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1년 리베리아 반도(에스파니아) 에서는 반 유대인 폭동이 일어나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 당했으며 이후 레콘키스타(이슬람 통치로 부터 리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국가로 재 탈환하려던 정복운동)가 완성된 1492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약 사십여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재산을 빼앗긴 채 국외로 강제 추방을 당하였다. 또한 1880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에서는 한 정신병자에 의하여 황제가 폭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를 심문하던중 몸에 할례(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상징하는 신체에 행하는 표시)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 배후에 유대인의 음모가 있었다고 조작한 후 그 이듬해에 법을 제정하여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을 삼등분하여 삼분의 일은 학살, 삼분의 일은 강제 추방, 나머지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가혹한 조치를 취하였다.
2차 대전이 종료되어가던 1945년 1월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로 진격해 들어가던 소련군은 수용소 내에서 비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남긴 118만벌의 의복, 7.7톤의 머리카락, 산 더미처럼 쌓인 가방과 신발, 그리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600여구의 학살된 시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지역에서 고난과 박해를 당해왔으며 특히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반 유대적 정서와 특이한 민족적 편견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시련을 당해오고있다. 오늘날에도 민족혐오 범죄에는 언제나 유대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게된다.
 종교 개혁자 M.루터는 그의 악마론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포한 인류의 적은 유대인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우수한 민족,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자부하는 그들이 왜 이처럼 민족적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을까?
오늘날에도 인류사회에 뛰어난 역할로 공헌하고있는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과연 세계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있음을 성경에서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신약성경인 마태복음 27장에는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유대인들이 당시 유대지역을 관할하던 로마총독 빌라도(AD 26-36년)에게 고소하는 장면을 기록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는 고소를 접한 빌라도는 심문결과 그에게서 사형시킬 만한 어떠한 혐의도 없음을 발견하고 석방하려 하였으나 성난 유대인들이 폭도로 변할 것을 우려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허락하면서 “나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에 대하여 그를 고소했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 피값(죄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다.(마태복음 27장25절)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그 책임을 자기들과 후손들이 감당 하겠다고 선언하는 무서운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선언이요 자신과 후손들에 대한 혹독한 저주였다. 이와같은 저주가 자신과 후손들에게 족쇄가 되어 현실에서 생생하게 되돌아 올 줄을 그들은 꿈엔들 생각했을까?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L.V. 랑케 (1795-1886)는 확실한 자료비판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가 새롭게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초자연적인 기적, 영적인 내용, 비 과학적인 사실은 역사의 기록에서 제거 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 새로운 역사 해석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역사 비평학적인 관점에서 난도질하여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는 소위 ‘고등비평’이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그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기적 등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인 것으로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극히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 (목사)들 가운데에도 해괴한 논리를 이용하여 복음서는 많은 신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신화는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 가치가 있다는 웃지 못할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2천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주장했던 유대인들과 다를 것 없는, 예수를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저주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최대의 적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자아, 죄로 오염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조물주를 향하여 도전하며 저항하고 있는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이성주의자 볼테르(1694-1778)는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고 “오, 하나님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이 거짓인 것을” 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보면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타락한 문명과 사회, 죄로 오염된 이성이 절대 선을 향하여 도전하는 시대, 불의가 진리를 오도하고 피조물이 조물주를 향하여 항거하는 왜곡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신성균 장로 -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


[1500자 칼럼] 경험이 없을 때는,

● 칼럼 2013. 4. 16. 14:08 Posted by SisaHan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가끔 연락이 온다. 잘 키운 두 자녀 결혼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들도 큰 화제거리의 하나이다. 이제는 적령기가 훌쩍 넘은 딸이 사람을 만나 서둘러 결혼을 한다고 하고, 또 연달아 아들까지 사귀어 오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추진 중인데, 친구 부부에게는 둘 다 자신의 아이들의 배우자로 적당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 된다고 했다. 부부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두 아이 모두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크게 염려한다. 긴 통화 끝에 친구가 덧붙이는 말은 “아이들은 본인들의 의사대로 결혼을 할 것 같은데,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어떻게 맘에 썩 내키지 않는 예비 사위와 며느리를 대하여야 할 지 모르겠다” 였다.
 
