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 $1 = CD $0.77
미 의존 큰 경제, 통상압박에 약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 등을 통한 통상 압력을 가속화하면서 캐나다 경제에 미칠 부정적 전망이 커지자 캐나다 달러화 가치가 계속 추락하고 있다.


캐나다 달러는 5일 토론토 외환시장에서 장중 한때 1달러 당 미화 0.77달러를 하회하다 간신히 유지하는 선에서 거래를 마감했다. 이 수준은 6일에도 이어져 0.77달러 선을 오르내렸다.
이는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가중되면서 대미 의존도가 절대적인 캐나다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결과로 풀이됐다. 캐나다 달러는 지난달 1달러 당 미화 0.81달러 수준으로 거래를 시작한 이후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나프타 재협상을 파기할 수 있다는 강공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최근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통상 공세를 강화했다. 캐나다는 철강 수출의 9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의 철강 수입에서 캐나다산은 16%를 차지하고 있어 캐나다가 보복 조치를 경고하는 등 긴장하고 있다.


한 금융 전문가는 “통상 및 관세 갈등이 캐나다 통화 가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까지 캐나다 달러화는 올해 중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면서 강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전망치를 밑도는 1.7%에 그치고 1월 중 1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저조한 경제 지표가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캐나다 달러는 일본 엔화와 멕시코 페소화 등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 비핵화·평화 자신감
“앞으로 두달 한반도 운명 걸려
이념 초월 국력 모아주길 당부”

시진핑, 방중 정의용 만나
“남북관계 개선·북미대화 지지”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우리가 성공해낸다면 세계사적으로 극적인 변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어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열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마련됐다. 앞으로 두 달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개최되면서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달 말과 5월에 잇따라 열릴 남북, 북-미 회담의 성과에 따라 한반도 평화 정착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정상회담에 대해 “이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느냐 여부에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너무나 중요한 기회”라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구상에 강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는 “우리가 이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그 길이 옳은 길이기 때문”이라며 “전쟁이 아닌 평화를, 군사적 해법이 아닌 외교적 해법을 전세계가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전개될 남북, 북-미 대화에 대한 범국민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우리가 두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려는 것은 지금까지 세계가 성공하지 못한 대전환의 길이어서 결과도 낙관하기 어렵고 과정도 조심스럽다”며 “부디 여야, 보수와 진보, 이념과 진영을 초월해 성공적 회담이 되도록 국력을 하나로 모아주시길 국민들께 간곡히 부탁,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인민대회당에서 35분 동안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최근 북한 방문과 북-미 접근 관련 동향을 설명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한국의 가까운 이웃으로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화해·협력이 일관되게 추진되는 점을 적극 지지하고 북-미 대화도 지지한다”며 “한국의 노력으로 한반도 정세 전반에 큰 진전이 이뤄지고 북-미 간 긴밀한 대화가 이뤄지게 된 것을 기쁘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 주석은 “남북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돼 성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실장은 “조기에 국빈으로 한국을 방문해줄 것을 정중히 초청한다”는 문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정 실장은 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과 각각 오찬과 만찬을 했다.

< 성연철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


‘1950’, 이민 1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숫자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지난 1월 1일까지 347일 동안 거짓말을 한 숫자다. 이는 워싱톤 포스트지가 매일매일 트럼프의 말을 팩트 체크한 결과다. 그는 하루 평균 5.6회의 거짓말을 한 것이니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 사람보다 더한 거짓말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트럼프는 스스로가 신실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위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의 80 퍼센트 이상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되었으니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희대의 거짓말쟁이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거짓말에 있어선 트럼프 이상가는 사람이 또 있다. 그는 한국의 ㅅ ㅁ 교회 장로출신 전직 대통령이다.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공언한 이 분이야말로 지금 ‘새빨간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제 곧 구속될 것이 자명하다 하니 기독교인으로서 참 민망하고 안타깝다. 정말 부끄럽고 속이 상한다.
도대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거짓말 대잔치’의 주인공들이 된 것일까? 그리고 복음주의를 자처하는 기독교인들은 왜 이런 괴물같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열광을 하는 것일까? ‘도덕적으로 완벽한 새빨간 거짓말쟁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이는 신실한 기독교인임을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금이나 은을 더 좋아한 결과다. ‘돈을 더 사랑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안되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이들은 내 손에 금이 조금만 더 들어올 수 있다면 까짓 거짓말 쯤은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별 흠이 안된다고 생각하니 이들에겐 신앙과 삶의 분리가 매우 자연스럽고 쉽다. 기독교 신앙이란 단순히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서 죄와 씨름하며, 악과 거짓에 저항하며 사는 것 일진대, 이들에겐 애초부터 그런 치열한 신앙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사실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안에는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는 나’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세상에서 ‘비지니스하는 나’가 완전히 따로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두 얼굴과 두 심장을 가진 삶이 별 혼란이나 번민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치 양심없는 기계인간처럼 말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과 부정을 “그 정도는 괜찮아, 다른 거 잘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면 눈 감아 줄 수 있는 수준이야” 하면서 스스로를 설득하고 위로하는 일에 능숙해서 거짓과 불의를 행하면서도 마음이 별로 불편하지 않다. 그러니 저 높은 곳의 기독교 대표 선수들이 거짓말을 밥먹듯 해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척을 하면서 새빨간 거짓말을 해도 괜찮은 것이다. 어떻게 하든 내 수중에 돈만 좀 더 들어올 수 있다면 말이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처럼』 (디도서 4장 2절). 이게 우리 신앙의 현주소요 오늘날 일그러진 기독교의 초상화다 싶어 서글프다. 아아, 어쩌면 좋을까! 우리도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도 도덕적으론 완벽해 보이게 하는 이 기괴한 유령에 사로잡혀 있느니….

