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현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에서 4명의 연주자가 식물 관객 2292개 앞에서 푸치니의 엘레지 국화를 연주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 재개관 기념 화분 2292개 앞 공연

식물 관객 여러분, 부디 휴대폰은 꺼주세요코로나 사태 위로

 푸치니의 비가 국화연주의료진 등에 전달 예정

          

관객 여러분, 휴대폰은 꺼주시고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 리세우 대극장에서 22(현지시각) 현악 4중주 공연을 앞두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안내가 끝나자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를 든 4명의 연주자가 각자의 악기를 들고 입장해 극장을 꽉 채운 관객들 앞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1층부터 6층까지 전체 관객석 2292석에는 사람이 아닌 식물이 앉았다. 산세비에리아, 개운죽, 아레카야자 등 종류가 다양했다. 일부 화분은 의자가 접혀 넘어지기도 했다. 7분여 공연 동안 조용히 앉아있던 식물들은 연주가 끝나자 잎을 흔들며 박수를 보냈다.

2천개가 넘는 식물들은 근처 종묘장 등에서 공수해 온 것이라고 한다. 공연 뒤 식물들은 코로나19에 맞서 싸운 바르셀로나 의료진 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날 연주된 곡은 오페라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엘레지 국화라는 곡이다. 푸치니가 지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다. 리세우 대극장 쪽이 밝히지 않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스페인에서는 22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29만여명에 이르며, 사망자는 28천여명이다.

이날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석 달 동안 취해진 봉쇄조치가 풀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됐다. 리세우 대극장도 석 달 동안 닫았다가 최근 문을 다시 열었다. 리세우 대극장 쪽은 누리집에 이번 공연은 우리의 활동 재개를 알리는 편지 같은 것이라며 예술, 음악, 자연의 가치를 옹호하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설명했다. 공연을 기획안 개념예술가 에우헤니오 암푸디아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새들의 노래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됐고, 식물들이 더 빨리 자라는 것을 더 많이 보게 됐다사람과 자연이 훨씬 더 친밀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됐고, 사진 작품으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 최현준 기자 >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명의 서한 발송

 

한국 정부가 일본이 군함도(하시마)와 관련한 왜곡된 내용의 전시물을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전시한 사실과 관련해 22일 유네스코에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인 22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명의로 이러한 내용이 담긴 서한이 유네스코 사무총장 앞으로 발송됐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서한에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충실한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이 사안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제고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지속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세계유산에 올리면서 1940년대 수많은 조선인이 군함도 등 시설에서 일제에 의해 강제 노역을 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14일 외부에 공개한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조선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부정하는 내용의 증언 및 자료만 전시됐다. < 노지원 기자 >

해외 네티즌 25천명 '일 강제징용 왜곡' 비판 포스터에 '호응'

", 세계유산 모든 정보 공개" "유네스코, 등재 철회" 등 목소리

"일본 정부는 하시마(端島, 일명 '군함도')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 유엔이 교육적, 역사적으로 올바른 정보를 후대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필리핀의 한 네티즌이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제작해 사회적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배포한 영문 포스터에 올린 댓글 내용이다.

포스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거짓말을 반복하는 피노키오에 비유했다. 최근 도쿄(東京)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가 발생한 대표적인 장소인 군함도 탄광을 소개하면서 징용 피해 자체를 부정하는 증언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2015년 군함도 등 메이지 산업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정보센터를 설치해 강제징용 피해자를 기억하는 조처를 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21일 유네스코에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했고, 일본은 "약속을 이행했다"고 다시 억지를 부리고 있다.

피노키오의 코 위에 군함도 사진을 넣고, 그 위에 '아베 총리는 피노키오? 거짓말을 숨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드러납니다'라는 글이 적힌 포스터에는 배포 5일 만인 23일 현재 필리핀 네티즌을 포함해 25천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호응하고 있다.

이들은 인도네시아 13623, 인도 5777, 필리핀 3378, 말레이시아 985, 홍콩 275명 등의 네티즌이다.

