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슨 선교사 후손들이 한국 대사관저를 초청 방문, 신 대사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타와 한국대사관도 나서…
올 가을 특별전시회·후손 강연 등

주 캐나다 한국대사관(대사 신맹호)이 캐나다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첫 발을 디딘지 130주년이 되는 올해 ‘내한 캐나다 선교사 13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 및 후손 강연’을 오타와와 노바스코샤 주에서 오타와 한국문화원과 토론토 캐나다선교사 전시관과 공동으로 올 가을 개최하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해 신맹호 대사는 최근 선교사 후손들을 초청해 간담을 나누고 특별 전시회와 강연에 대해 협의했다고 대사관이 전했다.
신 대사가 지난 6월1일과 7일 각각 만난 선교사 후손가족은 에이비슨 선교사와 맥레이 선교사 후손들로, 선교사 내한 130주년 기념행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고 오타와 문화원 전시장과 다목적 홀을 직접 둘러보며 구체적인 준비사항도 협의했다.


캐나다 동부 주는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한 에이비슨 선교사 등 한국 의료 근대화에 앞장선 캐나다 의료 선교사의 1/3 이상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올리버 에이비슨(Oliver Avison, 한국명 어비신) 선교사는 1892년 한국에 도착해 44년간 체류하며 고종의 주치의를 지냈고, 최초의 서양식 근대병원인 제중원 원장에 이어 세브란스 병원을 설립하고 세브란스 의대도 출범시켰다. 또 3.1운동을 지원한 공로로 한국정부에서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아버지에 이어 부산에서 낳은 아들 더글라스 에이비슨 등 3자녀가 한국에서 선교 사역 계속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세브란스 병원 원장을 역임한 더글라스 에이비슨 부부는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해 양화진 묘역에 나란히 안장돼 있다.
신맹호 대사는 노바스코샤에 사는 에이비슨 박사의 친손녀이자 더글라스 에이비슨 선교사의 딸인 Kathleen Anne Black 여사 일행을 지난 1일 관저로 초청, 오찬 간담을 갖고, 한국 의료시스템 근대화의 토대를 마련한 에이비슨 박사의 기여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이에 에이비슨 박사의 후손들은 조상의 업적이 양국의 후대에 걸쳐 길이 기억되고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대사관을 통해 한국정부 초청 방한은 물론, ‘13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하여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뜻을 밝혔다.


에이비슨 선교사의 후손들은 외증손녀로 4대 째인 Nancy Black씨가 현재 몽튼대 공대 교수로 재직하며 캐나다 인체공학자협회 회장을 맡고있고, 외증손자로 Douglas Avison Black과 Peter Lee Black 형제가 있으며, 외고손주로 5대 째인 Everett Avison Patterson 군은 현재 대학생이다.
또한 Kathleen Anne Black 여사 역시 시아버지인 Donald Macintosh Black 씨가 용정 제창병원 원장을 지낸 의료선교사로, 할아버지,아버지,삼촌,시아버지 등 양가 모두 대대에 걸쳐 한국에서 선교사로 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중 5대 외고손주 Everett Avison Patterson 군은 2017년 8월 어머니 Nancy Black, 아버지, 동생들과 함께 국가보훈처 방한 사업에 초청받아 한국 양화진 묘역에 묻혀 있는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처음으로 찾아뵙고 고조 할아버지가 세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둘러보는 등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신 대사가 7일 후손들을 만난 던칸 맥레이(Duncan MacRae, 한국명 마구례) 선교사는 노바스코샤 주 Cape Breton 출신으로 달하우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달려가 40년간 함흥에서 ‘마 목사’로 알려지며 선교활동을 했고, 함흥 영생중학교와 영생 YMCA를 창립했다. 3.1운동 때는 스코필드 박사와 함께 지원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Grierson, Foote 선교사와 함께 캐나다 동부 출신 선교사 ‘트리오’중 1명으로, 같은 고향출신의 선배 윌리엄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선교사가 방한 2년 만에 황해도 소래에서 병사하자, 캐나다 장로교가 트리오 3명을 즉각 추가로 파송한 것으로 알려진다.
맥레이 선교사의 딸 Helen(한국명 마혜란) 여사는 1910년 한국에서 출생했다가 노바스코샤로 귀국 후 교사생활 하고, 은퇴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아버지 맥레이 선교사의 삶을 ‘팔룡산 호랑이 마목사’(1993)라는 전기로 발간했다. 앞서 1987년에는 대한민국 명예훈장을 받았다. 그녀는 평생 수집한 동부 출신 선교사 관련 자료를 노바스코샤 주 기록보존소에 기증하기도 했다.
신맹호 대사는 7일 맥레이 선교사의 조카손자인 Derek MacLeod 씨와 만나 캐나다 선교사 내한 13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설명하고 후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이에 MacLeod 씨는 한국 정부와 캐나다 대사관이 선교사들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에게까지 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에 감사를 표하면서, 현재 맥레이 선교사의 손녀와 고손들이 노바스코샤 외에 캘거리, 피터보로 등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MacLeod씨는 어머니 Pamela MacLeod가 한국전 당시 간호사로 참전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1993년에 한국정부 초청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방한했었다고 밝히고 130년 전 캐나다 선교사로부터 시작된 뿌리깊은 한-캐 우정의 역사가 한국전 참전용사에 이어, 후손에 까지 길이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캐나다 선교사는 한국과 캐나다를 역사적으로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1888년부터 1941년까지 약 200여명이 파송됐다.
당시 캐나다 선교사들은 주로 함경도, 강원도, 그리고 간도 지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학교, 병원을 세우고 교육과 사회봉사 활동을 전개했으며, 3.1 운동 때는 미국 선교사들이 일본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소극적이었던 것과 달리 치외법권 지역인 교회건물에 3.1운동가들의 모임장소를 제공하고 평화적인 만세시위를 사진으로, 문서로 전 세계에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 캐나다 대사관은 앞으로도 캐나다 선교사들의 발자취와 공헌을 재조명하고 기념사업 및 후손 발굴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각 지역 한인교계 면담, 파송을 담당했던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의 기록 보존실 접촉과 캐나다 문화유산부 등 캐나다 정부와도 연계하여 내한 캐나다 선교사 및 후손들이 양국 관계에 있어 중요한 유산으로 길이 기억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아울러 밝혔다.


