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않고 렌즈를 노려보던 블러디 메리가 시선은 그대로 둔 채 비트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 2002년 12월, 박수용 촬영 )


박수용 씨의 시베리아 호랑이 일가 추적기
심장이 쿵! 머리 위에서 호랑이 네 마리가…

▶백두대간 생태계의 원형을 간직한 한반도 생물의 원류인 러시아 우수리에서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머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살던 호랑이가 오가던 곳이다. 박수용 감독은 한겨울 비트 속에서 먹고 자며 호랑이 ‘블러디 메리’와 그의 증손주까지 지켜봤다. 한국 호랑이의 원류를 쫓는 박 감독이 한겨레에 ‘블러디 메리’ 일가 조우기를 보내왔다.


오늘도 눈이 내린다. 어제도 눈이 내렸고 그제도 눈이 내렸다. 눈 내리는 산야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녀를 기다린다. 눈 쌓인 덤불을 툭툭 치며 그녀가 나타나는 듯싶다가도 눈을 씻고 다시 보면 하늘과 잇대어 눈송이만 흘러내린다. 누구도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블러디 메리’(Bloody Mary)라 부른다. 
그녀는 사냥할 때 주변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든다. 사슴의 목줄을 일격에 물어 죽이는 건 다른 호랑이와 마찬가지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사슴의 목줄도 악착스럽게 물고 흔들며 확인사살을 한다. 그러다 커다란 송곳니가 목줄의 상처 구멍을 크게 만들고 결국 동맥까지 터뜨려 피를 많이 흘리게 한다. 그래서 우수리(연해주) 원주민들은 16세기 수많은 신교도와 성공회 교도를 처형했던 영국 여왕 메리 1세의 별명, 블러디 메리를 그녀의 이름으로 붙였다. 그러나 블러디 메리가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을 극도로 피하는 조심성과 매사 끈질긴 집요함 덕분에 스스로를 잘 지키고 새끼도 잘 키운다.
 
나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녀의 흔적을 조사하여 그녀가 나타나리라 예측되는 이곳을 골랐고, 여기에 지하 비트(잠복지)를 파고 들어와 매년 6개월씩 3년 예정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오지의 한 평짜리 지하 비트에 갇혀 대소변을 해결하고 얼어붙은 주먹밥을 녹여 먹으며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북서풍과 싸운다. 씻지도, 소리 지르지도, 불을 켜지도 못하고 갇혀 지낸 시간이 3개월이 넘어가자 독방에 갇힌 죄수가 부러워진다. 
비트 입구로 내놓은 렌즈를 천천히 돌리며 숲을 살폈다. 뷰파인더 속으로 눈 쌓인 덤불이 지나가고 느릅나무가 지나가고 다복솔밭이 지나갔다. 다복솔밭 밑에 뭔가 어두운 음영이 서 있었다.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서서히 줌인하며 포커스를 맞추자 호랑이의 전신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천지백이었다. 천지백은 뒷산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 방향에서 다른 호랑이 두 마리가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와 서로 목을 비비고 푸르릉 콧소리를 내며 정을 나눴다. 월백(月白), 설백(雪白), 천지백(天地白), 블러디 메리의 세 자식들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삼남매가 나타나자 꿈에 사무치던 연인을 만난 듯 반가웠다. 환희가 밀물처럼 밀려오며 짧은 순간 영원을 느꼈다. 
 
