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 객관과 중립을 내세워 정쟁으로 몰고 가는 고질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나가자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검토했다. 경찰만으로는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국민의 함성을 막기 힘들다고 보고 공수부대를 투입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대외 신인도 추락과 경제에 미칠 악영향, 특히 서울올림픽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접었다. 대신 노태우 차기 대통령 후보로 하여금 직선제 수용을 골자로 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게 해 간신히 상황을 수습했다.

그 뒤 40년 가까이 계엄령을 걱정하는 국민은 없었다.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에서 계엄령 준비설을 제기했을 때 언론에서 “국민을 바보로 아는 괴담”(조선일보)이라거나 “소설 같지도 않은 집단망상”(서울신문)이라고 조롱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전두환도 차마 감행하지 못한 결단을 내렸다. 계엄령 선포 소식을 듣고 국회를 지키려고 여의도로 달려간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신문과 방송은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 3항에 따라 군인들의 검열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계엄령 선포의 무도함과 무모함을 꾸짖고 나섰다. 비록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은 없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칼럼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갈리고 여의도의 탄핵 촉구 집회에 맞서 광화문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자, 일부 언론에선 객관과 중립을 내세워 정쟁으로 몰고 가는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더욱이 조기 대선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계엄은 잘못이지만 야당의 입법 폭거와 이재명 방탄 탄핵도 문제다”라는 양비론을 펴고 있다. 내란 관련자들의 새빨간 거짓말이나 제 논에 물 대기 식 주장을 아무런 검증이나 반론 없이 중계방송하는 행태도 나타난다.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서류 받기를 거부하며 시간을 끄는가 하면 경호처도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 “뭐가 잘못됐느냐”고 눈을 부라리며 복귀하면 언제든 또 계엄을 선포하겠다는 기세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총리마저 지연 작전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이고,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탄핵이 기각되면 찬성 표결한 의원들을 직권남용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언론이 불법 계엄에 일관되게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싶다. 대학생 때까지 아버지한테 고무호스로 맞았다는 윤 대통령이야 워낙 고집불통이어서 어쩔 수 없다 쳐도 대통령실이나 총리나 여당은 여론에 귀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했을 것이다.

2016년 10월 티브이(TV)조선은 ‘최순실 의상실 영상’을 공개해 한겨레, 제이티비시(JTBC)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주도했다가 박근혜 열성 지지층의 항의에 직면했다. 비슷한 일이 재연되는 것을 우려해 진실에 눈감고 시대적 책무를 외면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그런 언론이 정당에 “국익을 생각지 않고 당리당략에만 매달린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계엄은 잘못됐지만 탄핵엔 반대한다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느냐 마느냐는 윤석열이 물러난 뒤의 일이다. 아직은 언론이 양비론 뒤에 숨거나 뒷짐 지고 훈계할 때가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탄핵 막으려다 내란 공범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여당의 운명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이미 시민들은 그런 언론에도 단죄의 칼날을 겨누고 있다.             <  이희용  언론인 >

 

“계엄군, 선관위 점거 충격…윤 대통령이 밝힌 이유 도무지 이해불가”

'윤석열이 임명한 동기출신'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대담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24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김용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65)은 춘천지방법원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사법연수원장 등을 역임한 법관 출신이다. 33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지역 선관위원장을 맡은 경험이 있으며, 지난해 7월 대학 동기인 윤석열에 의해 사무총장에 임명돼 논란도 있었다. 선관위 출신이 아닌 외부 인사가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것은 35년 만에 처음이다. 사무총장은 선관위 실무를 총괄하는 장관급 자리다.

 

지난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의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무슨 이유로 계엄을 꺼내들었는지 짐작조차 어려웠던 그날 계엄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던 이번 계엄 사태 미스터리는 12일 윤석열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어이없이 해소됐다.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 하반기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헌법기관들과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들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0.73%포인트 차 대선 신승과 총선 참패 후 일부 유튜버나 극성 지지자들이 제기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이 현직 대통령 입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의 담화 내용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과 지지자들은 내란의 위헌성을 희석하기 위해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24일 과천 중앙선관위에서 만난 김용빈 사무총장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선관위 공격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제도 자체를 형해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극화된 정치 상황과 (유튜브 등) 미디어 알고리즘을 통한 확증편향”이 부정선거 음모론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관위가 저지르는 개별적인 잘못이나 실수를 질책하시더라도,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선거 공정성 자체를 의심하진 말아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헌재나 내란죄 수사당국 요청 땐 서버 검증에 응할 용의 있지만
설계도·소스코드 등 노출되면 당장 내년 재·보궐 선거 못 치러

