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직원만 회담장에
서면자료 낸 뒤 질의응답 생략
기시다, 13분간 설명 ‘대조’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13일(현지시각)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순방에 동행한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 속 한반도 정세와 역내 안보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되는 중요 회담에 대한 언론 취재 활동을 제한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날 오전 현지 일정 브리핑에서 “한-일, 한-미 정상회담은 전속 취재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통상 각국 정상과의 회담은 ‘풀(대표) 기자 취재’ 형식으로 머리발언 등이 공개되는데, 이번 회담은 대통령실 관계자가 회담장에 들어가 관련 내용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전속 취재의 경우, 공개 회담 전체 내용이 아니라 편집된 발언과 영상·사진만이 전달된다. 게다가 대통령실은 이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 발리로의 이동 시간 등을 이유로 한-일, 한-미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한 채, 언론 질의응답은 생략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순방 일정 중 가장 핵심 일정이었던 두 회담이 사실상 언론에 비공개나 다름없이 진행된 셈이다. 이와 달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 발리로 떠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각국 정상과의 회담 성과 등에 대해 13분 동안 설명했다.


일본, 미국 두 나라 정상과의 회담이 언론에 비공개로 진행된 것을 두고, 윤 대통령의 말실수 노출 등을 막기 위한 우리 쪽 요청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지난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재정공약회의 당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도 배석 취재했던 풀 취재단 카메라에 잡혀 알려진 것인데, 이런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회담을 전속 취재로 돌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실 쪽에선 ‘회담 당사국끼리의 합의’에 따라 이뤄진 결정이라며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모든 회담이 다 양자의 협의 속에 이뤄지는 것이니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대국의 요청이냐’는 질문엔 “어디가 요청해서 어디가 받아들였다기보단 양쪽의 협의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이런 행동을 두고, 현장에선 <문화방송>(MBC) 출입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데 이어 언론의 취재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란 불만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발리로 이동하면서도, 문화방송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 조처를 풀지 않았다. <한겨레>도 14일 민항기를 이용해 발리로 이동한다.


<프놈펜/배지현 기자>

 

국회 국방위에 “기존 화성-15” 보고

“비행특성 다르고 엔진도 2개 뿐”

북한이 공개한 영상도 편집된 듯

미 WP도 “화성-15형 개조해 발사”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가운데)의 “직접 지도 밑에 24일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7’형 시험발사가 단행됐다”고 노동신문이 25일 1~4면에 16장의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국방부가 지난 24일 북한이 시험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은 북한이 주장하는 신형 ‘화성-17형’이 아니라 기존의 ‘화성-15형’이며, 이처럼 기만한 데에는 북한 내부용 목적이 크다는 분석을 내놨다.

 

국방부는 29일 오후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제출한 ‘국방 현안보고’에서 “3월24일 발사체는 2017년 발사한 화성-15형 아이시비엠보다 정점고도와 비행시간이 증가해 화성-17형처럼 보이나, 탐지된 비행특성을 정밀분석한 결과 화성-17형보다는 화성-15형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2017년 11월 발사한 화성-15형은 정점고도 4475㎞, 비행거리 950㎞, 비행시간 53분이었다. 반면, 지난 24일 발사체는 정점고도 약 6200㎞ 이상, 비행거리 약 1080㎞로, 고각이 아닌 정상 발사시 사거리 1만3000㎞ 이상으로 판단한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비행시간은 67분이라고 북한이 밝힌 바 있다. 국방부는 그러나 상승 가속도, 연소 시간, 단분리 시간 등의 비행특성을 분석해, 화성-15형에 무게를 뒀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신형인 화성-17형은 백두산 계열 엔진 4개의 묶음을 갖추고 있지만 24일 발사체는 화성-14형이나 15형과 같이 엔진이 2개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지난 16일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실패한 뒤 8일 만에 재발사했는데, 이는 실패 원인을 분석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이 공개한 발사 관련 영상 또한 이전의 화면과 뒤섞은 것으로 군은 평가했다. 발사시간은 오후 2시33분으로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그림자가 북동쪽을 향해야 하지만, 영상 속 김 위원장 그림자는 서쪽을 가리켜 오전 8~10시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날씨 또한 발사 당시 순안 지역은 대부분 구름으로 덮여 있었으나, 북한이 공개한 발사 장면 영상은 이와 달리 청명한 모습이라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미국 쪽도 한국 쪽의 분석 기법과 평가 내용에 동의한다”며 “미국도 상세 분석을 진행 중이며, 화성-15형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으나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의 발사체가 2017년 마지막으로 시험한 기존의 화성-15형을 고도가 더 높고 더 길게 비행하도록 개조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이 화성-15형을 쏴놓고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 의도에 대해 국방부는 “대외적 측면보다는 대내적 고려 사항이 더 컸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16일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실패했는데, 이에 대한 국내 여론을 재빨리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지난 16일의 발사 실패 장면을 평양 주민들이 목격한 상황에서 유언비어 차단과 체제 안정을 위해 최단시간 내 ‘성공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에서, 2017년 성공하여 신뢰도가 높은 화성-15형을 대신 발사했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시험발사 이튿날인 25일, 김 위원장이 검정색 가족 점퍼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군 관계자들과 아이시비엠 발사를 자축하는 모습을 영화처럼 구성한 영상을 공개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외적 의도로는 “비행 제원을 기만해서라도 한국·미국과 국제사회에 아이시비엠 능력이 고도화되었음을 강변해, 군사강국 지위 확보 및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24일 북한의 아이시비엠 시험발사 이후 공식적으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밀분석하고 있다”고 밝혀왔으나, 한-미가 “화성-15”이라는 공통적 결론에 이르자 이를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북한의 추가 발사에 대비해 탄도탄 감시 레이더 등 감시전력을 증강 운용하고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황준범 기자

