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가을비 내리던 날

● 칼럼 2012. 9. 24. 19:53 Posted by SisaHan
가을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다. 봄비에는 생장의 희망이 있어 온화하지만 가을비에는 소멸을 앞둔 종식의 아쉬움이 있어 냉랭할 수밖에 없나 보다. 따끈한 기억으로 달래보라는 듯 오래된 기억의 실타래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풀어진다. 
남편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 근무할 때였다. 밤이 늦어서야 귀가하던 남편이지만 비 오는 날에는 작업이 없어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들에게 ‘비 오는 날’이란 일찍 퇴근하는 아빠와 ‘외식하는 날’과의 동의어가 되었고 내게는 저녁 준비에서 해방된다는 의미였다. 외식이래야 특별할 것도 없는 칼국수였지만 바지락칼국수, 사골칼국수, 버섯칼국수 등 여남은 종류 앞에서 한 가지만 택하는 일이 쉽지 않은지 어떤 국수집으로 갈까 하며 부자가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리기 일쑤였다. 유난히 국수를 좋아하는 그들이 빚어낸 소박한 외식나들이는 그렇게 시작되곤 했다.
 
칼국수 집의 맛을 좌우하는 또 하나의 비결은 김치였다. 남편은 매콤한 겉절이를 좋아했다. 무엇이든 아빠를 따라 하고 싶어하던 아들은 매워서 헉헉거리면서도 물에 씻은 김치 조각을 늘 곁들여 먹었다. 나는 매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김치의 빨간 색만 보아도 지레 겁이 나서 먹을 엄두를 못 내었는데, 눈치껏 물에 씻어 먹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겼다. 붉은 물이 대접에 남아있어도 어린 아들에게 미룰 수 있는 기회를 살짝 활용했다고나 할까. 
물에 씻은 김치는 비록 붉은색은 버렸지만 제 본래의 맛과 냄새는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하얀 배추조각을 입에 넣고 조용조용 씹다 보면 매캐한 붉은 맛과 원재료의 고유한 맛들이 섬세하게 살아나며 혀가 아렸다. 각 양념이 지녔던 독특한 맛을 찾아내는 일은 마치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할 때처럼 의외였다. 아린 혀는 뜨거운 국숫발을 번번이 밀쳐내어 거친 숨을 두어 번 들이쉰 후에야 몇 가닥씩 맛을 볼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백김치 생각이 간절했다. 
백김치는 색깔은 하얘도 들어갈 것은 다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았다 뿐이지 색이 하얗다고 해서 아무 맛도 없는 건 아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의 웅숭깊은 속은 쉽게 드러나지 않듯이, 백김치 또한 찬찬히 음미할 때라야 단순한 흰색 너머에 감추어진 깊은 맛을 인지할 수 있다. 김치가 되기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빠짐없이 기억하려는 듯 무와 마늘, 생강 맛은 물론 달착지근한 배와 대추와 밤 맛까지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김치 양념 중에 제일 큰 몫을 차지하는 고추의 강한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소소한 맛들이 주눅들거나 개성을 잃지 않는다. 고추가 풍기는 매큼한 가을 햇볕 냄새는 없어도 백김치 역시 온 우주의 도움을 받았음을 담백한 고유의 맛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오묘한 맛을 상상하며 큰 맘 먹고 백김치를 담근 적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요란한 실패였다. 요리책을 펴놓고 수선을 떨며 머리로 담갔던 첫 백김치의 맛은 제 얼굴 색만큼이나 창백했다. 넣을 건 다 넣었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많은 재료들의 맛은 온데간데 없고 배추와 소금 맛밖에 나지 않아 그 후로는 백김치를 담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나 짠 음식을 먹은 뒤에 찾아오는 갈증처럼, 한번 실패한 백김치로 인한 마음의 가뭄을 해갈시키지 못한 채 꿈으로 남았다. 
고국에서의 오래 묵은 기억들이 한바탕 휘젓고 가는 날은 비행기 몸체가 상공에서 기류변동을 만났을 때처럼 마구잡이로 흔들리다가도, 활주로에 안착할 때와 같은 안도감으로 마무리될 만큼 이국에서 살았다. 가을비로 연상된 칼국수, 그리고 혀를 따갑게 쏘던 김치에 대한 추억 덕분에 말린 나물처럼 바스락거리던 타국의 삶이 촉촉해진 느낌이다. 하얀 김치의 이미지에는, 그게 원래 백김치든 씻어서 하얗게 된 김치든 마모되지 않은 우리 식구의 빛나는 젊음과 사랑이 배어있다. 바람과 비가 한 차례씩 다녀가며, 잡다한 흔적과 지우지 못한 기억을 건드리는 가을이다.