한 독일인 네티즌은 "왜 일본 정부가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유네스코가 뭔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도 국제청원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포스터에는 일본 정부의 거짓말 행태를 전 세계 204개 유네스코 회원국에 고발하는 국제청원 주소(www.maywespeak.com/unesco)가 링크돼 있다.

일본인 네티즌(永添泰子)도 이 청원을 호응하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가해국인 일본은 학교에서도 침략의 긴 역사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하고, 감옥으로 불리던 군함도를 찾는 외국 여행객들도 그곳에서 발생한 심한 인권침해를 알도록 해야 한다""그게 싫다면 유네스코의 유산 등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크는 각국 네티즌의 호응에 힘입어 인도네시아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베트남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중국어 등 7개 언어로 포스터를 추가로 제작, 현재 SNS로 확산하고 있다.

204개 회원국, 21개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국 SNS에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 취소를 요구하는 캠페인도 시작했다.

박양우 장관 "일본 근대산업유산, 세계문화유산 의미 상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일본이 강제동원 사실을 기재하지 않은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강하게 비판하며 약속 이행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양우 장관은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역사는 진실해야 하며 거짓된 역사는 역사라고 부를 수 없다"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도리이며 용기"라고 밝혔다.

이어 "잘못을 은폐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고 자신이 없다는 고백과 같다""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역사 은폐와 왜곡을 사과하고 국제사회의 정직한 일원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장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회원국들에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대로 수많은 한국인 등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 노역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일본의 역사적 사실 왜곡과 약속 위반은 진실과 신뢰를 근간으로 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도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근대산업유산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이미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 장관은 문체부가 이미 지난해부터 관계부처, 유관기관과 함께 일본이 유네스코와 국제사회에 약속한 사항들이 이행되도록 유네스코와 협의를 해왔다고 소개하며 "앞으로도 일본 정부의 약속 이행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체부도 이날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군함도 사진과 함께 "약속을 지켜라"(#keep_your_word)라는 포스터를 게재했다.

문체부는 세계유산 등재 당시 사토 쿠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수많은 한국인 등이 가혹한 조건하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한 발언을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에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앞서 22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에게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개소와 관련해 세계문화유산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충실한 후속 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일본 군함도 세계유산 지정 취소가능? ‘물리적 훼손때만 가능

최근 일본의 역사 왜곡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군함도’(하시마)에 대해 정부가 지정 취소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지정 취소. 가능한 일일까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쉽지 않아보입니다.

지정 취소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내든 이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18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대상 간담회 업무보고에서 유네스코에 지정 취소를 요구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그러자 문체부가 22일 보도해명자료를 내놓습니다. “정부는 (군함도에 대한 역사 왜곡 정보를 전시하고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와 관련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취소 요구를 공식 발표한 바 없다외교부 등과 협의해 일본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다각적인 대응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박 장관의 발언에서 두 걸음쯤 물러선 듯한 내용입니다.

문체부가 한발 앞으로 치고 나가자 외교부도 입장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김인철 대변인은 23전날 유네스코 사무총장 앞 서한을 통해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충실한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협조와 지지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등재 취소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강조점은 일본에 충실한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 채택을 추진하겠다는 뒷부분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같은 서한을 문체부·외교부가 각각 내는 등 부처 간 세 싸움을 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미쓰비시 하시마 탄광 강제노역 현장을 찾은 관광객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입니다. 이후 지금까지 48년 동안 지정 취소가 이뤄진 예는 두 건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2006년 오만의 오릭스 보호구역’, 두번째는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강 협곡이었습니다. 두 사례 모두 해당국 정부가 유산 보호보다 개발을 원했습니다. 오만 정부는 이 지역에 유전을 개발하려 했고, 독일은 협곡에 경관을 훼손하는 교량을 건설했습니다. 실제, ‘세계유산조약이행을 위한 작업지침을 보면, 지정 취소는 등록이 결정된 자산이 그 특징이 상실될 정도로 망가진 경우유네스코가 요구한 (유산의 물리적 보호와 관련된) 개선 조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에 한정됩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도 이번처럼 역사 왜곡을 사유로 제3국 정부가 지정 취소를 요구한 전례는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 지정 취소를 위해선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 정보센터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일본의 파렴치한 역사 왜곡에 손 놓고 있어야 하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일본은 20157월 군함도 등 메이지 시기 일본의 산업 발전을 보여주는 23개 시설을 등재하며 군함도 등 일부 산업시설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15일 일반 공개가 시작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물의 내용을 보면, 한반도 출신자가 군함도 등에서 차별적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증언이 소개되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음이 확인됩니다.