< 문의: 613-244-5010 >


[기쁨과 소망] 뿌리깊은 개혁

● 교회소식 2018. 6. 19. 17:25 Posted by SisaHan

‘요시야’ 왕은 ‘개혁의 아이콘’이라 불립니다. 유대 열왕 중 ‘히스기야’와 함께 아주 더물게 칭찬받은 왕입니다.
8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16세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20세에는 에루살렘과 유다를 정결케하여 산당과 우상을 부수고 버렸습니다. 26세에는 성전을 수리하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사무엘 선지자 이후 최초로 유월절을 지켜 구원의 복음을 회복하는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형통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의 날>이 임하여 전우주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외형적인 개혁이 아닌 삶의 변화를 동반한 내면의 열매입니다.


지난 6월6일(수)은 미국에서는 Memorial Day로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합니다. 캐나다에서는 11월11일에 이날을 지키며 가슴에 양귀비 붉은 꽃을 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장병을 위한 추모식과 재향군인들의 퍼레이드가 있습니다.
이날 CNN뉴스에서 재미있는 사진 하나를 공개했습니다. 아틀란타 브레이스브스 야구장에는 <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빈의자>가 있습니다. 그 옆에 ‘학군사관후보생’(ROTC) 정복을 입은 한 흑인 학생이 부동자세로 서 있는데, 구경온 한 백인 중년 남성이 우산을 펴서 그 학생의 머리 위에 씌워주고 있는 사진입니다. 존경과 경외심을 보인 것입니다.


미국 대부분의 운동 경기장에는 <빈의자> 하나를 남겨두고 ‘전쟁포로자’, 영어 POW (Prisoner of War), ‘전장에서 실종된 장병’의 약자인 MIA(Missing in Action)이란 팻말을 붙어놓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은 미래를 항한 도전과 개혁에 눈이 멀어 지난날 우리를 위해 희생했던 아픈 역사의 뿌리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세운 신앙의 전통과 뿌리를 배제한 개혁은 하나의 슬로건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요시야’의 개혁은 다음세대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어버리면 잘못된 과거가 반복됩니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


그저 감기겠지? A형 간염 조심

● 건강 Life 2018. 6. 19. 17:11 Posted by SisaHan
A형 간염은 비교적 많은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에 견줘 다소 생소하다. 과거 흙과 가까이 하던 시절에는 어릴 적 A형 간염에 걸릴 위험이 많으면서 대부분 가벼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갔기 때문에 그다지 심각한 질환이 아니었다. 만성간염이나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되는 B형 또는 C형 간염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덜 심각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 20~40대 일부에서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드물게 간 전체에 염증이 퍼지는 상태로 발전하기도 한다.

20~40대에 많은 ‘A형 간염’ 증상과 치료


관련 전문의들의 도움말로 최근 20~40대의 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A형 간염에 대해 알아본다.

