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저에게 영적 지도(spiritual direction)를 해 주었던 미국인 수녀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오래 전에 자신이 우울증에 빠졌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우울증이 지속되어서 병원에 가보고 싶었지만 수녀가 정신과 의사를 만난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동안 망설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기도 가운데 번개처럼 스쳐간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울증도 감기나 다른 병처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인데, 다른 병에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이나 우울증 걸려서 병원에 가는 것이나 무엇이 다른가?’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수녀들이 수녀복을 입고 생활하는 때라 수녀복을 입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찾아갔고 그래서 적절한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 분이 저에게 했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픈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 수녀나 신부나 목사나 다 똑같습니다. 당신의 아픈 것을 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항상 가지세요.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짐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한 기분에 있다거나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합니다. 그러나 편견없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기분은 감기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무드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이들 모두 평생 우울증과 싸우신 분들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보면 우울은 그냥 나쁜 무드(mood)가 아닙니다. 새로운 모드(mode)로 삶을 살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우울증에 빠져서 죽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이 그들에게 새로운 모드의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실제로 되었습니다. 우울한 기분이나 우울증은 어쩌면 잠시 세상의 입맛을 떨어뜨려서 진짜로 입맛 다실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내면의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파커 팔머(Parker Palmer)라는 분이 있습니다. 유명한 교육자이며 영성가입니다. 그는 한창 열심히 달려가던 중년의 시기에 극심한 우울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을 꼼짝 못하게 하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터널을 다 통과한 후에 파커 말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울증은 나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나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친구였다. 우울증이라는 어두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다시 듣게 되었고,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 주 저를 찾아와서 50대 남성이 이런 하소연을 하고 갔습니다. ‘목사님, 사는 것이 왜 이렇게 재미가 없죠. 요즈음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아이들도 크고 이민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열심히 해 왔던 일들이 다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마음이 자주 우울해 집니다.’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이런 기분에 빠져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너무 어둡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잠시 삶에 대한 입맛이 떨어진 것 뿐이닌깐요. 진짜 입맛 다실 일을 찾을 때가 곧 올 것입니다.

< 고영민 목사 - 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아름다운 작별

● 칼럼 2016. 7. 30. 07:13 Posted by SisaHan
얼마 전 동갑내기 친구를 잃었다. 그녀는 투병생활을 시작한지 1년6개월 만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비록 시한부 삶이긴 했지만 그리 빨리 가버릴 줄 몰랐기에 아직도 가슴 한 켠에서 싸한 바람이 인다. 떠나기 한 달 전쯤에도 그녀는 전혀 환자 같지 않았다. 넉넉한 미소와 우아한 모습으로 일상의 정담을 나눴기에 더욱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살아서보다 더 자주 마음에 밟히고 있는 그녀. 아마도 만날 기회가 또 있을 줄 알고, 마지막 작별인사를 안 나눈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서 그런가 보다.

미치 알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Tuesdays with Morrie)’에서 ‘살아서의 장례식 (living funeral)’을 만났다. 모리 교수는 매사추세츠의 브랜다이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다. 그는 희귀병인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생을 살아간다. 그가 애제자 미치 알봄을 다시 만나며 생애 마지막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바로 모리 교수가 경험한 인생의 의미를 강의한 것이다. 학생은 미치 알봄, 단 한 사람. 그러나 미치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그 강의 내용을 책으로 펴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책으로 남긴다. 모리 교수는 자신의 장례식을 정작 주인공인 자신이 볼 수 없기에, 아직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인생길에서 만난 소중했던 사람들과 의미 깊은 마지막 작별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살아서의 장례식’을 연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 쌓여 자신에 관한 시(詩)도 듣고, 재미있는 추억보따리도 풀어 놓으며, 웃고 우는 감격의 시간을 즐긴다. 정작 그가 떠났을 때는 가족끼리만의 조용한 장례를 치른다.

우리 어느 누구도 자신의 떠나는 시점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시한부 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상태로 어렴풋이 예감할 수는 있나 보다. 토론토에서 내과전문의로 유명했던 고 이재락 박사도 별세하기 5개월 전에 ‘생의 잔치(Celebration of Life)’를 열었다. 어쩜 의사이기에 대강 자신의 떠날 시점을 가늠하지 않았나 싶다. 그날 거의 300여명이 넘는 지인들이 초대를 받았다. 유머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참석하는 여성들에게 절대로 칙칙한 검정색 옷을 입지 말고 꽃무늬 있는 화려한 옷을 입으라고 요청했었다. 말 그대로 ‘생의 잔치’라는 의미였다. 아름다운 작별은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며 공식적인 이별잔치로 이뤄졌다. 그날의 분위기는 엄숙하거나 슬픔에 잠기지 않았고, 마치 여행길을 전송 나온 것 같이 술렁였다. 사회자의 격 있는 재담, 이 박사에 관한 시 낭송, 세 아들들이 기억하는 아버지 이야기, 친구의 추억, 고인의 담담한 작별 인사… 등등으로 조용한 잔칫집 분위기였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큰 아들이 기타연주로 부른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My Way’였다. 울고 싶은 심정을 참아내던 우리 가슴을 촉촉히 적셔줬던 것이다. <My Way>는 죽음을 눈앞에 둔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내 방식대로 아무 후회 없이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내용이었으니 말이다. 그대로 주인공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기에 아직도 그 노래의 여운으로 이 박사가 남아있다. 그는 ‘생의 잔치’를 통해 이 세상에서 맺은 모든 인연들에게 마지막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공식적으로 작별을 고한, 진정 사려깊고 용기 있는 분이었다.

