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보고서, 추락 부른 MCAS 등에 대해 제대로 공개 안했다 지적

연방항공국 감독 소홀까지 겹쳐2년간 두차례 추락으로 인명피해

 

시험비행을 하고 있는 미국 보잉사의 737맥스 항공기. 시애틀/AP 연합뉴스

 

최근 2년간 346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보잉의 737맥스 항공기 추락 사고는 보잉이 설계 결함 등 중요 정보를 감추고 감독 기관인 미 연방항공국(FAA)이 감독을 소홀히 해서 발생했다는 미 하원 보고서가 16일 나왔다.

미 하원 교통위원회는 이날 18개월에 걸쳐 조사한 보잉 737맥스 사고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보고서는 2018년과 2019년의 보잉 737맥스 추락 사고가 일회성 고장이나 기술적 실수, 잘못된 관리 탓이 아니라 보잉과 연방항공국의 잘못이 결합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보잉 737맥스의 첫 추락 사고는 20181029일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항공기가 자카르타에서 이륙 직후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189명이 모두 숨졌다. 또 지난해 310일에는 에티오피아항공 보잉기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근처에서 추락해 157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교통위원회 보고서는 보잉은 737맥스 기종에 적용된 조종특성향상시스템’(MCAS)의 설계를 잘못하고 이 장치의 성능에 대한 판단도 실수했다이 장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알리지 않는 등 중요 정보를 연방항공국, 자사의 고객, 조종사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조종특성향상시스템은, 항공기를 위로 뜨게 해주는 힘인 양력을 잃는 현상(실속)이 예상되면 항공기의 앞부분을 아래로 내리고 속도를 높여 양력을 키우는 장치다. 이 시스템에는 실속 판단을 위한 감지기가 하나였으며 감지기가 오작동해 조종특성향상시스템을 작동시켰다는 걸 사고 조사관들이 확인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라이온에어와 에티오피아항공의 조종사들은 항공기의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했으나, 이 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해 조종을 방해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보고서는 보잉이 737맥스 판매를 서두르려고 시험과 조종사 훈련 등을 최소화했고, 연방항공국을 설득해 조종특성향상시스템을 안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 장치로 분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연방항공국은 성명을 내어 보고서에서 지적된 개선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의회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보잉사는 이번 항공기 사고와 우리가 저지른 실수로부터 혹독한 교훈을 얻었다737맥스의 설계를 변경하고 내외부의 철저한 점검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 신기섭 기자 >

 


홍콩 출신 옌리멍 연구원 논문에 배넌이 의장 맡은 재단 이름 올라

과학계 논문 신뢰할 수 없어트위터, 폐쇄페이스북 가짜뉴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선임전략보좌관과 궈원구이. 궈원구이의 트위터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브 배넌이 코로나19 중국 우한 제조설연구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넌의 지원을 받아 우한 제조설을 주장한 홍콩 출신 연구원의 SNS 계정들은 폐쇄되거나, ‘가짜뉴스경고를 받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연구실에서 제조됐다고 주장해온 홍콩대 박사후과정 연구원 옌리멍은 그 증거를 밝히겠다며 14일 공개 접근 저널 <제노도>에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의 표지에는 배넌이 관여하는 법치 재단의 이름이 올라있다.

법치 재단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도주한 백만장자 궈원구이가 지난 2018111억달러를 기부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뉴욕에 소재한 2개의 자선단체로 구성됐으며, 배넌은 이 중 하나인 법치 사회의 의장이다. 이 법치 사회도 옌리멍의 논문 표지에 이름이 올랐다.

중국의 부동산 재벌인 궈원구이는 2014년 측근이 부패혐의로 체포되자 중국에서 도피했다. 그는 뉴욕에 자리잡은 이후 중국 공산당 타도 운동을 벌여왔다. 배넌은 미국 극우 음모론 뉴스 사이트 <브레이트 바트>를 창립해 운영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일한 그는 백악관 보좌관으로 발탁됐다가 20178월 그만뒀다.

배넌은 그 후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는 수십건의 동영상에 궈원구이와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쌓았다. 배넌은 지난달 기금 모금에서 기부자들에게 사기를 친 혐의로 체포됐다가, 500만달러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체포 당시 배넌은 코네티컷 해변에 있는 궈원구이의 호화 요트에 있었다.