그 순간 뿌드득 뿌드득, 잠복지 뒤에서 부드러운 발로 눈을 밟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뒤통수가 섬뜩했다. 블러디 메리?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오더니 지붕 위로 올라섰다. 지붕이 울컹거리며 혈류가 급속히 돌아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아무리 되뇌어도 워낙 기습적으로 당한 일이라 가슴이 요동치고 숨이 막혔다. 그토록 보고 싶었지만 몇 년을 따라다니며 조사하면서도 흔적 외에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그녀가 바로 내 머리 30센티미터 위에 있다. 왜 비트 위로 올라왔지? 들킨 걸까? 1초, 2초, 3초… 30초가량 머물렀던 것 같다. 그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순간, 그녀는 위장한 잠복지 입구를 풀쩍 뛰어넘었다. 나지막한 관목에 쌓인 눈더미를 흩뜨리며 새끼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뷰파인더에 호랑이 네 마리가 모두 들어왔다. 짐작한 대로 블러디 메리였다. 드디어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늘어뜨린 꼬리 끝은 갈고리처럼 살짝 치켜 올라와 뱀처럼 꿈틀거렸다. 늘씬한 몸체가 팽팽하게 이어지다 불쑥 튀어나온 견갑골, 그 위로 당당히 치켜든 강인한 얼굴, 정갈한 외모, 정제된 행동, 깨끗한 모습이었다. 생존을 위한 가혹한 투쟁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 움직임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제어하는 침착함이 묻어 있다. 삶을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싸워 살아남은 자만이 뿜을 수 있는, 위엄과 의지가 느껴졌다.
 
