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왕'이 대응 우물쭈물…빠져나가기 어려운 듯
국힘 내부서 폭로, 같은 당권주자들이 이슈 키워

결국 시민단체가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공수처 고발
"드루킹 사건 김경수 징역 2년…똑같이 처벌돼야"

장예찬 "내가 한동훈 여론조성팀에서 많은 활동"
"법무부 바깥 조직…한동훈 측근 전‧현직 공무원"

양문석, 의심 계정 29개 찾아 댓글 7만 개 분석
'윤두창' '건희룡' '홍발정' '쉰평' 등 아군도 공격

 

국민의힘 한동훈 당 대표 후보가 17일 오후 경기 고양시 고양 소노 아레나에서 열린 제4차 전당대회, 서울 인천 경기 강원 합동연설회에 입장하고 있다. 2024.7.17. 연합

 

국민의힘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여론조성팀)'을 가동했다는 의혹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애매한 대응으로 일관하다 결국 고발당했다. 사설 댓글팀 운용설은 여당 내부에서 구체적 증언이 제기되고 같은 당권주자들에 의해 중대 이슈로 확장된 사안이기 때문에 그간 '법꾸라지'로 명성을 떨쳐왔던 한 후보라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선 이미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에 댓글팀 운영 의혹도 추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대표는 18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후보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김한메 대표는 "피고발인 한동훈은 현직 법무부 장관의 자리에서 특정 언론 기사에 인위적인 댓글을 작성해 여론을 호도하는 등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 및 국민 여론을 심대하게 왜곡하는 것은 물론 국가공무원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치운동을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 의무를 파괴하였으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죄책을 져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무부 장관은 헌법과 관계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수호하면서 국가 법행정을 총괄하고 형사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며 "그런데 한동훈은 이러한 법무부 장관의 책무를 망각하고 개인적인 정치적 야망의 실현 및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 조성을 목적으로 직무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댓글팀을 운영하고 조직적으로 댓글을 조작하게 함으로써 위계에 의한 방법으로 언론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드루킹 사건에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19대 대선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도록 댓글 및 추천, 검색어 등을 작업하고 타 후보 비방 등 여론조작을 벌인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의 형량을 확정받아 한때 대권 주자로도 거론됐음에도 경남도지사직을 상실하고 수감된 바 있다"면서 "한동훈 역시 언론사에 대해 동일한 양태의 업무방해 범죄를 저질렀다면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마찬가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의 죄책을 지고 엄중히 처벌돼야 한다"고 두 사례를 비교했다.

김 대표는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피고발인 한동훈의 업무방해 혐의와 관련된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공개했고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관련 분석 자료를 국민에게 제시했다"며 "이에 한동훈을 고발하니 '법 앞에 평등'이라는 헌법 규정이 국민의 한 사람인 전 법무부 장관에게는 달리 적용돼 형사사법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욱 붕괴시키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히 처벌하여 주기를 사법 정의를 바라는 수많은 국민을 대신해 강력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김한메 대표가 18일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과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공수처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장경태 최고위원 페이스북

 

앞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 집중'에 출연해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을 할 때부터 여론 관리를 해주고 우호적인 온라인 여론을 조성하는 팀이 별도로 있었다"고 첫 폭로에 나섰다. 이어 11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복수의 (한 후보 측) 여론조성팀 관계자들에게 받은 텔레그램을 몇 개만 텍스트로 공유한다"면서 "오직 한동훈 후보의 홍보를 위해 장관 시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도 있다. 이들이 누구인지 한동훈 후보는 분명히 알고 있다"며 자신이 받았다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올렸다.

2023년 5월 16일 참여연대 관련 자료를 공유하며 "참여연대 조지는데 요긴하게 쓰시길. 지금 한동훈 장예찬 찰떡 콤비임. 장관님께도 보고드림."

2023년 6월 2일 한동훈 장관 홍보 유튜브 쇼츠를 공유하며 "이런 컨텐츠 기획-제작해서 활약상 보고 중."

2023년 7월 29일 박주민 의원이 이화영 수사 관련 수원지검 연좌 농성으로 한동훈 장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공유하며 "이화영 드러누은(누운) 이슈는 더 끌고가자. 커뮤니티 유튜브 조치할게."