< 김영수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 한국 문인협회 회원 >


이명박 대통령이 불을 질렀다. 화끈하다. 국민 대다수가 ‘속 시원하다’고 환호한다. 하지만 후과는 크다. ‘역대 대통령 중 최초 독도 방문-일본의 국제 영향력 저하 발언-일왕 사과 요구 발언’의 3종으로 이뤄진 대일 강공 세트가 한-일 관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이 대통령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일 관계의 재구성은 불가피해졌다. 갈등을 빚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얼렁뚱땅 복원되곤 했던 그런 시대는 갔다. 미국의 전후 냉전전략 아래 불완전한 과거청산과 경제지원의 교환 형태로 성립한 1965년 한-일 협정 체제가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결정타를 날리긴 했지만, 한-일 관계 1.0판인 65년 체제에 근본 의문을 제기하는 움직임은 사법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군 위안부(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질타하는 2011년 8월 헌법재판소의 부작위 판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5월의 대법원 판결이 바로 그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사법부가 이런 판결을 내놨다는 건 65년 체제를 뒤엎으려는 시민사회의 힘을 국가가 더는 외면·무시·억제할 수 없다는 걸 뜻한다. 한마디로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한-일 국력이 100 대 1이던 시절에 맺은 협정을 5 대 1로 좁혀진 시대가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력 차의 축소와 함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의 성장도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는 강력한 힘이다. 일본 쪽이 성노예 해결책으로 ‘총리 사과 편지-재정지출을 통한 위로금 지급-주한대사의 피해자 방문 사과’라는 나름의 전향적인 안을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은 ‘국가 책임’을 요구하며 한사코 거부했다. 금전·인도·정치라는 실리보다 법과 인권이라는 명분이 우선이란 얘기다.

이 대통령의 ‘거사’ 이후 일본 쪽 움직임도 65년 체제를 단순 복원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본 여야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배려외교의 중단’은 앞으론 과거에 대한 부채의식에 구애받지 않고 상대하겠다는 선언이다. 한-일 협정 이후 처음으로 꺼내든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53년 이승만 라인 선포 이후 처음 채택된 한국 비난 의회 결의안은 그런 행동의 첫걸음이다. 더욱이 성노예의 국가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조차 수정해야 한다는 정치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앞으로 일본의 역주행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태껏 한-일 관계를 규정해온 65년 체제를 대신할 새 체제를 건설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 중단과 이 대통령의 일왕 사과 요구 발언 해명과 같은 미봉책과, 물밑 막후 창구 가동을 통한 관계 복원 같은 전통 수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큰 변화가 이미 발밑에 닥쳐왔다. 영토 문제에서 정면대응을 불사하는 중국의 달라진 태도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일본이 더는 ‘접바둑’을 둬 주지 않겠다고 나온 마당에 우리가 과거의 편의적 관계로 돌아가자고 매달릴 필요는 없다. 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새 틀을 짜자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특히, 65년 협정에서 배제한 성노예,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책임을 적극 제기해야 한다. 당시 미국의 압박, 국력의 차이와 내부 사정으로 꼼꼼히 챙기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론에 부쳐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땜질식 처방이 아니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각오로 대일정책 2.0을 들고나와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은 하되 협력할 건 하는 진정한 우호관계가 열린다.

