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들 비화폰 재로그인 안 돼
포렌식 어려워져 서버 확보 시급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의 경호를 받으며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2·3 비상계엄에 동원된 군사령관들의 대통령경호처 비화폰의 통화 기록이 원격으로 삭제된 정황이 17일 드러났다. 경호처가 관리하는 비화폰의 통화 기록은 윤석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비상계엄의 작동 경로를 밝힐 ‘블랙박스’로 꼽힌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군사령관과 국무위원들이 당시 경호처 비화폰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비상계엄에 동원된 사령관들의 비화폰 포렌식이 어려워진 만큼 비화폰 서버 확보의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지난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경호처에서 제공받은 비화폰을 확보했지만 ‘로그아웃 상태’였음을 확인했다. 검찰은 여 전 사령관에게 “(비화폰에서) 휴대전화 보안앱(보안UC)이 로그아웃되어 있고, 다시 로그인이 되지 않는데 피의자가 조치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여 전 사령관은 “군 안보폰(비화폰)은 원격으로 소거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호처 핸드폰이 소거가 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경호처 핸드폰도 그런 조치(강제 로그아웃)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인다”고 답했다. ‘원격 로그아웃’으로 추정된다는 답변이었다.

 

경호처 비화폰은 원격으로 로그아웃할 경우 통화 기록이 삭제된다. 김성훈 경호처 차장은 지난해 12월7일 경호처 직원에게 비상계엄에 동원된 여 전 사령관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등의 비화폰 단말기 통화 기록을 원격으로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경호처 실무자는 지난해 12월12일 보고서(‘처 보안폰 보안성 강화 방안 검토 결과’)에서 “관리자 서버에서 원격 로그아웃 시 단말기 내 통화 기록(이) 삭제”된다고 하면서도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김 차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원격으로 로그아웃이 된 게 사실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비화폰 통화 기록을 삭제한 셈이다.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대목이다.

 

지난달 3일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 사건과 관련해 경호처 압수수색 착수를 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관들이 민원실을 나서고 있다. 김태형 기자

 

이 전 사령관이 경호처에서 받은 비화폰에서도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이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님은 군 보안폰으로 전화를 주셨고, 무궁화폰이라고 대통령경호처에서 준 폰으로는 국방부 장관이 전화를 했었다”며 “압수수색 나왔을 때 제출하면서 (무궁화폰을) 켜려고 했는데 뭘 차단해놨는지 켜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곽 전 사령관은 스스로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을 삭제했다고 검찰에 밝혔다. 비상계엄에 동원된 주요 사령관의 경호처 비화폰이 모두 ‘깡통폰’이 된 셈이다. 아직 확보하지 못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비화폰 통화 기록도 단말기에서 삭제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내란죄 입증을 위해서는 이들의 통화 기록이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큰 경호처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며 군사령관들의 진술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과 군사령관들의 통화 시간을 확보하고 그 이후 군의 움직임 등을 통해 혐의가 입증돼야 하는 상황이다. 경호처 비화폰 통화 기록을 통해 비상계엄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경호처 비화폰 서버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모두 무산됐다.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그 책임자의 승낙 없이는 압수 또는 수색할 수 없다’는 형사소송법 조항에 따라 경호처장 직무대행인 김 차장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경찰 특수단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혐의 등으로 김 차장의 구속영장을 세차례나 신청했지만 검찰이 이를 기각하면서 김 차장은 비화폰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경찰의 불복으로 열린 서울고검 영장심의위원회에서 지난 6일 김 차장 구속영장 청구를 권고하는 결정이 나왔고 경찰은 이날 서울서부지검에 김 차장에 대한 네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김 차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경호처 비화폰 압수수색을 다시 시도할 계획이다.  < 한겨레 정환봉  배지현  김가윤 기자 >

 “증거 명확한 사건인 만큼 헌재는 더 이상 좌고우면 필요 없어”

