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요양원 인수를 위한 본격 모금운동이 시작된 이후 두 달을 바라보고 있고, 마감 목표일은 20여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으나, 동포사회의 참여가 예상 보다 저조해 비상이 걸렸다.
경제 사회적 봉쇄가 계속되고 있는 COVID-19 상황 속에 주요 업소들이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이 가중 된 여건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이지만, 동포 한인들의 관심도가 예상 밖으로 낮은 데도 기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인수추진위가 각계각층 한인들의 참여를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다.
요양원 인수 추진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온라인 설명회를 열고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450만 달러를 목표로 본격 모금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50일 가까이 경과한 5월3일까지 집계된 모금액은 280만 2,728달러로, 목표를 채우려면 170만 달러가 더 들어와야 한다. 문제는 현재까지 모금된 280만 달러도 이번에 전액 모금된 금액이 아니라, 종전 1차 모금당시 반환하지 않고 재기부한 액수가 82만 5천달러 포함돼 있어, 실제로 이번에 모금된 액수는 2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모금마감 예정인 이달 말까지 20여일 동안에 170만 달러를 모금 할 수 있을지, 안팎의 어려운 여건을 감안할 때 힘들지 않겠느냐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인수추진위는 한인사회 각계 각층, 각종 단체와 개인, 종교단체, 향우회, 모임체 등에 상황을 설명하고 십시일반으로 적극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오는5월12일(수) 오후 6시에는 영어권 설명회(SupportRos.ca)를 열어 다시한번 동참을 요청하는 한편 온라인 어머니날 사랑메시지 보드행사(aafcc.ca)를 열어 상품을 시상하는 등의 이벤트도 가질 예정이다.
한편 인추위는 5월3일까지 성금을 낸 단체와 개인 가운데 1만달러 이상을 기부한 고액후원자 명단을 광고로 발표했다. 명단은 아래 광고를 참조하면 된다.
요양원 성금은 다음과 같이 온라인 기부 혹은 체크나 은행접수 등 여러 방법이 있다.
●Chque: Payable To: AAFCC (Arirang Age-Friendly Community Centre)
보낼 곳: 1133 Leslie St. Toronto, ON M3C 2J6 –Unit 214 (한인회관)
토론토 한인회 3선 회장을 역임하고 지난 4월17일 퇴임한 이진수 전 회장이 5월6일 오전 10시45분경 갑자기 별세했다. 향년 75세로 유족은 부인 김옥진 여사와 아들 상엽 씨, 딸 인실 씨가 있다.
이 전 회장은 수일 전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날 몸에 이상증세를 느껴 리치몬드힐 메이저매킨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토론토 한인회 제32~33대 회장을 역임한 후 36대 회장선거에 출마해 당선, 처음으로 3선 6년을 재임한 회장이 됐으며, 지난 4월17일 온라인으로 열린 한인회 제57차 정기총회에서 후임 김정희 회장과 이·취임식을 가진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재임 중 지난해부터 COVID-19 사태를 맞았고, Lockdown으로 경제·사회활동이 어려워진 동포 한인들을 위해 '안녕 캠페인'을 펼치며 기금을 모아 마스크와 생필품 등을 전달하는 등 한인사회를 위해 성심껏 일해왔다.
고인은 1946년 서울출신으로, 용산중고와 육사(27기)를 졸업, 소위로 임관해 보병 7사단 수색중대 DMZ 소대장을 지내다 부상으로 중위 예편했다. 한국에서 국제상사 컴퓨터본부, 연합철강 과장 등을 거쳐 한국데이터뱅크 상무와 고든텍 대표 등을 역임하고 1993년 캐나다로 이민해 Amex 카드에 이어 IBM캐나다에서 10년간 근무하다 은퇴했다.
고인은 원만한 성품으로 한인사회 각 단체에 참여해 다양한 활동을 한 마당발로 알려져 왔다. 재향군인회 동부지회장, 민주평통 상임부회장 및 간사, 무역인협회 이사장, 한국학교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냈고, 한인회장과 함께 한인회총연합회 이사장도 했다. 국민훈장 모란장(2015), 한인상 특별상(2018)을 받았고, 향군지회 고문, 평통 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협회 고문 등을 맡아왔다.
이 전 회장의 장례는 5월11일(화) 오후 3시 노스욕 RS Kane Funeral Home에서 가족 포함 10명 이내가 참석해 천주교식 공식연도를 가진 후 화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유해는 코로나 상황이 진정된 후 한국으로 옮겨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토론토 한인회는 5월8일부터 발인(공식연도)일까지 고인의 분향소를 설치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동포들의 추모 방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문의: 416-383-0777, 647-926-0675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변이 확산세가 심각한 인도 체류 우리 교민 170여명이 4일 현지 항공사 부정기편을 이용해 귀국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3일 "인도 내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우리 국민 귀국 수요 급증으로 교민 수송용 부정기편을 2회 운항하고, 추가 편성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중수본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주재원을 포함해 교민 173명을 태우고 첸나이 마드라스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스타라항공 부정기편이 4일 오전 11시 45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또 벵갈루루 공항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항공 부정기편은 교민 211명을 태우고 7일 오전 6시 50분에 도착한다.