홍콩에 거주하던 옌리멍은 지난 4월 미국으로 건너가 7월께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한 제조설을 적극 주장해 왔다. 그는 728일 배넌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생물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달 들어 영국 <아이티브이>(ITV)와 미국 <폭스뉴스> 등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반복하다가, 지난 14일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는 옌리멍 외에 다른 4명의 연구자 이름이 올랐는데, 이들의 자격은 명시되지 않았다. 배넌이 관여하는 법치 사회나 법치 재단이 이 연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도 밝히지 않았다.

옌리멍의 트위터 계정(@limengyan119)17일 현재 정지된 상태다. 이번 달 만들어진 이 계정은 옌 교수의 얼굴 사진과 함께 과학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제목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텅 빈 상태다. 트위터는 이 계정이 트위터 운영원칙을 위반했다고만 공지했다. 트위터는 지난 5월부터 가짜 뉴스로 판명 난 정보가 담긴 트윗에 라벨을 달아 가짜 뉴스임을 밝혀왔는데, 계정 자체를 정지시키는 것은 드문 일이다.

페이스북 역시 옌리멍의 주장을 가짜 뉴스로 분류하고 있다. <폭스 뉴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터커 칼슨 투나잇이 지난 15일 자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우한 제조설을 담은 옌리멍과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이 영상에 독립 기관에서 거짓이라고 판단한 코로나19 정보가 반복된다는 라벨을 달았다.

페이스북은 이와 관련된 검증 기사 3건도 연동시켰다. 애넌버그 공공정책센터가 운영하는 <팩트체크> 누리집과 미 언론 <유에스에이 투데이>의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이다. 해당 기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한 제조설이나 에이즈 바이러스 조작설등이 사실이 아님을 검증하는 내용을 담았다.

옌리멍이 <제노도>에 기고한 논문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연 진화보다는 수준 높은 연구소에서 조작됐음을 시사하는 게놈의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과 가능한 조작 방법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003년 사스 바이러스와 닮았고 중국군 연구소가 발견한 박쥐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주장 등을 담았다.

앤드루 프레스턴 영국 배스대 교수는 현재의 형태로는 이 논문에 어떤 신뢰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자연적으로 발생했음을 검증하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한 클리틴 앤더슨은 옌리멍의 주장이 사실 관계부터 틀리다고 일축했다.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 코로나 바이러스와 다르고, 이 두 개의 바이러스는 3500개 이상의 핵산 구성성분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옌리멍은 지난 7월 코로나19가 사람 사이에서 전파된다는 것을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발견했으나, 홍콩대가 자신을 침묵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홍콩대는 옌리멍은 지난해 말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어떠한 연구도 수행한 바가 없다고 반박한 바 있다. < 정의길 기자 >

 

코로나 우한 제조설옌리멍 교수, 트위터 계정 정지됐다

홍콩 옌리멍 교수 계정 정지되고 동영상은 가짜뉴스 경고

일각선 중국 정부 영향과학계는 옌 교수 주장 신뢰 안해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제조설을 주장하는 옌리멍 교수의 트위터 과거 계정(왼쪽)과 정지 상태의 현재 계정(오른쪽). 트위터 갈무리

       

중국 연구소가 인위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홍콩 연구원의 트위터 계정이 정지됐다. 페이스북도 관련 내용을 담은 메시지에 거짓 정보가 담겨있다는 팻말을 붙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제조설을 주장한 홍콩 공중보건대 옌리멍 교수의 트위터 계정(@limengyan119)17일 현재 정지된 상태다. 이번 달 만들어진 이 계정은 옌 교수의 얼굴 사진과 함께 과학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제목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텅 빈 상태다.

트위터는 계정을 정지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이 계정이 트위터 운영원칙을 위반했다고만 공지했다. 트위터는 지난 5월부터 가짜 뉴스로 판명 난 정보가 담긴 트윗에 라벨을 달아 가짜 뉴스라고 밝혀왔는데, 이렇게 계정 자체를 정지시킨 것은 드문 일이다. 트위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몇몇 트윗에도 가짜 뉴스라벨을 단 바 있다.