푸르릉, 푸릉, 새끼들이 정겨운 소리를 내며 어미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나 블러디 메리는 대꾸하지 않고 서늘하게 날 선 의심과 경계의 빛으로 사방을 살피기만 했다. 자애로운 어미 눈빛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선이 그녀를 따라가던 렌즈와 마주쳤다. 렌즈를 멈췄다. 마주친 시선 그대로 그녀도 몸을 멈춰 세웠다. 뚫어질 듯 렌즈를 노려보는 눈빛은 고정된 채 흔들림이 없었다. 심장박동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처음 드러난 그녀의 모습에 서둘렀다. 그녀가 노련한 어미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꼼짝 않고 노려보던 블러디 메리가 렌즈를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것은 자신의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온 세상과도 싸우려는 암호랑이의 모습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구렁이처럼 긴 꼬리를 번쩍 쳐들고 눈꽃 핀 덤불밭을 헤치며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비트 위 느릅나무에 쌓인 눈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렌즈를 노려보며 다가올수록 뷰파인더 속 그녀에게 맞춰진 초점이 흐릿해지다 이윽고 사라졌다. 더이상 그녀의 눈빛을 확인할 수가 없다. 렌즈를 돌릴 수도 없다. 비트 입구를 가린 세 겹의 위장담요를 뚫고 밖으로 내놓은 렌즈의 포커스 링 위에 왼손을 올려둔 채 나는 숨을 죽이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뿌드득, 뿌드득, 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한 발, 두 발, 세 발, 이윽고 비트 입구에 멈췄다. 피가 얼어붙었다. 훅, 후-우욱, 렌즈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블러디 메리가 냄새를 맡았다. 예민한 포커스를 만지느라 장갑을 벗은 왼쪽 손등 위로 뜨뜻한 콧김이 훅 끼쳐왔다. 등골이 깨질 듯 경직되며 소름이 솟아올랐다. 콧김과 함께 그녀의 뻣뻣한 수염이 왼쪽 손등을 스쳤다. 렌즈를 꽉 움켜쥐었지만 손등의 살은 저 혼자 푸들푸들 떨렸다. 그 순간, 그녀의 앞발이 카메라 렌즈를 강력하게 후려쳤다. 렌즈가 틀어지고 마이크가 부러졌다. 딸려 나간 줌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드러난 구리선이 오른 손등을 베고 지나갔다. 섬뜩한 통증이 왔다. 크르르렁, 커헉, 형언할 수 없이 오싹한 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됐다. 어미가 비트를 공격하자 새끼들이 몰려와 삽 같은 앞발로 비트를 위장한 관목과 덤불, 흙을 긁어내고 덧댄 판자를 뜯어냈다. 비트 귀퉁이마다 작은 구멍들이 뚫리고 그 사이로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자 사방에서 호랑이 숨소리가 쏴악 쏴악 들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블러디 메리와의 만남은 그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의 핏줄인 월백, 설백, 천지백의 삶을 거쳐 월백의 새끼인 헨젤과 그레텔에게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그레텔이 낳은 세 마리 새끼들을 관찰하고 있으니 블러디 메리의 윗대인 ‘꼬리’라는 호랑이까지 합치면 5대째 계속되고 있다. 열대지방 호랑이와 달리 평생 한번 보기도 힘든 시베리아호랑이를 오랜 기간 관찰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했지만, 사라져가는 그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그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가지고 살아감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해 10월 미국 공영방송 PBS와 독일 테라마터(Terra Mater)사는 나와 블러디 메리의 이야기를 담은 책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2011년, 김영사)을 ‘시베리아호랑이를 추적하다’(Siberian Tiger Quest)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계에 방영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백두대간은 만주의 장백산맥을 거쳐 우수리의 시호테알린 산맥으로 뻗어 올라간다. 시호테알린 산맥은 울창한 온대림으로 덮여 있어 지금도 시베리아호랑이, 조선표범, 스라소니 등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호랑이를 비롯한 많은 생물들이 이 산맥에 잇닿은 장백산맥과 함경산맥을 타고 우리나라로 넘나들었다. 시베리아 수호랑이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영역이 보통 벵골호랑이의 100배에 가까운 2000㎢(지리산 국립공원 넓이가 472㎢)라는 걸 고려하면 한반도 깊숙이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은 북한과 만주에 대략 50여마리, 우수리에 350마리 정도가 서로 고립된 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수리에 살아남은 350마리 정도의 시베리아호랑이가 그나마 그 개체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어 유전적, 생태적으로 어느 정도 유효한 시베리아호랑이의 ‘종자(種子)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시베리아호랑이는 원래 만주에 살면 만주호랑이, 우수리에 살면 우수리호랑이, 한반도에 살면 한국호랑이라 불렀다. 모두 ‘Panthera tigris altaica’라는 학명을 가진, 같은 호랑이 아종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역 기반인 아무르강을 따 아무르호랑이라 부르고, 중화민족은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동북(東北)호랑이라고 부른다. 시베리아호랑이라는 명칭도 서구 영어권에서 붙인 이름인데, 사실 이 호랑이들이 사는 지역이 시베리아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호랑이를 어떻게 부르든, 또 국경을 어떻게 나누든 이 호랑이들이 살아남아 백두대간과 장백산맥, 시호테알린 산맥을 활보하기를 바란다. 지구상에 4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시베리아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북한 사회과학원,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와 함께, 또 내가 독자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양강도 북부 6개군과 함경산맥에 15~20마리 정도의 시베리아호랑이가 살고 있다. 1996년 이래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여러 차례 조사했는데 백두산 천지와 함경북도 무산군 사이에서 북한과 중국 장백지역을 넘나드는 호랑이의 흔적을 세번 목격했다. 최소한 세 혈통(패밀리) 이상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로 인한 사회혼란기 때 시베리아호랑이의 개체수가 절반으로 뚝 떨어진 적이 있다. 사회혼란기엔 사람이 힘들기 때문에 자연에 온정을 베풀 여유가 없다. 야생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 팔면 팔자를 고칠 정도니 숲에 무인총이 깔리고 심지어 지뢰까지 깔렸었다. 북한에 살아남은 시베리아호랑이가 잘 보전되고 남북통일의 사회혼란기에 멸종되지 않는다면, 또 우수리 지역의 시베리아호랑이가 꾸준히 보호되어 시베리아호랑이의 종자 저수지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면, 그래서 남북통일 이후 한국 호랑이의 보호, 복원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한반도의 백두대간에서도 호랑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 분야에서도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시베리아호랑이의 생명권을 위해 정성을 쏟아야 한다.
 
