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긴급 안보회의 주재 “남북 군사통신선 복구·재가동을”
북 “서남해상에서 수색” 밝히며 “남쪽은 영해 침범 말라” 경고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서 총격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우리 측에 공식으로 사과하고 이틀이 지난 27일 이른 아침 북측 등산곶이 보이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해병대원들이 해상 정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이 북한군에 의해 피격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북쪽에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고 서주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이 발표했다. 북쪽은 이날 이른 아침에 북쪽 수역에서 주검을 찾으면 남쪽에 인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주석 사무처장은 대통령 주재 회의 ‘결정 사항’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북쪽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남과 북이 각각 파악한 사건 경위와 사실관계에 차이점이 있다”며 ‘공동조사 요청’ 제안을 공식화했다.
청와대는 “남과 북이 각각 발표한 조사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사실관계를 밝혀내기 바란다”며 “이를 위한 소통과 협의, 정보 교환을 위해 군사통신선의 복구와 재가동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시신과 유류품 수습은 사실 규명을 위해서나 유족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배려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며 “남과 북은 각각의 해역에서 수색에 전력을 다하고 필요한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협력해나가길 바란다”고 서 처장은 밝혔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공동조사’를 공식 요청하기로 결정하되, ①남과 북 각각 해역서 수색→②군 통신선 복원·재가동→ (남북 협의를 거친) 공동조사의 수순을 북쪽에 공식 제안한 셈이다.
이에 앞서 북쪽은 이날 이른 아침 ‘조선중앙통신사 보도’ 형식을 빌려 “우리는 서남해상과 서부해안 전 지역에서 수색을 조직하고, 시신을 습득하는 경우 관례대로 남측에 넘겨줄 절차와 방법까지도 생각해두고 있다”고 밝혔다. 북쪽은 “최고지도부의 뜻을 받들어 북과 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훼손되는 일이 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필요한 안전대책들을 보강했다”고도 했다.
다만 북쪽은 “남조선 당국에 경고한다”는 제목의 이 ‘보도’에서 “우리 해군 서해함대의 통보에 의하면 남측에서는 25일부터 숱한 함정, 기타 선박들을 수색작전으로 추정되는 행동에 동원시키며 우리측 수역을 침범시키고 있다”며 “남측의 행동은 또 다른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케 한다”고 짚었다. 이어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이에 엄중히 경고한다”며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 군사분계선 무단 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상 수색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며 “우리가 일부러 우발적 상황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엔엘엘(NLL·북방한계선) 부근에서 중국 어선 등 수십척이 조업 활동 중”이라며 “그걸 통제하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서주석 처장은 “중국 당국과 중국 어선들에 시신과 유류품의 수습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이 그어진 육지와 달리, 바다에선 정전협정과 국제법에 따라 인정되고 남북이 공식 합의한 ‘해상 경계선’이 확정되지 않아 남북 사이의 갈등과 충돌이 되풀이돼 왔다. 이번 사건이 남북관계의 아킬레스건인 서해 해상경계선 갈등·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남북 당국 모두 상황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 이제훈 김지은 서영지 기자 >
문 대통령 전면에 나서…‘진상규명 공조’ 통해 돌파구 찾기
서주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27일 오후 대통령 주재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 관련 브리핑을 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청와대는 27일 어업지도원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한 공동조사를 북한에 공식 요청하면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회의의 주재자가 문재인 대통령임을 분명히 밝혔다. 야당이 사건 직후 청와대의 상황 판단과 의사 결정 과정을 집요하게 문제삼으면서 ‘대통령 실종’까지 언급하자, 더 이상 무대 뒤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북쪽이 대통령까지 나선 공동조사 요구를 쉽게 거부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부터 4시30분까지 서욱 국방부 장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참석한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실종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총격을 당해 사망한 지 4일 만이다. 이날 문 대통령 주재 회의 뒤 나온 메시지는 지난 25일 북한 통일전선부를 통해 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메시지에 대한 답변의 성격이 강하다. 서주석 국가안보실 1차장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의 신속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 발언이 담긴 통일전선부 통지문에 대한 청와대의 첫번째 공식 반응인 셈이다.
메시지의 핵심 요구 사항은 ‘공동조사’다. 청와대·정부에 대한 불신과 악화된 대북감정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러면서도 공동조사단을 꾸리자는 식으로 조사 자체를 급박하게 채근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수역에서 주검 수색에 나서되 수색 상황과 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군 통신선을 복구해 정보를 교환하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도 야당과 보수진영에서 ‘대통령의 행적’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지난 23일 새벽 1시에 실종 공무원과 관련해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열면서도 문 대통령에겐 다음날 오전 8시30분에야 대면보고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를 두고 야권과 보수진영에선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빗대 문 대통령을 공격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이날 ‘정치적 승부수’를 띄운 모양새가 됐다. 최고 통치자를 앞세워 북한에 공동조사와 이를 위한 군사통신선 복구를 요청했는데, 북한이 이를 거부한다면 정치적 타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사전 교감은 아니더라도, 자체 검토 결과 북한이 이를 받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직접 미안하다고 공식 사과를 했는데,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 요청을 못 받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싶다”며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동조사가 이뤄지더라도 각자가 조사한 내용을 서면이나 통신으로 교환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앞서 김 위원장이 청와대 앞으로 보낸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의 통지문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 같은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상경계 감시와 근무를 강화하며, 단속 과정에 사소한 실수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는 해상에서의 단속 취급 전 과정을 수록하는 체계를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 서영지 기자 >
정부 ‘남북 통신선 재가동해 수색 정보교환’ 타협책 제안
26일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찰이 해양수산부 서해어업관리단 소속 공무원의 시신과 소지품을 찾는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이 북한군에 피격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남북 당국은,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주검 조기 수습 등 실체 규명의 접점을 찾으려 부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남쪽의 격앙된 여론과 북쪽의 ‘서해 해상경계선 문제’ 거론 등은 남북관계를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를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해 결정한 “조속한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조사 요청”에 대한 북쪽 반응이 사태 추이와 남북관계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남과 북 어느 쪽이든 어업지도원의 주검을 조기에 찾는다면 남북 당국의 선택지가 넓어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이날 아침 북쪽은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북쪽 서해안 모든 지역 수색’과 ‘주검 수습 때 남쪽 인도’ 방침을 밝혔다. 이는 사건 발생 이후 북쪽의 첫 공식 설명인 25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전화통지문’에서 한 발짝 더 진전된 구체적인 반응이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전날인 26일 “추가 조사 실시”를 언론을 통해 공개 요구한 데 대한 ‘1차 반응’의 성격도 지닌다.