  탄핵정국 장기화되며 국민의 피로도와 불안감이 가중일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재판 선고가 기약없이 늦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숙고의 시간을 넘어 지연의 시간으로 가고 있다”며 헌재 사무처장 국회 출석 요구 등 실력 행사를 예고했다. 역대 최장기간의 탄핵심판으로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며 국민의 피로도와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는 취지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이었던 63일,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심판이었던 91일을 넘어서 최장 심판 기록으로 남고 있다”며 “지난주까지는 헌법재판소가 워낙 중차대한 사건을 처리하기 때문에 숙고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이제는 숙고의 시간을 넘어 지연의 시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명심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증거가 명확한 사건인 만큼 헌재는 더 이상 좌고우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김 원내수석은 이어 “국회는 헌재가 신속한 파면 선고를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들을 모색하도록 하겠다. 신속한 선고 기일 지정 신청, 사무처장의 국회 출석 요구 등 다양한 방식들을 강구해 보겠다”며 헌재를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그간 여당과 달리 헌재를 향해 우호적 여론전을 펼쳐온 야당이 선고 지연에 ‘강공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온국민이 지켜본 내란인 만큼 사안이 간명한데 이렇게 늦어질 이유가 있느냐”며 “선고가 너무 늦어지고 있어 자영업자 등 국민적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공세 수위를 높인 배경을 밝혔다.

 

다만 헌재를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이견이 없지 않다. 민감한 탄핵 선고를 앞두고 헌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서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헌재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는 이야기가 지도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탄핵선고가 조금 늦춰질 뿐이지 결론은 분명할 텐데 다소 조급해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또다른 다선 의원도 “우리가 불안한 티를 그리 낼 필요가 있나. 헌재를 공격해온 여당과 달리 우리는 헌정을 수호한다는 입장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고 말했다. < 한겨레 엄지원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내란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선고 기일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선 '신속 파면 선고'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특히 이재명 대표는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헌재 선고가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되며 많은 국민께서 잠들지 못하고 계신다"며 헌재를 직접 겨냥했다. 민주당 소속 민형배 의원이 같은 날 오전 '신속 파면 선고' 단식을 8일째 이어가다 병원에 이송된 사실도 함께 언급했다.

박성재 변론 시작 언급하며 "국민이 납득할지 의문"

이 대표는 "헌재가 박성재 법무부 장관 탄핵 심판 변론까지 시작하며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늦추고 있는 것을 어느 국민이 납득하실지 의문이다"라면서 "대통령 탄핵 최우선 심리를 말하던 헌재가 다른 사건 심리까지 시작하며 선고를 지연하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이어 "하루라도 빨리 국정 혼란을 끝내야 한다"면서 "국민께서 풍찬 노숙 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잠드실 수 있도록, 더 이상 곡기 끊는 분들, 목숨 잃는 일이 나오지 않도록 신속한 파면 선고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같은 날 민주당 소속 3선 의원들은 '윤석열 가족 측근 비리 백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100가지 비리 의혹을 열거하며 헌재의 '빠른 판결'을 요청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을 비롯한 3선 의원들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가족 측근 비리 등 파면 이유를 담은 백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


실무작업을 맡은 김영호 의원은 이날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헌재 재판관님들께 간절히 호소한다"면서 "계엄령 선포, 내란죄 말고도 윤석열의 파면 사유는 100가지 넘게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박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의 취지를 설명하며 "파면이 되더라도 그동안의 실정은 계속 밝혀야 한다"면서" 헌재 재판관께도 여러 실정과 국민 불안, 경제 상황에 (윤 대통령이) 충분한 책임이 있으니 결정하는 데 참고하시라는 의미도 있다"고 전했다.