< 박수용/독립PD: 시베리아호랑이보전협회 공동대표 >


“돈 맛 빠진 사회‥ 배고파도 밤무대는 안선다”

판금된 데뷔앨범 모던포크 명반 평가
잇단 실패로 이민 뒤 귀국‥단칸방 삶

재기음반 돈 까먹고‘거리 콘서트’도
힘들어도 정통·지성·깨침 음악 고집 

서울 강남구 신사동 LP카페 피터폴앤메리. 1960~7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혼성 포크음악 트리오의 이름을 딴 이 카페에서 피터폴앤메리의 명곡 ‘Weep for Jamie’가 흘러나왔다. 앞에 있던 양병집(62)씨는 기자에게 “내가 신청한 곡인데 이거 죽이는 곡이야”라며 노래를 낮게 따라 불렀다. 이 노래는, 도수 높은 안경에 담배꽁초를 물고 시니컬하게 쳐다보는 눈초리의 재킷으로 유명한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에 ‘잃어버린 전설’로 번안해서 수록돼 있다. 70년대 명반으로 불리는 음반이건만, 카페 주인은 이 앨범의 주인공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70년대 3대 저항가수로 불리는 양병집씨는 그렇게 대중은 물론 제법 음악을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잊혀 있었다. 1974년 3월 나온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는 시대상황을 풍자하는 노랫말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불온음반’으로 분류돼 발매 3개월 만에 전량 회수 조처되면서 일부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가인 30만~1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는 자신의 노래 제목처럼 ‘잃어버린 전설’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타복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원제 ‘역’) 등 제법 알려진 그의 노래들도 각각 서유석, 이연실, 김광석의 노래로 대중들에게는 각인돼 있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한울 펴냄)라는 자전 에세이집을 냈다. 
책을 보면 밥 딜런, 우디 거스리, 피트 시거 등 미국 포크가수들의 명곡을 우리 현실에 맞게 풍자적으로 개사해서 만든 데뷔앨범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증권회사 직원, 음반 제작자, 라이브카페 경영자로 변신했으나 잇따른 좌절과 실패를 한 뒤 1986년 가족회의 끝에 선택의 여지 없이 호주로 이민 갔다. 그곳에서 자동차 딜러, 청소부, 음식점·소주방 운영 등 각종 직업을 전전했으나 여전히 음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패한 뒤 거리의 음악인으로 나서고 자살까지 시도하고 결국 부인과 합의 아래 1999년 10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그의 인생에는 반전이 없었다. 지금까지 일곱장의 음반을 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들국화, 해바라기 등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했으나 끝내 제작에는 좌절하고, 귀국해서는 손지연이라는 재능있는 여성 포크가수의 음반 제작을 했으나 실패해 돈만 다 까먹고 7평짜리 단칸방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달 8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난 그의 삶은 책의 내용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음반 제작 실패 뒤 2004~2005년 서울 이태원과 광화문, 강남 등지의 거리에서 ‘생계형 콘서트’를 벌여 하루 6만~7만원을 벌기도 했다는 그는 현재 서울 상도동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25만원인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각각 의사와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두 딸이 두달에 한번 꼴로 보내주는 1000호주달러와 간간이 들어오는 방송 및 행사 출연료를 바탕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통 모던포크음악은 지성의 음악이고 깨침의 음악”임을 누누이 강조하며 밤업소에 출연하지 않는 음악적 자존심을 보여주었다. “돈의 맛에 빠진 한국 사회”에 울분을 토하며 여전히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그는 자신은 평범한 기인 중의 하나라며 ‘70년대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에도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 살아온 과정이 파란만장합니다. 한마디로 인생이 불우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말씀이 ‘화살이 최소한 3개는 있어야 셋 중 하나라도 과녁을 맞힐 수 있는데 너는 왜 맨날 화살 하나만 있으면 일을 벌이다 실패하면 접느냐’고 했어요. 한대수씨 말로는 시대 톱니바퀴와 내가 맞지 않았다는 겁니다. 내가 추구한 것하고 시대적 상황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하나 스스로 자책을 하자면 집요한 끈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 생계를 위해 거리공연에도 나선 적이 있다면서요? 
“우리 딸들이 변호사, 의사가 되기 전에 아주 어려울 때가 있었어요. 2004년 손지연 판을 만들고 잘 안 팔렸을 때 4~6월 이태원에서 거리공연을 했어요. 하루 6, 7만원 벌이가 됐어요. 많은 때는 10만원도 벌었고요. 2009년, 2010년, 2011년도엔 광화문, 인사동, 강남 등지에서도 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더군요. 지금은 하지 않아요. 자랑스런 이력이 못 되잖아요.”
그렇게 거리공연을 통해 어렵게 번 돈 일부를 노숙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음악을 하면 사회가 따뜻해져요. 나는 그들보다 가진 자이고 음악을 할 수 있죠. 제가 돈을 주면 처음에 안 받으려 하다가 나중엔 저에게 우유를 주고 반응이 와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였지만…. 정치인도 지식인도 음악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따뜻해지니까요.”
 
