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에서 제4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마친 유족이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공동취재 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일에 “1980년 광주가 우리를 구했다”며 12·3 내란 사태를 다시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18일 시민은 물론 정치권도 내란 사태를 통해 유명해진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화두를 떠올리며 ‘80년 광주’에 감사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광주에서 스러져 간 수없이 많은 광주 영령들이 수없이 많은 사람을 일깨워서 12월3일 내란을 진압하지 않았느냐”며 “80년 5월 광주의 역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다시 구한 것”이라고 상기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광주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고, 그날의 외침은 지금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3일, 또다시 계엄령이 시도됐던 그 날 우리가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 역시 5·18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애도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20대 시절 일기장 맨 앞에 항상 적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 화두는 알려졌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14일 윤석열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을 하면서 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저는 이번 12·3 내란사태를 겪으며 ‘그렇다’고 답하고 싶다”라고 연설했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자는 움직임도 정치권 전반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5·18 기념식에 참여한 이재명 후보는 “국민주권주의 주권재민의 사상을 목숨을 바쳐가면서 실행했던 광주 5·18 정신을 반드시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도 “오월정신을 이어가는 시민들이 오월정신을 모욕한 윤석열을 쫓아내고 처음 맞는 5·18이다”라며 “오월정신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진보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고귀한 씨앗입니다. 이 정신을 헌법에 새겨넣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도 “80년 오월의 광주가 있었기에 민주공화정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적극 추진해 국가가 책임지고 역사적 정의를 완성할 수 있도록 5월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도 각자의 5·18을 떠올리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며 ‘과거의 광주’에 감사했다. 류영재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 시민들, 그들과 연대한 시민들을 기억합니다. 특히 그분들이 다시 한 번 살린 오늘을 살자니 마음이 복잡합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7살 남짓에 ‘광주학살의 진상’이란 사진첩을 처음 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는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윤석열은 계엄을 결심하던 순간부터 집행하는 순간, 실패하는 순간까지 무력 사용에 거리낌이 없었다”며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단죄처럼, 2024년 내란 세력을 정확하게 치죄하는 문제는, 우리의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꼭 필요한 한 걸음이다”라고 강조했다. < 신윤동욱 기자 >
이재명 “내란 이겨낸 국민 저력, 5월 광주 피·눈물에 빚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은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내란의 어둠을 빛의 혁명으로 이겨낸 우리 국민의 저력은 80년 5월, 광주의 피와 눈물에 깊이 빚지고 있다”며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국민 여러분과 함께,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5월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자”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45주년 기념식 참석 뒤 페이스북에 올린 메시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두려움을 뛰어넘은 숭고한 희생과 헌신 앞에서 오늘도 또 한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고 추모했다. 그는 “지난 12월3일 계엄의 밤, 제 마음속에는 45년 전 광주의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며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하여 목숨을 걸고 가두방송을 했던 분들의 용기가 제 가슴을 울렸다”고 돌아봤다. 1980년 5월 시민군 가두방송 차량에 설치된 확성기를 통해 광주 거리에 울려퍼졌던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던 호소를 상기시킨 것이다.
이 후보는 이어 “그 밤, 기적처럼 모여든 국민들은 장갑차와 군인들 앞에 오직 용기 하나만을 무기로 맞섰고 동이 트기도 전에, 시대착오적 계엄은 찬란한 빛의 혁명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 서로가 앞장서 이웃을 지키고 보듬고자 했던 고귀한 인간성의 실천은 또 한 번 살아있는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기렸다.
이 후보는 “내란을 완전히 종식해야 분열과 갈등, 극단의 대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진보와 보수, 이념과 진영을 넘어설 때, 하나 된 국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적었다. < 엄지원 기자 >
스카이데일리, ‘5·18 북한개입 보도’ 사과…오월단체 “끝까지 단죄”
신문 1면 사고 내어 “5·18은 민중항쟁 인정” 사과 법적 단죄 나선 5·18기념재단·광주시 “끝까지 간다”
‘5·18 북한 개입설’을 보도한 스카이데일리 5·18 특별판. 스카이데일리 누리집 갈무리
극우 성향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광주 금남로에서 ‘5·18 북한 개입’ 특별판을 배포했다가 오월단체와 유족들의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에 직면하자, 지난 16일치 신문 1면에 사고를 내어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5·18기념재단과 광주시가 꾸린 ‘5·18 미디어 왜곡 티에프(TF)’는 “끝까지 간다”며 법적 단죄 방침을 밝혔다.