'선고 지연' 이유를 분석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주민 의원은 "내용보다는 절차적 이유로 지연되는 것으로 추측되고, 조속히 헌정 질서가 회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혜련 의원은 "헌재 재판관 입장에서도 절차적 완결성과 국민 통합을 이루는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 늦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그래도 굳이 예측한다면 이번 주는 넘기지 않을 거라 본다"고 추측했다.  < 오마이 조혜지 기자 >

탄핵소추 여부 등 대응 방안
“최종 시한 지나고 밝힐 것”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내일(19일)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라”고 17일 촉구했다. 마 후보자 임명 시한을 19일로 못박고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헌법 질서 수호라는 막중한 책무를 져버리고 헌정 질서를 유린한 (최 대행의) 책임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 참을 만큼 참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오늘로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82일째,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이 있은 지 19일째”라는 점을 지적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헌법 수호에 막중한 책무가 있는 권한대행이 앞장서서 헌정질서를 유린 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신은 헌재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서 ‘헌법 수호의 막중한 책무 때문에 명태균 특검을 거부한다’는 해괴한 말을 늘어놓는 게 정상이냐”고 비판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의 헌정 파괴로 국가 위기는 지속되는데 (최 대행은) 수습은커녕 오히려 내란수괴 체포 방해, 특검 거부로 내란 수사를 방해하고 있고, 헌재 결정과 현행법을 무시하며 혼란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회의 뒤 ‘최종 시한이 지나면 최 대행을 탄핵소추 하겠다는 의미냐’고 묻는 취재진에 “그 이후(대응방안)는 원내에서 협의된 안으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다”고 말을 아꼈다. ‘탄핵소추나 고발 등을 고려하고 있느냐’ 는 거듭된 질문에도 “그런 방안에 대해서는 최종 시한이 지나고 나서 밝히겠다”고 했다.  < 한겨레 고한솔 기자 >

 

“마은혁 임시 재판관 지위 부여해야” 헌재에 가처분 신청

마은혁 불임명 헌법소원 제기한 김정환 변호사
“재판관 8인 구성은 헌재 결정 정당성 왜곡”

 

 
 
                                       헌법재판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임명이 미뤄지는 가운데, 그에게 임시로 재판관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가처분 신청이 제기됐다.

 

김정환 변호사는 18일 본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마 후보자에 대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정식 임명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그가 헌법재판관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하는 가처분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피신청인은 최 대행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말 마 후보자의 불임명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국가기관의 지위를 갖는 피신청인(최 대행)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본안사건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기속력을 가지는 응급적이고 잠정적으로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마 후보자가 임명되지 않을 경우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재가 헌법이 예정한 9인이 아닌 8인으로 구성되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는 헌재 결정의 정당성을 왜곡시킨다”며 “4월18일 일부 재판관의 임기 만료가 예정되어 심리정족수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임시지위 가처분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임명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정상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임시적이고 보충적인 조치”라며 “헌정사에 선례가 전혀 없었던 헌재 결정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불복에 대해 긴급한 임시조치로 헌법재판의 규범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최 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중 정계선·조한창 후보자만 임명하고, 마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이에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이 침해당했다고 권한쟁의심판을 냈고, 헌재는 지난달 권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결론냈다. 하지만 최 대행은 여전히 마 후보자 임명을 보류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한겨레에 “권한쟁의 심판에서 결정이 났는데 (최 대행처럼)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이런 내용의 임시지위 부여 가처분도 전례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 김지은 기자 >

청소년 사이 자리잡은 혐오 정서와 윤석열 지지자의 극단적 구호 상호작용

교실의 극우화ㅣ‘보통의 학생’ 3명 인터뷰

 
‘애국청소년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시민 100만명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지난해 12월7일, 고등학생 이기원(17)군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대통령 탄핵’을 염원하는 시민의 모습을 단체 대화방에 전했다. 한 친구의 조롱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시민 폭동에 참여하는 거? 탱크가 필요하노.”