-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낼 생각은 없나요? 
“음반사업자 등록을 내기 위해 호주 시민권은 반납했어요. 원하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지만 호주의 식객이 되기 싫고, 기여한 바가 없는데 노인복지혜택 받기 싫어요. 나는 한국의 편리한 시스템을 더 좋아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루 한번은 외식하는데 노량진에 가면 컵밥집에서 월남국수를 2500원에 팔아요. 컵밥은 안 먹어요. 서서 밥 먹는 게 슬퍼요. 월남국수 먹으면 얼마나 절약하느냐는 생각 들어요. 외식때 진짜진짜 그리워하다 먹는 게 8000원짜리 갈비탕이죠.” 
그는 “차는 없지만 스쿠터 타고 다니고 누굴 만나서 가수로서 체면을 손상하거나 그런 것은 없다”고 가난하지만 자족적인 생활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단 한가지 안쪽 치아 3개가 빠졌는데 임플란트 할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목돈이 천만~2천만원 필요한데 그런 돈이 없어요. 임플란트하고 가수로 벌 수 있는 돈이 많다면 어떻게든 하겠지만 내가 1년에 버는 돈이 1000만원 이하라서 아직 못하고 있어요. 얼마 전 <한국방송> ‘7080’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섭외가 들어오는 게 두려워요. 혹시 (저의 이빨 빠진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까 해서요. 기피까지는 아니지만 텔레비전 매체는 자신이 없는 거죠.”
 
- 책에서는 3대 저항가수라는 평가에 대해 약간 저항감을 표시했습니다. 반항가수라고 자조적 표현도 했는데요. 
“금지곡 가수라는 것을 자랑거리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당시에 우리 저항가수 특징이란 게 무엇입니까? 밤무대 출연하지 않고 방송 출연을 위해 방송사에 아부하지 않은 거예요. 김민기나 한대수가 밤무대 출연했습니까? 밤무대 제안은 있었지만 적어도 포크가수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응하지 않았어요. 많은 가수들이 ‘나도 저항가수는 아니지만 나도 금지곡 가수였다’고 나오더라고요.” 
그는 1970년대 서울공대생들 데모에 끼어 시위를 하다 경찰서에 연행됐을 때 학벌 때문에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서라벌예대(현재 중앙대) 중퇴라니까 ‘똥통대학 다니는 놈이 웬 데모야. 민기야 서울대라도 나왔지. 뭘 안다고 까불어’ 해서 꼬리를 내린 거죠. 저항가수 아니라고 하는 부분도 내가 우겨봐야 언어가 그 사람의 품격과 맞아떨어져야 힘도 있고 영향을 주고 하는데…. 오기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꼬리를 내렸죠.”
 
- 데뷔 앨범은‘저주받은 명반’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음악적으로 저와 잘 매치됐으면 대중들도 더 좋아했을 거예요. 내가 리드해 나갈 수 있는 경험이나 실력이 모자라 반주를 맡은 밴드 ‘동방의 빛’의 반주, 템포, 키(음역)에 맞춰 녹음하다 보니 어떤 것은 잘 나왔고 어떤 것은 못 나왔어요. 음악적으로 크게 만족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음악 관계자들이 수많은 음반 중 모던포크의 명반으로 평가해주는 것 같습니다. 비록 명작은 못 남기고 순수창작은 못했지만, 나름대로 내가 한 것은 포크의 정통성, 그것만은 고집하고 싶었던 거죠. 포크음악은 상당히 건방진 음악이에요. 메시지를 담고 지성을 던진다는 말이죠. 일반인들의 음악에 대한 의식은 즐겁고 슬프고 그러해야 하는데 내가 환영을 못 받은 이유는 가수가 사회가 어쩌고저쩌고하는 말을 던진단 말이에요.”
 