18일 스카이데일리 ‘5·18 보도 사과드립니다’ 사고를 보면, 이 매체는 “본지는 그동안 5·18 북한 개입설 등을 보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희생자와 유족들께 마음의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며 “본지는 5·18 45주년을 맞아 광주민주항쟁이 시민폭동 사태가 아닌 시민의거이고 민중항쟁이었음을 인정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오해와 억측을 불러일으킨 북한군 개입설 등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의혹에 대해선 철저하게 검증할 방침”이라며 “세간에 화제가 된 중국 간첩 체포설에 대해서도 사실여부를 재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5·18 미디어 왜곡 티에프’ 관계자는 “스카이데일리가 ‘북한군 개입설 등 진실이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의혹에 대해선 철저하게 검증’하겠다는데, ‘5·18 북한군 연루’는 진실이 아니란 게 이미 정부 조사를 통해 수차례 검증됐는데도 검증을 빌미로 왜곡 보도를 이어나갈 것이란 의심이 든다”며 “(법적 대응으로) 강하게 나가고 나서야 꼬리를 내리는 것 같으니, (법적 단죄로) 끝까지 간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카이데일리 쪽은 지난 14일 5·18유족회 사무실에 직원을 보내어 5·18 왜곡 기사에 대한 사과와 정정보도를 거론했으나, 유족회 쪽은 듣기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매체는 5·18기념재단에도 방문할 뜻을 전했지만, 재단 쪽이 거부했다.
지난 1일 광주시 서구 5·18기념재단에서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들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극우 매체를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스카이데일리는 지난해 연초에 ‘5·18은 김대중 세력과 북한이 주도한 내란’이란 주장을 머릿기사로 실은 40면짜리 ‘5·18 특별판’을 발행한 데 이어, 1월10일치 1면에 사고를 내어 이 특별판을 꾸준히 업데이트 해서 1천만부를 실비로 보급하는 캠페인을 한다고 알렸다. 이후 문제의 특별판은 올해 2월15일 보수단체 세이브코리아가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개최한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도 배포돼 큰 논란을 불렀다.
스카이데일리 누리집 갈무리
한편, 5·18기념재단은 지난 15일 언론중재위원회에 5·18 특별판을 배포한 스카이데일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5천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 5·18 당시 계엄군 총격으로 숨진 조사천씨와 임신부 최미애씨 유족들, 5·18기념재단, 광주광역시도 특별판 왜곡보도와 관련해 스카이데일리 등을 지난 1일 광주경찰청에 고소·고발했다. < 정세라 김용희 기자 >
‘내란 동조’ 안창호 자리는 없다…5·18기념식 왔지만 입장 막혀
광주시민·유족 거센 항의 “미소 띠고 경호원에 둘러싸여 광주 조롱”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념식장에 도착한 뒤 시민 단체의 항의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연합
윤석열의 12·3 내란사태에 동조했다는 비판을 받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와 시민 항의에 기념식장에 입장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18일 오전 9시35분 안 위원장은 5·18민중항쟁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 들렀다. 차에서 내린 안 위원장은 경찰 20여명에 둘러싸인 채 민주의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 일부 5·18단체가 항의 집회를 예고하자 안 위원장은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위원장을 발견한 일부 시민들은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고 말하며 안 위원장의 입장을 제지하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안내를 받아 민주의문에 들어선 안 위원장은 다시 5·18 유공자 항의를 받았다. “여기가 어딘데 들어와” “안창호는 물러가라” “나가”라는 날 선 비판이 이어졌고 몇 유공자는 이동 경로를 막았다.
결국 안 위원장은 민주의문에 들어섰으나 묘역 입구에 설치된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안 위원장은 발길을 돌려나오는 과정에서 강한 항의를 받았다. 이를 본 일부 야당 위원들은 “결국 못 들어갔구먼”이라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안면이 있는 국회의원과 악수를 하기도 했다.
