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만3천년 전 유골 상흔 재분석으로 확인

화살-창 등...40%서 앞선 충돌 증거 '아문 상처' 

 

선사시대 무덤 제벨 사하바에서 발굴된 유골 [the Wendorf Archives of the British Museum 제공]

 

수단 북부의 나일강 계곡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무덤 '제벨 사하바'(Jebel Sahaba)는 농경 문화가 시작되기 전 수렵·채집 무리들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의 흔적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꼽힌다.

이곳에서 발굴된 약 1만3천400년 전 유골에서 화살이나 창에 찔린 상처, 둔기에 의한 골절 등이 무더기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발굴이후 지금까지 이 무덤은 한 차례의 치명적 충돌의 결과로만 여겨져 왔는데, 유해에 남은 상처들을 다시 정밀 분석한 결과, 산발적이고 반복적인 작은 충돌이 이어졌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와 외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보르도대학의 고인류학자 이자벨 크레브쾨르가 이끄는 연구팀은 제벨 사하바에서 발굴된 뒤 영국박물관에서 보관해온 61구의 유골을 첨단 현미경 기술로 재분석했다.

 

이를 통해 이전에는 확인되지 않았던 106개의 상흔을 새로 발견했으며, 이를 화살이나 창 등 발사체 무기에 맞은 상처, 근접 충돌에서 생긴 상처, 매장된 뒤 부패 과정에서 생긴 흔적 등으로 분류해 분석했다.

 

이전 연구에는 20구의 유골에서만 부상 흔적이 발견됐지만 정밀 재분석을 통해 모두 41구 유골에서 한 개 이상의 상흔이 확인됐다. 남녀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상처를 갖고있었으며, 심지어 네 살 어린이 유해에서도 상흔이 발견됐다.

 

특히 이들 중 약 40%인 16구의 유골에서는 아문 상처가 확인돼 이전에 벌어진 다른 충돌을 겪으며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왼쪽 엉덩이 뼈에 박힌 발사체 무기의 돌조각 [Isabelle Crevecoeur and colleagues 제공]

 

또 상처 흔적 중 절반 이상은 창이나 화살 등 발사체 무기에 맞아 생긴 것이어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런 점을 근거로 농경이 시작되기 전 나일강 계곡 주변에서 수렵·채집을 해온 무리 사이에서 작은 충돌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던 것으로 분석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영국박물관의 생물고고학 큐레이터 다니엘 안토닌은 "불행하게도 폭력적 충돌이 생활의 일부처럼 정기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크레브쾨르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습격이나 매복 공격, 우발적 접전 등의 형태로 작은 규모의 충돌이 반복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폭력적 충돌이 일어난 이유에 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당시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변화가 진행되던 시점이라 나일강 계곡 주변으로 여러 무리가 몰려들어 한정된 자원과 영역을 놓고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했다.

 

나일강 계곡에서는 물론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 무덤 중 하나로 꼽혀온 자벨 사하바는 인공호수 나세르호가 조성되면서 현재는 물에 잠긴 상태다.

 

아내가 먹던 음식에 침을 뱉어 먹지 못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변호사가 2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3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 A(47)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28일 집에서 아내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밥을 먹는다는 이유로 "밥 처먹으면서 전화 통화하냐"며 욕설하고 아내 앞에 놓인 반찬과 찌개 등에 침을 뱉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아내가 "더럽게 침을 뱉냐"고 항의하자 재차 음식에 침을 뱉어 이를 먹지 못하게 만들었다.

 

A씨는 아내 앞에 놓인 음식은 아내 소유의 물건이 아니고 본인의 소유이기도 하며 자신의 행위로 음식의 효용을 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며 재물손괴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원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한다는 것은 타인과 공동으로 소유하는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도 포함한다"며 "반찬과 찌개 등을 피고인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판시했다.

26일 서수마트라 칸디 호수에서 붕괴한 접안시설 [리퓨탄6]

 

최근 인도네시아 호수와 저수지에서 셀카를 찍다가 익사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29일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6시께 수마트라섬 서부 칸디(Kandi) 호숫가의 나무로 된 접안시설 위에 관광객 14명이 단체 사진을 찍으러 올라갔다가 바닥이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은 가족 여행을 온 친인척들로, 셀카를 찍는 순간 8명이 물에 빠졌다.

 

네 살배기 등 3명은 가까스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5명은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자 가운데 2명의 시신은 사고 발생 2시간 만에 발견됐으나 나머지 3명의 시신은 다음날 오전에서야 수습됐다. 사망자는 10대부터 40대까지 포함됐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유명 관광지에서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며 "접안시설이 붕괴한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15일 저수지의 수상 식당으로 향하다 전복된 보트 [트리뷴솔로]

 

앞서 이달 15일 오전에는 중부 자바 보요랄리(Boyolali)의 끄둥 옴보 저수지에서 관광객 19명이 보트를 타고 수상 식당으로 향하던 중 셀카를 찍으려고 한꺼번에 앞쪽에 몰리는 바람에 보트가 전복됐다.

당시 보트가 수상 식당에 가까이 가자 승객 한 명이 셀카를 찍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쪽으로 갔고, 나머지 승객들도 셀카를 찍으려고 우르르 앞쪽에 몰렸다가 사고가 났다.

 

선장을 포함해 11명은 구조됐지만, 여러 가족 총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내(27), 세 아이와 함께 보트에 탔던 안디 수기얀토씨의 경우 혼자만 살아남았다.

안디씨의 아내와 8학년, 7학년, 한 살짜리 아이는 모두 목숨을 잃었다.

과거 백인 사회 동화 위한 문화 말살정책 속 학대 등 자행

트뤼도 총리 "역사 어둡고 부끄러운 시기, 고통스런 발견"

 

어린이들의 유해가 발견된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의 과거 사진 [Library and Archives Canada/로이터=연합뉴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운영된 캐나다의 한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어린이 215명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AFP 통신이 28일 보도했다.

한 캐나다 원주민 부족은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에서 전문가가 지표투과레이더를 통해 유해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들도 이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족은 검시관 및 박물관 등과 협력해 어린이들의 죽음에 관련된 기록 등을 추가로 확인한 뒤 다음 달께 정식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과거 캐나다에서는 인디언과 이뉴이트족, 유럽인과 캐나다 원주민 혼혈인 메티스 등을 격리해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한 뒤 백인 사회 동화를 위한 언어 및 문화 교육을 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언어 사용을 강제로 금지하는 등 문화 말살 정책을 폈으며 열악하고 엄격한 훈육 아래 육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 등의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가 벌어졌다.

 

15만명의 원주민 아동이 139개 원주민 기숙학교에 강제로 보내졌는데, 캠루프스 인디언 기숙학교는 이중 가장 큰 곳으로 약 500명의 학생을 수용했다.

캐나다 정부를 대신해 가톨릭교회가 1890년부터 1969년까지 운영했다.

캐나다 원주민의 빈곤과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높은 자살률 등의 원인으로 이같은 원주민 기숙학교 당시의 경험이 지적되기도 한다.

 

원주민 기숙학교 문제를 조사해 온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15년 보고서를 통해 기숙학교를 '문화적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94개 항의 이행 권고안을 제시했다.

위원회는 최소 3천200명의 어린이가 기숙학교에서 학대와 방치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지만, 정확한 숫자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이날 어린이 유해 확인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를 통해 "이번 고통스러운 발견은 내 마음을 찢어지게 한다"면서 "우리나라 역사의 어둡고 부끄러운 시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2017년에도 원주민 기숙학교가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를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