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항소심 선고가 나던 날은 종일 머리를 얻어맞은 듯 몽롱했다. 정신없이 기사를 마감하고, 이튿날 판결문을 뜯어봤다. 화가 치밀었다. 판결 비판 기사로 며칠을 보냈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났으니, 명절 때 받은 가족의 따사로운 기운에 기대어 찬찬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법조팀이 썼던 기사도 다시 살펴봤다. 감정이 뚝뚝 묻어났다. 누구를 향한 분노였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되고 이 부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받는 걸 보면서 내 딴엔 그림을 너무 크게 그렸던 것 같다. 대한민국의 근대를 주물렀던 ‘박정희’와 그가 고속성장의 적토마로 키운 ‘재벌’. 두 존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도 박정희가 안 굶게 해줬다”는 기성세대의 부채감과 “삼성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실체 없는 두려움. 이런 걸 던져버리게 되길 바랐던 것도 같다.
과도한 의미부여였고, 호들갑성 자가발전이었다. 고백하자면, ‘박정희 왕조’의 최후가 빚은 노을에 취해 있었다. 그들이 낳은 더 강력한 ‘삼성 왕조’에 나라가 단단히 덜미 잡혀 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판결문이 ‘삼성 왕조’의 우위를 확실히 일깨워준 뒤에야 애써 외면했던 몇 장면이 떠올랐을 뿐이다.
“아버님께 야단을 맞은 걸 빼고는 야단맞은 기억이 없는데, 여자분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게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1심 재판 때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싫은 소리’라고 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겁박’으로 포장했다. ‘상왕’ 외엔 누구도 못 건드린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여자분’이라고 칭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 ‘여자분’은 5개월 뒤 자필로 쓴 탄원서를 이 부회장 재판부에 내는 놀라운 장면을 보여줬다. 자신 때문에 줄줄이 옥살이하는 참모들 재판에 탄원서 한장 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때 ‘우주의 기운’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봤어야 했다.
그 기운은 판사들에게도 미친 듯하다. 삼성의 해외 송금 당시엔 뇌물 공여 의사가 없었다는 ‘관심법’이 등장했다. 송금한 돈은 최순실이 ‘쓸’ 돈이어서, 뇌물로 ‘쓴’ 것은 아니라는 헷갈리는 말로 형량을 줄였다. ‘삼성 합병’ 등의 청탁은 1, 2심과 최순실 1심을 거치며 ‘세상에 없는’ 일이 됐다. 동시에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손해가 난 서민 노후자금 1300억원은 우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 부회장을 풀어준 정형식 재판장은 다음날 <조선일보>에 판결문에 담지 못한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 생각이 정리되면 판결에 대해 담담히 얘기할 수 있을 때가 올 거라 믿는다.” 역시 그는 탁월했다. 판결 직후 느꼈던 막연한 분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와 판결을 감싸고 나선 동료 언론들. 박씨 왕조를 버리고 “판결에 경의를 표하는” 보수정당들. “1년 감방 살았으면 됐다”는 주변의 수많은 정형식들. 십자포화를 퍼붓고도 어쩌면 속으로 ‘할 만큼 했다’며 돌아서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
이 모든 게 맞물려 저렇게 부끄러움을 모르는 판결이 나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담담히 얘기”하자는, 망각을 강요하는 듯한 조롱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역시나 수십년 켜켜이 쌓인 부조리를 깨부술 ‘한판 승부’는 없었다. 한 방에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고, 다시 공허한 마음을 추스를 수밖에.
쓸쓸하고 스산한 2월이 가면 꽃피는 춘삼월이 언젠가는 올 테니.
< 석진환 - 한겨레신문 법조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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