안 위원장은 취재진이 입장을 묻자 잠시 발걸음을 멈췄지만 “빨리 떠나라”는 시민단체 목소리가 크게 들리자 고개를 끄덕이며 오전 9시 44분께 자리를 떴다. 차를 타기 전 보좌진과 경찰에게 악수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 민주의 문으로 입장하는 도중 시민단체 회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한 5·18유공자는 “안 위원장은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우롱하는 태도였다”며 “항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광주를 찾은 것을 보면 ‘5·18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유공자 반대 때문에 입장을 못했다’는 명분 쌓기용이 아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성명을 낸 5·18서울기념사업회와 오월어머니집도 “안 위원장은 굳이 불청객으로 오면서 경찰에 공식적으로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보란 듯이 경호요원에 둘러싸여 입장하겠다는 것은 그 의도가 뻔하다”며 “분노한 5·18 피해자들에게 욕을 먹고 봉변당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연출해 자신을 극우 보수의 수난자처럼 행세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16일 “안 위원장은 기념식에 참석하지 말라”는 입장문을 냈다.
인권위는 2월10일 제2차 전원위원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 등을 담은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을 일부 수정 의결하며 안 위원장 등 일부 위원은 내란에 동조했다고 비판받고 있다. < 한겨레 김용희 기자 >
언론은 5·18 정신 잊지 말자 [사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 촬영자=나경택, 사진=5·18기념재단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며 수년간 허위 정보를 유포하며 희생자와 유족을 폄훼한 스카이데일리가 대표이사 교체 후 지난 16일에서야 광주 시민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그간 유족에게 남긴 상처와 허위정보 유포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스카이데일리는 자사가 자행했던 허위 보도의 전말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 성실히 임해야 할 것이다.
2013년 채널A는 1980년 광주에 침투했던 북한군이라며 탈북자 김명국(가명)씨 인터뷰를 내보낸 뒤 김씨의 거짓말이 밝혀진 뒤에도 제대로 된 사과가 없었다. 5·18 정신을 왜곡했던 다른 언론사들도 스카이데일리처럼 늦더라도 사과하며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민주주의를 있게 만든 영령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아가 모든 언론은 5·18 허위정보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유튜브나 광장에서 쏟아지는 왜곡과 혐오에 보도로 맞서야 한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5·18 정신이 소중한 시기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려 했던 극우 세력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1980년 광주는 폄훼당하고 민주주의는 짓밟힐 것이다. 언론은 내란 이후 보도에서 광주 정신을 잊지 말고, 주요 대선후보들이 모두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한 만큼 이에 대한 의제 설정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미디어 오늘 >
1997년 유죄 판결과 별도로 7명 살해 사실 추가로 밝혀져 최웅 등 9명 민간인 학살 고발도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작전 직후 노먼 소프 기자가 찍은 안종필군(앞)과 문재학군의 주검. 문군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다.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영상 갈무리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1980년 5월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씨와 제3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씨를 내란목적살인죄로 추가 고발하는 방안을 전원위원회에 올린다. 전원위원회에서는 최웅 당시 제11공수여단장 등 진압군인 9명을 민간인 살해 혐의로 고발하는 문제도 함께 논의된다.
조사위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20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서는 정호용씨와 최세창씨에 대한 내란목적살인 혐의 고발 안건과 함께 최웅씨 등 9명의 민간인 살해 혐의 고발 안건이 상정된다. 전원위원회는 합의제 운영이 원칙이지만, 합의가 되지 않으면 표결을 통해서라도 고발 문제를 마무리 짓겠다는 게 다수 위원들의 생각이다.
조사위가 정호용·최세창씨를 내란목적살인죄로 고발하려는 것은 1997년 12월 대법원이 전두환·황영시·정호용 등 5명에게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유죄판결을 내릴 당시에 드러나지 않았던 범죄가 새롭게 확인됐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전두환 등에게 적용된 내란목적살인 혐의는 1980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 과정에서 윤상원 등 저항시민 18명을 살해한 행위와 관련된 것인데, 이번 조사 과정에서 시민 7명이 같은 날 계엄군에 의해 살해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별도의 범죄’(별죄)로 처벌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사망한 전두환 등 4명은 공소권 소멸로 기소가 불가능해, 1997년 유죄가 확정된 정호용씨와 당시엔 혐의 적용이 되지 않았으나 12·12 군사반란과 광주 진압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최세창씨를 추가 고발 대상에 포함했다는 게 조사위 설명이다.
