전이 곧 평화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종전이 한반도 평화 질서 수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북-미 수교가 필요하고 남·북·미·중 4자와 더불어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동북아평화협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동북아평화협정이 맺어진다고 해서 그것은 항구적 평화도 아니고 한반도 분단의 극복 혹은 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이 6·25 전쟁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48년에 수립된 적대적 두 분단국가 상태는 남는다. 그리고 남북한에는 과거의 베트남이나 독일과 달리 70년이나 지속되면서 이미 확고하게 다른 정치경제 체제가 정착했고, 상호 적대의식이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 마음에 매우 강하게 뿌리내려 있다. 즉 분단의 극복은 각 체제 내부의 일제 식민지, 분단 잔재의 극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분단 극복이 곧 통일은 아니다. 성급한 통합, 통일은 훨씬 심각한 갈등, 심지어 내전의 위험도 안고 있다. 그래서 경제교류, 이산가족 상봉은 지속하되, 서로의 경계는 닫아두는 것이 좋다. 화이부동의 정신으로. 즉 한반도에 두 국가 체제를 유지하면서 군비를 축소하고 교류하는 일,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은 분리된 과제이며, 별도의 프로세스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두 국가는 각자 21세기 조건에 맞는 이상적인 사회 경제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모색을 해야 한다.


그런데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의 특성 때문에 주변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이 격심해지면 그것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 국내 정치세력들이 주변 강대국과 손을 잡고 내전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두 국가 체제의 공존, 한 국가 두 체제의 길을 모색함과 동시에,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영세중립국으로서의 지위 보장을 받아내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이 왜 필요한지, 어떤 평화,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와 사회에서 평화·통일교육이 전면화되어야 한다.

< 김동춘 -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다른 백년 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