국정원에 모든 접근 권한 줬지만 해킹·조작 흔적 전혀 찾지 못해
분류기의 정확성은 이미 입증 모든 투표지 수검표 절차 도입

미디어 알고리즘 통한 확증편향 숱한 음모론에 불쏘시개 역할
선관위 개별 잘못 질책하더라도 공정성 자체 의심하지 말기를

비상계엄 비상근무 지침도 전달 안 돼

- 지난 3일 밤 계엄군이 선관위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 계엄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관련 있을 거라고 짐작하셨나요.

“전혀요. 집에서 TV로 계엄령이 선포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어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설령 계엄사령부가 행정·사법 업무를 관장하더라도, 선관위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이고 사령부에 이관할 업무 자체도 없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원래 비상사태가 되면 비상근무 지침이 전달돼야 하는데 청사에서 아무 연락도 안 오는 겁니다. 청사 근처에 사는 선거정책실장이 ‘직접 청사에 가보겠다’고 하더니, 밤 12시쯤 전화가 왔어요. 계엄군에게 청사가 점거당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당직 직원들은 모두 휴대폰을 뺏긴 채 격리돼 있어서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계엄군이 선관위를 점거한 이유는 저도 뒷날 대통령 담화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대통령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여전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내란 수사를 통해 계엄 세력이 선관위 직원 수십명을 감금하기 위해 케이블타이와 복면을 준비하려 했던 정황까지 드러났습니다. 직원들의 불안감도 클 것 같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계엄군이 선관위에 들이닥쳤던 날 당직 근무했던 직원 5명은 물론,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은 직원들에게 정부 기관이 운영하는 심리·상담 치료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놓은 상황입니다.”

선관위에 투입된 군인은 과천·관악 청사와 선거연수원까지 모두 합해 300명에 달한다. 계엄군이 투입된 시간은 지난 3일 오후 10시30분쯤으로, 윤석열이 TV 생중계로 긴급 대국민 성명을 낭독하기 시작한 지 불과 6분 만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후에도 한동안 청사에 남아 있다 3시간20여분 만에 철수했다.

- 계엄군이 철수한 후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계엄군 동선을 확인하셨을 텐데, 구체적으로 파악한 피해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 선관위 시설이 피해를 입은 것은 없습니다. 서버에 접속해 자료를 반출한 흔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만 계엄군이 특정 서버의 사진을 찍어갔는데, 사전투표에 사용되는 통합선거인명부 관리 서버입니다. 사진 찍는 행위 자체만으로 서버에 영향을 미칠 순 없지만, 해당 서버 위치 노출로 인한 보안 우려는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외부 불순 세력이 침입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특정 서버의 탈취가 더 용이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서버 위치를 재배치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재배치에만 20억원의 추가 예산이 든다고 합니다. 전문가 자문 결과 당장 심각한 보안 위기가 발생한 건 아니라서, 다른 대책을 세워 보안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서버 외부와 완전 분리, 해킹 원천불가

- 대통령은 담화에서 지난해 하반기 선관위가 북한의 해킹 공격을 받았고, 국가정보원이 실제 해킹을 시도해보니 데이터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선관위가 해킹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선관위 서버는 외부와 완전히 분리돼 있는 폐쇄망이어서 외부에서 망을 통한 해킹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난해 국정원·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합동으로 진행한 보안 컨설팅에서도 해킹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국정원 점검 결과 방화벽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비밀번호도 ‘12345’로 단순해서 해킹이 얼마든지 가능했다고 했지만, 그 말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국정원 모의 해킹은 방화벽이 뚫린 상황을 가정하기 위해 저희가 모든 보안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해준 상황에서 진행한 겁니다. 또 비밀번호 등 보안 컨설팅에서 지적된 취약점은 모두 즉시 보완해 각 정당 참관인 입회하에 이행 여부까지 점검을 완료했고요.”

