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당국, 규모 최소화한 훈련 실시 준비중

한-미 정상, 막판 중단 결단 내릴지 주목

 

한-미 연합군사훈련 실시를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5일 경기도 동두천시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에서 미군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 하반기 남북 관계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떠오른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집단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 한-미 군 당국은 ‘규모를 최소화해 진행한다’며 훈련 실시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지만, 양국 정상 차원의 막판 결단에 따라 극적인 방향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더불어민주당·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 등 의원 72명은 5일 공동성명을 내어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조치로서 훈련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남북의 통신선 전격 복원을 언급하면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면서 “(훈련 연기를) 북한의 상응 조치를 끌어내는 협상 카드로 사용해 모처럼 찾아온 대화 기회를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협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급속한 코로나19 확산세도 훈련을 미뤄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성명에 참여한 진성준 의원은 “실무적으로 (훈련) 준비가 이뤄졌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게 아니다. 하루 전이라도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정치적 결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무조건 훈련을 미루자는 게 아니라 만나서 대화하자고 조건부로 연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2018년 초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전격 가동된 데는 평창겨울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도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누차 말했듯 아직까지 (훈련의) 시기나 규모,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한-미는 각종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군 차원에선 병력의 실기동이 이뤄지지 않는 하반기 연합지휘소훈련 규모를 최소화해 16일부터 실시하는 쪽으로 준비를 진행 중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 역시 최근  “실무 준비가 너무 진척돼 이제 와 결정을 뒤집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내부 사정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훈련 중단’을 요구한 1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 대해서도 정부의 운신 폭을 줄이는 부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한-미 간의 신뢰를 기초로 남북 관계를 풀어가야 한다”며 “합의된 훈련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 주장하듯 한-미 정상 차원에서 연합훈련 연기를 결론 내려면 조만간 한-미 정상 간의 전화 회담 등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보고에서 국방부에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신중하게 협의하라”고 지시하는 등 정상 외교를 통한 접근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길윤형 송채경화 심우삼 기자

“후쿠시마 원전 노심 용융되고 수소 폭발로 지붕 날아갔는데 무슨 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은평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주 120시간 노동 허용, 부정식품 옹호 발언 등으로 논란을 빚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이번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윤 전 총장은 4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은 세계적으로 원전 최대 밀집지역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입장이 다른 지역과 다를 수 있다. 원전 확대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 원전 안전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 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원전이 체르노빌하고 다르다.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하고 해일이 있었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 일본 동북부 지방에 발생한 대규모 지진과 해일로 일본 후쿠시마현 소재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 사고다. “방사능 유출이 안 됐다”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이 발언은 이날 저녁 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뒤 4시간여 만에 삭제됐지만 누리꾼들이 이를 지적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윤 전 총장 인터뷰 아카이브 화면 갈무리. 파란색 부분이 인터뷰에서 삭제됐다.

 

윤석열 캠프는 발언이 축약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캠프 관계자는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설계 안정성 때문이 아니라 지진·해일 때문에 피해가 생겼다는 것을 얘기하려다 말을 축약하다 보니 그렇게 전해졌다”며 “우리나라는 지진이나 해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고, 설계도 좋아졌는데 원전을 안 한다고 하는 건 문제가 많다는 발언을 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석열 캠프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어 “인터넷판에 처음 올라온 기사는 후보의 의도와 다르게 반영됐다. 의미가 다르게 전달됐을 경우 서로 조정할 수 있는 문제”라며 “인터뷰 보도 과정을 두고 공세를 벌이는 것은 비열한 정치 공세”라고 적반하장의 날을 세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윤 전 총장이 방사능 유출 등 아주 기본적인 사실조차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내부 노심이 용융되고 수소 폭발로 지붕이 날아갔는데 붕괴되지 않았다니 무슨 말인가. 방사능 유출 사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일본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이 이처럼 ‘원전 실언’을 한 데엔 문재인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려다 보니 원전의 안전성·필요성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논리에 함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지난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카이스트 원자력 전공생들을 연이어 만나 “무리하고 성급한 탈원전 정책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원자력 에너지라는 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천만한 것이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일본의 지반과 관련한 문제이지 원전 자체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탈핵에너지학회장인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는 “친원전 진영의 논리가 늘 ‘과학자를 믿어라’ ‘안전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주장만 해서는 합리적 토론이 어렵다. 윤 전 총장이 이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나래 최우리 기자

 

민주 '후쿠시마 발언' 윤석열 맹공…"일본 대선 나가냐"

 "일 극우 수석대변인"  "아베스럽다"  "아무말 대잔치"

  최엔 "1일1공부나 하라…대통령 되면 국기하강식 부활"

 

더불어민주당은 5일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말실수를 거듭 부각했다.

 

특히 윤 전 총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을 도마 위에 올렸다. 해당 발언은 온라인에 공개됐다 뒤늦게 삭제됐다.

