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선조들, 고래·맹수 사냥 모습 그린 바위그림

 

 
 
12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 유산 등재가 결정된 직후 최응천 국가유산청장(가운데 한복입은 사람)과 김두겸 울산시장(최 청장 왼쪽) 등 한국 대표단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바다에서는 덩치 큰 갖가지 고래들을 잡고, 산 속에서는 호랑이와 멧돼지들을 사냥했던 선사시대 한반도 선조들 삶의 흔적들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 문화유산 반열에 올랐다.

 

12일 저녁(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에펠탑 남쪽의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본부 1회의장에서는 한국 대표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10시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첫 안건으로 올라온 ‘(울산)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에 대한 진행을 맡은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네노브 교수가 논의 결과 등재가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그 순간 최응천 국가유산청장과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등 국가유산청·울산시 대표단 관계자들은 손을 치켜들어 환호하고 박수를 치면서 2년 전 가야고분군에 이은 한국의 17번째 등재를 자축했다.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이뤄진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에 공식 등재신청 절차를 마쳤고, 지난 5월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등재를 권고해 등재결정이 유력시되어 왔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전면 모습. 울산시 제공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을 일컫는 암각화는 한반도 선사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반구천 암각화는 사냥 도상의 특이성과 생동하는 묘사력 등에서 전세계 암각화들 가운데서도 첫손 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아왔다. 1971년 12월 당시 청년 역사학자 문명대, 이융조, 김정배씨 등이 발견한 반구대 암각화는 가로 8m, 세로 4.5m의 절벽 너른 바위면에 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등 다양한 종류의 고래들이 헤엄치는 모습과 이들을 작살로 잡고 해체하는 인간의 작업 등 다기한 고래 모습과 사냥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목받았다.

 

천전리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보다 1년 앞서 발견됐으며, 가로 9.8m, 세로 2.7m의 바위에 고래, 사슴, 말 등의 바다·육상 동물은 물론 용 같은 상상의 동물까지 새겨놓았다. 또한 마름모와 동심원 등 여러 종류의 상징적인 기하문양, 신라 법흥왕 시대 왕족과 화랑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답사기록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보고로 평가된다. 이코모스 쪽은 지난 5월 두 유적에 대한 등재권고를 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며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 바 있다.

 

1971년 발견 당시 처음 찍은 반구대 암각화 초탁본. 동국대박물관 제공
천전리 암각화 정면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이번 등재 확정으로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시작으로 2023년 가야고분군에 이어 올해 반구천 암각화까지 모두 17건(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의 세계유산을 갖게 됐다.

 

한편, 한반도의 최고 명산으로 꼽히는 북한의 ‘금강산'(Mt. Kumgang - Diamond Mountain from the Sea)은 한국시간으로 13일 밤 등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데, 역시 이코머스 심의에서 등재권고 판정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북한이 나란히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노형석 기자 >

 

대곡리 암각화의 다양한 동물 도상들을 표시한 도해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전작권 환수가 좌편향 이슈?…노태우가 시작했다

 

 
 
2005년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장병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대통령실은 11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관련 ‘프레스 가이드’(PG·보도시 활용하는 공식 입장)를 내어 “전작권 환수는 과거부터 한·미 간 계속 논의되어 온 장기적 현안으로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또한 우리 신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측은 미 측과 동 사안을 계속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조선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정부, 미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협의 나섰다’고 보도한 뒤 나온 피지였다.

 

대통령실 피지와 조선일보 보도는 전작권을 두고 ‘환수’와 ‘전환’이라고 달리 표현했다. 환수와 전환에는 전작권에 대한 다른 생각, 감정이 깔려 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 쪽이 집권하면 환수, 국민의힘 쪽이 집권하면 전환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는 환수와 전환을 모두 사용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전환을 사용했다.

 

보수 정부와 보수언론은 환수 대신 전환(transition)을 쓴다. 환수에는 마치 빼앗기거나 도난당한 것을 되찾아온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 쪽은 한국전쟁 기간 한국 정부가 전작권을 스스로 이양해준 것이지 도난당하거나 빼앗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환수를 좌파의 감정적 선동 용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사실과 맞지 않다. 환수는 그냥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withdraw’다. 국민의힘 뿌리격인 김영삼 정부도 환수란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2월1일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던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환수됐다. 1994년 한·미 장성급회의 기록에는 한국이 주어로 등장할 때 미국으로부터 작전권을 환수(withdraw)한다고 나와 있다.