2023년 11월 6일 "한동훈은 현재 전국 지명도와 참신성을 갖춘 주요 자원. 특정 지역구보다, 비례 10번 정도에서 전국 선거를 누비게 해줘야 선거전략상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것 좀 자연스럽게 띄워줘."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12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한동훈 당대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댓글팀)'을 운영했다고 밝히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장 전 최고위원은 12일에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는 댓글팀이라는 표현을 안 쓴다"면서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여론조성)팀이 직접 저에게 많은 요청을 하고 제가 동반적으로 수행을 해줬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 당시 제 신분은 집권여당의 최고위원이었다. 최고위원에게 수시로 이런 지시 내지 요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평범한 사람이었을까?"라며 해당 텔레그램 메시지의 발신자에 대해 "(한동훈 장관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저는 한동훈 후보가 직접 고소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이분들이 누구인지 제가 오픈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그래서 차라리 저에게 명분을 달라, 시원하게 직접 고소해라 말씀드리는 거다. 이분들의 그 당시 신분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 후보를 압박했다. 그는 "법무부 장관 밑에 있던 조직이 아니라 법무부 바깥의 조직"이라며 "이분들의 신분이 공무원이라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이길래 제가 이토록 일주일 내내 이야기하는데도 (한 후보 측에서) 법적 대응이나 조치가 없는지, 그건 상상의 영역에 맡기겠다"고 덧붙였다.

장 전 최고위원은 특히 "내가 사실 한 후보를 위한 그런 여론조성팀의 일원이기도 했고, 누구누구였는지를 다 알고 있다"면서 '여론조성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현직 공무원이냐'는 진행자 질문에 "현직일 수도 있고 전직일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내가 한 후보 여론조성팀에서 활동했다. 사실무근이면 나를 고소하라"면서 한 후보의 최측근이 해당 팀을 운영했으며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이던 2023년 초부터 지난해 12월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뒤까지 계속 활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당이 비대위원장 인선을 진행할 때 한 후보에게 유리한 여론 조성을 부탁받아 실행했다"며 "지난해 11월 한 전 위원장의 총선 종로 출마설을 잠재워 달란 부탁을 받고 여론전도 했다"고 털어놨다.

장 전 최고위원은 16일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말 빙빙 돌리지 말고 자신 있으면 정면으로 들어오라. 유독 저에게만 우물쭈물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평당원도 고소하고, AI 음성도 고소하고, 그야말로 '고소왕'이던 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 있으면 직접 고소하라는 입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고 한 후보를 직격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이 '한동훈 댓글단'으로 의심되는 네어버 계정에서 작성됐다며 사례로 제시한 댓글 일부

 