< 김진식 목사 - 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마초문화와 #Me Too

● 칼럼 2018. 3. 6. 19:47 Posted by SisaHan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예상치 못했던 딜레마가 기억난다.
당시만 해도 선배를 따라 도제식(徒弟式) 훈련을 받아야 하던 시절이었기에, 첫 시련은 체질 자체를 거친 모습의 ‘진짜 기자같은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다. 신문기자로 필명을 날려보겠다는 의욕과 매섭고 날카로운 기사를 써서 불의와 부정을 들춰내 사회정의 구현의 첨병이 되겠다는 병아리 기자의 멋진 포부는 아직은 먼 나라의 순박한 무지개 꿈이었다. 당장 쏟아지는 미션들에 허덕이며 “야 임마, 그 정도 밖에 못해!”라는 선배들의 질책과 주눅도 그랬지만, “기자는 그렇지 않아?”식의 기자라는 직업인을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단정적이고 정형화된 시각에 당황하며 수습기자로 밤낮없이 뛰어야 했으니 정말 정신없고 고달팠던 기억이 남는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흔히 “기자는 날렵하고 치밀하게 취재하며, 두둑한 배짱으로 취재원을 얼르고 달래는데 능숙할 뿐더러 자료를 빼내는 수완이 탁월하고, 글을 잽싸게 잘 쓸 뿐만 아니라, 술도 잘 마시고, 음담패설에 노는 데도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는 ‘만능 인간상’이 유능한 기자의 등식처럼 회자되었다. 그렇지 못하면 ‘무능한 낙오기자’처럼 보이게 되니, ‘강짜 기자모습’ 구현이 수습시절 기자들에게는 정말 시급한 성취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심야나 새벽잠을 설치며 뛰쳐나가 일선 경찰서나 검찰청을 오갈 때는 험상궂게 생긴 큰형님 뻘 강력계 형사 혹은 검사들과 어색한 반말 수작에 젖먹던 용기까지 짜내고, 일 잘하는 기관장 공연히 다그쳐서 정보나 자료를 얻어내면 선배들 앞에 의기양양해 하는 범새끼 기자들로 희열을 느끼며 커가는 것이다.


문제는 만년 서생타입에 비윗살도 없고, 동료는 물론 후배에게도 심한 말 한번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는 ‘본질’ 이 쉬이 바뀔 리가 없어 정말 큰 고통과 심적 갈등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용하게도 그런 시절을 견디고 후배들이 늘어날 때쯤 되면서는 기자사회의 인식과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점잖으면서도 학구적인 기자들이 많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랄까. 그래서 막말이 없어도 일하는데 큰 지장은 없게 되고…. 그럼에도 ‘마초적 기자상’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히 저변에 흐르고, 지금도 사람들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그런 강성의 거친 체질, 마초적 스타일이 요구되고 환영받고 고착화된 것이 비단 언론계 뿐인가. 크고 작은 기업의 회사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상사와 부하가 존댓말로 업무를 보고 서로 존중하고 받들며 일하는 직장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상사는 유약해선 안된다. 부하를 인격으로 유순하게 다루면 무능한 리더요 때로는 부하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다고 느낀다. 실제로 ‘무능해 보이는’ 윗사람을 무시하고 머리 위에 올라서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범죄 피의자들을 다루는 경찰이나 검찰처럼 환경 자체가 거칠고 힘있는 기관일수록 ‘마초기질’은 권장된다. 최근의 성추문들도 그런 풍토에 연유한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거칠고 우락부락한 ‘호방 스타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사람이 유능한 리더라는 이미지가 일반적인 현실에서 윗자리의 힘을 가진 갑의 사람들은 그에 충실하지 않으면 도태를 걱정해야 한다. 그 강성이 실력이 출중하고 능력이 탁월한데서 출발한다면 별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서 허장성세로 군림하려다 보니 비정상적인 상하의 인간관계, 비인격적인 위계질서와 혼탁한 직장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거기서 무리한 언어폭력이 나오고, 억압과 갑질의 풍토가 자리잡고, 남녀를 불문한 음담패설에 성적인 언행의 수위가 높아져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무감각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오랜 사회구조와 관습의 문제에 대한 도전으로도 보인다. 무조건 선배나 윗사람이라고 혹은 힘있는 권력자라고 관용하는 습성, 어떤 직업인에 대한 근거없이 고착된 정형의 이미지를 깨려는 거센 파도일 수도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초적 인간상을 갖는 게 당연하다’는 통념에 대한 반격이요 비정상과 불평등을 향한 통절한 외침으로 여겨진다.


요즘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미투’(Me Too) 고발에,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과연 자유로운 분야나 직장이 있겠는가. 여성은 다소곳하며 순종적이어야 하고, 남성은 강한 지배자 체질을 갖춰야 한다는 오랜 관념과 관습, 여전히 ’유리천장‘ 에 눈물 흘리는 이들이 많은 환경에도 그 근인(根因)이 있다고 본다면, 사회전반의 ’마초 리더쉽 철학‘을 뜯어고치고 무력화시킬 때에야 비로소 그 최종적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