 

한병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방사능이 유출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무지하고 편향된 사고로, 위험하다. 심히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대권주자도 직접 비판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SNS에 "이번 망언을 보니 일본 극우 인사가 과외 선생님이었나 보다"라며 "대통령 후보가 잘못 배우면 나라가 위험해진다. 일본 극우 정치인조차도 대놓고 하지 못하는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이 지사는 "국민의힘과 이준석 대표는 윤 전 총장 발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달라"며 "이번 망언에서 일본 극우세력 수석대변인의 모습을 본다. 더 지켜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대선은 '아무 말 대잔치'가 아니다. 일본 총리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며 "지적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셀프 디스'는 이쯤 하면 국민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총리 캠프의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쩍벌남의 1일 1망언 대행진, 오늘도 이어진다"라며 "무지에, 사실왜곡에, 기사삭제까지. 준비 안 된 검사정치, 선무당이 국민 잡을라"라고 적었다.

 

이낙연 전 대표 측근인 이개호 의원은 "소문대로 1일 1망언이 목표인가"라며 "윤 아무개 이 사람,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의원은 "일본 대선에 나가느냐. 1일 1구설수, 이제 비판도 지겹다"며 "없는 사람들은 후쿠시마산 부정식품도 먹어야 하는가. 참 아베스럽다"라고 비꼬았다.

 

대선 출마 선언하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겨냥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정책조정회의에서 "국정 현안 관련 질문에 공부하겠다는 (최 전 원장의) 답변은 올림픽 출전 선수가 이제부터 연습하겠다는 것"이라며 "국정운영 비전 없이 민생을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 지사 캠프의 이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경선 경쟁자인 윤 전 총장의 '1일 1망언'을 기억하고 '1일 1공부'라도 하라"고 비꼬았다.

 

김한정 의원은 "이분이 대통령이 되면 국기 하강식이 부활할지도 모르겠다"며 "출마 회견도 엽기였다. 답변하기 어렵다는 이런 분이 감사원장에 오른 것부터 공직 인선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 아닐까"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 전 원장이 '조국 사태'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했다고 평가한 것을 두고 "정치 초년생으로서 너무 빨리 정치물이 들어 그저 안타깝다"고 직격했다.

 

추 전 장관은 "상식을 벗어난 일탈을 일삼고 언론에 침소봉대해 명예를 훼손하고 인권을 짓밟은 과도한 수사와 기소에 대해 헌법기관 출신으로서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했던 것이라고 평가하는 게 가당키나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정부 한 번 사과로 해결될 문제 아냐…끝없이 얘기하고 소화해야"

"일본 정부, 독일 정부 자세와 유대인 학살 다루는 기억 문화 본받아야"

 

"소녀상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반일이 아니라 기억의 문화인데, 일본의 압박은 직접 겪어보니 놀라운 수준이었습니다"

 

독일 공공박물관 중 처음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기획한 레온티네 마이어 판멘쉬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은 1일 인터뷰에서 전시된 소녀상 철거를 위한 일본의 전방위 압박에 혀를 내둘렀다.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과 큐레이터= 레온티네 마이어 판멘쉬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장(오른쪽)과 바바라 회퍼 독일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큐레이터(왼쪽).

 

일본군 위안부 피해와 해결 노력을 다루면서 이동식과 청동 등 2개의 소녀상을 선보인 '말문이 막히다-큰 소리의 침묵' 전시회는 이날 3개월 반의 대장정을 마감했다.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일본의 압박은 지난 4월 14일 전시회 개막 기자회견 하루 전날 주독일 일본대사관 문화담당 공사의 소녀상 철거 요청 서한부터 시작됐다.

 

판멘쉬 관장은 "소녀상 철거 요청은 전시회 전날부터 폭풍우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면서 "일본인, 미국인, 독일인 등 다양한 국적의 시민을 자처하는 이들로부터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이메일을 하루에 100통 넘게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와 시, 연방정부 차원에서 전방위로 압박도 있었다"면서 "외교적 차원까지 간 것"이라고 말했다.

 

바바라 회퍼 큐레이터는 "이메일 폭탄이 쏟아진 것 외에 사무실 전화통에도 불이 났다"면서 "전시회 바로 다음 날 전화를 한 한 일본인은 전시장소인 드레스덴과 멀리 떨어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산다면서 우리가 소녀상을 전시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 민속박물관 측은 직원들에게 매일 수백통씩 쏟아진 소녀상 철거 요구 이메일 폭탄에 대해 관할 작센주 범죄수사국에 수사 의뢰했다.

 

주독일 일본대사관 측에는 이메일 발송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했지만, 자신들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박물관 측이 독일 외교부를 통해 대사관 측에 재차 이메일 발송 중단을 요청하자 이틀 후 이메일 발송이 중단됐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독일 공공박물관에 처음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특별전시관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판멘쉬 관장은 "진정 황당한 것은 우리가 소녀상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반일이 아니라는 것"이라며 "위안부를 비롯해 트라우마적 기억에 대한 침묵 깨기를 통해 개인적 기억과 집단적 기억간 상반되는 요소들을 소화하는, 기억의 문화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한 첫 공개증언을 시작으로 다른 피해자들이 공개 증언에 나선 이후 이어진 시민사회의 해결 노력은 '기억의 문화'로서 본보기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나치 치하 드레스덴에서 유대인 학살, 나미비아에서 독일제국의 20세기 최초 종족 말살,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유고슬라비아 전쟁범죄, 호주 원주민 카우르나족의 몰수 피해 등 말문을 막히게 하는 트라우마를 정조준했다.