이렇게 여당에서 장 전 최고위원이 폭로를 지속하자 야당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양문석 의원이 실제 검증을 시도했다. 양 의원은 한동훈 후보의 댓글단으로 의심되는 네이버 계정 29개를 찾아 여기서 작성된 댓글 7만여 개를 분석했다고 공표했다. 예컨대 주로 활동을 한 'jo00****' 계정은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2022년 5월부터 최근까지 약 1만 8000개의 댓글을 달았다. 서로 다른 계정에서 생산된 댓글이 내용뿐 아니라 특수기호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양 의원에 따르면 '한동훈 댓글단' 의심 계정은 한 후보에 대한 지지 활동에 그치지 않고 그의 정적에 대한 공격도 자주 벌였으며, 공격 대상은 야당뿐만 아니라 자당인 국민의힘 인사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내외에 대해서는 초기엔 우호적인 입장이었으나 본격적인 갈등설이 불거졌던 4월부터는 비판적 입장으로 선회했다. 5월 이후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총선 패배의 책임을 돌리며 '윤돼지' '용산돼지' '윤두창' 등의 멸칭을 사용하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성괴', '건풍기' 등 외모를 비하하는 표현과 '윤석열은 허수아비, 성괴 김건희가 상왕' 등의 대통령실 권력구조를 비판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동훈 후보에 비판의 각을 세우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홍준표 시장이 한동훈 후보를 향해 "총선 말아먹은 애, 당 대표 되면 국힘 가망 없어"라는 메시지를 낸 5월 21일 이후 '노망난 홍발정' '홍치매' '홍할배' '윤두창의 개' 등의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맞아 경쟁 후보에 대한 공격도 상당수 발견됐다. 원희룡 후보에 대해서는 '노상방뇽' '원방뇨' '건희룡(김건희와 원희룡의 합성어)' 등으로, 나경원 후보와 윤상현 후보에 대해선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던 배신자'로 공격하며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그 외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인 신평 변호사가 지난 4월 "한동훈 정치인 역량, 조국과 상대 안 돼…어른과 아이 차이"라며 한동훈 후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자 '관종 신평' '쉰평' 등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이에 양 의원은 "댓글의 방향성이 매우 유사하고 초·분 단위로 작성된 것을 보아 조직적으로 누군가의 지시 혹은 통제 속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계정은 과거 댓글들이나 계정 자체를 삭제하며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포착됐다"면서 "한동훈 댓글단 의심 계정들의 집단적 공격 대상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표현과 호칭 방식이 저열하기 짝이 없다. 한동훈 후보를 비판하거나 한동훈 후보와 대립하는 자에게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처럼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이 '한동훈 댓글단'으로 의심되는 네어버 계정에서 작성됐다며 사례로 제시한 댓글 일부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이 '한동훈 댓글단'으로 의심되는 네어버 계정에서 작성됐다며 사례로 제시한 댓글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 이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은 한 후보에 대한 수사기관의 수사를 강하게 요구해 왔다. 조국혁신당은 이미 발의한 '한동훈 특검법' 안에 댓글팀 운영 의혹도 추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18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불법 폭로대회가 됐다. 김건희 여사 댓글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의 여론조성팀이 있었다는 내용이 폭로되더니, 어제는 나경원 후보가 자신의 패스트트랙 사건 관련 공소를 취소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폭로도 있었다"며 "사실이라면 하나같이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범죄 행위들이다. 반드시 수사를 통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불법이 드러날 경우 엄정하게 사법 처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조국혁신당 조국 당대표 후보는 이날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인 김선민 의원, 황명필 울산시당위원장, 정도상 전북도당위원장과 국회에서 '국민의힘 폭로 및 자백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범죄 집단의 '자백 쇼'를 보는 것 같다"며 "국민이 국힘 전당대회를 통해 알게 된 일은 우선 한동훈 씨가 법무부 장관 시절 사설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 후보는 "만일 제가 법무부 장관 시절 댓글팀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일어나거나, 여당 의원이 저에게 공소 취소를 해달라고 부탁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전국 검사들은 게시판에 의견을 표명하고 난리가 났겠고, 검찰도 바로 강제수사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이런 지경인데도 검찰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꿀 훔쳐 먹은 아이인가? 입도 뻥끗 안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이원석 검찰총장은 야당 대표 겁박하는 데만 열 올리지 말고 내일 아침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수사 여부를 밝히라"며 "왜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에는 입을 닫는가? 대통령실에 혼날까봐 겁이 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 김호경 기자 >

 

조국혁신당 조국 당대표 후보자를 비롯한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18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폭로·자백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7.18. 연합

7월 전국집중촛불, 윤 탄핵 청원자 대회로 개최
탄핵 노래방…부산·광주 촛불공연에 열기 후끈

코미디언 김미화, 촛불국회의원 모임도 무대에
"주권자 국민이 명령한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1만여명 탄핵 청원자들, 명동 일대서 빗속 행진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국민동의청원'이 마감되는 20일 오후 서울 도심에선 전국에서 모인 대통령 탄핵 청원자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 열기를 끌어올렸다. 시민들이 직접 참가한 무대는 정부의 실정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대통령 탄핵 열망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날 오후 4시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선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이 열렸다. 전국에서 모인 1만여 명(주최 쪽 추산)의 시민들은 "국민이 명령한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대화 협치 필요 없다 윤석열을 즉각 탄핵하라" "민주민생 평화파괴 윤석열을 탄핵하라" "윤석열을 탄핵하고 채 해병의 한을 풀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번 7월 전국집중촛불은 윤석열 탄핵 소추안 즉각 발의 청원에 서명한 국민을 위한 '탄핵 청원자 대회' 형식으로 열렸다. 앞서 지난달 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된 탄핵 소추안 발의 청원은 13일 만인 지난 3일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촛불행동에 따르면 국민청원이 시작된 뒤 15일 동안 관련 뉴스만 1100여 건이 보도됐다. 마감일인 이날 오후 7시 기준 청원자 수는 143만 4000여 명이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시민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촛불 무대도 윤석열 탄핵을 청원한 국민들이 중심이 됐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나눠준 종이 팻말에 각자 "나는 ○○○○번째 윤석열 탄핵 청원자다"라고 쓴 뒤, "윤석열은 당장 내려와라" "올해 안에 대선!" 등 각양각색의 문구를 적었다. 현 정권의 실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했다. '촛불 합창단'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촛불이 이긴다> 공연으로 시작한 집회는 탄핵 청원자들의 발언으로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