15일 일반에 공개된 도쿄 신주쿠 산업유산정보센터 누리집 갈무리. 이 센터는 군함도에서 일했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증언을 소개하는 등 역사 왜곡 논란을 빚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약속 위반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본 정부 대표의 20157월 발언 내용을 그대로 전시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꼼수가 자기 의사에 반해 강제로 노역 당한 조선인의 사연등 유산에 대한 모든 역사(full history of each site)를 전시하라는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 내용을 이행한 것이라 볼 순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센터의 관장이 아베 신조 총리와 수정주의적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오랜 친구 가토 고코(아베 총리의 측근인 가토 가쓰노부의 처형)라는 점입니다.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베 총리의 고집이 이 문제를 계속 꼬이게 만들고 있는 주 원인인 셈입니다.

다행히 유네스코에서도 한국의 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에 전달했다는 취지의 회신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외교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한 지정 취소대신 약속을 미 이행하고 있는 일본이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내 여론을 모아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이 섬을 둘러싼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전시물을 보강하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일본정부의 군함도 강제동원 사실 인정과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일은 2017년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OW)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큰 갈등을 빚었습니다. 일본은 2016~2017년 유네스코 분담금(2020년 현재 중국에 이어 2위 분담국)지급 유예는 물론 탈퇴 위협까지 하며 이 등재를 끝내 저지했습니다. 당시 이 사업을 추진했던 한혜인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 총괄팀장은 미국이 2017년 탈퇴를 선언한 마당에 일본까지 이런 협박을 해오니 유네스코는 당연히 조직의 와해 가능성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정부의 합리적이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 길윤형 기자 >


                  

코로나19 대응 실패, 측근 돈 선거수사 등 아베 정권의 악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 유권자의 약 70%가 아베 총리 임기 연장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 여론이 계속 악화되면서 자민당 안에서는 중의원 조기 해산 가능성에 대한 발언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20~21일 전국 유권자 20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3일 보도한 유무선 전화 여론 조사에서, 총재를 세 번 연속 맡은 아베 총리가 한 차례 더 총재를 하는 것에 대해 69%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은 19%에 그쳤다.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임기 연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54%)으로 나타났다. 의원 내각제인 일본에선 집권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한 때 ‘4연임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치솟던 아베 총리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근 여러 악재로 회복하기 힘든 수준까지 추락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음 자민당 총재 후보군 중에선 아베 총리의 정치적 맞수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31%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아베 총리가 후계자로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4%에 그쳤다.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중의원 해산 가능성마저 관측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했던 전례가 여러번 있어서다. 자민당의 모리야마 유타카 국회 대책 위원장은 지난 20올해 어쩌면 중의원 선거가 있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은 최근 <지지통신> 인터뷰에서 가을 이후 경제대책을 발표하는 동시에 중의원 해산을 할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도 지난 20일 인터넷 방송에서 해산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정치를 해 나가기 위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여지를 남겼다.