- 유신정권에 의해 피해를 당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군사정권을 포함해 거의 20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가 나중에 한국 경제를 살린 영웅으로 재평가되고 그런 대통령의 딸이 아버지 업적을 후광 삼아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당시 이 땅에서 참다운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투쟁하다가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억울함이나 투쟁의 의미, 그리고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지루하게 길었던 어두움의 세월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아버지의 공과를 심각하게 저울질해본다면 그렇게 쉽게 용서 내지는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핍박을 받아서 언짢고 그런 것은 전혀 없어요. 축하까지는 모르겠지만….”
 
- 데뷔앨범은 대부분 번안곡인데요. 
“솔직히 만약에 제 옆에 훌륭한 작곡자가 있었으면 번안곡 안 했을 거예요. 내가 내쉬빌(라이브하우스)에서 포크를 배울 때는 적어도 포크음악인은 지식의 선두주자로 일반대중의 의식을 깨우쳐주기 위해 음악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저소득층 착취, 고용자-피고용자 문제, 월남파병 문제 등 메시지를 곡에 담았거든요. 우리나라 배웠다는 사람들이 배움의 목적을 사회적 성공이나 부귀영달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밥 딜런 등 아메리칸 모던포크 가수는 혁명가는 아니지만 메시지를 던져주거든요. ‘깨어라’는 메시지요.” 
대중음악 평론가인 박성서씨는 2004년 나온 <넋두리> 복각판 속지에 쓴 글에서 그의 번안곡에 대해 “그가 새롭게 편곡하고 노랫말을 입힌 이 노래들은 원곡과는 사뭇 다르다. 아메리칸 포크라고 느껴지기보다는 외려 한국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대부분의 원곡들을 애써 들으려 하지 않고 악보만을 기준으로 악상을 터득해 그만의 감성으로 해석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잃어버린 전설’에 대해서는 월남전 파병과 산업화의 그늘을 떠올리게 한다고 박씨는 평했다.
 
- 70년대 엄혹한 상황 속에서 노래에 시대의 메시지를 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를 이야기할 때 나쁜 게 어떤 거냐 하면, 경제성장의 부작용이나 산업부흥의 어쩔 수 없는 역효과이겠지만, 룸살롱 최초로 만든 게 그 사람들이에요. 경제가 커지고 차관 나눠먹고 접대문화가 생기면서 룸살롱이 생겼습니다. 당시 내 친구 중에 홍제동 산동네에서 물도 길어 먹는데, 한쪽에서는 어여쁜 여자가 미니스커트 입고 룸살롱 나가고 그랬거든요. 당시 이런 사회적 상황이 안타까워 ‘서울하늘 2’에 담았지요. 그런데 사십년이 된 지금도 사회적 상황은 변함없다는 거죠.” 
 ‘서울하늘 2’는 피트 시거 노래를 번안한 곡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풍자한 곡이다.
 
