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비선’이 계엄 선포 전 두 달간 정보사를 움직인 전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가운데 마스크 쓴 이)이 24일 아침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김영원 기자 
 

“(선관위 체포조) 인원 준비는 다 되었냐.”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예.” (문상호 정보사령관)

지난 12월1일, 경기 안산시 상록수역 인근 롯데리아에서 만난 전·현직 정보사령관 사이의 ‘서열’은 분명했다.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노 전 사령관이 이처럼 정보사령부를 주무르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탈취 계획을 주도했던 정황이 담긴 구체적인 진술들을 확보했다. 31일 한겨레가 취재한 정보사 관계자 진술을 보면, 민간인 신분이었던 노 전 사령관이 쏟아낸 위험천만한 지시는 계엄 당일 실현 직전까지 갔다. 노 전 사령관은 대법관인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해 선관위 직원들을 야구방망이로 위협해 ‘부정선거’에 대한 실토를 받아내겠다는 ‘선 넘은’ 구상까지 꺼내 들었지만, 정보사는 이를 저항 없이 따른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인 비선’이 계엄 선포 전 두 달간 정보사를 움직인 전말을 관계자 진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해봤다.

“내가 (진급을) 도와주겠다. 내가 장관 잘 안다” 

노 전 사령관이 별다른 인연이 없던 정보사 정성욱 대령에게 텔레그램 전화를 걸어온 건 지난 10월 초순 무렵으로 전해졌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진급’을 미끼로 건 그가 대뜸 꺼낸 말은 ‘부정선거론’이었다. 부정선거론을 신봉하는 예비역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대수장) 교육용 자료로 쓰겠다며 각종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내용을 정리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10월 중순께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특별한 임무가 있을 수 있으니 사업(공작) 잘하고 똘똘한 놈을 선발하라”며 ‘별동대’ 구성을 지시한다. 정 대령은 “인원 선발은 여단장이나 사령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며 에둘러 거절했지만, 며칠 뒤 직속상관인 문상호 사령관이 ‘사업 잘하는 인원 15명을 알려달라’며 똑같은 지시를 내리자 결국 이에 따랐다.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수뇌와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사실을 짐작한 순간이었다.

선관위 탈취 계획·체포 직원·도구 담긴 ‘노상원 문건’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탈취’ 구상이 또렷하게 정보사에 전달된 것은 11월9일 무렵이다. 이날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가 윤석열 대통령이 국방부장관 공관 만찬에서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계엄을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목한 날짜다.

정보사 수뇌부 역시 숨 가쁘게 움직였다. 문상호 사령관은 이날 정 대령에게 “(김용현) 장관님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다. 중대한 일이 있을 것이다. 중앙선관위에 가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달 9∼10일 무렵 노 전 사령관이 작성한 에이(A)4 용지 10여장 분량의 문건이 ‘별동대’ 선별 임무를 맡은 정보사의 정성욱·김봉규 대령에게 전달된다. 이 문건에는 부정선거와 관련됐다는 선관위 직원 30명의 이름과 함께, 이들을 체포해 수도방위사령부에 감금하라는 ‘지시’도 담겨있었다고 한다. 또 문건에 니퍼·드라이브·케이블타이·송곳·망치 등 수상한 준비물들과 함께 ‘계엄’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진술이다.

12.3 내란사태 당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국방부 조사본부 고위직 출신인 김용군 전 육군 대령을 만난 것으로 의심되는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 영업점. 채윤태 기자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 다 나온다”

11월17일, 안산 롯데리아에서 문 사령관·정 대령과 처음으로 모인 날, 노 전 사령관이 호기롭게 말을 꺼냈다.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은 다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했던 게 다 나올 것이다.” 노 전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문건에 적힌 물건들을 아직도 사지 않은 정 대령을 질책한 뒤, 야구방망이·니퍼·케이블타이 등을 준비하라고 재차 지시했다고 한다.

이 수상한 물건들의 용도는 12월1일 두번째 롯데리아 회동에서 드러났다. “(선관위에서) 저항하는 놈들이 있으면 케이블 타이로 묶어놔” “노태악이는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가져다 놔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분다.”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자 그런 놈을 찾아서 홈페이지에 부정선거 자수하는 글을 올려라.”