 

바로잡고 싶었다. 계엄군이 국회에 들이닥친 참담함, 시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비상계엄 포고령의 문제점을 차분히 설명해보려 했다. 되돌아온 답변은 그저 사진 몇장. 박정희, 전두환, 탱크의 모습이 휴대전화 화면에 번졌다. 그 대화가 이후 교실을 뒤덮을 극단적 목소리의 서막이리라고, 그날 이군은 생각지 못했다.

 

그로부터 석달 가까이 흐른 지난 15일, 청소년 20여명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열었다. 한 청소년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저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외쳤다. 둘러싼 어른 10여명은 “잘한다” “최고다, 최고”라며 치켜세웠다. 온라인에선 탄핵 반대에 나선 청소년을 북돋우며 ‘MH(무현) 세대’로 부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의미를 담은 혐오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사이에서 자리잡은 혐오 정서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의 극단적 구호가 12·3 내란사태 이후 상호작용하며 확산하고 있는 상황을 고심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청소년의 혐오 정서가 있었지만 오프라인 세계로 넘어와서 꽃을 피우게 된 계기가 이번 계엄 사태였습니다.”(권정민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정치권이 탄핵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기존의 혐오를 다 끌어다 쓰는 관계로 보입니다.”(김학준 ‘보통 일베들의 시대’ 작가)

 

한겨레는 17일, 12·3 내란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동참했던 청소년 3명의 눈으로 지난 3개월여의 교실을 돌아봤다. 민주주의와 정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등의 상식이 외려 조롱거리로 내몰리고 숨죽이게 된 ‘전복의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청소년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극단적 내용의 쇼츠 영상을 만드는 또래 제작자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왜’냐는 물음에 답은 간단했다. “재미있으니까.”

 

인식 없는 혐오

 

상식의 자리에서 버텨보려는 학생에게 교실은 이상한 공간이다. 수업 안에서 정치적 발언은 엄격하게 ‘통제’된다. 또래 사이 장난을 표방한 정치적 혐오는 ‘숨 쉬듯 자유롭게’ 반복된다.

 

박지우(18)군이 그런 교실 풍경을 전하며 한숨을 쉬었다. “친구가 실수를 하면 ‘너 장애인이냐’는 말이 당연하게 나오고, 남자끼리 몸이 닿기라도 하면 ‘게이’라며 성소수자를 비하해요.” 혐오와 비하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5·18 광주민주항쟁을 ‘광주 폭동’이라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표현이 말투 전반에 녹아 있다. ‘남자는 보수, 여자는 진보’라고 인식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냥 웃고 떠드는 하나의 문화예요. 아예 잘못됐다는 인식을 못 하는 거 같아요.” 어디서 들은 표현인가,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 박군은 “신남성연대 유튜브처럼 남학생들이 웃고 떠들면서 볼 수 있는 콘텐츠는 지천에 널려 있다”고 했다.

 

반면 그에 대한 설명과 제지는 기대할 수 없다. 남궁솔(18)군은 “선생님도 엄두가 안 나실 것”이라며 안쓰러워했다.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면 문제가 되고, 학부모 민원도 받으실 거잖아요.” 진보와 보수의 역사와 맥락이 무엇인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혐오 표현과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왜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지, 극우 유튜브는 어떤 점에서 믿을 수 없는 콘텐츠인지 ‘정치’를 삼가는 학교는 가르쳐줄 수 없었다.

 

그 틈에서 아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적 정체성을 규정했다. 박군이 말했다. “고민을 해보고 ‘진보다 보수다’라는 인식을 갖느냐면 단언컨대 아니거든요. 목소리 하나에 꽂혀서 지지하거나 혐오하는 거죠.”

 

머리에 꽂히는 목소리

 

교실은 ‘진공 상태’에 있지 않다. 12·3 내란사태 이후 빈도와 강도를 더한 정치 콘텐츠가 교실에도 전해졌고, “확실히 더 많은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됐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문제는 방향이다. 아이들은 ‘더 세고, 과격하고, 도파민 돋우는’ 꽂히는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기원군이 말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친구도 계엄을 계기로 관심을 가지는데, 주로 유튜브로 조각조각 사안을 알게 돼요. 단편적이지만 도파민을 확 폭발시키는 것들.” 주로 외국인·야권·노동자·소수자·여성을 ‘적’으로 규정하고 폭력을 합리화하거나 조롱하는 내용이었다.