조사위는 내란목적살인죄의 경우 이미 처벌을 받은 피고인이라도 새로운 범죄가 드러나면 추가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2020년 11월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용역 의뢰한 ‘5·18민주화운동 당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의 국내법적 쟁점 연구’에서도 ‘내란목적살인죄는 살인죄에 대한 가중적 구성 요건으로서 피해자의 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별죄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 문제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1995년 12월21일 제정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헌정범죄시효법)은 내란죄 및 반란죄, 집단살해에 해당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1980년 5월23일 채수길, 양민석 등 시민 2명이 즉결처분된 광주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 정대하 기자
당사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호용씨는 1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위가 내란목적살인죄로 검찰 고발을 추진한다’는 것과 관련해 “쓸데없는 소리 말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며 전화를 끊었다. 5·18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광주에 왔던 정호용은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참여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징역 10년형이 확정됐으나 김대중 정부 출범 뒤인 이듬해 사면됐다. 그는 2020년 5·18조사위에 낸 진정서에서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을 받았으나 전두환 장군과 공모한 사실이 없고, 특전사 예하 여단을 타 부대로 배속시켜 내겐 작전지휘권이 전혀 없었는데도 특전사령관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은 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는 전두환 정권 아래서 육군참모총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최세창씨 역시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별로 (해명할) 생각이 없고, 의견 드릴 것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최씨는 5·18 당시 제3공수여단에 실탄 배부와 실탄 사용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1997년 대법원에서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8민주화운동 관련 재판에서 반란모의 참여 주요 임무 종사, 상관 살해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듬해 8월 사면됐다. 조사위 쪽은 “최세창씨는 내란목적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으나 5월27일 진압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내란목적살인 혐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최씨는 5·18 이후 수경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을 지냈고, 1989년 전역해 노태우 정권 때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광주 남구 송암동 송암공단 안 연탄공장 관리부장으로 근무했던 류시열(76)씨가 지난 3일 남구 송암동 오케이자동차학원 옆 빈터를 가리키며 민간인 학살 의혹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조사위가 정호용·최세창씨 고발 건과 함께 전원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한 최웅 전 11공수여단장 등 군 관계자 9명의 고발 안건은 1980년 5월23일과 24일 주남마을(지원동)과 송암동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과 관련돼 있다. 최웅 전 여단장은 5월23일 주남마을 마이크로버스 총격 사건 생존 시민 2명을 즉결 처형한 혐의로 지역대장, 병사 등 5명과 함께 고발이 추진되고 있으며, 하루 뒤 송암동에서 있었던 민간인 3명을 즉결 사살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다른 군인 4명과 함께 고발 추진 대상자에 올랐다.
조사위는 20일 열리는 전원위원회에 이 안건들을 심의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조사위 전원위원회는 상임위원 3명에 민주당 추천 비상임위원 3명과 국민의힘 추천 비상임위원 3명을 더해 모두 9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추천 비상임위원 3명은 지금까지의 활동 성향으로 미뤄 안건 처리를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조사위 내부의 관측이다. 조사위 핵심 관계자는 “전원위원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안건 채택 표결 동의를 얻어 표결로 처리할 수 있다. 의결 정족수는 재적 인원 과반인 5명이다”라고 밝혔다.
조사위에 참여하고 있는 민병로 전남대 교수(5·18연구소장)는 이번 고발 추진과 관련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특별법(제44조)에는 ‘조사위 조사 결과 범죄 사실이 있거나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 정대하 김용희 기자 >
민주 “김문수, 정호용 영입했다 취소…또 쿠데타 벌일 작정인가”
국민의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를 지휘하는 특전사령관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김문수 대통령 후보의 상임고문으로 14일 저녁 위촉했다 논란이 되자 몇 시간 만에 급히 취소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이 “광주학살 책임자 영입을 시도한 김 후보, 윤석열에 이어 또 쿠데타를 벌일 작정인가”라고 비판했다.