중의원 해산에 대한 당내 우려의 목소리도 강하다. 아직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속에서 중의원을 해산할 경우 여론의 비판이 자민당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또 가와이 부부의 돈 선거의혹 등 악재가 계속되는데 특단의 대책 없이 선거를 할 경우 자민당은 참패라는 내부 비판도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야당도 적극 움직이고 있다. 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지난 20이르면 오봉 연휴(일본의 추석으로 815일 전후)가 끝난 후 해산한다고 생각하고 있다최고 속도로 선거 준비를 하도록 당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 김소연 기자 >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 나타난 강경매파 볼턴의 행적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미 회담 주요 고빗사위마다 한반도 평화와 대화의 물꼬를 틀어막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는 남북 화해에 재를 뿌리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는 미국 초강경 매파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볼턴은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북-미 비핵화 회담에 관해 처음부터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는다. 회고록에서 그는 모든 외교적 춤판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었다라고 썼다. -미 관계 개선 자체가 미국의 전략에 부합하지 않은 데다, 의제 자체도 문 대통령에게 선점당했다는 불쾌한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북한이 절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행동 대 행동 방식의 접근은 소용없다는 야치 쇼타로 당시 일본 국가안보국장의 시각과 자신의 시각이 비슷했다고 기술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미 3차 정상회담을 권유한 것에 관해 내가 나중에 한-미 정상 통화를 거의 죽을 뻔한 경험이라고 하자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사우디에서 대화를 듣던 중 심장마비가 왔다고 답했다고 적었다. 남북, -미 대화 자체에 냉소적이며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인 것이다.

볼턴 전 보좌관이 여러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려 적극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2018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전 북-미 선발대 접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들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 대통령 방미 전에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트위터에 올리도록 건의했다라고 적었다. 그의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면서 실제 이뤄지진 않았다.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뒤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을 무산시키려는 그의 시도는 이어졌다. 볼턴 전 보좌관은 김정은이 20188월부터 연애편지라고 불리는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 곧 만나자고 제의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회담을 서둘렀다. 9월에는 김정은을 백악관에 초청하려 했다라면서 나는 트럼프에게 하찮은 나라 독재자가 쓴 편지이며, 그가 폼페이오 (국무장관)를 만날 때까지 당신(트럼프)과 만날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썼다. 이어 하지만 트럼프는 당신은 왜 그렇게 적대감이 많으냐며 폼페이오에게 11월 중간선거 뒤 김정은을 만날 테니 전화를 걸어 요청하라고 했다고 적었다.

2019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데도 볼턴 전 보좌관은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우선 그는 스티븐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과 협상 끝에 마련한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 그는 나는 비건 대표가 만든 합의문 초안을 보이콧했다라며 하노이로 가는 중에 후커 보좌관에게 초안을 받았다. 미국 쪽의 사전 양보만 열거한 채 대가로 북한 쪽으로부터는 모호한 비핵화 성명만 넣은 것이었다. (나는) 펜스 부통령과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등에게 연락해 이를 채택하지 못하게 사전 작업까지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는 국무부 협상팀이 합의에 대한 열의와 홍보에 너무 도취해 통제 불능에 빠졌다고 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올 수도 있다는 선택지도 미리 주입했다. 그는 나는 하노이에서 예기치 못한 양보를 막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이 (1986년 소련 고르바초프와의)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썼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영상을 본 뒤 내가 유리한 입장이니 서둘 필요가 없다. 회담장을 걸어나갈 수 있다고 말해 나는 크게 안도했다라고 덧붙였다. -미 합의가 이뤄질까봐 조마조마했다는 심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나아가 볼턴 전 보좌관은 북-미 회담장에서도 북한 핵미사일과 탄도미사일, 생화학 무기 전부에 대한 기본적인 신고부터 필요하다라고 끼어들며 어깃장을 놨다. 사전 합의에 없던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 신고 요구는 회담이 결렬되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결국 당시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코언 청문회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던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전 보좌관의 바람대로 회담을 결렬시켰다. 볼턴 전 보좌관은 회담 전에도 핵 포기 뒤 정권이 붕괴한 리비아 모델을 거론하며 북한의 거부감을 자극해 회담 자체를 무산시키려 했다.

회고록을 본 한 청와대 관계자는 볼턴이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 구실을 한 것이 회고록을 통해 드러났다. 왜 문 대통령이 정상 간 톱 다운 방식을 강조했는지 알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성연철 기자 >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보좌관인지 잊은 강경매파존 볼턴

별난 고용주에 해고당한 별난 직원볼턴, 꼬리가 몸통 행세하려다 불거진 파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밑에서 일했던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펴낸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 백악관 회고록> 파장의 본질이다. 워싱턴을 드나드는 수많은 외교안보 전문가 중의 하나일뿐인 존 볼턴이라는 사람이 미국 대외정책에 관련한 불변의 진리를 대표한다고 행세하다가, ‘고용주인 대통령에게 퇴짜를 맞은 사건이다. 워싱턴에서 고용주인 대통령이 직원인 각료나 보좌관들을 해고하는 일은 다반사이다. 이번 사태의 비극은 볼턴이라는 직원과 트럼프라는 고용주 모두가 아주 유별난 캐릭터여서, 결과적으로는 만나서는 안 될 조합이었다는 것이다.