현직 대법관을 직접 야구방망이로 위협하겠다는 대담한 말을 쏟아낸 노 전 사령관이 자리를 뜨자, 남은 세 사람은 보다 은밀한 장소가 필요해졌다. 정 대령의 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뒤 문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장관님의 지시, 명령이 있으면 군인이니까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일 계엄이 선포되면 장관님 명령을 수행해야 하지 않겠느냐.”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공개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 체포조가 준비한 도구(송곳, 안대, 포승줄, 케이블타이, 야구방망이, 망치 등)
 

비상계엄 디데이, 선관위 탈취 문턱까지…체포 리허설도

12월3일, 계엄이 선포되기 6시간 전인 오후 4시30분께, 문 사령관은 “오늘 중요한 임무가 있을 수 있다”며 공작요원·특수임무대(HID)·여군 등으로 구성된 별동대 요원들을 경기도 판교의 100여단 본부로 소집한다.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는 두 명의 ‘손님’도 100여단에 도착한다.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과 방정환 국방부 전작권전환티에프(TF)장이다. 두 사람은 모두 ‘원스타’로 장성급이다. 밤 9시께에는 문 사령관의 지시로 ‘합동수사본부 제2수사단’이라는 명찰 40개가 제작된다. 노 전 사령관이 구상한 별동대가 계엄 뒤 합동수사본부에 꾸려질 ‘제2수사단’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드러났다.

밤 10시25분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문 사령관은 별동대 인원들을 대회의실에 소집했다. 첫 명령이 떨어졌다. “방송을 다 봤느냐. 계엄법에 따라 장관님 지시·명령으로 중앙선관위에 내일 아침에 가야 한다. (새벽) 5시30분에 출발해 6시30분까지 가면 된다. 장관님 명령이니 군인으로 따라야 한다.”

선관위 직원을 체포할 방법을 두고는 리허설도 이어졌다. 일부 인원들이 직접 케이블타이로 손을 묶어본 뒤 “묶이지도 않고 잘 끊어진다”, “강압적으로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고, 별동대는 결국 케이블타이를 쓰지 않고 양팔을 붙잡아 선관위 직원들을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요원들은 얼굴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선관위 직원 머리에 씌울 신발주머니를 직접 써보기도 했다. 신발주머니가 작아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찢어지자, 선관위 직원들에게는 수면안대를 씌우고 별동대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정리했다는 게 관계자의 진술이다.

12·3 내란사태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하고 사전모의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
 

“노 전 사령관 물건이 두 개 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4일 새벽 4시27분 비상계엄이 공식 해제되면서, 실행 직전 단계까지 갔던 ‘노상원의 구상’은 그 자리에서 멈췄다. 한 시간 뒤인 새벽 5시30분, 문 사령관은 선관위 탈취 문턱까지 갔던 별동대 요원들을 모아 다독였다. “임무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날 아침, 두 명의 손님은 100여단을 떠났다. 구삼회·방정환 중 한명이 문 사령관에게 물었다. “노 전 사령관 물건이 2개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문 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님께 갖다 드리면 되지 않겠냐”고 답했다고 한다. 손님이 언급한 온 노 전 사령관의 ‘물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 한겨레 임재우 기자 >

심리정족수 7명 채워 정당성 논란 차단
최상목 ‘선택적 임명’에 법조계 비판

 
3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은 이날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에 불복해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으로,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를 갖출 수 있게 되면서 ‘내란죄 피의자’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헌재는 지난 10월 ‘심리정족수 7인 조항’의 한시적 효력중지를 통해 ‘6인 체제’로 심리를 진행해왔지만 ‘6인 체제로 탄핵심판 선고까지 가능하냐’를 놓고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논의를 계속 진행해왔다. 대통령 탄핵 같은 중요한 사건을 ‘한시적 효력 정지’ 근거로 6명이 결정하는 것은 ‘신뢰성과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부담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인 체제로 전환되면서 헌재는 안정감 있게 심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심리정족수 7인을 지킬 수 있는데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역시 박한철 당시 헌재 소장의 퇴임으로 8명이 결정한 전례가 있어 정당성 논란도 일축할 수 있다.

최 권한대행이 재판관으로 임명한 정계선 서울서부지법원장(더불어민주당 추천)과 조한창 변호사(국민의힘 추천)는 각각 진보와 보수로 분류된다. 두 사람의 합류로 헌재 구도는 진보 2명, 중도·보수 3명, 보수 1명 구도에서 진보 3명(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 이미선·정계선 재판관), 중도·보수 3명(김형두·정정미·김복형 재판관), 보수 2명(정형식·조한창 재판관)으로 재편됐다.

윤 대통령 파면 여부 결정은 이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처럼 주요 사건에서 정치적 이념 등 재판관 성향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관측이 많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재 재판관 구성은 진보 2명, 중도·보수 1명, 보수 5명으로 분류됐지만, 전원 일치로 파면이 결정됐다.