- 귀국 뒤 음반 제작도 실패했습니다. 
“가수의 꿈이 좌절되면서 방송에서 트는 곡이 맘에 안 들어서 비틀스를 만든 조지 마틴 같은 프로듀서 꿈을 꾸었어요. 제 인생에서 음악을 못 버리는 것은 생존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귀국해서도 음악 프로듀서 일을 했죠. 손지연 같은 신인을 발굴해서 기뻤어요. 기존 인디에도 사이비가 많은데 그를 만나면서 존재 의의를 느낀 거죠.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돈 5만달러가 줄어들다 어머니 유산으로 조금 생긴 돈으로 그냥 손지연 음반제작 했어요. 처음엔 천만원 예상했던 금액이 CD가 나올 때 3천5백만원 들어갔어요. 그런데 1500장 나가고 주춤해서 방송사 출연 섭외했는데 좌절만 맛봤습니다. 지금은 대형 기획사들이 프로그램을 블록별로 장악하고, 재능있는 신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고요.” 
인터뷰 말미 록그룹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히트곡 ‘설튼스 오브 스윙’이 흘렀다. 양씨는 이 그룹명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극도의 궁핍입니다. 밥 딜런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죠. 김 기자도 한겨레의 다이어 스트레이츠가 되어주세요.”
< 김도형 기자 >


지우고 싶은 기억만 지울 수 없을까?

● 토픽 2012. 10. 22. 17:56 Posted by SisaHan

‘뇌 과학’최신 동향‥ 기억관련 연구 어디까지…


두부처럼 물컹물컹하고 호두 알맹이처럼 쭈글쭈글한 주름이 있는 분홍색의 물질. 무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심장에서 분출되는 피의 15%를 소비하며, 인간이 호흡하는 산소의 20~25%를 사용하는 인체 부위.
1천억 개 정도의 뉴런과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1천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진 고도의 복잡한 통신망. 고작 냉장고 조명을 켜는 에너지로 방대한 외부의 정보를 인식해 기억으로 저장하고, 사고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곳. 이쯤 되면 이 신체 부위가 어디인지 눈치 채지 못할 사람은 없다. 바로 소우주라고 불릴 만큼 복잡한 인간의 뇌(腦)다.

고통· 공포 기억 지울 수 있는 방법 찾아
수면중 학습· 특정기억 선택 삭제도 연구
 
최근 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기억과 관련해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8월 서울대 생명과학부 강봉규 교수팀은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살면서 겪는 천재지변이나 끔찍한 사고, 충격적인 경험들은 뇌 속 깊이 각인돼 일생동안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기억이 저장되는 부위인 ‘시냅스’의 단백질을 조절하면 기억을 제어할 수 있다는 원리다. 
그렇다면 뇌는 어떻게 기억을 저장하는 걸까. 우리가 경험한 것들은 ‘저장, 유지, 회상’이라는 재구성 과정을 거쳐 기억으로 남는다. 그중에서도 수십 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기억은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합성을 통해 시냅스의 구조가 단단해지는 경화(硬化)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억에 정보가 추가되거나 수정될 때도 단백질 분해와 재합성이 일어난다.
연구팀은 신경체가 단순한 군소달팽이로 기억을 지우는데 성공했다. 군소달팽이의 꼬리를 여러 번 찔러 민감한 기억을 남긴 뒤 단백질이 재합성되는 것을 막았더니 기억이 저장되지 않고 지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단백질의 분해와 재합성이 동일한 시냅스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즉 기억을 처음 저장하는 곳과 기억을 떠올리고 다시 저장하는 곳이 같다는 뜻이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의 연구팀은 두려운 기억이 뇌에 저장되기 전에 지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했다. 우리의 뇌는 학습된 단기기억을 ‘응고화’라는 과정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데, 이처럼 기억이 응고화되는 과정을 방해하면 기억의 형성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먼저 실험대상자들에게 별 의미 없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줌과 동시에 전기쇼크를 가해 사진을 볼 때 두려움에 대한 기억이 형성되도록 했다. 그 후 실험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에게는 기억이 응고화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지난 다음 전기쇼크 없이 사진을 계속 보여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기억이 응고화되기 전에 전기쇼크 없이 사진을 계속 보여주며 응고화 되는 것을 방해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앞의 그룹은 사진에 관한 두려운 기억이 남아 있었지만, 기억의 응고화에 방해를 받은 그룹은 사진과 관련된 두려운 기억의 흔적들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두려운 기억을 저장하는 뇌 부위인 편도체의 핵군을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한 결과에서도 증명됐다고 연구팀은 발표했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나 공황장애, 고소공포증 등의 각종 공포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잠자는 동안 외부에서 받아들인 정보를 뇌가 기억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의 연구팀은 잠자는 동안 사람들이 기분 좋은 냄새를 맡도록 훈련할 경우,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조건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게재했다.
먼저 연구팀은 55명의 건강한 실험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잠을 자는 동안 샴푸나 탈취제와 같은 좋은 냄새와 썩은 생선이나 고기와 같이 나쁜 냄새에 노출시키고, 각 향기에 대해서 연관되는 특정한 소리를 들려줬다.
실험참가자들은 잠을 자면서도 좋은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을 때는 강하게 냄새를 맡았지만, 불쾌한 냄새와 연관된 소리에 대해서는 약하게 반응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후 냄새가 없더라도 좋은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려주면 강하게 냄새를 맡고, 나쁜 냄새와 연관된 소리를 들려주면 약하게 냄새를 맡는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참가자들은 냄새와 소리 사이의 관계를 학습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이처럼 냄새를 맡는 강약의 반응은 램(REM, rapid eye movement) 수면단계에서 연관성을 학습한 참여자들에게 조금 더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수면 중 학습 가능성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진행돼 왔지만 실제로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특정한 기억만 골라서 지우는 것은 아직까지 불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상당히 복잡한 체계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뇌에 대한 연구 역시 아직 상당 부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뇌의 신비를 탐구하는 뇌과학을 인류 최후의 학문이자 노벨상의 보고라고 일컫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기억을 저장하는 메커니즘을 완벽히 밝힌다면 잊고 싶은 기억은 지우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은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일에도 응용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뇌를 어디까지 제어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 이성규 과학칼럼니스트 >