 

전시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독일 정부는 110여년만에 나미비아에서 종족학살을 자인하고 용서를 빌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터키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로 공식 인정하고 숨진 모든 이들을 기리겠다고 밝혔다.

 

 

독일 공공박물관에 전시된 소녀상= 독일 공공박물관 중 최초로 드레스덴 박물관연합 특별전시관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회퍼 큐레이터는 "예술을 통해 이런 문제를 계속 보여주는 것은 힘겹고 오래 걸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는 변화를 가져온다고 본다"고 말했다.

 

판멘쉬 관장은 "일본에 기억의 문화에 대한 논의에 공식 라운드테이블이나 토론회 등을 통해 참여하라고 제안했으나, 이는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각종 트라우마를 다룬 우리가 본보기로 지향한 것은 유대인 학살을 다루는 독일의 기억 문화"라면서 "일본 정부는 독일 정부의 자세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은 한국 정부에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한 번 얘기하고, 한 번 사과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끝없이 얘기하고 또 얘기해서 개인적 기억과 공동체적, 국가적 기억 사이에 상반된 감정과 긴장을 소화하고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념 촬영하는 독일 공공박물관 소녀상 전시 부부작가= 1일 독일 드레스덴 박물관 연합 특별전시관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후 폐막식에서 참가자들이 평화의 소녀상에서 부부 조각가 김서경·김운성 작가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판멘쉬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전시회를 개막하기 전부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매일 수백통의 이메일 폭탄 속에 압박이 실제로 닥쳤을 때 제대로 자세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지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시를 본 관객들은 위안부 문제는 물론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고, 어마어마한 공감과 공명이 이뤄졌다"면서 "전방위 압박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시 전시회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전시회를 하고, 소녀상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녀상 전시는 매우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그 변화는 현재진행 중"이라며 "많은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했고,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이동식 소녀상은 휠체어를 타고 드레스덴 시내 곳곳을 활보했고, 많은 시민과 대화를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박물관장으로서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앞으로도 소녀상처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탈식민주의와 관련된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1056곳 반대회견  “허가는 ‘촛불’ 역행, 문 정부 존재 부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 심사대상에 오른 것을 두고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를 둘러싼 가석방 시도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수감 중인 이 부회장을 가석방하는 것은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1056개 시민사회단체는 3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어 “이 부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허가한다면 시민들의 분노와 반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죄를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고,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범죄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부는 오는 9일 가석방심사위원회를 열어 이 부회장 등의 가석방 적격 심사를 할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이 심사에서 통과하면 오는 13일 가석방된다.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 정신’에 역행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들은 “이 부회장의 가석방은 문재인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며 촛불의 명령에 명백히 역행하는 행태”라며 “국정농단 단죄는 정경유착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중심으로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 심사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특혜’란 비판이 나온다. ‘불법승계 의혹’ 및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별도의 재판을 받는 이 부회장과 같은 조건의 일반인이라면 가석방 예비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법무부의 가석방 업무지침을 보면, 교정시설의 장은 예비심사대상자가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한 검찰이나 법원 등의 의견을 조회해 예비심사에 반영해야 한다. 통상 진행 중인 수사나 재판이 있더라도 사건이 가벼우면 가석방 예비심사를 통과할 수 있지만, 사안이 무거워 구속 가능성이 있으면 가석방으로 풀어줘도 다시 구속될 수 있기 때문에 신병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가석방 예비심사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수사나 재판이 진행돼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검찰 등 의견을 받으면 가석방 예비심사 대상에 올릴 수 없다”며 “수감자가 가석방됐을 때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따지고, 재범 가능성 여부도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는 관련 공판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쪽 의견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재범 가능성’ 또한 낮지 않아, 가석방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월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며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준법감시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김남근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개혁입법특위 위원장)는 “재벌 그룹의 경우, 총수가 지시만 하면 불법이 이뤄질 수 있다”며 “재판부가 지적한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귀한 이 부회장이 위법한 지시를 해도 견제할 시스템이 없다. 재범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애초 이 부회장이 받은 형량이 ‘예비된 특혜’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받은 징역 2년6개월형이 가석방을 염두에 둔 판결이라는 것이다.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 쪽은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당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86여억원을 횡령해 뇌물을 공여한 혐의를 인정했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50억원 기준을 넘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범행이 대통령 부탁을 받고 소극적으로 행해진 점’ 등을 들어 최소 양형에도 미치지 않는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형기 상당수를 복역한 이 부회장은 지난달 28일 기준으로 형기의 60%를 채워 법무부의 가석방 심사대상에 오를 수 있었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전 금융감독원 원장)은 “요건이 갖춰지면 재벌 총수라도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당시 재판부는 올해 중순 가석방이 가능하게 최대치로 형량을 감형해 판결했다. 이후 공교롭게도 법무부는 가석방 요건을 완화했고 이 부회장은 그 수혜자가 됐다. 국민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