주검 수습과 관련한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요구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상황 전개에 따라선 남쪽의 ‘추가 조사 실시’ 요구에 북쪽이 어떤 형식으로든 응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앞서 북쪽이 ‘통일전선부 전통문’에서 “현재까지 우리 지도부에 보고된 사건 전말 조사 결과”라거나 “일부 군인들의 진술”이라는 표현으로 ‘최종 조사 결과’가 아님을 내비친 사실로 미뤄, 북쪽이 ‘추가 조사 결과’를 남쪽에 알려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건 실체를 둘러싼 남북의 이견은 상당하다. 굵직한 것만 추려도 △주검 훼손 여부(남 “기름을 부어 40분간 불태워”-북 “사살(추정) 뒤 (주검)유실, 부유물만 소각”) △사살 명령 주체(남 “해군 계통(해군사령관) 지시”-북 “(단속)정장의 결심”) △월북 의사 표명 여부(남 “월북 진술”-북 “단속 명령 불응, 도주할 듯한 상황”)를 두고 양쪽 설명이 엇갈린다.
정부가 이날 양쪽의 기존 조사 결과에 “구애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사실관계를 함께 밝혀내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까닭이다. 아울러 정부는 “각각의 해역에서 수색에 전력을 다하자”며 “소통·협의·정보교환을 위한 군사통신선 복구·재가동”을 북쪽에 공개 요청했다.
이날 대통령 주재 회의의 결정 사항은 △남과 북 각각 해역에서 수색 △군 통신선 복원·재가동 △(남북 협의를 거친) 공동조사를 포함한다. 주목할 대목은 정부의 표현이 “공동 현장 조사”가 아닌 “공동조사”라는 사실이다. 군 통신선 재가동으로 “소통·협의·정보교환”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남북이 각각의 해역을 수색해도 ‘공동조사’라는 판단이 메시지에 담긴 듯하다. 국회·여론의 눈높이에 맞추며 북쪽의 수용성을 높이려는 고심의 흔적이다.
정부는 애초 사건 발표 첫날인 24일 북쪽에 △해명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조처 등 4가지를 공식 요구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대단히 미안하다”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담긴 ‘통전부 전통문’으로도 이견이 해소되지 않자, “추가 조사 실시 요구”를 거쳐 “공동조사 요청”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정부가 ‘공동조사’를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우지 않은 데에는, 이런 식의 ‘돌발 사건’과 관련한 남북 공동조사의 선례가 없다는 부담이 작용한 듯하다. 예컨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땐 남쪽의 ‘남북 당국 현장 공동조사’를 북쪽이 거부했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땐 북쪽의 ‘국방위원회 검열단 파견과 공동조사’ 제안을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 탓에 북쪽이 ‘공동조사’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많다. 다만 정부의 ‘공동조사’ 제안이 ‘현장 조사’를 적시하지 않고 ‘소통·협의·정보교환’에 방점을 찍은데다, 김정은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는 등 북쪽의 전례 없는 태도에 비춰 ‘새로운 선례’의 창출이 전혀 불가능하진 않으리라는 기대도 나온다. < 이제훈 기자 >
북, NLL 이남으로 경계 설정.. 남쪽 수색작업에 “무단침입”
북, 1999년 ‘서해 분계선’ 일방선포…“다시 의제화” 해석도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어업지도원 주검을 찾기 위해 북방한계선(NLL) 남쪽에서 작업 중인 우리 쪽 선박을 향해 북한이 ‘수역 침범’을 이유로 ‘즉각 중단’을 요구해 해묵은 서해 해상경계선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우리는 남측이 새로운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서해 해상군사분계선 무단침범 행위를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날 언급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은 북한이 1999년 9월 선포한 ‘조선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계선은 1차 연평해전 발생 3개월 뒤 조선인민군총참모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경계선으로, 북한 황해도와 우리 쪽 덕적군도의 등거리선을 한강 하구 남북 경계선과 연결한 선이다. 북한은 이 선을 기준으로 남쪽이 자기 수역을 ‘침범’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군은 그동안 실효적 지배를 해온 서해 북방한계선 남쪽 수역에서 수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 당시 합의하지 못한 해상경계선을 이후 유엔군사령관이 설정한 것으로,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불가침부속합의서 합의에 따라 북한도 사실상 서해 북방한계선을 존중하기로 했으나, 북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서해 해상경계선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2019년 9·19 군사합의에서도 서해 평화수역 설정과 관련해 ‘북방한계선’이라는 문구만 들어가고 명확한 정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이날 보도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추가적인 충돌’을 방지하는 한편 북한이 군사분계선 문제를 다시 의제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시신을 찾으면 보내겠다’고 한 걸 보면 나름의 의지가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군사적 접근은 안 된다는 표현”이라고 분석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서해 경계선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추가적 (충돌) 상황을 피하려는 방어적인 움직임”이라고 말했다. < 김지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