 

교실에 이전부터 번져왔던 약자를 향한 조롱과 상통한다. 내란 이후 강자에 대한 합리화가 더해졌다. 이군은 “대통령에게는 절대군주 같은 권한이 있는데 왜 국회를 통제 못 하느냐고 인식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힘과 약육강식’의 세계를 믿는다면 혹할 만한 얘기였다. 더군다나 이런 얘기는 ‘믿을 만한 어른들’의 입으로 전해졌다. 이기원군은 “국회의원이나 전한길 강사 이런 분들이 얘기하면 믿을 만하겠다는 정서도 많다”고 짚었다.

 

어느덧 극단적인 말은 교실에서 ‘빵 터지고, 쿨한 것’이 됐다. 남궁솔군은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친구들은 반에서 인싸(주류)로 분류되는 친구들”이라며 “이런 말 하면 빵 터질 걸 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나서서 얘기하는 게 ‘쿨하다’거나 멋있다고 여기는 것도 같다”고 설명했다.

 

 

교실이 어른에게 

 

교실 안의 상식은, 그렇게 바깥 사회보다 한발 더 빨리 소수에 놓일 위기다. 학생들은 그 와중에도 또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지우군은 내란사태를 규탄하는 고등학생 시국선언에 참여했다가 들었던 말을 되짚었다. “몇몇 친구들이 공산주의자·빨갱이 이런 이야기도 조금 하고, 수군대기도 했고요. ‘이재명한테 얼마를 받았느냐’는 얘기도 있었네요.” 시국선언 안내를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했다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메시지를 받은 일도 있다. “그런 건 또래가 한 건 아닐 거예요. 그냥 어느 극단적인 분이겠죠.”

 

박군은 또래를 믿으려 한다. “비하와 조롱에 동조하지 않는 학생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정색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건 자신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선비다’ 소리 들을 거예요.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도 ‘선비다’ 한마디로 변질시켜버리니까, 섣불리 목소리를 내기보단 그냥 한숨 쉬고 넘기는 거죠.”

 

옳고 그름의 선을 그어주지 못하는 교실에 사회의 극단적 주장이 빈도와 강도를 더해 들이닥쳤다. 학생은 어른에게 하소연했다. “민주주의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엔 극단적인 목소리도 있을 거예요. 갈등이 커지면서 ‘그래도 된다’고 더 주입하는 것 같아요. 그런 말이 주류가 되는 건 경계해야 하잖아요. 합리적인 목소리로 돌아와주세요.”(이기원) < 한겨레  박고은  정봉비 기자 >

 

‘조롱 밈’ 올리는 10대 “재미가 1순위…좌파들도 만들잖아요”

교실의 극우화

 

‘애국청소년연대’ 회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전국 청소년 선관위 규탄대회’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재미가 1순위예요. 정치인이 죽었다고 성역화돼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된 김성민(가명·19)씨는 3년 전부터 유튜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과 음성을 활용해 조롱하는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는 4300여명, 한달에 약 120달러(약 17만원) 정도 번다. 김씨는 “채널 운영의 목적은 재미가 1순위”라고 했다. “다른 정치인의 목소리는 재밌지가 않아서 노 전 대통령 것을 활용했어요. 요새는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을 비판하는 영상을 만들고요.” 김씨는 12·3 내란사태 이후부터는 유튜브 영상을 짧게 편집해 ‘릴스’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기 위해 10여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횡행한 혐오 표현은 일베가 ‘화력’을 잃고 디시인사이드→유튜브→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면서 1020세대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김씨는 그런 밈의 ‘공급자’다. 김씨 유튜브 채널의 시청자층은 만 24살 미만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스스로를 ‘보수 자유주의자’라고 지칭하는 10대의 전형이기도 하다. 그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쯤 처음 접한 유튜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희화화 영상’이었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 작가는 “웃기는 능력 하나만으로 커뮤니티의 ‘네임드’가 되는 게 놀이의 규칙이 됐다. 특히 약한 사람을 비난하는 방향의 웃음이 극우화의 토양이 됐다”고 말했다.