 

국방부 “16일 북 ICBM 평양 상공서 폭발…한-미 연합훈련 검토”

 

29일 국회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날 회의는 북한의 ICBM 발사와 관련된 긴급 현안 보고를 위해 열렸다.

 

북한이 지난 16일에 시험 발사에 실패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이 평양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한국과 미국은 연합훈련도 적극 검토 중이다.

 

국방부는 이날 국회에서 한 국방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북한이 지난 24일 ‘화성-15형’ 아이시비엠을 쏴놓고, 그보다 신형인 ‘화성-17형’을 발사했다고 위장한 것은, 16일 시험발사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비공개 보고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3월24일 발사가) 화성-17형이라고 주장하는데 국방부는 오늘 화성-17형이 아니라는 증거를 몇 가지 보고했다”며 “한미 군당국 판단은 화성-15형이고 이동식 발사대로 발사 방법이 조금 더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발사에 실패한 아이시비엠 화성-17형(추정)은 발사 뒤 수킬로미터 상공에서 폭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국방위원장은 “공중으로 수킬로미터 올라가 폭발한 것인데 민가에 피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해서 국방부는 명확하게 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폭발한 미사일 파편이 떨어진 곳에 대해서는 “국방부 장관의 답변은 민가가 아닌 것 같고 논에 떨어진 것 같다”고 기동민 민주당 의원이 전했다.

 

북한이 아이시비엠 발사로 모라토리엄을 파기함에 따라, 군 당국은 야외 실기동 방식의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민 위원장은 “여야 의원들이 실질적인 한미 연합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질의를 했고, 이에 대해 국방부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며 야외 실기동 훈련이 포함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 안 했으나 실질적인 훈련이라 함은 그런 부분까지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야 의원들은 판단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추가로 7차 핵실험과 고체형 아이시비엠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옵션들에 대해서 잘 대비하고 있고, 한미 당군 간 대응할 수 있는 자산들을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최하얀 기자

고교 2학년 이상 교과서 검정 통과

‘강제연행’ 은 ‘동원’으로 표현 바꾸고

독도는 “한국이 불법 점거”로 기술

외교부, 주한 일본 총괄공사 불러 항의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모습.

 

일본 정부의 지난해 4월 결정에 따라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에서 ‘종군 위안부’ 혹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표현이 빠지게 됐다. 또, 조선인 강제동원 과정의 강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됐던 ‘강제연행’이라는 표현도 모두 삭제됐다. 일본 정부가 이들 표현을 교과서에 쓰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일본 사회는 ‘역사 교육’을 통해 위안부 문제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1993년 ‘고노 담화’의 약속에서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9일 내년도인 2023년부터 고교 2학년 이상이 쓰게 될 ‘일본사탐구’, ‘정치·경제’, ‘지리탐구’ 등 239종의 교과서의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분석한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의 검토 자료를 보면, 검정을 통과한 ‘일본사탐구’ 7종 교과서 모두에서 ‘종군 위안부’ 혹은 ‘일본군 위안부’란 표현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다. 이전 교과서에선 진보 성향의 짓교출판이 가해자를 명확히 지목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다”고 서술했지만, 이번엔 ‘일본군’이란 용어를 삭제한 채 “많은 여성이 위안부가 되었다”라고만 적었다.