촛불행동 김민웅 상임대표는 기조연설에서 "드디어 탄핵정국이 문을 열었다"며 "이 모든 것은 150만에 이르는 국민들 탄핵청원이 만든 위대한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국회는 오로지 탄핵명령 내린 국민만 믿고 그 명령에 따라 앞뒤 가리지 말고 돌진하면 된다"면서 "탄핵은 결국 대세가 될 것이며, 윤석열은 처참하게 쫓겨나 처벌받게 될 것이고, 김건희도 함께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이게 정의다. 그날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 민심은 확고하다"며 "국민들을 믿고 더 용감하게 더 담대하게 싸워나가자"고 외쳤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군산촛불행동 회원들의 모습. 남대진 공동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이날로 '100차 촛불대행진'을 맞이한 군산촛불행동의 남대진 공동대표는 "국민은 이미 심판했다. 국회는 미적거리지 말고 당장 탄핵하라"라며 "시사 유튜브에서 평론만 하지 말고 여기 나와서 함께 외치라"고 했다. 또 언론을 향해서도 "2년간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보도한 적 있는가"라며 "공영방송 지켜달라고 여기와서 호소하는 MBC마저도 왜 광장의 외침을 외면하고 침묵하냐"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우리는 지치지 않고 윤석열 탄핵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결코 쉬지 않고 싸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집회는 가수 남진의 노래 <님과 함께>를 개사한 <촛불함께>를 부르는 '탄핵 노래방' 순서에 이어 각 지역에서 올라온 시민들의 공연으로 열기가 달아올랐다. 부산촛불행동 회원들은 트로트 가수 박현빈의 유행곡 <앗! 뜨거>를 개사한 노래를 불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앗 뜨, 앗 뜨거 너 때문에 내 가슴 불난다 불나 (…) 탄핵도 좋아 특검도 좋아, 석열 건희 감방에 보내버리자"라고 노래 불렀다. 시민들도 빠른 박자의 노래에 맞춰 따라부르거나 춤을 췄다. 이어진 광주촛불행동 회원들은 율동과 함께 가수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개사한 <탄핵열차>를 불렀다. "비 내리는 용산역 윤석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노래에 맞춰, 시민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으쌰라 으쌰"라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부산촛불행동 회원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광주촛불행동 회원들이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시민들의 무대에 이어서 드라마 <수사반장> 주제음악을 만든 재즈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과 재즈 프로듀서 호세윤이 '형님들 뺀드'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수사반장> 주제가와 <Oye Como Va(이제 내려와)> 등을 공연했다. 호세윤의 부인이자, 연예인 블랙리스트로 올라 고초를 겪었던 코미디언 김미화 씨도 함께 했다. 김 씨는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용산 '브이원(V1)' '브이투(V2)' 때문에 웃는다. 용산의 V1, V2가 들을 수 있도록 한번 박장대소를 해보자"며, 시민들과 크게 웃었다. '형님들 뺀드'와 김미화 씨는 가수 윤복희 노래를 개사한 <웃는 얼굴 다정해도>와 신중현의 곡을 개사한 <박절미인>과 등을 불렀다. <박절미인>은 "박절하게 거절 못해 크리스챤 디올~"이라며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풍자했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서 공연하는 재즈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왼쪽)과 코미디언 김미화(오른쪽)의 모습.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촛불행동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과 윤석열 탄핵을 약속한 야당 대표들도 무대에 올라, 시민들의 촛불 열기를 이어갔다. '촛불행동과 함께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탄핵청원을 계기로 결성된 국회의원 모임으로 현재 더불어민주당 강득구·김준혁·문정복·민형배·부승찬·양문석·장종태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앞으로 모임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은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윤석열은 국민을 무시하고 거부권으로 거부하고 있다"며 "이제 마지막이다. 모든 걸 걸고 윤석열과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탄핵시키라하면 여러분과 함께 탄핵시키겠다"며 "그것이 역사의 요구이고, 시민의 요구"라고 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내년 봄에는 새로운 민주정부 시대를 만들어달라"며 "함께 하겠다"고 외쳤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어둠은 새벽이 오기 전에 가장 짙은 어둠을 내뿜는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어둠을 뚫고 반드시 새벽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의원은 "촛불은 온라인에서 140만 명이라는 횃불로 타올랐다"며 "우리는 이 횃불을 들고 이 짙은 어둠을 뚫고 나갈 것이며 이 어둠은 반드시 우리에게 채 해병의 빛나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같은 당 김준혁 의원은 "소통간사로서 촛불행동과 국회의원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국회의원들과 접촉하고 당 대표님들과 함께 소통해서, 더 많은 의원들이 이 자리에 나오도록 하겠다. 그래서 여러분이 요구하는 윤석열 탄핵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정당 대표단도 무대에 올랐다. 진보당 김재연 대표는 "누군가는 윤석열을 탄핵하고 싶어도 국회, 헌법재판소 때문에 안될 거라 말한다"며 "국민 다수가 이토록 분노하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그 명령을 깔아뭉개고 대통령 임기를 채울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명한 국민의 용기있는 행동이 이제 거대한 역사를 만들 것"이라며 "국회 탄핵청원은 그 시작"이라고 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는 "우리에게는 이미 부정의한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역사와 경험이 있다. 동시에 탄핵 이후에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못해서 절망과 회의감을 느꼈던 시간도 존재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 과업이 대통령 탄핵하고 끌어내리는 것에 멈추는 게 아니라, 언론·사법·민생·정치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과 경로를 제시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는 "이 지긋지긋한 윤석열 정권을 빨리 끌어내리고, 하루하루 살기 위해서 몸부린 친 시민들을 제발 살려내달라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을 하고 있다. 2024.7.20.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사진동아리 빛봄