페이스북은 더 친절했다. <폭스뉴스>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인 터커 칼슨 투나잇이 지난 15일 자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제조설을 담은 옌 교수와의 인터뷰 영상을 올리자, 페이스북은 독립 기관에서 거짓이라고 판단한 코로나19 정보가 반복된다는 라벨을 달았다.

페이스북은 이와 관련된 검증 기사 3건을 연동시켰다. 애넌버그 공공정책센터가 운영하는 <팩트체크> 누리집과 미 언론 <유에스에이(USA)투데이>의 코로나19 관련 기사들이다. 해당 기사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한 제조설이나 에이즈 바이러스 조작설등이 사실이 아니라고 검증하는 내용이다. 다만 이 기사들은 올해 1~4월에 작성된 것으로 최근 옌 교수의 주장을 직접 검증하지는 않았다.

미 폭스뉴스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이 페이스북 계정에 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제조설을 주장하는 옌리멍 교수와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가 거짓 정보라는 라벨이 붙었다. 페이스북 갈무리

일각에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중국 정부의 압박을 받아 옌 교수의 계정을 없애고 가짜 뉴스낙인을 찍은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지만, 이보다는 옌 교수의 주장이 그동안 밝혀진 우한 제조설의 허점을 뒤집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옌 교수는 최근 잇따라 언론 인터뷰를 하고 관련 논문을 공개하고 있지만, 과학계는 그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홍콩에 거주하던 옌 교수는 지난 4월 미국으로 건너가 7월께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한 제조설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728일 미 극우파 인사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코로나 바이러스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생물무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주장했고, 이달 들어 영국 <아이티브이>(ITV)와 미국 <폭스뉴스> 등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옌 박사는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도 공개했다. 이번주 초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연 진화보다는 수준 높은 연구소에서 조작됐음을 시사하는 게놈의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과 가능한 조작 방법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정보공유 플랫폼 제노도’(Zenodo)에 발표했다. 이번 바이러스가 2003년 사스바이러스와 닮았고 중국군 연구소가 발견한 박쥐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주장 등을 담았다.

그러나 옌 교수의 논문은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앤드루 프레스턴 영국 배스대 교수는 현재의 형태로는 이 논문에 어떤 신뢰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홍콩대 대변인도 성명을 내어 옌 박사의 주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핵심 요소들과 부합하지 않으며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 최현준 기자 >


아바나 의대 재학중인 중남미 사회인류학자 정이나 박사 반박증언

다함께 생존할 권리 동등 보장30국 의사파견단 사명감과 명예

 

2018년 쿠바 아바나의대에 입학해 예과 1학년 과정을 마친 정이나 전 부산외대 교수가 지난 7월 귀국 전 교정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일찍이 피델(카스트로)이 이런 말을 했어요. ‘쿠바는 이웃 나라에 폭탄이 아니라 의사(하얀 가운의 부대)들을 보낸다.’ 그런데 최근 국내 한 언론에서 느닷없이 쿠바 공공의료의 다른 이름, 하얀 가운 노예들이란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어요. ‘사실 확인이나 당사자의 직접적인 대응이 쉽지 않은 외국 사례를 이용해 공공의료 강화 정책에 반발한 의사 파업을 옹호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편파·왜곡 보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라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지난 7일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지식인집단 다른백년의 누리집에 공공의료가 못내 못마땅한, 조선일보의 볼썽사나운 기사의 진실’(http://thetomorrow.kr/archives/12784)이란 제목으로 반박 칼럼을 실은 정이나(43) 전 부산외대 교수는 사뭇 진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중남미 전공 사회인류학 박사이자 현재 쿠바 아바나의대 예과 1년 재학생으로, 누구보다 쿠바의 의료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귀국해 국내 머물고 있는 그에게 서 교수 자리까지 그만둔 채 쿠바에서 마흔 넘은 최고령 의학도로 변신한 이유를 들어봤다.

