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전력회사, 삼성·인피니온 등 산업체에 전력 공급 끊어
전력 사용 급증, 발전소 고장…다른 주서 빌려 쓰기도 불가능

 

미국 텍사스주의 이상 한파가 전력 위기를 불러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이 가동을 중단한 가운데 포트워스의 전력 회사에 고장 수리용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포트워스/EPA 연합뉴스

 

미국을 강타한 한파가 독자 전력망을 운용하는 텍사스주의 전력 위기를 촉발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현지 반도체 업체가 가동 중단에 들어가는 등 피해가 커지고 있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현지 신문 <오스틴 아메리칸-스테이츠먼>은 16일 공영 전력회사 ‘오스틴 에너지’가 전력을 많이 쓰는 삼성전자, 엔엑스피(NXP) 반도체, 인피니온 등 반도체 업체에 대한 전력 공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대형 전력 소비 집단을 대변하는 ‘청정·적정·신뢰 에너지 연합’(CCARE)은 “텍사스 전역이 심각한 전력 부족을 겪자 오스틴 에너지가 반도체 업종을 포함한 산업체에 가동 중단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대변인도 “사전에 전력 공급 중단 통지를 받고, 반도체 웨이퍼 생산 시설 등의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반도체 공장의 경우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최근 며칠 동안 미 본토 대부분의 지역이 기록적인 한파를 겪고 있으며, 텍사스주의 경우도 휴스턴의 기온이 몇십년 만에 최저인 영하 10도까지 덜어지는 등 이례적인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사용이 급증했고, 한파 대비에 소홀했던 발전소들이 잇따라 가동을 멈추면서 텍사스가 최악의 전력 위기에 빠졌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주 정부는 ‘순환 정전’을 실시해, 400만 가구 이상이 정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전력 대란 여파로 15~16일 휴스턴의 전력 도매 가격은 평소 1㎿h 당 22달러에서 9000달러까지 폭등했다.

텍사스가 다른 지역보다 더 심한 전력 위기에 빠진 건, 독자적인 전력망을 구축해 다른 주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없는 탓도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의 광역 전력망을 통해 여러 주가 필요에 따라 전기를 주고 받지만, 텍사스는 연방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독자 전력망을 쓰고 있다.

한편, 미국 전역에서 주민 2억명에게 한파 경보가 발령된 가운데 적어도 21명이 숨졌고 10억달러(약 1조1천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예상된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신기섭 기자

 

풍부한 유동성 원자재로 쏠려
계란값까지 겹쳐 빵값 오름세

 

 

장바구니 물가와 연동되는 국제 곡물과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최근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15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세계곡물 가격동향’을 보면,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지난 12일 거래된 대두 가격은 1t에 504.1달러로, 1년 전보다 53.7% 상승했다. 밀 가격은 t당 234달러로 같은 기간 16.3% 올랐고, 옥수수는 t당 212.1달러로 40.6% 상승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물류 차질 등으로 식량위기 우려가 커졌고, 중국의 사료용 곡물 수입 확대에 남미 등 주요 수출국의 작황 부진이 겹치면서 지난해 8월 이후 국제곡물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은 보통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식품 가격에 반영되는데,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인한 계란값 상승까지 겹치면서 제빵 등 일부 식품 가격이 오르고 있다. 뚜레쥬르는 지난달 90여종의 빵값을 평균 9% 올렸다. 파리바게뜨도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보도자료에서 “최근 제빵 등 일부 식품의 가격상승은 곡물 외 원재료 가격이나 인건비 등 상승이 원인이며, 국제곡물가격 상승이 제품가격에 본격 반영되지는 않은 편”이라며 “앞으로 국제곡물가격 상승이 이어질 경우 국내 식품물가, 사료가격에도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낮은 가격대를 유지했던 국제유가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 중이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1일 기준 배럴당 60.5달러로, 1년 전(53달러)보다 14.2% 상승했다. 주요 석유제품의 가격이 상승 압력을 받는 것은 물론이며, 특히 올해부터 원료비 연동제를 실시하는 전기료가 인상될 수 있다.

원자재 가격 인상은 수급 요인도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많은 돈이 풀리면서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원자재로 쏠리는 영향도 크다. 일각에서는 풍부한 유동성 지속으로 원자재 가격의 장기호황(슈퍼사이클)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소비자물가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 둔화한 이후에도 더 오랜 기간 상승세를 지속하는 특징이 있다”고 평가하며 “장기화되는 식료품 가격 상승세와 유가 상승, 공공서비스, 집세, 개인서비스 가격 반등 등을 고려하면 올해 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당초 예상(1%)을 상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대응해 향후 국내 식품 가격 추이를 보며 관세 인하 등의 조처를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이경미 기자

 

164개 회원국 합의로 추대…첫 여성·아프리카 출신
‘트러블메이커’ 별명  “정의 위해 싸우는 투사 기질”
미-중 무역분쟁 등 첩첩산중… “권한 한계” 분석도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가 제네바 근처에 있는 나이지리아 대사관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개혁 불가능한 것들을 개혁해 가는 ‘트러블메이커’.”

세계무역기구(WTO)가 1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화상으로 일반이사회 특별 전체회의를 열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66·나이지리아)를 새 사무총장으로 선출했다. 그는 지난 6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전폭적 지지’를 선언하면서 이날 164개 회원국 합의로 추대됐다. 세계무역기구 26년 역사상 첫 여성, 첫 아프리카 출신 수장이다. 임기는 4년이다.