한민수 민주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1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45주년을 목전에 두고 광주학살 책임자를 선대위에 상임고문으로 영입하다니 김 후보는 제정신인가”라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정호용이 누구인가. 신군부 핵심 5인 중 한 명 아닌가. 12.12 군사 반란 가담자이며 광주 학살을 지휘한 특전사령관이다. 또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지낸 군사 독재의 망령”이라며 “‘윤 어게인’도 모자라 ‘전 어게인’을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윤석열 내란세력도 모자라 전두환 반란군까지 끌어안아 내란세력 총사령부를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김문수가 곧 윤석열이고, 전두환”이라며 “김 후보는 정호용 상임고문 위촉 시도로 대한민국을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윤석열의 후계자임을 자백한 것”이라고 했다. 한 대변인은 이어 “12·3 내란을 이겨냈듯, 대한국민께서는 6월3일 투표의 힘으로 뻔뻔한 내란 잔당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천준호 선대위 전략본부장도 이날 총괄본부장단 회의에서 “(김문수 후보가) 석동현뿐 아니라 12.12 군사쿠데타 주동자 정호용을 영입했다 뒤늦게 취소했다. 이틀 전 김 후보의 계엄 사과는 역시나 ‘윤석열식 개사과’였다”며 “국민의힘의 쿠데타 정당 디엔에이(DNA)를 감추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천 본부장은 김 후보에게 묻는다며 “김문수의 최종 목표는 대선 아니라 윤석열 구하기, 국민의힘과 자유통일당 합당이 아닌가. 김 후보는 선거운동 다닐 때가 아니라, 당무우선권 발동해 윤석열 제명부터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 김규남 김채운 기자 >
김문수 선대위 ‘12·12 가담 5·18 진압’ 정호용, 고문 인선했다 취소
파행운영중인 국회정상화 대책을 논의하기위해 소집된 민자당 의원총회장에서 정호용 의원(오른쪽)과 허삼수 의원이 12.12사건관련자 기소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1994.11.17 연합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가 14일 저녁 5·18 민주화운동 진압 작전을 지휘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을 김문수 대통령 후보자를 자문할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가 논란이 되자 한밤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었다.
국민의힘은 이날 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의 상임고문 위촉을 취소했다”는 공지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앞서 국민의힘 중앙선대위는 이날 오후 6시께 제21대 대통령선거대책기구 추가 인선을 단행하면서 정 전 장관 등이 포함된 대선 후보 자문 및 보좌역 23명의 명단을 발표한 바 있는데, 몇 시간 만에 이를 취소한 것이다.
정 전 장관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고 이듬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공수부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가담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채널에이 인터뷰에서 “계엄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께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는데, 과거 계엄 확대와 내란 주도자로 지목된 정 전 장관을 선대위에 영입한 것을 두고 “사과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선대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자 40년 지기인 석동현 변호사를 시민사회특별위원회위원장으로 포함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선대위 클린선거본부 공동대응단장에 내란 기획자로 지목돼 구속재판 중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변호인인 최기식 변호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후보 강제 교체 시도에 반발해 강원도당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친한동훈계 박정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석동현 변호사의 선대위 합류 기사를 공유하며 “이 거짓말은 진짜냐. (적절한 인사 영입인지) 그런 거 묻지 말고 똘똘 뭉쳐라?”라고 비판했다. 한 영남 중진 의원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싸워도 모자란 시간에 아직도 윤석열 타령을 하고 있다. 당을 보면 모두 이번 대선을 포기한 사람 같다”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기자 >
오랜 지론 대통령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제시 '정권 돌격대' 전락 감사원, 국회 소속으로 이관
대통령 '묻지 마 거부권'과 계엄선포 권한 제한도 총리 국회 추천…검찰총장 임명 국회 동의 필수
검찰 영장 청구 독점 폐지, 수사권 근거 무력화 대신 공수처‧국수본 수사 역량 대폭 강화할 듯
"내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 때 국민투표" "4년 연임, 이번엔 적용 안 돼"…임기 단축도 일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8일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조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혔다. 개헌안을 이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나 늦어도 202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논의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나 이 후보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 블랙홀'로 인해 전선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이제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든 만큼 대선 공약으로서 정리된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행 우리 헌법은 1987년 우리 국민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맞서 직접 쟁취한 승리의 증표였다. 하지만 지난 12‧3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는 철저히 유린됐다"면서 "위대한 국민들이 오만한 권력자를 단죄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더 막중한 과제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하지만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와 같은 주요 의제는 합의에 닿으려 했으나 이뤄내지 못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이라는 절차적 한계까지 맞닥뜨리며 개헌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멈춰진 걸음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다. 역사와 가치가 바로 서고, 다양한 기본권이 보장되며,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이 적절히 분산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후보는 가장 먼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을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이에 합의했다. 민주주의의 산 역사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더 굳건하게 지켜나가자"며 "또 부마항쟁과 6‧10항쟁,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2025.5.18. 연합