청년시절 이중적 행태베트남전 지지하며 참전 고의 회피

볼턴은 1948년 볼티모어의 소방수였던 아버지와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노동자 계급의 아들로 성장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으나, 백인 중하류층의 보수성향이 압도적이었다. 고교생이었던 1964년 미국 신보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배리 골드워터의 대선에 선거운동원으로 참여했다.

예일대와 그 로스쿨을 다닌 볼턴은 재학중 절정에 오른 베트남전쟁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베트남전의 지지자였지만, 베트남전에는 참전하지 않으려고 병역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볼턴은 현역 징집대상이 되자, 주방위군에 입대했다. 자신에 대한 징집 효력이 만료될 때까지 4년이나 주방위군으로 근무했다.

훗날 예일대 졸업 25주년 재상봉 행사 기념 서적에서 그는 동남아시아의 논에서 죽고 싶지 않았음을 고백한다며 자신이 베트남전 참전을 의도적으로 회피했음을 인정했다. “베트남전은 이미 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 회피가 문제가 되자, 2007년에 한 인터뷰에서 “1970년에 내가 졸업할 때쯤, 베트남전 반대자들이 우리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했다는 점이 나에게 명백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베트남전 참전 기피를 반전론자 책임으로 돌렸다. 그는 2007년 펴낸 자서전 <항복은 선택지가 아니다>에서도 의회의 반전세력들이 적에게 돌려줄 영토를 얻기 위해 죽는 것은 나에게는 터무니없이 보였다고도 말했다.

트럼프가 볼턴을 기용하고 자른 내막

회고록에는 우리가 살펴봐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트럼프가 왜 볼턴이라는 워싱턴의 강경매파 비주류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기용했는지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층에 어필할 대외정책의 총대를 메는데 볼턴이 필요했고, 이용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 동맹국들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 러시아와의 중거리핵협정 연장 포기를 통한 핵무기 증강 등이다. 워싱턴에서 볼턴은 이 사안들을 가장 강력히 주장하던 인사였고, 트럼프는 자신의 의제를 관철하는데 볼턴을 이용했다.

둘째, 트럼프가 어떻게 볼턴과 척을 지고는 그를 잘라버리게 됐느냐는 것이다. 결정적인 대목이 북-미 협상이다. 북한에 대해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가해서 리비아식 핵포기를 주장하던 볼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협상하려던 트럼프에게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다른 대외정책 사안과는 달리 북-미 협상에서 트럼프는 국가안보보좌관인 볼턴에게 협조를 받기는커녕 발목을 붙들렸고, 이는 결국 북-미 협상이 좌초되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미 협상 좌초와 관련해 볼턴은 트럼프의 즉흥성을 김정은이 이용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드러내는 사안이다. 트럼프는 기존 동맹국과의 관계 강화보다는 적성국와의 타협을 통해 미국의 역할과 부담을 줄이는 대외정책 철학을 지니고 있고, -미 협상을 통해 그 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런 철학을 관철하는데 즉흥적이고, 자신의 정치적 동기에 이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반면, 볼턴은 동맹국들을 종속시키고 적성국들을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는 미국 중심주의 세계관의 끝판왕적인 견해를 대표한다. 두 사람 모두 미국 중심주의이기는 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 중심주의는 다른 나라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책임회피를 통한 이기주의, 볼턴의 미국 중심주의는 다른 나라에 대한 끝없는 힘의 과시를 통한 팽창주의.

트럼프, 워싱턴 주류 협조 실패하자 볼턴으로 선회

회고록은 트럼프 행정부 초기 트럼프를 견제하고 행정부의 중심을 잡았다는 이른바 어른들의 축’(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 라인스 프리버스 및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국정 경험이 있던 보수적 주류 인사들)에 대한 평가로 시작한다.