15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나이지리아에서 친구는 물론 정치적 반대파까지 오콘조이웨알라에게 붙인 ‘트러블메이커’라는 별명은 “가난한 사람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 기질”을 대변한다. 그는 자신이 펴낸 책 <개혁 불가능한 것들을 개혁하기>에서 “어떤 조직 안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나의 성향에 붙여진 이 별명은 영광의 표지”라고 말한 바 있다. 나이지리아 부정부패에 맞서 싸우던 당시 정치적 반대파가 자신의 어머니를 인질로 납치하자 결연히 맞서 비타협적으로 해결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위협 전화도 숱하게 받았지만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반대 세력을 노련하게 압도했다고 한다.

오콘조이웨알라는 취임 직후 빈곤국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을 당장 이슈로 꺼낼 전망이다. 지난해 사무총장 선거 과정에서 그는 “무역도 공중보건에 기여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무역통상 규범을 적용해 코로나 이슈를 최우선으로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3년 미 하버드대학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1981년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지역개발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에 미국 시민권자가 됐고, 남편은 워싱턴에서 개업한 신경외과 의사다. 세계은행(WB)에서 25년간 근무하며 ‘넘버2’(부총재) 자리에 올랐다. 그후 나이지리아로 돌아가 2003~2006년에 첫 여성 재무장관을 지냈다. “당시는 뿌리 깊은 소득불평등, 만연한 부패 및 권력투쟁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동시 개혁해야했던 시절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술회했다.

세계무역기구를 이끌게 된 지금도 숱한 글로벌 무역통상 이슈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돌파구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가트(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이어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결실로 1995년에 출범한 세계무역기구는 오랫동안 무기력한 상태로 표류했다.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하고, 디지털 전자상거래 무역이 급증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제통상 질서·규범 구축에도 번번이 실패하면서 도하개발어젠다(DDA) 무역협상은 2001년 이후 20년째 결렬돼 사실상 좌초된 상태다.

미-중 무역분쟁도 조정·봉합해야 한다. 국제적인 수산물 남획을 막기 위한 ‘국가 보조금 금지’ 협상 역시 지난해 말 타결 시한을 넘긴 채 교착상태에 있다. 새 수장이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와 헌신성”을 갖추고 있다해도, 본래 국가간 무역통상은 원만한 합의·양보·이행보다는 “자국 이익 수호를 위한 분쟁·갈등·불이행이 판치는 세계”라는 점에서 트러블메이커가 다자무역체제 개혁과 복원을 과연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런 과제를 완수하기엔 사무총장의 권한에 한계가 있다는 평도 나온다. 유엔(UN) 사무총장은 사무국 인사권을 토대로 조직을 장악하는 반면, 세계무역기구는 사무총장이 이끄는 사무국이 아닌 164개 회원국들이 함께 끌고가는 기구다. 한국의 통상 당국자는 “사무총장 역할은 외교력과 정치력을 발휘해 회원국간 통상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며 “총장이 혼자 앞서가며 이끌기보다는 각 회원국의 제네바 주재 대사들이 주도하는 조직”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수조원대 합의금 vs 미 10년 수입금지… SK 배터리 ‘사면초가’

미 대통령 거부권 검토기간 2달 내 합의여부가 마지막 선택지

 

 SK이노베이션 미국공장 건설지.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에서 완패를 받아들면서 수조원대 손해를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미 대통령의 거부권이 마지막 협상 카드로 남아 있지만 업계는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이번 소송이 향후 에스케이의 배터리 사업에 끼칠 파장이 주목된다.

14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대통령 검토 기간 동안 협상을 끝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60일간 국제무역위 결정을 검토한 뒤 정책상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발동하지 않은 채 기한이 끝나면 ‘10년 수입금지’ 등의 조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기아의 니로 EV 판매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두달은 에스케이가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말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다. 2013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삼성-애플 사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국제무역위가 이미 공익을 고려한 일종의 구제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거래처인 독일 폴크스바겐과 미국 포드는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그 안에 대체 공급사를 찾으라는 취지다.

미국 업계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최종결정 직후 포드와 폴크스바겐 모두 빠른 합의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는 지난 11일 트위터에서 “두 공급사가 자발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미국 제조사와 노동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도 입장문을 내어 “궁극적으로는 두 공급사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거부권 행사를 언급한 건 아직까지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뿐이다.

 

증권가에서는 최종결정으로 인해 합의금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CS)는 최근 보고서에서 “(최종결정 이전에는) 엘지(LG)화학이 2조∼3조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제 합의금은 최소 5조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지에너지솔루션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웅재 법무실장은 지난 11일 간담회에서 “에스케이의 기술 탈취로 인한 피해는 유럽, 한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며 “(다른 국가에서도 소송을 제기할지는) 기본적으로 에스케이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모양새가 됐다. 수조원의 합의금을 내게 되면 아직 적자 단계인 배터리 사업이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지난해 배터리 사업의 매출은 약 1조6000억원, 영업손실은 약 4000억원에 이른다. 당장의 금전적 손실 외에도 위기 요인이 많다. 오랜 기간 이어진 불확실성으로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거론되는 액수를 실제로 물면 사업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진다”며 “두 기업이 협력하면서 엘지도 보상받을 수 있는 안을 제시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