과테말라로 파견된 여의사가 매춘을 강요받는다는 이야기부터, 쿠바 의사들은 반드시 국외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사실, 의사 면허증을 반납하려고 하면 수년간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는 등, 거짓들로 채워진 기사였어요. ‘하얀 가운 노예들로 둔갑시킨 쿠바의 헨리 리브 국제의사파견단은 2005년 결성된 이래 재난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긴급의료를 지원한 공로로, 2017년 한국인 최초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 이종욱 박사를 기리는 이종욱 공공보건 기념상도 받았잖아요?”

이어 정 전 교수는 귀국 직전 아바나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도 들려줬다. “이탈리아의 요청으로 파견됐던 약 52명의 의료진이 두 달간의 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귀국하는 방송을 함께 지켜봤는데,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어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쿠바는 세계 30여개 나라에 의료진을 보낸 상태이기도 해요.”

실제로 쿠바의 코로나19 대처는 한국의 케이(K) 방역과 더불어 모범 사례로 꼽힌다. 지난 73일 현재 쿠바의 누적 확진자는 2400명 이하이고, 총 사망자는 86명으로, 주변국인 멕시코의 27분의 1, 브라질의 70분의 1에 불과하다.

쿠바 당국은 코로나 대유행 초기 가장 먼저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행동을 시작했어요.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을 각 지역으로 파견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도 조직했어요. 이런 발빠른 대처의 목적은 다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는 것이죠. 쿠바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해요.”

그가 이처럼 확신하는 이유는 그 자신 쿠바 국제의사파견단의 혜택을 체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교 때부터 스페인어를 좋아해서 동시통역사를 꿈궜어요. 그래서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한 사립대학으로 유학을 갔죠. 그뒤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해 중남미 지역학 전공을 했는데 애초 기대와 많이 달라서 그만두고, 2004년 스페인 정부 장학금을 받아 북부도시에 있는 살라망카대학 석사과정에 다시 입학했어요. 2008년 박사과정 때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바리오(빈민 공동체)로 현지 조사를 나갔어요. 그때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고생했는데 때마침 쿠바의 국제의사파견단을 만나 무상으로 치료를 받아 무사히 논문을 쓸 수 있었죠. 무엇보다 파견 의사들이 명예로운 일을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었어요.”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의료 국제연대는 2003년 차베스 정부가 추진한 바리오 아덴트로’(‘지역 속으로라는 뜻) 미션에 따라 시작해 지금도 2만여명의 쿠바 의료진이 도시 빈민촌과 농촌의 의료 사각지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2년 베네수엘라의 현지 주민자치조직인 주민평의회 연구로 살라망카대학에서 사회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귀국해 고려대 연구교수를 거쳐 주과테말라 한국대사관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14년 아버지의 별세로 돌아왔다가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자 한국에 정착했다. 그런데 2014년부터 부산외대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2018년 여름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년 가까이 베네수엘라·멕시코·과테말라·쿠바 등 중남미 지역을 대상으로 사회운동·계급투쟁·사회불평등·빈곤사회구조 등을 주로 연구해왔지만 관찰자이자 이방인의 시선으로 연구하는 데 한계를 느꼈어요. 일종의 연구 슬럼프였죠. 쿠바의 의료 파견단처럼 실질적으로 현지인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키우고 싶었어요.”

아바나 의대에는 그를 포함해 모두 4명의 한국인이 유학중이다. “외국인 학비는 연간 1천만원 정도인데 중남미 지역 취약계층 장학생은 무상인 대신 사회봉사 의무가 있어요. 예방의학, 사회의학 중심이어서 학생과 교수·학생과 학생·학생과 지역 사이의 소통을 중시해요. 의대 1학년부터 수업 중에 폴리클리닉이라는 동네 종합병원이나 콘술토리오라는 지역진료소를 찾아가 매주 실습을 하고 있어요.”

정이나 박사가 지난 7월 귀국 직전 아바나 의대 예과 1년생 동기들과 지역진료소에서 코로나19 전수조사 활동을 하면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그는 귀국하기 직전 코로나19 지역감염 전수조사 활동 때 웃어라, 긴장하지 마라, 의사가 편안해 보어야 환자들도 안심한다면서 표정 관리까지 챙기던 담당 교수의 당부를 들으며 환자 우선의 인성 교육을 실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세계은행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쿠바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8.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다. 많은 의료진을 바탕으로 가족 주치의 제도를 둬서 1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지역 내 담당 가정을 꾸준히 관리하면서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를 책임진다. 코로나19 확진자는 모두국가 격리센터에 수용해 치료하고 있다.