다음으로 오랜 지론인 대통령 4년 연임제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며 "아울러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 '정권 돌격대'로 전락한 감사원의 헌법적 개혁 방안에도 중점을 뒀다. 이 후보는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엄정한 감시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더 이상 '감사원이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의혹과 우려를 낳아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의 결산 및 회계감사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석열이 국회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해온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의 제한도 주요하게 거론했다. 이 후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슬러 '묻지 마' 식으로 남발돼 온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 본인과 직계가족의 부정부패, 범죄와 관련된 법안이라면 원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삼권분립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대통령이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며, 긴급한 경우에도 24시간 내 국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해서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는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총리의 권한을 존중하도록 해 총리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든든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과 같이 중립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중립적 기관장을 임명할 때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점도 제안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전날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2025.4.9. 연합
특히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자고 해 검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행 헌법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6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천부의 권리인 듯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변하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검찰 수사권 축소 또는 박탈(소위 검수완박) 시도에 극렬 저항해왔다.
이 후보는 헌법에서 이들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을 공소청으로 전환하는 한편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적법한 권한을 가진 다른 기관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사기관끼리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며 "영장 청구부터 누구는 예외가 되는 현실, 불의한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해 그동안 영장 청구권 독점으로 무수한 농간을 벌여온 정치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 기본권 및 지방자치권 강화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 후보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안전권,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와 확대를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면서 "주민의 일상을 보살피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부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와 지역분권 강화는 필수적이다. 최대한의 지방자치권을 보장하자"고 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대통령과 총리, 관계 국무위원, 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참여하는 헌법기관을 신설해야 한다. 기능은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정책을 심의하고 위상은 국무회의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며 "법령에 위배 되지 않은 한, 자치법규 제정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지방자치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자.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말씀드린 사항을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새로운 개헌을 완성하자"면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진다 해도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이다. 논의가 국민의 뜻에 따라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그 뜻을 바탕으로 마침내 개헌이 실현되도록, 저 이재명,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새롭게 열리는 제7공화국,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진짜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이 후보는 이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개헌 구상에 관한 보충 설명을 했다. 개헌 시 4년 연임이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에게 적용되는지 묻자 그는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두고는 "대통령 직위를 개인적 영예나 사익을 위한 권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상"이라며 "국민을 위한 역사적 책임·의무라고 생각하면 그리 가볍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 최종 책임자의 임기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안정과 민생 회복으로, 일과 국민 중심으로 보면 다음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 늦었다는 취지의 질문에는 "1987년 체제 헌법의 효용이 다해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난 4월 초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합의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불가능했다"면서 "국민투표법을 빠르게 개정해 개헌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 측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각 후보가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고 누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약대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 국회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개헌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개헌을 위해서는 구(舊)여권의 협조, 더 크게 보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순차적으로 개헌해 나가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전면 개헌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기보다는 합의되는 것부터 하자"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개헌 공약을 두고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곧바로 호응했다. 