 

이윽고 김씨는 ‘반페미니즘’과 ‘반피시(PC·정치적 올바름)’를 접했다. 김씨는 “남성을 잠재적 성범죄 가해자로 여기고 진보 진영 정치인들이 표팔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페미니즘에 반감이 생겨 보수 성향을 가지게 됐다”고 강조했다. ‘반페미니즘=남성=보수’의 공식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 등식에 ‘탄핵 반대’가 얹어졌다. 그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는 윤 대통령 탄핵이 안 되는 게 더 좋은 나라인 것 같아 탄핵을 반대하게 됐다”고 했다.

 

책 ‘한국, 남자’를 쓴 최태섭 사회학 연구자는 “10~20대 남성 사이에는 여성 혐오와 반피시가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 민주당에 대한 반감도 상당하다”고 했다. 다만 “이들이 보수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기보다 자신을 대변해줄 것들을 계속 찾아다니는 상황으로, (계엄이라는) 정치적 이벤트 속에 친연성을 느끼는 대상이 그쪽이었던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김씨는 최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음란 수괴’로 칭하고 ‘이재명 구속, 내란 선동 민주당 해체’를 적은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그간 만든 영상이 혐오나 모욕에 해당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김씨가 답했다. “좌파 진영도 박근혜 전 대통령 누드화 만들면서 보수 대통령 조롱했잖아요. 불만이 있으면 보수 대통령 가지고 영상 만들면 됩니다.”  < 고나린  박고은 기자 > 

 

전문가들 “10대들 도 넘는 혐오 발언 땐 확실한 선 긋기 필요”

교실의 극우화 ㅣ10대 극우화 해법

 

 
 
 

 

12·3 내란을 경험한 2025년 청소년의 혐오 문화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견해를 내놓는다.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쓴 김학준 작가는 “2000년대나 2010년대의 청소년도 혐오 문화는 비슷했다”며 10대라는 연령 특성이 좀 더 강하다고 봤다. 나이가 들어 관계의 범위가 넓어지며 혐오 정서가 완화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을 섣불리 ‘잃어버린 세대’로 진단하는 건 위험하다는 의미다.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유아특수교육학)는 “이전에도 극우적 생각은 있었지만 계엄 사태를 계기로 공공연하게 오프라인 세계로 넘어오게 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격화하는 갈등으로 극단적 주장에 대한 선이 무너지는 상황이 청소년에게도 위협이 된다는 점은 강조했다. 청소년을 혐오로부터 구하기 위해, 도를 넘는 발언에 전방위적으로 ‘분명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우선 부모에게 권정민 교수는 아이와의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라고 강조했다. “관계가 끊어지면 어떤 대화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고통이 많다는 것, 언젠가 그 고통을 우리도 느낄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녀와의 대화 주제로 제안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합리적인 정치적 표현을 허락해야 한다는 건, 학생들은 물론 전문가의 의견이기도 하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는 “오이시디 국가 중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기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고등학생 이기원(17)군은 “현대사를 배울 때 노무현 대통령 이후로는 정치적이라 시험에 내지 않는다고 한다”며 “학교에서도 제대로 된 역사와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교실을 둘러싼 사회 전반의 분위기다. 최태섭 ‘한국, 남자’ 작가는 “도를 넘는 혐오는 확실히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는데 윤석열 정부 이후 사회 분위기가 이를 용인했다”며 “특히 대통령처럼 권위를 지닌 사람이 행동하고 발언하는 방식과 내용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 한겨레 박고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