트럼프의 궤적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은 잘못됐다. 지적인 게으름뱅이들에게 매력적인 이 수용된 진실은 트럼프는 언제나 기이하나, 그의 첫 15개월 동안은 자신의 새로운 장소가 낯설어서 어른들의 축에 의해 견제되어 행동하기를 주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고 트럼프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자신하게 되면서, ‘어른들의 축은 떠나고, 일들은 산산조각나고, 트럼프는 예스맨들에 의해 둘러쌓였다. 이 가설의 조각들은 사실이나, 전반적인 그림은 단순하다. 어른들의 축은 많은 점에서 지속적인 문제들을 야기했다. 그들이 트럼프를 성공적으로 관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 그들이 정확히 그 반대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질서를 세우지 못했고, 그들이 했던 일들은 명백히 자신들을 위한 것이고 트럼프의 매우 명백한 목적들을 공개적으로 일축해서 이미 의심에 가득찬 트럼프의 마음 상태를 부추켰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이 대통령과의 정당한 정책을 교환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렇게 운을 떼며 회고록을 시작한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각 등 초기부터 자신이 국무장관, 그리고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유력하게 물망에 올랐으나, 이들 어른들의 축에 속하는 이들에 의해 좌초됐다는 주장과 사연을 전한다. 볼턴은 애초에 초대 국무장관으로 자신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틸러슨에게 밀린 사연을 이렇게 전한다.

트럼프는 121일 제임스 매티스를 국방장관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국무장관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됐다. 다음날 나는 트럼프타워에 도착해 로비에서 그를 기다렸다. 대통령 당선자는 스케줄이 늘어지는 것이 전형적이었는데,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이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다. 나중에 나는 게이츠가 렉스 틸러슨을 에너지 장관이나 국무장관으로 로비하려고 거기에 왔다고 추측하게 됐다 () 나는 마침내 트럼프의 사무실에 들어가 1시간 이상이나 만났고, 라인스 프리버스(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와 스티브 배넌(전략고문 내정자)도 동석했다 () 내가 국무부가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되려면 문화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자 이제 우리가 이 지점에서 국무장관을 토론하는 거지, 그런데 당신은 부장관에 관심이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런 차원에서는 국무부가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고 설명하며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초대 국무장관으로 틸러슨을 지명했다. 이는 볼턴이 설명한대로 게이츠의 추천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게이츠는 워싱턴 외교안보 서클에서 가장 표준적인 주류 의견을 대표하는 인사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를 넘나들며 국방장관과 중앙정보국장을 거듭 지낸 인사다. 트럼프가 게이츠의 추천을 받아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그가 애초에는 워싱턴 외교안보 주류들의 지지와 협력을 추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지난해 417(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코럴 게이블스에서 연설하는 모습. 볼턴 보좌관은 이날 &lt;블룸버그&gt; 인터뷰에서 미국이 3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보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을 했다는 진정한 징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트럼프와 볼턴, 북한 놓고 애초부터 동상이몽

트럼프에게 볼턴은 처음부터 필요한 장식품에 불과했다. 틸러슨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되고,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마이크 플린이 곧 낙마한 뒤에 볼턴은 트럼프 쪽으로부터 국무부 부장관이나 백악관 고문 등으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계속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볼턴은 트럼프나 백악관 참모들로부터 자문을 받고는 대외정책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른바 어른들의 축이 반대하던 의견들이었다.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이란과의 핵협정 파기 등을 트럼프에게 설명하고 제안해 트럼프로부터 격찬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전해들었거나, 트럼프로부터 직접 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들이다.

나는 정말로 볼턴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주 훌륭해, 존은 마치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말해, 계속 듣게 돼. 나는 아주 좋아.” “맞아, 꼭 나와 같아.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거나 미워하지. 존과 나는 그 점에서 똑같아.”

