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특별방송이 열리던 날 바람 찬 서울 여의도공원. 날씨는 으슬으슬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영락없이 영하에 물대포 쏟아지던 시청 앞이었다. 그런데도 청중은 쉼 없이 밀려들었다. 기성 언론의 황혼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탄식이 절로 쏟아졌다.
그날 <문화방송>의 해설 ‘2011년,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사실은 문화방송 등 우리 방송의 슬픈 현실)처럼 이런 감정을 잘 드러낸 건 없었다. “각하헌정 방송을 내건 이 팟캐스트가 대박 나게 한 각하의 그 끝 모를 인기를 절감합니다. … 그런데 공연기획자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사는 취재를 봉쇄한다고 했답니다. 기성의 언론에 믿음을 갖고 있는 세대는 의견을 표출할 수단을 잃었습니다.” 문화방송의 위기감이 이럴진대, 방송 통제로 호가호위하던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날 청중 수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5만명(주최 쪽)이냐 1만6000명(경찰)이냐는 별 의미가 없었다. 콘서트 중간까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다 돌아간 사람과, 그래도 봐야겠다고 밀려드는 사람으로 지하철역부터 공원 출입구까지는 인산인해였다. 게다가 다운로드 건수는 100만여건에 이른다. 거기에 대고 청중 숫자 놀음이나 하는 건, 한물간 레디메이드 언론들의 자위일 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바로 이튿날 종편 합동 개국식이 있었다. 온갖 특혜와 반칙으로 탄생한 괴물 방송이라고들 했지만, 그날 보여준 것만으로는 어릿광대의 방송놀이에 불과했다. 종편 운영사인 조중동 매경이 신문을 홍보 찌라시로 전락시켜가며 선전했지만, 시청률은 대부분 1% 이하였다. 온갖 왜곡·과장으로 제가 최고라고 떠벌리거나, 개국식도 같이 한 이웃 종편들을 물어뜯는 데 여념 없었다. 지상파에 종편까지 가세하면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처럼 여론을 멋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여겼던 방통위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조폭 영업 등 온갖 특혜를 퍼줬지만, 종편은 가카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었다. 오로지 미래 권력만 떠받들었다.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박근혜의 짝사랑, 박근혜의 비키니 따위의 신변잡기와 칭송으로 칠갑했다. ‘전 영원한 당신의 종입니다… 딸랑딸랑’(작고한 김형곤씨의 개그프로 ‘회장님 우리 회장님’의 대사)의 결정판이었다. 공영방송의 정권 편향으로 등장한 나꼼수조차 제어 못 하는데, 종편으로 말미암아 공주마마 헌정 방송까지 나올 지경이니 어찌할 것인가.
나꼼수 공개방송에 기겁하고, 불량 종편의 막무가내에 절망한 딸랑이들로선 가카방송 잡고 마마방송 저지 위해 극약처방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 와중에 SNS및 앱 심의기구가 설치되고, 통신심의실장은 명예훼손 등의 신고로도 나꼼수 등을 접속 차단(폐쇄)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불과 8개월 전 방통위는,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사적인 네트워크이므로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했었다. 불법 유해정보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둘러대지만, 누가 괴담을 퍼뜨리고 국가를 혼란시키는지는, 선관위에 사이버 테러를 가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범인은 다름 아닌 괴담을 사냥한다던 한나라당 홍보파트의 책임자 비서였다. 공작 가능성을 제기한 나꼼수를 괴담의 원천으로 몰아버린 집단이다.
권력 장악을 위해선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정권이니, 나꼼수를 오락실 두더지 패듯이 두들긴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강용석 개그에 이은 방통위 개그로 허무하게 끝날 것이다. ‘개콘에 나오려고 발악하는 것 아냐? 안 돼, 절대 안 돼.’ 왜냐고? 생각나는 대로 정리해보자.
1. 가카가 엄연히 건재하시다. 2. 가카의 꼼수도 여전하시다. 3. 그 아전의 꼼수 또한 일취월장이다. 4. 진실을 괴담으로, 괴담을 진실이라고 떠드는 딸랑이들이 더 늘었다. 5. 거짓말은 더 많은 꼼수를 동반한다. 6. 가카를 잡아야 나꼼수도 잡히는데 그럴 순 없다. 7. 국민을 잡아도 되지만, 너무 많다. 8. 헌정 방송은 줄지어 있다. 9. 국민의 원성을 잡겠다는 건, 수갑으로 바람을 묶고 족대로 물을 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허무개그에 쏟을 여력 있다면, 국가 테러의 진수를 보여준 선관위 테러범의 몸통을 색출하는 데 바치길 빈다.
<한겨레신문 곽병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