전화를 끊고 계속 친구의 마음을 되뇌이며, 사람의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수시로 우리 마음으로 스며드는 불확신과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맺는 인연들을 돌이켜 보면, 미리 준비하고 상대방을 선택하는 일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너무 베풀면 공정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것 같고, 간혹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조차도 얼만큼의 보호와 사랑의 표현이 아이를 강건히 자라게 할 것인지 전전긍긍한다. 마음으로부터 솟는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보다는, 정해진 법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견제하고 또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 보이며 관계를 성립해 간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런 우리의 모습은 직장의 동료는 물론, 친구, 배우자 하물며 부모 자식 간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밀고 당기던 인연도 그것이 끝나는 순간이 오면 여태까지의 염려와 주저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치매로 고생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력만 잃으시는 게 아니라 성품도 달라지셔서 갈수록 옛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남에게 의존하며 순간순간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그렇게 의지하시던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데도, 불안하게 아내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그만 세상을 떠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긴 투병 생활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순간 모든 것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일말의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것은 아버지 삶이 이어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그 분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막막함이었다. 그 때까지 아버지가 무엇을 얼마만큼 기억하실 수 있는가 왜 그리 걱정을 했는가 싶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였는지 생각 못했다는 후회였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 옆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조카들, 먼저 보낸 친구들, 모든 헤어짐 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그나마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만들어낸 반짝이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 거듭되는 확신없는 시작과, 후회스런 끝 마침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제 삶의 연륜이 깊어, 우리가 맺어가는 긴 여로의 끝을 가늠하면서, 살아가는 순간들에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때도 되었다. 끝을 보면서 시작을 준비해 보는 연역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 후 다시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어차피 이제는 한 식구가 될 사람들이니, 어른이 두 팔 벌려 보듬어 주어야겠지’ 라고 말한다. 경험도 없고, 만족스럽지 못한 발 걸음을 내 딛으며, 그 여정의 끝을 이해하는 현명한 친구의 마음 다짐이 보인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쪽 노동자들을 전부 철수시키고 개성공단 사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003년 착공해 이듬해 첫 제품을 반출한 이후 이런 일은 처음이다. 10년 만에 개성공단 사업이 북쪽의 일방적 조처에 의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북쪽은 무모한 결정을 철회하고 즉각 공단 가동을 정상화해야 마땅하다.
 
북쪽의 이번 조처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는 “남조선 당국과 군부 호전광들이 우리의 존엄을 모독하면서 개성공업지구를 북침전쟁 도발의 열점으로 만들어보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유지·발전 방침을 분명히 해왔으며 국제화 계획까지 밝힌 바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언급했다는 인질구출작전을 빌미로 삼은 것도 억지다. 북쪽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쪽 관계자들을 장기간 억류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질구출작전 따위는 있을 수가 없다. 그가 ‘개성공단은 북한의 달러박스’라는 남쪽 보수세력의 주장을 거론한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지금은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그렇듯이 보수세력도 대부분 개성공단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상황이다.
북쪽은 전반적인 위기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이번 조처를 취한 것 같다. 군사적인 대치를 중심으로 한 위기 상황에서 비군사적인 개성공단 카드를 쓴 것이다. 이는 큰 잘못이다. 위기와 무관한 민간 부문을 인질로 활용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북쪽은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될지는 전적으로 남쪽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고 했는데,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해 남쪽 당국의 어떤 태도를 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든 위협용으로 쓸 수 있다는 식이어서는 남북 사이의 기본적인 신뢰도 흔들리게 된다.
 
개성공단은 남북 정상이 합의해 만든 곳이다. 그동안 남북 사이 무력충돌이 있을 때도 가동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남북이 함께 상품을 생산하는 곳을 넘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증진에 기여하는 핵심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상생공영의 사업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는 것은 기존의 모든 약속을 깨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태도로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에 대한 존중을 말할 자격이 없다. 개성공단에는 남쪽 사람들뿐만 아니라 5만3000명의 북쪽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 북쪽 당국은 이들의 일자리까지 뺏으려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다. 책임 있는 북쪽 당국자와 접촉해 북쪽의 진의가 뭔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7일은 제57돌 신문의 날이다. 신문방송편집인협회(옛 신문편집인협회)는 57년 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 탄생일을 신문의 날로 제정하고, 그를 통해 신문의 사회적 사명과 책임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왔다. 하지만 생일을 맞는 언론인들의 마음은 결코 즐겁지만은 않다. 한쪽에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밀려 신문을 보는 인구가 날이 갈수록 크게 줄고, 또 다른 쪽에선 기자들이 자사이기주의와 진영논리, 광고의 힘에 눌려 스스로 신뢰를 까먹고 있는 게 신문의 현주소다. 한마디로, 지금 신문은 신뢰의 위기, 영향력의 위기, 존립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중의 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신문이 연명을 넘어 부활하기 위해선 두 가지 방안이 동시에 실행되어야 한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신문에 대한 사회의 지원이다. 또 하나는 신문 스스로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피나는 자정 노력이다. 새가 두 날개로 날듯이 외부의 지원과 내부의 자성이 동시에 가동되지 않고서는 신문이 되살아나기 어렵다.
정치권이 추락하는 신문을 살리려고 발벗고 나선 것은 의미가 크다. 민주통합당의 전병헌 의원 등이 그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문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미디어 균형 발전과 여론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정부가 신문의 공동 제작과 유통을 지원하고, 국고 등을 활용해 신문산업 진흥기금을 설치하자는 게 핵심이다. 굳이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흥미 위주이고 휘발성이 강한 온라인보다 책임성과 사색의 깊이가 있는 인쇄매체를 살려야 한다는 그들의 인식은 틀리지 않다.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도 ‘신문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여당 쪽도 이 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기 바란다.
 
언론사 및 언론인 스스로 먼저 반성할 대목도 적지 않다. 사실에 근거하기보다 자사이기주의와 진영논리에 빠진 기사·논평의 범람, 자전거와 상품권, 심지어 현금까지 동원한 판매방식의 문란, 광고지상주의에 빠진 경영의 안일함으로는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다. 점차 흐려져 가는 기자들의 윤리의식도 신문으로부터 독자들을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다. 언론인들은 신문의 날을 맞아 다시금 117년 전 엄혹한 환경에서 독립신문을 만든 선배 기자의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이 신문을 믿고 신문도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