볼턴에 대한 트럼프의 칭찬은 대외정책에서 주류적 의견을 대변하는 어른들의 축과의 이견이 깊어지는 것과 궤를 같이했다. 이는 트럼프가 자신의 의제를 관철할 수단으로 볼턴이 필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볼턴 역시 이를 알고는 있었다.

나는 트럼프가 그들에게 말한 것은 그를 행정부로 데려와서, 텔레비전에서 우리를 옹호할 수 있게 해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건 내가 의도하던 마지막 일이다.”

볼턴 역시 트럼프가 자신을 이용하려던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국가안보보좌관 직을 열망하고 덥썩 물었다는 데에 파국의 근본적 원인이 있다. 특히, 이 파국을 몰고온 북한 문제는 그의 안보보좌관 직을 임명하는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2018321일 볼턴은 트럼프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백악관에서 아마 가장 강력한 자리를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날 볼턴은 트럼프를 만났다.

우리는 또다른 인터뷰로 보이는 것을 시작했고, 이란과 북한에 대해 얘기했다 () 적어도 그는 이란과의 협정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안 했다. 내가 읽기가 어려운 생략이었다

볼턴의 안보보좌관 직무는 이렇게 시작됐다. 시작부터 북한 문제를 폭탄으로 안고서 시작된 것이다. 북한 문제는 볼턴에게는 과거 워싱턴에서 자신의 경력을 가른 사안이었는데, 또다시 그런 폭탄이 될 거라고는 트럼프나 볼턴이나 예상 못 했다. 이를 알려면 시계를 17년 전으로 돌려야 한다.

볼턴, 유엔대사 낙마한 북한과의 악연

20038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존 볼턴 당시 미국 국무부 차관을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볼턴의 북한 체제 비난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이 사건으로 볼턴은 워싱턴의 외교안보 주류 진영에서 강경 매파로 낙인찍히며, 몰락해갔다. 나중에 유엔 대사로 임명될 때에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악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던 볼턴은 그해 731일 서울을 방문해 동아시아연구원 주최 강연회에서 기로에 선 독재정권이라는 강연을 통해 북한 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김정일은 평양에서 왕족같은 삶을 살면서도, 수만명의 주민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수백만의 주민들은 비참한 가난에 처하게 했다북한의 많은 주민들에게 삶은 지옥같은 악몽이라고 비난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북한이 6자회담 재개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미 국무부가 발표한 날이었다. 국무부는 볼턴 차관이 새로운 사태 진전을 알지 못했다며 그와 거리두기를 했다.

이틀 뒤 북한 <조선중앙통신>미 행정부의 관리라고 하는 자의 입에서 이런 망발이 거리낌 없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미국이 우리와 회담을 하자는 진의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문제가 결정되는 회담의 중요성으로 보나 인간존엄의 견지에서 볼 때도 이 회담에 인간쓰레기, 피에 주린 흡혈귀와 같은 자가 끼울 자리는 없다6자회담에서 볼턴과의 대화를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볼턴을 옹호하고 그가 6자회담에서 배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96자회담이 재개됐을 때, 그는 국무부 내에서 6자회담에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2005년 볼턴의 유엔 대사 인준 과정에서도 이 사건은 문제가 됐다. 볼턴은 상원 외교위에서 당시 자신의 연설은 국무부와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의 승인을 받았고, 허바드가 사의를 표했다고 말했다. 이에 허바드는 당시 자신은 볼턴에게 표현을 약화하라고 충고했고, 볼턴이 몇 가지 사실관계 수정을 한 것에 대해서만 고맙다고 말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볼턴은 결국 의회의 정식 인준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의회 휴회 기간 동안 대통령의 일방적 임명으로 부임했고, 2006년 의회의 정식 인준을 받지 못해 유엔대사를 그만둬야 했다. 그의 유엔대사 인준 불발은 공화당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유엔대사에서 물러난 뒤 그는 무책임한 강경발언만 쏟아내는 눈치없는 매파로 워싱턴에서 낙인찍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마지막 워싱턴 인사일 정도로 워싱턴에서 그의 지위는 비주류 강경매파에 불과했다. 워싱턴에서 이라크전이 정당하다고 여전히 주장하는 것은 한국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의 소행이라는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것이다. 이런 주장을 우파 방송인 <폭스뉴스>의 평론가로서 떠들었던 볼턴은 종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 소행이라고 강변하는 극우인사와 같은 위상이었다.