■ A형 간염 20~40대에 많아= A형 간염은 말 그대로 A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을 침범해 염증을 일으키면서 간 조직을 죽게 만들거나 변성을 일으키는 염증성 질환을 말한다. 빅데이터를 보면 가장 많은 나이대가 30대로 2016년 기준 전체 환자의 39%를 차지했으며, 이어 40대 25%, 20대 20% 순이었다. A형 간염 환자 수는 최근 들어 계속 감소 추세에 있으나, 유일하게 40대에서만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20~40대 환자 수가 많은 것에 대해 관련 전문의들은 최근 20여년 동안 위생 및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어릴 적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의 분변 등에 오염된 흙 등을 만졌을 때나 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었을 때 걸리는데, 최근에는 위생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 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줄었다. 반면 50대 이후 나이대층에서는 어릴 적에 이미 이 바이러스에 노출돼 평생 면역을 획득했기 때문에 환자 발생이 많지 않다. 또 10대 이하의 어린 나이에서는 A형 간염에 걸려도 가벼운 감기처럼 지나가기 때문에 병원을 찾을 일이 별로 없다.

■ 바이러스 오염된 음식 먹다가 집단발병하기도= A형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을 먹어서 이 간염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마치 식중독 사고처럼 집단 발병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충분히 조리되지 않은 조개류를 먹었거나 A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음식 취급자에 의해 오염된 음식을 먹었을 때에도 집단 감염이 나타날 수 있다. 이제는 드물지만 분변을 이용한 거름을 밭에 뿌렸다가 간염 바이러스에 오염된 채소를 먹어 걸리기도 한다. 오염된 식수를 마시다가 감염이 될 수 있다. 중요한 점 하나는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사람 사이에도 전파가 되며, 이 전파경로도 흔하기 때문에 가족 또는 친지에게 전파되거나 군대, 학교, 보육원, 어린이집 등 집단생활을 하는 곳에서 집단 발병하기도 한다.

■ 어릴 때 앓으면 가벼운 감기, 성인 때는 간염으로=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15~45일 정도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증상이 식욕감퇴, 구역, 구토, 전신쇠약감, 복통, 설사 등이다. 심한 경우에는 황달 등 간기능 이상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A형 간염에 걸리더라도 6살 이하라면 절반 정도에서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또 증상이 있더라도 열감, 피로 등 가벼운 감기 증상과 비슷해 간염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6살 이후에 걸리면 10명 가운데 7명이 피부나 눈의 하얀 부분이 노랗게 물드는 등 황달을 동반하는 전형적인 간염의 증상을 보인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심각한 증상을 보일 가능성은 커지며 치명률도 높아진다.

■ 충분한 휴식 등이 필요하나, 황달 심하면 입원치료= A형 간염의 진단은 증상과 함께 피 검사를 통해 가능하다.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이미 99%에서 A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검출되므로 진단이 어렵지는 않다. 현재까지 A형 간염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는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치료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열감이나 피로감 등 증상을 줄여주는 약을 쓰기도 하며, 잠을 충분히 자면서 영양 섭취를 골고루 하면 우리 몸의 면역력이 A형 간염 바이러스를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평소 간 기능이 매우 좋지 않거나, 증상이 심하고 황달이 있는 경우에는 입원해 치료가 필요하다.

■ B형 C형 간염처럼 만성화되는 경우는 드물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간염에 걸려 사망하는 사례는 대부분 B형이나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다. B형이나 C형에 감염됐을 때에는 완치되는 경우도 많지만 일부에서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고, 10~20년이 지난 뒤 또 일부에서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B형 간염에 대한 예방접종이 1980년대 중후반부터 널리 시행되면서 최근에는 B형 간염에 의한 사망은 감소 추세에 있으나, 오염된 혈액이나 주사기 등에 의해 감염되는 C형 간염은 다소 증가 추세다. 다행히 A형 간염의 경우 만성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어릴 때 예방접종 필요해=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산이나 열에도 강하다. 다른 바이러스는 75도 정도로 가열해도 죽지만, 이 바이러스는 85도 이상으로 가열하거나 수돗물과 같이 소독한 물을 먹는 것이 필요하다. 또 이 바이러스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먹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귀가한 뒤나 식사 전에 손을 철저히 씻어야 한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면 손과 발을 청결히 하고 음식과 용기를 따로 하는 것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적극적인 예방법으로는 예방접종인데, 항체가 생기는 비율이 95%이상으로 효과가 좋은 편이다. 요즘은 어릴 때 이 접종을 받지만, 20~30대의 경우에도 접종이 필요할 수 있다.