-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당시 보안 컨설팅 점검 범위가 전체 선관위 전산장비 6400여대 중 317대(5%)에 국한됐기 때문에,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선관위는 보유하고 있는 전산장비에 대한 모든 접근 권한을 국정원에 부여했습니다. 저희가 제한한 게 아닙니다. 국정원이 중요 장비 위주로 범위와 대상을 선정해 보안점검을 실시한 겁니다. 전체 6400여대 중 317대라고 하면 숫자상 적어 보이지만, 저 6400대에는 전체 선관위 직원들의 일반 컴퓨터가 포함돼 있어요. 선관위 직원들은 모두 컴퓨터가 두 대씩 있는데 하나는 외부 접근이 불가능한 내부 폐쇄망,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 연결되는 외부망입니다. 외부망 컴퓨터에는 중요 정보가 없습니다. 국정원이 조사한 317대에는 선거정보를 관리하는 담당 부서 직원들의 내부망 컴퓨터와 상당수 서버가 포함돼 있었을 겁니다. 국정원은 점검 당시 전체 서버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실제 대부분 서버를 다 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해킹·조작 흔적을 못 찾은 겁니다.”

- 그동안 부정선거론자들은 ‘떳떳하면 서버를 까라’는 주장을 되풀이해왔습니다. 공개적으로 서버를 오픈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대통령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마당에, 아예 서버를 공개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관위는 법에 의해 국가정보시설로 지정돼 있어서 스스로 국가 기밀정보를 유출할 수 있는 권한이 없지만, 탄핵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나 내란죄 수사기관이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을 판단하기 위해) 서버를 검증하자고 하면 응할 의사가 있습니다. 부정선거론자들은 서버 안에 통합선거인명부를 조작하는 프로그램 등이 깔려 있어서, 투표를 안 했는데도 한 것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서버의 보안벽을 전부 허물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면 그 의혹은 해소할 수 있겠죠. 다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요. 서버 구조, 설계도, 제조사명, 소스코드 등 정보가 노출되면, 그때는 정말 보안이 취약해져서 그 상태로 다음 선거를 치르기 어려워집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들여 서버를 전면 재구축해야 해요. 그리고 서버를 재구축하고 난 다음에는 2년 가까운 안정화 기간이 필요합니다. 게임만 해도 새 버전이 출시되면 베타서비스를 거치잖아요. 그런데 당장 내년 4월2일에 통합선거인명부를 사용해야 하는 재·보궐 선거가 있습니다. 안전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서버로 선거를 치렀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선거 자체가 불능(무효화)이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어요.”

부정선거 소송, 물적 증거 전무

- 그런데 근본적인 의문이 듭니다. 대한민국 선거는 실물투표로 이뤄지는데,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처럼 서버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선거 결과를 조작하는 게 가능합니까.

“제가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실물투표에 기반한 우리 선거제도하에서 실질적으로 선거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시군구 선거위원회에서 수기로 작성하는 개표 상황표입니다. 설령 통합선거인명부에 기재된 사람들의 사전투표 결과를 전산상으로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치더라도, 누군가를 지우거나 더하면 결과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물투표 개표 상황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어요. 전산으로 조작한 수치와 실물투표지 개표 결과를 맞추는 것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그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부정선거가 이뤄지려면 선관위 내부자, IT업계 전문가, 투표지 인쇄 담당자, 투표함 관리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해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참관인 등의 눈을 피해) 각자 분담한 역할을 007 작전하듯 실행해야 하는데, 그런 인적 증거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돼 있어요. 그런데 21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해 이제까지 126건의 부정선거 소송이 제기됐는데 하나라도 인적 증거가 나온 게 있습니까. 물적 증거도 나온 게 없습니다. 이제까지 선관위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한번도 발부되지 않은 것은 법원이 편향돼서가 아니라, 서버 검증이 필요할 만큼 혐의가 소명된 게 하나도 없어서예요. 저희가 서버를 보호하려는 것은 부정선거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걸 공개하는 순간 다음 선거 때 보안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 부정선거론자들은 투표지 분류기에 대한 해킹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한국에서 투표지 분류기를 수입해간 키르기스스탄 등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투표지 분류기는 수많은 선거 소송을 통해 이미 그 정확성이 입증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자꾸 반복돼서 2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아예 선거사무원이 모든 투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기계로 자동 분류한 투표지를 곧장 심사 계수기에 넣었는데, 지난 선거 때는 분류기 작업과 선거사무원의 확인, 그리고 심사 계수기 작업까지 투표지를 세 번 확인하도록 한 겁니다. 투표지 분류기 해킹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무선 랜카드도 아예 빼버렸어요. 프로그램 구동을 위해 USB는 안 쓸 수가 없는데 이것도 22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인가된 보안 USB만 인식할 수 있는 매체제어 프로그램을 심어서 보안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 부정선거 음모론의 역사는 짧지 않습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제기돼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부정선거를 언급한 이번 사태는 이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 같습니다.