 

시민들의 '주권자 선언문' 낭독으로 집회는 절정을 이뤘다. 이정권 고양파주촛불행동 공동대표, 김수진 남양주촛불행동 대표, 김혜민 광명촛불행동준비위 대표 등은 촛불시민을 대표해 선언문을 낭독했다.

시민들은 선언문을 통해 "대한민국 전역은 머지않아 탄핵의 물결로 뒤덮일 것"이라며 "어디에 있든 어디를 보든 탄핵하라는 압도적 민심을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과 그 일당이 빠져나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며 "이제 탄핵의 시간이다. 누구도 주권자 국민의 앞길을 가로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바로 오늘 이곳에서 위대한 주권자의 범국민 탄핵 항쟁이 시작됐음을 선언한다"며 "민주·민생·평화를 파괴하는 윤석열을 우리의 손으로 반드시 탄핵시키자"고 외쳤다. 1만여 명의 시민들은 선언서 낭독 말미에 "주권자 국민이 명령한다, 윤석열를 탄핵하라"라고 함께 외쳤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 참가한 시민들이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있따. 2024.7.20. 이호 작가

 

'선언문' 낭독에 이어 노래패 '맥박'이 <평등가> <부탁합니굥> 등의 공연을 했다. 시민들은 공연 직후 행진에 나섰다. 행진에는 10·29 이태원 유가족도 참가했다.

풍물패와 나팔을 앞세운 행진 대열은 본집회가 열린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한국은행 앞 사거리, 을지로 입구역 등 명동 인근을 행진한 뒤 시청역 인근 더플라자호텔 앞을 지나 다시 본 집회장으로 돌아왔다. 행진 끝에 비가 쏟아졌지만, 탄핵 열기를 잠재울 순 없었다.

시민들은 "백해무익 정치오물 국힘당을 해체하라" "김건희와 한동훈 댓글공작 수사하라" "무법천지 범죄자집단 윤석열 일당을 갈아엎자" "3년은 못참는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심판은 끝났다 탄핵에 나서라" "검찰독재 민주파괴 윤석열을 탄핵하라" "이대로는 못살겠다 윤석열 정권 갈아엎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20일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 99차 촛불대행진 7월 전국집중촛불에서 '백금렬과 촛불밴드'가 빗속에 공연을 하고 있다. 2024.7.20. 이호 작가

 

정리집회는 '백금렬과 촛불밴드'의 <뱃놀이> 우중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행진을 마친 시민들은 빗속에서도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고 "어기야디여차" "어이야디야"라고 후렴을 부르며 끝까지 함께 했다.

오는 27일 100차 촛불대행진은 서울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열린다.  < 김성진 기자 >

미 수사기관,  10년간 국정원 - 수미 테리 활동 감지
대선 4달 앞두고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 기소

“각국에  ‘로비 말라’  사전 경고 시범케이스”  분석
지난해 대통령실 도감청 노출 ‘보복성 대응’ 가능성도

 
 
2021년 4월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함께 고가의 가방을 구입한 뒤 거리로 나서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국계 미국인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에 따라 신고하지 않은 채 한국 정부로부터 금품을 받고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을 한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이 미국인이고 미국 실정법 위반 혐의에 대해 미국 사법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공식 언급을 꺼리고 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만 답했다. 조현동 주미대사도 이날 기자들 질문에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다. 국가정보원은 사안이 공개된 직후 “외국대리인등록법 기소 보도와 관련해 한-미 정보 당국은 긴밀히 소통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 사건을 둘러싼 궁금증은 △미 검찰 기소 내용대로 국가정보원(국정원)이 한번에 수백원만원어치 선물과 불법적 경로의 연구기금을 제공한 것이 맞다면 국정원 해외 정보활동 방식이 적절했는지 △은밀성이 생명인 국정원의 해외정보활동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노출된 점을 어떻게 봐야할지 △미국이 왜 지금 한국의 정보활동을 문제삼았고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등이다.