가족주치의제도에 따라 마을마다 진료소에 가면 늘 담당 주치의를 만날 수 있으니 코로나에도 주민들이 전혀 동요하지 않았어요. 의대 학생들 역시 엘리트나 고액 수입 같은 특권 의식은 없고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에 집중하면 되니까 안정적이죠. 이번 코로나 펜데믹의 본질은 바이러스라는 공공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특정 국가나 업체에서 고가에 독점 공급한다면, 대다수 일반인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정 전 교수는 쿠바 공항이 열리는대로 현지로 돌아갈 예정이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의사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다. “의술을 활용해 현지인과 실질적인 소통하면서 풀뿌리 사회운동을 함께하는 실천인류학자가 되고 싶어요.” < 김경애 기자 >

 

 


여성 야권 후보·선거운동 참모 활약

루카셴코 대통령 남성 후보체포에

남편들 대신 나서 납치’ ‘망명수난

 

벨라루스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가운데)와 그의 선거 캠프에 참여한 베로니카 쳅칼로(왼쪽), 마리야 콜레스니코바(오른쪽)가 지난 730일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민스크/로이터 연합뉴스

         

권위주의적인 통치로 악명 높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26년 독재에 균열을 낸 것은 남성 경쟁자들이 아니라 여성 3인의 연대였다. 야권 대선 후보로 나섰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와 그의 선거캠프에 뛰어들었던 마리야 콜레스니코바, 베로니카 쳅칼로가 그들이다. 티하놉스카야와 쳅칼로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국외로 몸을 피했지만 콜레스니코바는 국내에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가 콜레스니코바를 국가 안보 위협 혐의로 기소했다고 <BBC> 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콜레스니코바는 부정선거 의혹이 일고 있는 지난달 9일 대선 뒤 조직된 야권 단체 조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조정위원회는 대선 뒤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콜레스니코바는 지난 7일 수도 민스크에서 복면을 쓴 괴한에게 대낮에 납치됐다. 그와 함께 붙잡혀 갔던 다른 남성들의 증언을 보면, 괴한들은 콜레니스코바를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끌고 가 벨라루스를 떠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여권을 갈가리 찢어버리며 출국을 거부했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그 모습을 묘사한 남성은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플루트 연주자였던 콜레스니코바가 여성 연대에 뛰어든 데는 루카셴코 정부의 남성 야권 인사 탄압이 계기가 됐다. 콜레스니코바는 원래 은행가이자 루카셴코에 대항할 가장 강력한 야권 후보 중 한명이었던 빅타르 바바리카의 선거 운동 책임자였다. 정권에서 빅타르를 돈세탁 등 금융범죄 혐의로 지난 7월 체포하자, 그는 티하놉스카야와 손을 잡았다.

벨라루스 루카센코 대통령

티하놉스카야는 원래 영어 교사로 정치와는 아무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유명 블로거였던 남편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 체포되면서 대신 후보로 나섰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38살 티하놉스카야를 외세의 조종을 받는 불쌍한 작은 소녀라며 조롱했다. 하지만 티하놉스카야는 대통령 임기를 2연임으로 제한하고, 모든 정치범을 석방한다는 공약을 내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대선 뒤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던 그는 이웃 리투아니아로 피신한 사실이 확인됐다.

티하놉스카야를 돕겠다고 나선 쳅칼로도 비슷한 처지였다. 정보통신(IT) 전문가이자 주미 대사를 지냈던 남편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당국에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 정치적인 탄압을 두려워한 남편은 아이와 함께 러시아로 가버렸고 벨라루스에 남은 쳅칼로가 티하놉스카야 캠프에 합류했다.

대선 뒤 주말마다 10만명 이상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자 루카셴코 대통령 쪽도 당황하고 있다. 벨라루스 인구는 1천만명 정도다. 루카셴코는 방탄조끼에 총을 들고 거리에 나선 모습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민주화 요구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 조기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