< 오태규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주변 인물들의 비리 의혹이나 일탈 행동이 불거질 때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공식’이 있다.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하면서 ‘꼬리자르기용 탈당(또는 제명)’을 한다. 새누리당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다가 나중에 혐의가 확인되면 ‘개인적 차원의 일’이라며 발뺌한다. 부정부패, 특히 측근 비리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공언해온 박 후보 역시 측근들의 문제가 터지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현영희 의원의 공천헌금 사건이나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원장 불출마 협박’ 사건이 모두 이 공식대로 진행됐다.
박 후보의 경선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낸 홍사덕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홍 전 의원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부인하면서 어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번에도 당 차원의 진상규명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친인척 및 측근 실세들의 부정비리 차단 대책을 발표하며 기세를 올리던 정치쇄신특별위원회(위원장 안대희)도 막상 ‘실제 상황’이 벌어지자 유명무실한 모습이다.
 
홍 전 의원 사건의 진상은 앞으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중앙선관위가 한달 이상 면밀히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선관위가 수사의뢰보다 한 단계 높은 고발 조처를 한 것도 사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일부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선관위가 여당인지 야당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불만까지 토로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다.
새누리당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박계 실세로 꼽히는 송영선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용’이라며 정치자금을 요구하고 다닌 사실도 밝혀졌다.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나는 국방부 장관으로 갈 수도 있고, 차관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등 녹취된 송 전 의원의 발언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다. 눈을 넓혀보면 박 후보의 측근 인사임을 내세워 여기저기 손을 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단지 송 전 의원 한 사람뿐이겠는가.
 
박 후보의 측근비리 척결 의지는 이제 중요한 시험대에 올랐다. 현실로 등장한 홍사덕·송영선의 비리 의혹은 외면하면서 계속 허공에 대고 정치쇄신 구호를 외쳐서는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검찰의 수사 결과 역시 주시할 대목이다. 검찰의 새누리당 봐주기 수사는 더는 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선관위가 고발한 사건까지 흐지부지 만들어버리는 파렴치한 행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내곡동 사저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모양이다.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권재진 법무장관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고 법제처 역시 최근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과 정부의 이런 태도는 법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한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무책임한 짓이다. 특검 대상자이기도 한 이 대통령 개인으로선 인간적으로 구차하고 비겁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두 가지 정도다. 고발 당사자가 특검을 추천하고, 그것이 특정 정당이라는 점에서 특검의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08년 1월의 헌법재판소 판례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특검법 거부 사례를 들고 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설득력이 약하다.
 
이번 특검의 수사 대상이 바로 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위헌 여부도 이를 전제로 판단하는 게 옳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측근인 김백준씨를 시켜 비비케이특검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가 합헌 결정을 내린 게 바로 2008년 1월 판례다. 결정문엔 “국회의 정치적 정책적 판단이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난다거나 입법재량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며 특검 선정에 대한 국회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고 있다. 청와대 주장대로 특정 정당이 추천해서 위헌이라면 대통령을 조사하는 특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야말로 위헌 소지가 더 큰 게 아닌가. 이런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여당이 먼저 야당에 추천권을 양보한 것을 두고 위헌 운운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야당 의원들 말처럼 “피의자가 검사 교체를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정치적으로는 여당과 박근혜 후보에게 상당한 부담을 떠넘기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난 2일 청와대 단독회동에서의 ‘양해설’이 확산될 수도 있고, 국회에서의 재처리 부담도 박 후보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적으론, 이 대통령 개인의 태도 문제도 걸려 있다. 잘못을 했으면 설사 참모들이 반대하더라도 “내가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게 지도자의 기본자세다. 누가 봐도 명백한 잘못을 저질러놓고 특검의 칼날을 피해보려 발버둥치며 정부와 여당, 나아가 대선 후보에게까지 부담을 지우는 건 대통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인권의식 등 여러 면에서 ‘헌법’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대통령이 이런 때만 ‘위헌’ 운운한다면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