정부의 강화된 변이 바이러스 방역관리 지침에 따라 4일 항공편은 59.9%, 7일 항공편은 53%의 좌석 점유율을 각각 유지했다고 중수본은 밝혔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4일부터 인도 등 변이 바이러스 확산 국가에 대해 직항편 운항을 중단하고 내국민 수송 목적의 부정기편 운항만 허용했다. 부정기편도 내국인 탑승 비율을 90% 이상이 되도록 하고, 그외 탑승 가능한 비자는 내국인의 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 외교·공무 목적 등으로 제한했다.
중수본은 인도발 입국자들에 대한 철저한 방역관리 방침을 재차 밝혔다.
탑승 수속 시 유전자 증폭(PCR) 진단검사 '음성' 확인서 지참 여부와 발열 기준을 확인하고, 기내에는 백신 접종을 마친 승무원을 우선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운항 중에는 기내 좌석 간격 등 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하고 기내식 제공 및 이동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입국자들은 인천공항1터미널 서편을 통해 단체 이동하며, 도착 즉시 정부가 마련한 5곳의 시설로 분산돼 1박 2일간 격리에 들어간다.
이후 PCR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면 국내 거주지나 개인이 마련한 격리 장소로 이동해 자가격리에 들어가며, 격리 해제 전날 다시 한번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인도 교민 입국후 '음성' 판정받더라도 7일간 시설격리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인도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귀국하는 인도 교민이 '음성' 판정을 받더라도 7일간 시설 격리를 하기로 했다.
정부의 새 지침은 비스타라항공 부정기편으로 4일 오전 11시 45분께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인도 교민 173명부터 곧바로 적용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일 이 같은 내용의 인도발(發) 입국자 대상 방역관리 강화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방역관리 강화 방안에 따라 인도에서 온 입국자는 입국 즉시 임시생활시설에서 진단검사를 받고 음성이 확인되더라도 7일간 임시생활시설에서 격리생활을 해야 한다.
또 인도발 입국자는 시설 퇴소 전 입국 6일차에 한 차례 진단검사를 받고, 격리해제 전인 입국 13일차에 보건소에서 또다시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
입국 후 국내에서 세 차례 진단검사를 받는 셈이다.
정부는 입국 전 72시간 내 현지에서 발급받은 유전자 증폭(PCR) 검사 '음성 확인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시설입소 비용을 지원한다.
그러나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내국인에 대해서는 격리 비용을 지원하지 않고, 외국인의 경우 음성확인서가 없으면 아예 입국을 금지한다.
21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입국객이 방역 관계자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정부는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 국내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22일부터 남아공과 탄자니아를 통해 국내에 들어오는 내국인과 외국인 전체에 대해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입국 뒤 진단 검사 한 차례 더 실시한 뒤 정부가 지정한 시설에서 14일간 시설격리를 시행한다.
정부는 참고자료를 통해 "인도 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고, 또 인도발 해외유입 확진자가 증가하는 데다 인도 변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인도발 입국자에 대한 강화된 방역관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변경 사유를 밝혔다.
인도 내 일일 신규 확진자는 올해 1월 31일 1만3천83명, 2월 28일 1만6천488명이었으나 3월 31일 5만6천211명으로 늘었고 전날에는 39만2천488명이 나왔다.
국내에서 확인된 인도발 확진자는 지난달 4∼10일 14명, 11∼17일 15명이었으나 18∼24일에는 3배 수준인 43명으로 늘었고 지난달 25일부터 5월 1일까지 1주일간은 35명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변경된 지침을 국토교통부, 외교부, 각 항공사를 통해 입국 예정인 재외국민에게 안내했으며 자세한 사항은 4일 오후 2시 10분 질병관리청 정례 브리핑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조봉완 교수가 2년 전에 재미동포 스토리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비영리 기관(KoreanAmericanStory.org)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갈무리했다.
“이 분(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이 너무 틀린 말을 했어요. 일본군 ‘위안부’들이 계약서를 쓰고 돈을 받았다니 말이 안 돼요. 열둘, 열셋 소녀들이 뭘 알고 계약서를 썼겠어요. 이 분이 증거를 내세운 것은 하나도 없고 추정으로 논문을 썼어요. 연구를 너무 안 했어요.”
1992년부터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는 데 힘써온 조봉완(87) 미 조지타운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지난 2월에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램자이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짚고 게재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직접 작성해 학술지 <국제법경제리뷰> 쪽에 보냈다. 마거릿 스테츠 델라웨어 교수 등 동료 연구자·활동가 16명의 지지 서명도 직접 받았다. 지난달에는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한·일 정상에 요구하는 미국 인권단체 등의 공개서한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 26일 오전 미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살고 있는 조 교수를 전화로 만났다.