“2002년에는 대선에서 패배한 한나라당이 전자개표 조작설을 제기했고, 2012년에는 진보진영 지지자들이 투표지 분류기 해킹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영화 <더 플랜>까지 제작했고요. 이같이 진영을 불문하고 일정한 주기로, 유사한 논리를 동원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의혹에 실체가 없으며 부정선거 주장이 정치적 이유에 따라서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음모론,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

- 허위사실에 기반해 반복적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유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부정선거 의혹 제기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광범위하게 보호받아야 하고, 사회적 자정 기능에 맡기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 현대 사회가 데모크라시(민주주의)에서 미디어크라시(대중매체가 막강한 힘을 갖고 사회를 지배하는 체제)로 이전하는 단계라는 겁니다. 미디어의 선동과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때문에 자신이 선호하는 정보만 반복학습하는 확증편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극도로 진영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미디어크라시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이 당선되지 않으면 선거 절차 자체를 공격하게 만듭니다. (유튜브 같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해 선거관리 업무 자체를 방해할 목적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을 반복적으로 유포하는 사람을 지금은 현행법상으로 딱히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습니다. 지금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 당장 공론화는 어렵겠지만 차후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도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관위가 부정선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모든 선거 절차를 보다 더 투명하게 공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전·우편투표함 보관기간 중에는 누구나 보관장소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CCTV 영상을 24시간 공개하고 있고, 개표날에는 투표함을 차에 실어 개표 현장으로 옮기는 과정까지 모두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선관위 홈페이지나 유튜브 채널에 들어오시면 의문 사항을 언제든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으니까,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사무총장은 선관위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근 선관위는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불허해 논란이 되자 입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그는 “선관위가 개별적으로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에 대해 질책하시더라도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 자체를 의심하지는 말아달라”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은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해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위협한다. 선관위도 앞으로 더욱 투명하고 정확한 선거정보 전달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경향 정유진 기자 >

 

윤건영 의원,  윤석열의 ‘삼청동 안가’  제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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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 내란행위’와 관련해 질문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 측이 정권 초기 서울 종로 삼청동 안전가옥(안가)을 개조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 안가는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모의한 장소로 지목돼 왔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정권 초기에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 측에서 삼청동 안가를 개조하려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한 지난 4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 등이 삼청동 안가에서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구속된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은 비상계엄 발표 3시간 전 윤 대통령과 안가에서 내란을 모의한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다.

윤 의원은 “술집의 바 형태로 안가를 바꿔달라고 했다는 것”이라며 “안가의 특수성이 있어 따로 사후 검증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신뢰할 만한 제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업을 하고 있는 분에게 오퍼(제안)가 정확하게 갔던 것”이라며 “‘현장 가봐라’라고 해서 현장까지 가봤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려고 했다가 ‘내가 해도 되나’ 싶어 중간에 드롭(제안 거부)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제보받은 지 꽤 됐는데 (그동안) 말씀을 안 드린 이유가 상상력이 너무 비약됐기 때문이었다”라며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보니 ‘실현 가능하겠다’, ‘과거 군사정부 때처럼 술자리를 겸한 작당 모의가 있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김용현 경호처장 시절부터 안가에서 군 장성들을 여러 번 봤다는 것’이라는 진행자 언급에 “매우 비상식적이고 기괴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민주당은 비상계엄에 연루된 군 관계자들이 안가에 자주 모였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안가를 관리하는 주체인 대통령경호처의 책임도 언급했다. 윤 의원은 “경호처가 계엄 모의를 몰랐을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씨가 무엇을 했다는 것을 경호처가 몰랐을 리는 200% 없다고 생각한다”며 “계엄 당일 대통령이 쪽지 들고 비화폰을 들고 왔다갔다 했다는 것을 모두 다 아는 사람이 경호처장”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박종준 경호처장이 경찰대 2기로, 내란에 가담했던 조지호 청장과 김봉식 서울청장의 직계 선배”라며 “적극적 가담은 아닐지언정 ‘적극적 방조자’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여권 관계자는 “오늘 일부 언론 매체에서 ‘대통령 측이 삼청동 안가를 술집바 형태로 개조를 시도했다’고 보도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관련 내용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인바 추측성 보도의 자제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 경향 박하얀 기자 >