미국 검찰은 전날 공개된 공소장에서 수미 테리가 2013년부터 최근까지 한국 정부로부터 금품을 제공받고 한국 정부에 정보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각 나라의 정보기관들은 해외에서 국가안보를 위한 불법활동을 비밀리에 수행하고 있다. 국정원 해외파견요원들은 세계 50여개 거점 도시에서 공사, 참사관 같은 외교관 신분이나 상사원으로 위장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이 정보 수집과 공작이다. 각국 정보기관이 외교로 해결할 수 없는 악역을 해외에서 비밀리에 수행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정원이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에게 정보를 얻은 행위를 미국 실정법을 어긴 불법이라고만 비난하기 어렵다.

미 연방 검찰이 16일 중앙정보국(CIA) 출신 대북 전문가인 수미 테리를 한국 정부를 대리한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외교부에서 열린 탈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회에서 수미 테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어야 할 국정원의 활동이 드러난 점이다. 미국 검찰의 기소장에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파악한 수미 테리와 국정원 요원의 대화 내용과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요원이 노출된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감찰이나 문책이 진행 중이냐’는 질문에 “감찰이나 문책을 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정권을 감찰하거나 문책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지적이고,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이) 사진에 찍히고 한 게 다 문재인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당시 문재인 정부가 정권을 잡고 국정원에서 전문적인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요원들을 다 쳐내고,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로 채우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미 정부에 신고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한 혐의로 기소하고 지난 16일(현지시각) 공소장을 공개했다. 31쪽에 이르는 이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10여년에 걸쳐 한국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고급 식사와 고가의 의류, 핸드백, 고액의 연구비 등을 받았다고 적시하고 있다. 공소장은 테리 연구원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문자, 그가 어떤 접대를 받았는지 등을 사진까지 담았다. [연합]

 

이 주장과 달리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의 활동은 박근혜 정부 때 시작했고, 지난해 3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칭송하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외교부의 요청을 받고 작성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주장처럼 이번 일을 문재인 정부 일·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

미국 내 외국 정보기관의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정보수집 활동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미국은 왜 지금 문제를 삼았을까. 미국 검찰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 기소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각국 정부의 민주·공화당 대선 후보 진영을 상대로 한 정보활동과 로비를 제어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 기관 출신의 전직 정부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에 “11월 대선을 앞두고 각국 정부의 미국 내 정보 활동과 로비를 견제하려는 사전 경고 발신용 시범 케이스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수미 테리 사건을 맡은 데이미언 윌리엄스 미국 뉴욕 남부지검장은 자료를 통해 “공공 정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외국 정부에 팔고자 할 때 두 번 생각하고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숱한 외국 정보기관 활동 가운데 하필이면 동맹국인 한국을 표적으로 삼았냐는 것이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인사는 “일본과 중국에 비하면 한국의 정보활동은 미미한 수준인 현실을 고려할 때 ‘표적 감시’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미국 정보기관의 서울 용산 대통령실 도·감청 등 정보 활동이 노출된 데 대한 ‘보복성’ 대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미간 ‘정보 갈등’을 둘러싼 보복 대응(추정)은 선례가 있다. 지난 1996년 9월24일 미 해군정보국에 근무하던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김이 북한 잠수정 강릉 침투경로를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에게 알려줬다 체포됐다. 한국은 1997년 4월 무기 구매를 맡은 공군 중령이 미국인 무기 중개상과 동업을 조건으로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적발해, 미국인 등 5명을 처벌했다. 로버트 김 사건과 7개월 간격을 두고 벌어진 미국인 무기중개상 사건을 두고 당시 야당에선 미국에 대한 보복대응이란 주장이 나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물론 한반도 전문가 등과 긴밀한 소통이 절실한 상황에서, 수미 테리 사건으로 한국의 대미 정보 활동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정보 기관 출신의 전직 정부 핵심 관계자는 “미국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이 한국 쪽과 접촉을 피하려 할 것”이라며 “수미 테리 사건의 악영향이 심각할 듯하다”고 말했다.                                           < 권혁철 이제훈 이승준 기자 >