이렇게 친지들과 함께 ‘생의 잔치’를 열었던 이재락 박사,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마지막 강의’의 주인공 랜디 포시 교수,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준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모리 교수, 모두 시한부 삶을 살았던 보통사람들이 아니다.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며, 각자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진하게 남긴 특별한 사람들이다. “고통 없는 경건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고 많은 지혜가 필요한 일이다”라는 조엘 드 로스네 MIT교수의 말에 공감이 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며칠 전, 떠난 친구가 생전에 애지중지 아끼며 가꿨던 아름다운 꽃밭과 가지런한 텃밭을 둘러보았다. 방긋이 봉오리를 열은 각종 꽃들이 그녀의 미소로 반기며 손까지 흔드는 것 같았다. 집 안팎에는 온통 그녀가 남긴 삶의 열매로 가득 차 있었다. 문득, 일깨웠다. 생(生)의 길이보다 어떻게 충만하게 살았느냐가 중요함을.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


경북경찰청, 집회 참석 주민·시민운동가에게 추가 출석요구서 보내
주민 시민운동가 “사드 배치 반대 여론 커지자 위축시킬 의도” 반발

경찰이 사흘 만에 또다시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석한 경북 성주 주민들과 시민운동가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도 경찰의 추가 소환 대상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주민과 시민운동가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경북경찰청은 25일 “지난 22일 외부참가자 1명을 포함한 불법행위자 3명에게 출석을 통보한 데 이어, 오늘 외부참가자 1명을 포함한 불법행위자 3명에 대해 추가로 출석요구서를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이날 2차 출석요구서를 보내면, 지난 15일 사드 배치 반대 성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소환 대상은 모두 6명으로 늘어난다.

이번 2차 소환 대상자는 주민 2명과 시민운동가 1명이다. 주민 김아무개(52)씨는 황교안 총리가 탄 승용차의 유리를 부순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주민 김아무개(49)씨는 트랙터를 도로에 세워둔 혐의를 받고 있다. 모두 지난 15일 황교안 국무총리가 성주에 왔을 때 열린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 참석한 주민들이다.

대구와 경북지역 30여개 단체로 꾸려진 ‘사드배치반대 대구경북대책위원회’(공동대표 김찬수)의 김두현(48) 집행위원장도 황 총리의 승차를 방해한 혐의로 소환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김두현 집행위원장이 김찬수 공동대표와 함께 사드 배치 반대 성주 집회에 간 것을 두고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 공동대표는 성주에 사는 주민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22일에도 주민 2명과 시민운동가 1명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트랙터를 도로에 세워두고 황 총리에게 사드 배치에 항의한 주민 이아무개(47)씨에게는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다른 주민 김아무개(24)씨에게는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공무집행방해)로 출석을 요구했다. 경찰은 또 당시 주민을 끌어내는 경찰관을 말리며 잡아당긴 변홍철(47) 녹색당 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에게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김두현 집행위원장은 “경찰의 이런 수사는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이 커지자 이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라고 말했다.

성주 주민들로 꾸려진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는 주민에 대한 경찰의 소환 결정이 이어지자 변호사들을 만나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주민 등 1318명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서비스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에는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정영길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경찰이 주민들을 이렇게 소환하면) 주민들은 심적으로 위축이 되지 않겠느냐. 경찰이 주민들을 상대로 과잉 대응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김일우 기자 >


요즘도 사이다를 즐겨마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에도 사이다는 인기가 높아, 소풍 갈 때 필수품으로 가져가던 음료였다. 교실을 벗어나 산과 들에 나가서 병뚜껑을 ‘펑’소리를 내며 따내고 나서 입 안을 톡 쏘는 달콤한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면 속이 후련해졌었다. 어머니가 소풍 특별점심으로 싸주신 김밥이나 유부초밥을 먹으면서 함께 마시던 사이다의 톡 쏘는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이다는 물에 탄산나트륨과 설탕, 향료를 섞어서 만든 탄산음료이다. 사이다의 매력은 맑고 투명한 물, 입속을 톡 쏘는 탄산나트륨, 입을 달달하게 하는 감미료, 이 세가지가 절묘하게 어울려 마시는 사람의 갈증을 풀고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데 있다. 그래서 사이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초등학생 때 마셨던 그 사이다의 브랜드는 지금도 한국에서 사이다의 대표주자이다. 해외에 나와보니 한국에서 사이다라고 부르는 탄산음료를 ‘소프트 드링크(soft drink)’라고 부른다. 불리는 이름은 다르지만 역시 해외에서도 여러 브랜드로 나오는 ‘소프트 드링크(사이다)’들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사이다’란 단어를 단순히 음료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통쾌하고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지칭할 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A씨가 답답한 상황을 뚫어주는 듯한 속시원하고 명쾌한 말을 할 때, 상대방이“그 말은 ‘사이다’”라고 말하거나, “A씨는 ‘사이다’”라며 칭찬하는 것이다. 답답한 일이 많은 사회 속에서 그래도 가슴 속을 후련하게 하는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이 ‘사이다’라는 말의 유행에 반영되어 있다.
성경에서도 ‘사이다’같은 역할을 한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6장에서 서신의 끝인사를 하면서 자신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칭찬했다.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고전16:17,18) ).


이 믿음의 동역자들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충고와 애정을 대신 전해주어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고, 또한 바울에게도 그를 향한 고린도 교인들의 애정을 전해줌으로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며 큰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상대방의 마음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사이다같은 존재이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교회에서 얽힌 것을 풀어주고, 막힌 것을 뚫어 내고, 더부룩하게 얹힌 것을 시원하게 내려가게 하는 ‘사이다’같은 역할을 할 때,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고 복음의 빛을 비추는 그리스도인으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이진우 목사 - 토론토 낙원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