그는 램자이어 교수 논문의 가장 큰 문제를 이렇게 말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일본에는 ‘가라유키상’이라는 종군 매춘 제도가 있었어요. 농촌이나 천대받던 부라쿠민 출신의 가난한 여성들을 돈으로 사서 청일전쟁(1894~1895)이나 러일전쟁(1904~1905), 시베리아 원정(1920년도 초)에 참전하는 군인들을 따라 보냈어요. 이 제도에는 금전 거래나 계약이 있었죠. 램자이어 교수는 이 제도가 조선이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일본에서 있었으니 조선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어요. 하지만 위안부 제도는 1931년 만주사변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램자이어 교수가 가라유키상 같은 제도가 조선에 있었는지 확인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잘못입니다. ‘하버드대’라는 이름 때문에 램자이어 교수 자신이 오만했고 이 때문에 그의 망언이 더 알려지게 된 거죠.”
그는 백인이나 일본계, 중국계 등 상당히 많은 연구자가 램자이어 교수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면서 “일본이 아무리 거짓말을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가 세계적으로 중요한 학술 주제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시더라도 그분들이 남긴 증언은 대학과 대학원생들의 연구 자료가 될 겁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과 지금도 성행하는 인신매매와 바로 연결되어 있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1974년 시카고대학에서 ‘청일전쟁의 정치적 배경’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조 교수는 50대 후반이던 92년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경기여중 선배인 이동은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워싱턴 정대협) 초대 회장의 권유로 92년 이 단체 이사로 참여했어요. 그때 처음으로 위안부에 대해 알게 됐어요. 동양사로 박사를 받았지만 그 전에는 몰랐어요.” 특히 선배가 들려준 위안부에 대한 말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위안부 피해자들과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아요. 만약 5~6년만 일찍 태어났다면 저도 그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 그는 3학기만 마치고 56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전쟁 직후라 대학 수업이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있는 수업도 남학생 대부분은 번갈아 출석부에 도장만 찍고 깊은 산 절간에 들어 앉아 고시 공부를 했죠. 지식을 얻으려 찾아온 대학이 이 지경이라 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죠. 혼자 유학길을 알아보고 결정된 뒤 부친에게 말씀드렸더니 선뜻 동의해주셨어요. 부친이 제 이름을 남자처럼 지은 것도 전형적인 여성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했죠.”
그는 미국에서 세 아이를 양육하며 박사 공부를 병행해 만 40살에 박사 학위를 땄다. 시카고 로욜라대학 교수 때는 학교에서 첫 여성학 강좌를 열기도 했다. 조지타운대학에 재직하던 1996년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미국 내 첫 학술회의를 기획해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워싱턴 정대협 쪽과 논의해 학회를 열기로 했는데 조지타운대학이 예수회 재단으로 진보적인 학풍이 아니라 개최가 쉽지 않았어요. 여성학을 가르치는 스무살 아래 백인 동료 교수와 함께 보직 교수들을 찾아 재정 지원을 구걸하다시피 했죠. 다행히 학회가 열리자 350석 강당이 꽉 찼고 그 뒤로 미국 곳곳에서 위안부 관련 회의가 열렸어요. 또 학회 3개월 뒤 미 법무부에서 일본 전범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중 셋이 위안부 관련자였어요. 제가 기획한 학회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2001년에는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공창제도, 일본의 여성차별 제도에 대한 글을 묶어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들>이란 영문 책도 냈다.
조봉완 교수가 미국에서 펴낸 <궁내의 살인> 표지.
그는 조지타운대학 퇴임 10년 뒤인 2016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국모’ 명성황후(1851~95)의 생애를 다룬 영문 소설 <궁내의 살인>을 미국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어 번역본은 1년 뒤에 나왔다. “이웃 나라의 국모를 잔인하게 죽인 일제의 만행을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소설로 썼어요.” 그는 이 작품에서 명성황후는 매우 총명하고 국제적 감각도 있어 남편 고종을 도와 나라를 거의 구할 뻔했다고 긍정적으로 그린 반면, 명성황후와 대립한 시아버지 대원군은 권력 쟁취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악한’으로 묘사했다.
“명성황후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와 미국을 끌어와 일본을 견제하려 했어요. 이 계획이 거의 성공한 단계에서 일본이 계략을 써서 살해한 거죠.” 그는 소설에 여성주의 시각을 담았다고 했다. “전에는 주로 남성 작가들이 책을 쓰면서 명성황후를 안 좋게 그렸어요. 명성황후가 시아버지와 대립하고 다툰 것을 좋지 않게 봤죠. 남성 작가들은 또 일본이 명성황후 살해에 대원군의 허락을 받은 점이나 시해 당일 대원군이 가솔을 앞세워 경복궁에 들이닥친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았어요. 저는 명성황후를 여성이 아니라 ‘완성된 인간’으로 그리려 했어요. 시부 앞이라도 인간으로서 서슴없이 자기 의견을 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요. 명성황후는 너무 일찍 태어났어요. 수십 년을 앞서 살았죠.”
조봉완 교수가 두 딸과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기림비를 찾았다.
열강의 틈에서 어쩔 줄 몰랐던 명성황후 시절과 견줘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어떻냐고 묻자 그는 “현재 한국은 경제나 과학은 물론 대중문화에서도 강국”이라며 그때와 처지가 크게 다르다고 했다. “저주받은 지정학적 위치여서 한국이 민첩하게 외교를 펴야겠지만 현재 한국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 중요한 나라입니다.” 강성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