최 권한대행 부총리의 재판관 2명 임명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법조계에선 선택적 임명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김승대 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 추천 재판관 임명은) 국회의 자율권에 속하는 부분이고, 대통령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합의제 기관인 국회가 결정해 대통령에게 통보했을 때는 대통령이 헌법 조항에 따라 임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역시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선별적으로 임명할 권한은 없다. 일부 헌법재판관만 임명한 것은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가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고, 위헌적인 행위라는 비판을 피해 탄핵소추를 모면하려는 기괴하고 비겁한 행태에 불과하다”며 선별 임명을 비판했다.

한편, 헌재는 이날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는 방식의 ‘임명권 불행사’는 행정 부작위로, 청구인의 공정한 헌법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며 지난 28일 김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도담)가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했다. 사건이 청구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고, 국회에서의 정쟁으로 사실상 헌재의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 오연서  김지은 기자 >

 

 대통령실장·수석, 최상목에 일괄 사의...헌법재판관 임명 항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2025년 새해 첫날인 1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수석비서관 이상 대통령실 참모진들이 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4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뒤 일괄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아침 “대통령 비서실과 정책실, 안보실의 실장, 외교안보특보 및 수석비서관 전원은 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거듭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최 대행이 이날 아침 8시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 대통령실 참모진들이 함께 했는데, 참배가 끝나고 1시간여 뒤에 이러한 입장을 언론에 알렸다.

현재 대통령실 참모진은 윤 대통령 직무정지에 따라 최 대행을 보좌하는 업무를 한다. 대통령실은 이날 사의를 다시 밝힌 것에 대해 추가적인 공식입장을 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전날 최 대행이 공석인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중 2명을 임명했는데 이에 대한 항의를 표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일부 언론에 최 대행의 결정에 대해 “권한대행의 대행 직위에서 마땅히 자제돼야 할 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박근혜 청와대 참모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직후인 2017년 3월13일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과 허원제 정무수석 등 수석 비서관 9명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황 대행은 허원제 수석의 사표를 4월에 수리했지만 나머지 인사들의 사표는 바로 수리 하지 않았다. < 한겨레 이승준 기자 >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 "지난 6월부터 무인기 공작 준비" 주장... 안보실 "법적 조치 등 진행"

 
 
북한, 평양에서 한국군 무인기 잔해 발견 주장북한이 평양에서 한국군에서 운용하는 드론과 동일 기종의 무인기 잔해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지난 10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국군부깡패들의 중대주권침해도발사건이 결정적 물증의 확보와 그에 대한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명백히 확증되였다"고 발표했다. 오른쪽 사진은 2023년 9월 2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에 등장한 무인기(원거리정찰용소형드론). ⓒ 연합
 


지난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주도했다는 민주당의 주장에 국가안보실이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내란 진상조사단(단장 추미애)은 지난 30일 "지난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는 국가안보실이 드론작전사령부에 직접 지시했으며 그 과정에서 합동참모본부와 방첩사령부 등도 관여했다는 다수의 제보가 접수됐다"고 주장했다.

진상조사단은 "제보를 종합한 결과, 지난 10월 초 국가안보실은 공식적 명령 계선인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건너뛰고 직접 드론작전사령부에 평양 무인기 투입 준비 등을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9월 부임한 인성환 2차장 주도로 무인기 평양 투입 준비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진상조사단은 "드론작전사령부는 지난 6월부터 북한 침투 무인기 공작을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초에는 인성환 2차장 주도로 준비하다가 8월 12일부터는 새로 취임한 신원식 안보실장이 관여한 의혹이 제기된다"며 "6월부터 무인기 투입이 추진된 것에 대해 실무자들은 5월 28일부터 북한이 오물풍선 살포를 시작함에 따라 군이 북한에 무인기를 투입해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진상조사단은 제보를 인용해 지난 10월 초 새벽 드론작전사령부 인근인 연천·파주에서 한 주민이 추락한 북 침투 의혹 무인기 기체와 삐라통을 발견했고 이를 신고해 5군단, 지상작전사령부 그리고 전략사령부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부대 상황일지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음에도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국가안보실은 이날 오후 기자단 공지를 통해 "국가안보실이 북풍 공작을 주도했다는 민주당 의원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소위 북풍 공작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안보실은 또 "접수된 제보라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국가안보실은 물론, 합참과 우리 군을 매도하는 이 같은 행태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며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해당 의원에 대해 법적 책임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오마이 김경년 기자 >