 

‘정치·경제’ 교과서 중에는 도쿄서적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 교과서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내각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고노 담화)를 설명하며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번 검정을 통해 정확히 이 기술이 삭제됐다. 대신 “2021년에 ‘종군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각의 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이 이뤄졌다”는 문장이 추가됐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해 온 주제가 일본군이며, 일본 정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한 것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강제연행’으로 서술한 교과서들도 모두 유탄을 맞았다. 짓교출판, 시미즈서원, 야마카와출판, 다이이치(제일) 학습사의 일본사탐구, 정치·경제 교과서에서 ‘강제연행’ 표현은 모두 ‘동원’으로 대체됐다.

 

한국 외교부는 일본 교과서 검정과 관련해 29일 오후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일본 교과서의 역사 서술에서 이런 ‘결정적 후퇴’가 이뤄진 것은 지난해 4월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을 통해 ‘종군 위안부’나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당시 이런 표현을 쓰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종군 위안부’가 아니라 그냥 ‘위안부’란 용어를 쓰는 게 적절하다”고 결론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를 설명할 때 ‘강제연행’이라는 용어를 써온 것에 대해서도 부적절하다고 선언했다. 이후 하기우다 고이치 당시 문부과학상은 그해 6월 기자회견에서 교과서에서 이들 용어를 쓰지 않게 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일본 정부가 이렇게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이던 2014년 교과서 검정기준에 ‘정부의 통일된 견해가 있는 경우 그에 근거한 기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들이 정부 견해에 동의하지 않더라고 검정 통과를 위해선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교과서 역사 기술을 분석해 온 시민단체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결과 발표 직후 화상 기자회견을 열어 “아베 정권 이후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물리력을 사용한 강제는 없었다는 궤변을 이어가더니, 급기야 교과서에서 ‘일본군’, ‘종군’ 등의 개념을 삭제해 군의 개입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던 일본 정부가 자기를 부정하는 것으로, 일본과 세계 학계의 연구성과도 부정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 단체가 밝힌대로 일본 정부는 지난 고노 담화를 통해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베 전 총리가 동의한 2015년 12·28 합의 때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정부 예산 10억엔을 내놓았었다.

 

한편,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부당한 영유권 주장도 대부분의 교과서에 실렸다. 특히 ‘정치·경제’와 ‘공민’ 교과서에는 “일본 고유 영토”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 “일본이 지속적인 반환요청”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자세히 기술됐다. 한국 정부는 이날 오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자국 중심의 역사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이제훈 기자

 

정부 “일본의 허황된 주장 담긴 교과서 검정 통과에 강력 항의”

 

일 정부 교과서 검정 결과에 ‘외교부 대변인 성명’ 발표

독도·일본군 ‘위안부’ 등 시정촉구

주한 일본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

 

지난 3월16일 낮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535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열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이 주간보고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일본 정부가 29일 자국 중심의 역사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 오후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히고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허황된 주장 담긴 교과서를 일본 정부가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및 강제징용 문제 관련 표현 및 서술이 강제성을 희석하는 방향으로 변경된 것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 정부가 그간 스스로 밝혀왔던 과거사 관련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한 역사교육을 해 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미래를 짊어져나갈 세대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 만큼, 일본 정부가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청소년 교육에 있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 청사)로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불러 항의했다. 이제훈 기자

전쟁 여파, 세계 식량공급망 불안

 

세계 식용유 주공급원인 러 · 우크라

밀 · 보리 최대 수출국의 하나이기도

 개전 뒤, 인니 자국 팜유 보호 나서

“중동 등 1천만명 식량 불안” 우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 불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한 예멘 여성이 1월5일 예멘 수도 사나 외곽 실향민 캠프 인근에서 빵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팜유. 이름 그대로 팜(기름야자) 열매에서 뽑아낸 기름이다. 빵을 만들 때 버터 대신 쓰기도 하고, 식용유로 쓰기도 한다. 비스킷, 초콜릿, 비누와 세제 등에도 팜유가 들어간다. 생산과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세계 수출량의 60% 정도를 인도네시아가 차지한다. 팜유는 석유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어 바이오디젤 원료로도 쓰이는데, 정작 보르네오섬은 팜 농장들이 늘면서 숲이 사라져간다. 환경단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 전쟁 뒤, 세계 먹거리 ‘비상’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수출세를 대폭 올렸다. 선적할 때마다 수출세를 내는데, 거기에 별도로 수출부담금을 매기고 누진율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자국 수출업자들에게 타격을 줄 게 뻔한 이런 조처를 한 이유는 식용유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산 팜유의 3분의 2가 외국으로 팔려 가는데, 세금을 올려 일단 수출을 억제해보겠다는 것이다. 생산량 가운데 국내시장에서 의무적으로 팔아야 하는 양도 20%에서 30%로 늘렸다.