 

수미 테리에 ‘윤석열 결단 칭송’ 칼럼 로비…“한국이 준 내용 그대로”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 활동 이어져
공소장에 서훈 국정원장 행적까지 나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해 3월 한국 외교부 로비를 받아 워싱턴포스트에 쓴 ‘한국이 일본과 화해를 위해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다’(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는 제목의 칼럼. [워싱턴포스트 누리집]

한국 정부를 위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검찰에 의해 기소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한국계 북한 전문가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 사건이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미국 고위급 관계자들과 한국 국가정보원의 정보활동 적절성 논란으로 확대될 조짐이다. 국정원장을 포함한 고위직 인사들의 행적과 발언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허술한 처신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남부지검이 공개한 공소장에는 테리 연구원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정 박 전 미국 국무부 대북고위 관리 겸 부차관보로 추정되는 한반도 문제 담당 미국 고위 관리가 등장한다. 테리 연구원이 2021년 4월16일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전에 중앙정보국과 국가정보위원회(NIC) 고위급을 역임했고 한국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부 고위 당국자와 테리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정 박 전 부차관보의 이력과 겹친다. 그는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 한국 담당 부정보관, 중앙정보국 동아태 미션센터 국장을 지냈고 당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 일하던 때였다. 정 박 부차관보가 지난 5일자로 돌연 사임을 한 배경에도 테리 연구원의 혐의가 연결됐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한국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의 행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공소장에는 ‘2018∼2019년 한국 정보 관리들에게 미국 국가안보 관료들의 만남을 제공했다’는 제목으로 이 기간 테리 연구원이 국정원 고위 관료들과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함께 만났던 사실이 적시돼 있다. 테리 연구원이 2019년 1월15일 국정원 요청을 받아 소속돼있던 싱크탱크에서 비공개회의를 꾸렸는데 여기엔 “한국 국정원장(Director of the ROK NIS)과 국정원 관계자들, 미국 국가안보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고 돼 있다.

2021년 4월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미 워싱턴에서 국정원 요원과 함께 고가의 가방을 구입한 뒤 거리로 나서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이 회의엔 당시 국정원 수장이던 서훈 원장이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의에서 국정원장은 미국 관계자들 앞에서 미국과 북한 지도자의 관계를 포함한 북한 정책에 대해 발언했고, 이후 국정원 요원이 테리 연구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매우 좋았다”, “행사를 꾸리기 위한 노력”에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때이며, 해당 회의 40여일 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후 미국 쪽 정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수사한 연방수사국(FBI) 요원 면담에서 해당 회의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했고, 해외 정보기관의 수장을 만나기 위해 싱크탱크에 초대된 다른 사례는 생각할 수 없다고 증언했다고 공소장에 적혀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그의 활동은 박근혜 정부 때 시작됐으며 문재인 정부를 거쳐 윤석열 정부 때도 이어져왔다.  그는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이 대법원 강제동원 배상 판결 문제에 대해 일본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내용인 제3자 변제 방식을 통해 대일 관계를 개선을 시도한 것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한국 외교부로부터 받았다. 요청을 받은 뒤  “내가 칼럼을 쓸 수 있게 관련 정보를 달라”는 문자를 보낸다. 그는 이후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이 일본과 화해를 위해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는다’(South Korea Takes a Brave Step Toward Reconciliation with Japan)는 제목의 칼럼을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와 공동으로 게재했다. 그는 이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데도 내린 결단으로 묘사했다. 공소장은 해당 칼럼의 상당수가 한국 정부가 테리 연구원에게 제공한 내용과 일치(broadly consistent)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테리 연구원이 이후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낸 것도 드러났다.

국정원이 엮인 사건의 구체적 정황이 미국 연방검찰을 통해 대중에게 이례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의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향후 한-미 정보당국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전날 “한-미 정보당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고,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해당 사건과 관련 ‘한국 정부와 논의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2020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한 식당에서 한국 국가정보원 관계자들과 식사하는 모습. [미 연방검찰 공소장]

< 김미나 기자 >

한국 정보당국과 연계 드러나…한미간 원활한 정보교류에 영향 주목

 

                                 미 검찰에 의해 기소된 미국내 대북전문가 수미 테리 [연합]
 