 

이완규 법제처장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현안질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을 술집 형태로 개조하는 일이 추진되었다는 주장과 관련해, 지난 4일 이 안가를 방문한 이완규 법제처장은 개조 여부를 모른다고 했지만, 형태가 어땠느냐고 묻자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에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완규 법제처장에게 삼청동 안가가 술집 바 형태로 개조되었는지를 물었다. 이 처장은 "바로 개조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느냐"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전 의원은 "갔던 곳이 술집 바 형태인지 아닌지는 아시지 않느냐"라고 물었고 이 처장은 "제가 드릴 수 있는 얘기는, 대책회의니 그런 건 전혀 없었고, 저녁 먹으러 가서 그냥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갔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해서 한숨만 쉬다가 저녁 먹고 나온 게 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 의원이 "안가의 형태가 어땠느냐"고 묻자 이 처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술집 바 형태로 개조가 되었는지'라는 질의에도 이 처장은 "모른다"고 답했다. 전 의원은 "거길 갔는데 왜 모르나"라고 물었고 이 처장은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느냐"며 "술집 바가 아니죠. 가정집이죠. 술집 바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말했다.

전 의원이 "형태가 술집 바 같은 형태였는지"를 묻자 이 처장은 "그건 대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처장과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등은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 4일 오후 삼청동 안가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날 윤석열 정부 초에 삼청동 안가를 술집의 바 형태로 개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 안흥기 기자 >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군용차량을 맨몸으로 막아선 한 젊은 청년의 모습 ⓒ 워싱턴 포스트 갈무리


"이 말도 안 되는 정치를 바꿉시다.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군용차량을 맨몸으로 막아 '맨몸 의인'으로 화제가 된 남성이 '꼭 찾아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응답했다.

"국회를 지킨 모든 분들께 감사"

영상에 나온 본인이라 밝인 남성 A씨는 24일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이 대표의 메시지를 공유하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는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군용차량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뛰어가 막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뒤늦게 무서움을 느끼고 있다"며 "밤새 함께 (계엄군을) 막아선 분들, 국회를 지킨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군용차량을 맨몸으로 막아 ‘맨몸 의인’으로 화제가 된 남성이 ‘꼭 찾아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응답했다. ⓒ X갈무리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군용차량을 맨몸으로 막아 ‘맨몸 의인’으로 화제가 된 남성이 ‘꼭 찾아달라’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답했다. 해당 남성인 A씨가 본인을 확인 할 수 있도록 공유한 당시 영상 ⓒ X갈무리
 


A씨는 본인임을 확인 할 수 있도록 당시 영상도 함께 공유했다. A씨는 "그날 휴대폰으로 영상 이후 상황을 담은 영상"이라며 "막자마자 뛰어와 함께 해주신 분들 덕에 안전하다고 느꼈고, 정말 감사했다. 함께 해주셔서"라고 적었다.

그가 올린 영상에는 시민들이 함께 군용차량 앞에 서서 맨몸으로 막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앞서 이 대표가 첨부한 영상에도 한 명의 젊은 청년이 맨몸으로 군용차량을 막아서자 주변의 시민들이 모여들며 함께 맨몸으로 막아서는 모습이 담겼다.

"님의 용기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로 출동했던 군용차량을 한 젊은 청년이 맨몸으로 막아서자 함께 나서며 막는 시민들의 모습 ⓒ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해당 영상은 지난 4일 워싱턴포스트(WP)가 촬영한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한 당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로 진입하는 군용차를 막는 모습이 담겼다. 한 청년이 맨 손으로 군용차량을 막자 시민들이 합세하며 차량을 이동을 멈췄다.

WP는 "서울에서 시위대는 12월 4일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군용 차량을 막았다"며 "한 시위대는 '내 시체 위로 넘어가라'고 소리쳤다"고 보도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는 지난 22일 자신의 SNS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 분을 꼭 찾아 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라는 문구도 해시태그로 덧붙였다.

A씨의 글에 누리꾼들은 해당 영상의 댓글란에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연대한 시민들 덕분에 우리는 함께 이길 거예요. 당신이 희망입니다"라는 반응을 남겼다. 또 다른 누리꾼은 "님의 용기에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큰 빚을 졌습니다. 아직 내란 중인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하겠습니다"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 오마이 박정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