 

팜유 생산업자들은 반발했고,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규정을 자주 바꿔 시장에 패닉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정부는 국제 원자재가 상승과 투기성 거래에 화살을 돌렸다. 일리는 있다. 팜유 가격은 올해 들어 50% 넘게 올랐으며 거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식용유의 주된 공급국인데 그쪽의 유채씨기름(카놀라유)과 해바라기유 수출이 줄어드니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식용유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식용유값이 걱정인 인도네시아는 낫다. 오랜 내전에 시달린 시리아 사람들은 숨겨진 최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여전히 시리아에서 1340만명이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유엔은 시리아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밀 생산량이 줄어 160만톤이 모자랄 것으로 봤다.

 

시리아인들은 10년 넘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맞선 싸움을 벌였으나 아사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연장했다. 그런데 이제는 러시아가 일으킨 동유럽의 전쟁 때문에 시리아인들의 고통이 추가될 판이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차관을 받아 밀 100만톤을 수입하기로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 협상이 중단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 가격은 2월에 사상 최고치로 올라 전년 동기 대비 20.7%의 상승을 기록했다. 전쟁에 따른 식량공급망 교란은 여기저기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 밀 수출국이었다. 곡물 전체로 보면 러시아가 3위, 우크라이나가 4위 수출국이다. 두 나라가 공급하는 밀과 보리가 세계 교역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그런데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자 우크라이나는 필수 곡물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미 계약돼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 곡물조차 밖으로 못 나가고 있다. 곡물 수출의 거의 80%가 남서부의 오데사, 미콜라이우, 초르노모르스크를 통해 흑해로 나갔는데 이 항구들이 러시아군에 막힌 것이다.

 

2019년 인도네시아 아체주 한 마을의 기름야자(팜) 농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EPA 연합뉴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작황은 기록적으로 좋았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에 심은 겨울밀에는 쓸 비료가 모자라고, 설비를 돌릴 연료도 부족하다. 옥수수와 보리는 다음달에 심어야 하는데, 폭격이 걱정돼 농사를 짓기도 힘들다. 식량 시장의 교란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세르비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주변 동유럽국들도 불안해져서 잇달아 곡물 수출을 막거나 줄였다.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일이 없지만 시장이 러시아산 곡물을 거부하고 있다. 곡물 데이터를 분석하는 애그플로는 3월 첫 2주 동안 러시아 항구를 떠난 곡물 수출 선박이 73척에 그친 것으로 봤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220척이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밀 선물가격은 올해 들어 60% 안팎으로 올랐다. 중국마저 기상 조건이 나빠 밀 생산량이 평년보다 20%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66억달러(약 8조450억원) 규모의 농업보조금을 추가로 배정했다. 중국은 세계 밀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설상가상 미국의 평원도 가뭄을 맞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식량 불안은 발등의 불이다. 주로 식량을 수입하는 이 지역에는 빵 같은 기본 식료품에 정부가 보조금을 대주는 나라가 많다. 그런데 원재료값이 너무 오르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낮은 가격을 지탱해주기가 힘들어진다.

 

레바논, 밀 9할이 러·우크라산인데…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에서는 인구 대부분인 7천만명이 정부의 식료품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는 현재 밀 비축량이 4개월치이고, 다음달 중순 국내산 밀이 수확되면 비축량이 9개월치로 늘어난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식료품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1977년 정부가 식료품 보조금을 끊자 ‘빵 폭동’이 일어났다. 2011년에는 튀니지에서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뒤흔들었는데, 당시 상황도 식료품값 폭등과 이어져 있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경제 전문가 닐스 그레이엄은 최근의 식료품값 폭등이 아랍의 봄 때보다 더 심하다면서 “밀 공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온 이집트의 경우 정부 지출이 전쟁 때문에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레바논은 더 심각하다. 레바논 세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체 밀 수입량의 80%는 우크라이나에서, 15%는 러시아에서 왔다. 그해 8월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나 넉달치 밀 비축량이 날아갔다. 코로나19가 번지고 관광산업이 무너지면서 레바논 인구의 80%가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정부는 지금도 매달 2천만달러를 밀 구입 보조금으로 쏟아붓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레바논 경제장관은 지난 5일 트위터에 밀 배급제를 시작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충돌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사는 1천만명이 식량 수급 불안을 겪을 것”이라며 “식량공급망이 글로벌화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는 글로벌 연대가 필요하다”고 국제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