그는 지난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의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뒤에도 북한을 비난하는 최선봉에 섰다. 지난 228<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북한을 선제타격하는 합법적 경우라는 기고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가 조성하는 현재의 불가피한 일에 선제타격으로 대응하는 것은 미국에서 완전히 합법적이다라고 주장했다.

볼턴은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보좌관인지를 잊었다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되자 그는 내가 그동안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하는 말과 내가 그에게 하는 조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은 정직한 중개인이라며 대통령에게 폭넓은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대통령이 결정하면 참모들은 이를 실행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조언하지만, 대통령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회고록에서도 그는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 직을 수행한 딘 애치슨의 유명한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나는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국무장관인지 결코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트루먼 대통령) 역시 이것을 잊지 않았다라는 애치슨의 말을 인용했다. 이 말을 자신이 국가안보보좌관이나 국무장관에 물망에 오를 때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와 볼턴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파국을 맞았다. 누가 대통령이고 누가 안보보좌관인지, 볼턴은 잊어버린 것이다. 회고록 <내 자신을 위해 말한다>(Speaking for myself)의 출간을 앞둔 세라 샌더스 전 백악관 대변인도 볼턴의 회고록이 문제가 되자 22일 자신의 회고록 중 일부를 공개해, 볼턴을 비난했다. 샌더스는 볼턴이 평소에도 대통령처럼 굴어서 주변에 인기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역시 볼턴에게 현실을 제대로 알자, 너는 자기중심적인 개새끼라고 소리쳤다고 샌더스는 공개했다.

워싱턴에서 비주류 강경매파에 불과하던 볼턴은 마치 자신만이 미국의 국익을 지킬 수 있고, 워싱턴의 주류처럼 행세하며 트럼프에 대들었다. 트럼프는 시간이 지나면서 용도폐기된 볼턴을 더이상 두고보지 않았다. 특히, 북한 문제가 결정적이었다.

트럼프는 볼턴이 이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파문을 일으키자, 볼턴은 정신나간 사람이며, “볼턴이 북한에 대해 리비아 모델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모든 게 망해버렸다고 반격했다. 그 바람에 잘 지내고 있던 김정은이 미사일처럼 분통을 터뜨렸다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볼턴의 형편없는 주장들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매우 악화됐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분수를 알던 여느 꼬리와는 달리, 볼턴이라는 꼬리는 자아가 강하고 착각이 심했다. 트럼프라는 몸통은 그 꼬리가 몸통을 때리도록 허용할 정도로 즉흥적이고 허술해서 통제력이 없었다. 그래서 회고록의 포인트는 자아와 착각에 입각한 볼턴의 꼬리치기를 트럼프라는 몸통이 처음에는 이용하다가, 결국은 넌더리를 내고는 잘라버리는 것이다. 볼턴은 이를 자신의 유능함과 진리를 트럼프라는 멍청이가 수용하지 못하는 과정으로 묘사했을 뿐이다. 그래서, 볼턴의 회고록은 볼턴의 옳다고 주장하는 대외정책과 그 결정 과정이 아니라, 그가 설치도록 허용됐던 트럼프와 그 백악관의 난맥상을 읽는데 유용하다.

이는 워싱턴에서 대외정책의 중심과 좌표가 실종됐음을 드러내는 사태이기도 하다. 몸통에 트럼프가 등극하고, 꼬리에는 볼턴이 기용돼서, 최악의 조합을 연출한 자체가 그렇다. 회고록은 볼턴이 워싱턴의 주류적 견해를 대표하는데,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이를 소화못했다고 비난한다. 그보다는 볼턴이라는 꼬리, 아니 색깔이 남다른 깃털이 몸통인양 행세하다가 벌어진 파국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또 볼턴이라는 깃털이 설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라는 비정통적이고 이단아적인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트럼프 이후 망가져가는 미국의 모습이다. < 정의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