종전부터 개헌의 당위성을 피력해왔던 헌정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헌정회가 추진해 온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과 맥을 같이하는 방안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 "특히 헌정회가 지난 16일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 '오는 21일까지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 후보가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화답한 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개헌안 입장 발표는 유력 후보의 공개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호평하며 "각 당 후보가 국민을 상대로 공식 공약 발표를 통해 개헌안 입장을 밝혀야 대선 이후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개헌 추진을 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식민지·독재체제 거치며 ‘주류’ 굳힌 ‘빽 있는 사람들’ 여러 번 정권 교체 성과에도 여전히 위축된 ‘비주류’ 천박한 물질주의 몰아내고 ‘주류 교체’ 위한 큰 승리를
전우용 역사학자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에게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계엄령 선포의 목적에서나,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계엄포고령의 내용에서나, 수많은 사람을 불법으로 ‘수거’하여 악랄하게 ‘제거’하려는 계획을 기록한 노상원 수첩에서나, 그와 그 일당의 정신은 독재자들의 망령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한동안은 군사쿠데타가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대중적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김영삼 정권이 군부 내 하나회를 척결하고 이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폭력으로 무너지리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들은 ‘민주국가 국민’이라는 집단정체성을 확보한 듯했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란공범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그 집단정체성과 자부심이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명료히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사실상 방해함으로써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실행을 도왔을 뿐 아니라, 계엄 해제 이후에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등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옹호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들은 ‘내란공범’이나 ‘내란종범’으로 지목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구속된 뒤에도 지귀연 판사는 사상 유례없는 ‘구속기간 시간 계산법’을 창안하여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심우정 검찰총장 역시 사상 유례없는 ‘즉시항고 포기’로 화답하여 그를 탈옥시켰다. 최근 대법원 판사 12명 중 10명은 고등법원이 무죄선고한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함으로써 6.3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아예 없애고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 또는 박탈하려고 했다. 이들은 ‘헌정질서 문란 범죄’를 처벌하려는 의지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힘 지지자 대다수는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될 만한 주장에 동조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가당착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윤석열 일당은 왜 내란을 획책했으며 한동안 ‘민주적이었던’ 한국 사회에는 왜 내란을 지지하는 세력이 이토록 거대한가? 내란 진압은 왜 이토록 더딘가? 우리가 역사의 무덤에 파묻은 줄 알았던 박정희 전두환 일당의 망령이 실제로는 여전히 살아서 활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독재망령’들을 영원히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천도재(薦度齋)’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이번 선거에 두 가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오른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한 뒤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 2015.11.22. 연합뉴스 자료사진
90년 3당합당이 만들어낸 ‘보수’ 참칭 내란독재세력의 망령
첫째, 1987년 민주화운동이 다 풀지 못한 숙제를 완수하는 것이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승리’라는 말은 사실 ‘기억 조작’이다. 당시 내란독재 세력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세력과 타협했을 뿐이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양자 간 타협의 산물이자 일종의 ‘휴전협정문’이었다. 뒤이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정치세력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하지 못한 결과 12.12와 5.17 내란의 공동수괴였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노태우가 37%, 김종필이 8%, 김영삼 김대중 합계가 55%였다. 민주정치세력의 득표수가 더 많았지만, 정권은 내란독재세력이 차지했다.
1988년 총선에서는 내란정당인 민정당이 34%, 유신본당인 신민주공화당이 16%,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합해서 4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정당이 제1당이 되기는 했으나, 내란독재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각각 2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병립하는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 체제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내란독재세력 절대 우위의 양당체제를 만든 것이 1990년의 ‘3당합당’이었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218석을 차지한 초거대 정당이 되었다. 민자당의 주력은 내란독재세력이었으나 이들은 주류 언론들의 도움을 얻어 ‘보수대연합’을 자처하면서 민주정치세력을 진보좌파로 몰아부쳤다. 반민주 내란독재세력이 보수를 참칭하고 자칭 ‘개혁적 보수 정치세력’에게 진보 딱지를 붙이는, 국제 기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한국의 양당체제는 이 때부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내란독재세력 대 민주정치세력의 대립을 ‘보수 대 진보’의 대립으로 분식(粉飾)한 한국의 양당체제는 국민 일반의 정치의식을 포획했다. 사람의 합리적 고민은 선택 가능한 영역 안에 머물기 마련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일시적으로 민주정당의 외피(外皮)를 썼던 민자당의 후계 정당들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공공연히 내란을 합리화하고 역대 독재자들을 미화하면서 내란독재세력의 진면목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보수 대 진보’의 ‘인위적’ 정당 체제를 ‘의식적’으로 바꿀 계기