  • 2024년에 펼쳐진 민주주의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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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분리 장벽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그려져 있다.연합


2024년은 인류가 당분간 직면할 정치적 긴장, 사회적 갈등, 환경적 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해였다. 위기는 인류에게 도전과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만 위기와 기회는 접점에서 만날 뿐 동시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2025년은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지구촌 안보 위기의 중심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 채 전쟁은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오는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 변화에 따라 이 전쟁의 향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는 과거 집권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협력 관계를 중시한 바 있다. 취임 후 외교적 협상을 통해 전쟁 종식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이는 서방 동맹국들과의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위기는 유럽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유럽 역시 복잡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불신을 지속적으로 드러내 온 만큼, 방위비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국방비 증액이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유럽은 미국이라는 우산 없이 독자적인 안보 노선을 모색할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유럽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과 재정적 제약으로 단기적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변화 예고하는 중동

트럼프의 재집권은 중동 정세에도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와의 강력한 관계를 바탕으로 더욱 공격적인 외교 및 군사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넘어 시리아와 예멘까지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이 확대될 여지가 충분하다.

현재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 지역에서 대치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형국이다. 이스라엘이 군사 활동을 벌이는 지역은 이란에 곧 최전선이 되고 있다. 하마스, 헤즈볼라,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후티 반군 등 이란의 우방 세력은 올해 잇따라 위기를 맞았다.

이 와중에 트럼프의 취임은 알리 하메네이 체제에 악몽과도 같은 시나리오를 예고하며 이란이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란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이스라엘의 폭력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의 개방정책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이슬람권 8개 개도국(D8)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연합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이끄는 온건 개혁파 정권은 최근 메타의 메신저 왓츠앱과 구글의 앱 마켓 구글플레이 사용 금지를 해제하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여성 복장 규제를 담은 히잡 의무법 시행을 보류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연이은 개방정책은 페제시키안 정권의 개혁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누그러뜨리며 국제여론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외교정책에서도 이란의 고립을 탈피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에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분별한 전선 확대는 무슬림 세계의 두 패권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대화를 시도할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대만 문제는 2025년에도 국제 정세의 주요 화두로 남을 전망이다. 중국은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맞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군사적 억제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립은 동아시아 안보 환경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지역적 갈등이 전 세계로 확산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극우 세력의 부상

정치적 양극화는 올해에도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초 극좌 세력의 부상이 정치 지형을 흔들었던 것처럼, 현재는 극우 세력의 부상이 새로운 도전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계급 간 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 국제 연대가 정치 변화를 이끌었다면, 지금은 국가라는 무한 권력 기구를 중심으로 한 배타적 고립주의가 정치적 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다수 국가에서 극우 세력이 집권하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극우 지향의 대통령 탄생이 더 가까워졌고, 영국에서는 극우 성향의 개혁당이 기존 보수당을 압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극우 세력의 부상은 민족주의의 강화와 외국인 배척으로 이어지며,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신종 감염병의 위협은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세대가 직면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2024년에도 대규모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며, 환경, 보건 문제가 인류 생존과 직결된 과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이런 환경 위기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트럼프 당선인은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 파리협약을 탈퇴했고, 탄소배출의 위험성에 대해 거짓 정보라고 몰아세웠으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 백신의 필요성을 음모론으로 치부했다. 환경문제에 소극적 대응을 넘어 적극적 방해의 길을 가는 사람이 유례없이 거대한 힘을 가진 나라의 대통령으로 복귀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준 힘

지난 5일 프랑스의 국제 보도전문채널인 '프랑스 24'가 보도한 "한국의 위기: 민주주의는 흔들리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다"프랑스 24


2025년을 앞둔 인류는 과연 이러한 위기들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까? 암울한 2024년을 보내면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보여준 힘과 잠재성이다. 상상을 초월한 악의 음모를 저지한 것은 다름이 아닌 조직된 시민의 힘이었다.

프랑스의 한국 정치 전문가 장 이브 콜랭(Jean-Yves Colin)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외세나 엘리트가 아닌 시민들의 저항을 통해 아래로부터 쟁취된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그러한 민주주의가 정치적 혼란에 익숙한 한국 국민들이 위기 때마다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힘으로 작용했다.

2024년에서 2025년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겨울은 어쩌면 세계가 겪는 민주주의 위기의 시험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장 이브 콜랭은 지금의 한국이 겪는 위기는 1980년대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다면서 힘주어 말한다.

"현 사태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이자 잠재적 체제 위기로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과 위기 극복 능력을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  오마이 임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