<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


요즘은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세상의 흐름이 저 멀리 가 있어 순식간에 ‘물정 어두운’ 사람이 된다. 날마다 대형뉴스가 쏟아지니 어제 있었던 일 조차 까마득한 옛날의 일화 처럼 여겨질 정도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역사적 대좌에 신문과 방송이 도배되고, 세상 눈길이 온통 그쪽에 쏠려있어서 다른 뉴스들은 사람들 관심권에서 멀어지며 묻혀 버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엊그제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다. 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어깃장을 놓고 싱가포르로 훌쩍 떠나버린 트럼프의 독불장군 행보가 상징적으로 싱가포르보다 못할 G7에 대한 관심도의 결말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든 어제의 대형 이벤트였던 G7과 그 파열음을 오늘의 북-미 정상회담이 삼켜버린 꼴이 됐다.
G7 못지않게 온타리오에 사는 우리에게는 6.7 온주총선 또한 대형 이슈였다. 주 정부 집권당이 무려 15년 만에 극적으로 바뀌는 선거결과가 나왔고. 한인사회로 보면 이민사 반세기 만에 2명의 주의원이 배출되는 큰 경사가 났다. 특히 우리들 한인 입장에서는 아무리 초대형 뉴스가 나온다 해도 묻힐 수 없고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계기라고 봐야한다.


우리는 조성준·조성훈 두 후보의 주의원 당선을 경하하면서, 계제에 한인사회 발전과 한인 정치인들의 후속 배출, 그리고 정치력 향상을 기대해 보며 두 의원 당선의 의미와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조 후보의 주의원 등극은 무엇보다 본인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실일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당사자가 땀흘리고 고생한 보람을 얻었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토론토 시의원을 포함해 10선의 위업을 이룬 조성준 의원의 경우 선거구를 갈고 닦아온 그의 개인적 열정과 노고가 일등공신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물론 주변의 조력, 한인사회의 성원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그의 당선 횟수가 많아지면서 개인적인 노력의 비중이 점증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거기에 진로를 적기에 선택할 줄 아는 판단력과 시운(時運)도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주정부 장관까지 넘보게 됐으니, 관록에 바탕한 그의 정치력 발휘를 기대해 본다.
정치 신인인 조성훈 당선자의 경우는 개인의 열의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한인사회의 열성적 지원이 뒷받침됐고, 특히 부친의 후광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자유당 자멸로 나타난 정치적 시류가 압승의 대세를 이룬 사실도 분명하다. 자유당이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면서 거세게 분 정권교체론과 보수당 바람이 신인여부를 불문하고 영예를 안긴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는 여기서 캐나나 정치와 유권자들의 냉혹함과 철저한 실적주의를 보게된다. 집권당의 방만한 운영과 부실한 정책에 가차없이 매를 드는 정치수준의 표출이다. 인물보다는 당, 선전이나 구호보다는 가시적 성과물을 놓고 냉정하게 심판하는 주권자의 눈높이를 감지할 수 있다. 소위 거물 정치인들이 추풍낙엽처럼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은 바로 인물보다 당을 중시하는 정치풍토를 말해준다.
한인 정치사에 새 시대를 연 두 동포 정치인은 이같은 캐나다 정치풍토에서, 무엇보다 한인사회의 기대와 여망이 그만큼 크고 높아져 어깨가 무겁기에, 단단한 결심으로 의정에 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새 길을 열어간다는 자부와 함께 엄중한 소명감으로 배전의 열정을 쏟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이제 부터가 중요한 새 출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갓 입문한 조성훈 당선자에게는 이제 본격적인 정치인 수업을 해나가야 할 고행이 시작됐다는 각오를 다지기 바란다.


이같은 관점에서 한인사회의 두 정치인에 거는 기대를 모아 몇가지 당부를 해두고자 한다.
우선 절대 자만과 오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배우며, 내일 당장 선거가 있다는 가정 하에 주권자를 열심히 받들어 섬기는 정치인의 체질을 갖추기를 권한다.
둘째는 주 의원이 됐으니, 주 정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주 정부를 감시·견제·감독하며 온주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살피는데 최선을 다하는 의정을 펼쳐야 할 것이다.
셋째는 캐나다 사회가 다민족 복합문화 사회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한인 출신의 긍지를 품고 일하되, 한인사회에만 몰두하지 말고 타민족에게도 정성을 쏟는 다민족 대표 정치인, 나아가 연방의원과 캐나다 대표 정치인을 꿈꾸며 통 크게 달려가기를 주문한다.
넷째는 아무래도 혈육이요 뿌리인 한인사회를 암암리에 챙기는데 소홀함이 없기를 바란다. 주류사회에서 한인사회 인식을 호전시키고 위상을 높이며 한인 동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절대 개인적 영달에만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다. 선출된 정치인, 곧 선량(選良)은 자신에게 표를 주었든 아니든 주민을 대표하는 대변자이며 대리자이다. 따라서 주민들과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원칙이고 본분이다. 선량의 직을 자신의 개인적 소유와 노획물로 여겨 사욕을 충족하는데 활용한다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바람직한 정치인의 덕목은 무수히 거론된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한인들의 여망을 안고 영광을 차지한 두 주의원에 거는 동포들의 기대치가 높기에, 단 몇가지 기본만이라도 충언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인사회의 명예를 빛내는 정치의 향도자들로 성공적 미래를 열어가기를 기도하고 소망해 마지않는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