독재정권 시절 특권을 얻고 그를 ‘기득권화’한 사회세력도 내란독재세력의 정치담론에 동조하는 성향을 내면화했다. 이들의 영향 때문에 반인간적 군사쿠데타와 반민주적 독재체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업체는 한국인 중 14%가 ‘상황에 따라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그 비율이 24%라고 발표했다. 독재의 망령이 아직 저 세상으로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가 이룬 ‘민주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를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1990년 220석에 육박했던 민자당의 의석 수는 경향적으로 줄어들어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이 모두 제1당의 지위를 잃었으며, 특히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는 100석을 조금 넘기는 정도로 위축되었다. 윤석열 일당이 내란을 획책한 배경에는 내란독재세력의 지지 기반이 계속 축소되는 추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1990년에 내란독재세력이 ‘인위적으로’ 만든 정당 체제를 시민들 스스로 ‘의식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기형적 정당체제가 87년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 실패와 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지들이 다시 뭉쳐야 한다. 이번 선거가 독재세력 대 반독재세력, 반민주세력 대 민주세력, 헌정파괴세력 대 헌정수호세력의 재대결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내란독재, 헌정파괴세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또다른 내란의 위협을 소멸시키고 민주공화국을 반석 위에 올려 세울 수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큰소리치는 ‘사회적 권위’ 해체해야
둘째, 내란독재세력 지지가 갖는 오래된 ‘사회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진행되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래의 농촌공동체가 해체됨으로써 발생한 지역사회 내 ‘권위의 공백’을 한국인들이 자율적으로 메꿀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한 식민지 권력은 자기들이 부리기 쉬운 한국인들을 지역사회 내 유력자로 만들려 했다. 세계대공황으로 식민지 농민들의 삶이 파탄지경에 이른 1930년대부터, ‘뜻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던 ‘유지(有志)’라는 말이 ‘관청과 연결된 사람’, 시쳇말로 ‘빽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불린 자들은 한편으로 식민지 권력의 끄나풀 노릇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청을 상대로 한 지역민들의 로비스트 구실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 지배체제와 별 차이 없는 독재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지역 유지’들의 존재 방식과 행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빽’이라는 말 자체가 ‘권력자와 연결고리가 있음’이라는 의미였다. 집권여당은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다시 민정당으로 바뀌었지만, 지역사회 내 ‘유지(有志)’들은 늘 여당 당원이 됨으로써 자기들의 영향력을 ‘유지(維持)’하려 했다. 그들은 선거철이면 ‘부정 선거자금’을 지역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구실을 했고, 일상적으로는 시군구 단위에 만들어진 형식상의 ‘민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곤 했다. 하다 못해 자동차 앞유리에 ‘○○구 청소년선도위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불법주차 단속’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웃과 시비가 붙거나 경찰의 단속을 당했을 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 알량하지만 그래도 ‘기득권’이었다. 반면 독재정권 시절에 야당에 입당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경찰과 정보기관의 사찰 대상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자진해서’ 야당 당원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척이든 친한 친구든 빚쟁이든,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강권을 받고서야 “절대 비밀로 해 달라”는 말과 함께 입당원서에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야당 당원은 자기 당적을 숨겨야 했고, 그런만큼 ‘비주류’였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한덕수, 김문수,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내란독재세력과 그 지지자들을 ‘소수’로 만드는 압도적 승리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는 ‘만년야당’을 일거에 ‘여당’으로 바꿔 놓았다. 과거 ‘준(準) 국사범’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도 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나 지역사회의 ‘유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업체 대표와 임원, 판검사와 의사, 교회의 장로와 권사 등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정당 지지 성향은 유권자 평균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왔다. 서울 ‘강남 3구’의 투표 결과는 늘 한국사회의 ‘주류의식’과 ‘정치적 선택’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는 ‘기득권세력’이 아님에도 ‘한국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려면 조선일보를 보고 보수정치세력(=내란독재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반민주성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적 행위’나 ‘성공한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해석한다. 이런 현상도 ‘독재의 망령’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번 선거는 한국 사회에서 100년간 이어져 온 반민주적, 독재친화적 ‘주류의식’을 청산, 교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든 직장에서든 ‘끄나풀형 유지’들의 특권적이며 부패한 권위 대신에 주변 사람들의 신망(信望)을 토대로 한 ‘민주적 권위’가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빌붙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비주류’의 지위로 몰아내고, 건강한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로 구성된 정치의식과 그를 체화한 사회세력이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내란과 독재를 추구하고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스스로 ‘소수이자 비주류’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독재의 망령이 다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