미국에서 손꼽히는 한반도 전문가 중 한 명인 수미 테리 박사가 한국 정부를 위해 활동한 혐의로 미국 검찰에 의해 형사기소됨에 따라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관 출신인 그는 미국외교협회(CFR) 등 싱크탱크에 몸담으면서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반도 문제 관련 각종 세미나에 패널로 단골 출연하고, 방송 논평가로도 나서며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북한 주민의 험난한 탈북 과정을 다뤄 국제적으로 호평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법원 서류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비공개'를 전제로 미국 정부 당국자로부터 받은 정보를 한국 정보 당국과 공유하고, 한미 정부 관계자들간의 미팅을 주선하는 등 활동을 하면서 한국 정부 측으로부터 저녁 식사와 명품 핸드백 등을 대가로 제공받은 혐의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미 테리 박사의 변호인은 그에 대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윤석열 정부와 미국 바이든 행정부 사이에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공조 강화, 경제안보 협력 강화 등으로 한미관계가 순항하고 있는 시기에 불거진 이번 사안은 워싱턴의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미국 수사 당국은 한국 정보 기관이 이번 사안에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어 앞으로 한미간의 원활한 정보 교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어 보인다.

한미관계와는 별개로 단순 '법 집행 사안'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은 미국 국적을 가진 전현직 미국 공무원이 '모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행위를 하는 데 대해 엄정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런 배경 속에, 미국 국적자인 수미 테리 박사에 대해 한미관계 등에 대한 정무적 고려없이 수사 및 기소가 진행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이번 사건은 미 해군정보국 컴퓨터 분석관으로 일하던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 사건'과는 결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버트 김 씨는 해군정보국에서 일하던 시기에 미국 정부기밀을 주미한국대사관 관계자를 통해 한국 정부에 넘긴 혐의로 1996년 체포된 뒤 간첩죄로 기소돼 징역 9년에 보호감찰 3년형을 선고받았다.

반면 수미 테리 박사는 현직 공무원이 아닌 만큼 현직에 있으면서 정보를 유출한 사례와는 결이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싱크탱크에서 일하기 전까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CIA를 포함한 미국 정부 기관에서 근무한 전직 공무원이다.

법원 서류에도 적시돼 있듯, 대북 전문가로서 미국 외교 당국자로부터 비공개를 전제로 입수한 정보를 한국 측에 제공한 것 등이 위법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직을 떠난지 10년 이상 경과한 그가 정부 기밀을 상시적으로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미관계 소식통은 16일 "일차적으로 로비스트로 등록하지 않은 채 외국 정부를 돕는 행위를 한 데 대한 단속 차원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아직은 기소 단계인 만큼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변론 등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반도에서 중대 이슈가 발생할 경우 미국과 한국이 각각 또는 공동으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 양국간 정보 교류 및 현안분석에 있어 가교 역할도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일로 다른 전문가들의 활동도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 연합= 조준형 특파원 >

기소된 수미 테리, 미국내 대표적 한국계 대북전문가

CIA 분석관·국가안보회의 국장 역임 후 외교협회 등 싱크탱크서 활동

 수미 테리
 

미국 검찰이 한국 정부를 위해 정보 수집 등의 활동을 한 혐의로 16일 기소한 수미 테리는 한미 양국에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대북 전문가다.

서울 출생인 테리(한국명 김수미)는 어릴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하와이와 버지니아주에서 자란 미국 시민권자다.

뉴욕대에서 정치학 학사학위를, 터프츠대 외교전문대학원 플레처스쿨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01∼2008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으로 근무했다

조지 W. 부시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 전환하던 시기인 2008∼2009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국·일본·오세아니아 담당 국장을 맡았다.

이후 2009∼2010년 국가정보위원회(NIC)에서 동아시아 담당 분석관을 역임했다.

이런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싱크탱크와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러 주류 언론에 글을 쓰고 인터뷰했으며,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도 여러 번 증언했다.

그는 2017∼2021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2021∼2023년 윌슨센터에서 아시아 프로그램과 '현대차-국제교류재단(KF) 한국 역사·공공정책 연구센터' 국장을 맡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으로 선정되면서 전문성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CFR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력을 보면 그는 미국 터프츠대, 조지타운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시카고대와 한국의 서울대에서 가르친 경험이 있다.

그는 탈북 과정을 담은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의 공동 프로듀서로 이 영화가 작년 각종 영화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그는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등과 함께 대표적인 한국계 대북 전문가로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정부 당국자들이 자주 만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지난 5월에 열린 제주포럼에 참석하는 등 최근까지도 한국과 교류가 활발했다.  < 연합= 김동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