 

당신이 e-Book을 읽고 있는 동안…

● 토픽 2012. 7. 16. 08:48 Posted by SisaHan

“e-Book이 당신을 읽음을 알라”


사용자 정보로 독서 패턴 분석
마케팅 활용…사생활 침해 논란

“당신이 전자책(e북)을 읽는 동안, e북은 당신을 읽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e북 리더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출판사들이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독자들의 독서 패턴을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종이책 판매 부진으로 사양길에 들어섰던 출판업계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독자들의 ‘입맛’을 제대로 파악해 공략할 수 있게 됐지만, 일각에서는 작가의 창작의욕 저하나 독자의 사생활 침해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최대 서적 유통업체인 반즈앤노블은 독서시간과 속도 등 e북 사용자들의 독서 패턴을 장르별로 분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소설 독자들은 일반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반면, 논픽션 독자들은 비교적 간헐적으로 책을 읽고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도 짧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반즈앤노블은 자사의 전자책 리더기인 ‘누크’를 통해 종교, 시사, 건강 등 다양한 범위를 다루는 논픽션 단편 시리즈 ‘누크 스냅스’를 선보였다.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 사용자들은 자신이 읽은 마지막 페이지, 북마크, 주석 등의 정보를 회사가 수집하도록 허용하는 동의서를 사용 전에 작성해야 한다. 실제로 아마존은 웹사이트를 통해 독자들이 가장 많이 하이라이트(e북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특정 문장을 다른 색깔로 강조 표시하는 것)한 구절을 공개한다.
 
또다른 e북 출판사 콜릴로퀴(Coliloquy)는 아예 사용자의 독서 패턴을 분석해 ‘독자 맞춤형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했다. 독자가 자신의 취향대로 모험소설이나 연애소설의 줄거리를 선택할 수 있고, 주인공 캐릭터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콜릴로퀴는 연애소설 독자들의 취향을 분석한 결과 검은 머리와 녹색 눈동자를 지닌 채 유럽권 말씨를 쓰는 30대 남성이 가장 완벽한 남자로 뽑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독자의 반응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 같은 마케팅이 작가들의 창작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출판사 파라, 스트로스 앤드 기룩스(Farrar, Straus and Giroux)의 조너선 가라시 사장은 “누군가가 두꺼운 책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명작의 분량을 줄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밖에 e북 사용자들의 독서 습관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