 

보수 쪽은 전작권 환수가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진보정권이 불을 지핀 좌편향 오류라고 단정한다. 수십년째 이런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주 군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한 뒤, 전작권 전환은 진보 정권의 숙원처럼 됐다.“(조선일보 7월11일치 4면, 전작권 전환 비용 최소 21조… 군 “우리가 먼저 제안해선 안 된다”)

 

 

정작 작전통제권 문제는 보수 정부가 제기한 이슈였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작전권 재조정’을 공약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관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창피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노태우 정부는 정권 초기인 1988년부터 전시, 평시의 구분없이 작전통제권 전체를 환수하려고 했다. 북핵 문제 등이 불거지자 1992년 10월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눠 일단 평시작전통제권만 먼저 환수하고 전작권은 나중에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됐다.

 

이후 30년 넘게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하며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전작권 전환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던 윤석열 정부 때도 합동참모본부에는 현역 장군(소장급)이 단장을 맡은 전작권전환추진단이 꾸려져 활동했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초 전작권 환수에 대해 “주권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자 보수 쪽은 전작권은 군사주권이 아니고 제한된 전시 지휘관계라고 반발했다. 이와 달리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유엔군사령관을 역임했던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 대장은 “한·미 지휘관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엄청날 정도로 국가주권을 양보한 경우”라고 했다.

 

전환이란 용어를 고집한 윤석열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한·미가 공동 주체인 협의·합의 때에는 전환이란 용어를 쓰고, 한국 정부나 군이 주체가 될 때에는 환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환은 주체가 바뀌는 상황을 말하는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한·미안보협의회 합의문에도 “한국으로의 전작권 전환”(transition of OPCON to ROK)이라고 나온다. 환수란 단어에 색안경을 끼고 사용을 꺼릴 이유가 없다.   < 권혁철 기자 >

의대협·의협·국회 공동 입장문 발표

 

“학교 떠난지 509일, 이제 학생 본분으로” 복귀 선언

“단위별 논의 필요하다”며 구체적 일정은 미공개

특혜 비판 의식한 듯 “학사 유연화 아닌 정상화 요구”

 

                 지난 5월 25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연합

 

의대생 단체인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협회(의대협)가 12일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감으로써 의대 교육과 의료체계 정상화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의대협은 대한의사협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교육위원회와 12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공동 입장문을 내고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선우 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늘로 저희가 학교를 떠난지 509일이 됐다”며 “의대 학생들이 학생 본분으로 겸허하고 성실히 학업에 매진해 의료현장에서 국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또 “의대 학생 전원이 성실하게 학업에 임해 필수적인 의료 분야에서 국민 건강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달라”며 “의료체계가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비대위원장은 “정부와 국회에 부탁드린다. 교육과 수련현장의 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투명한 협의체를 마련해달라. 저희 의대생도 성실히 참여하겠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공동입장문을 통해 “의대 교육 정상화를 적극 지원하고 의료 정상화를 위해 정부와 책임 있는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했고, 국회는 “의대 교육 정상화 방안이 조속히 마련되도록 정부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은 이날 공동입장문에서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될 국민이 의료공백 속에서 생명을 잃었다”며 “반드시 이 사태를 마무리지어야 하고 지금 의대 교육이 멈추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대통령실과 정부에 공식 건의사항 두 가지를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학사일정 정상화를 통해 의대생들이 교육에 복귀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며 “전 정부의 무리한 정책으로 인해 초래된 의료현장의 피해 복구와 중장기적인 교육과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해달라”고 했다.

 

다만 이날 의대협 측은 수업 복귀 일정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 비대위원장은 “협조를 구해야 하는 여러 단위의 협조가 선행돼야 해, 정확한 날짜를 말씀드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다만 학생 전원 복귀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비대위원장은 의대생들이 학사유연화 요구가 지나친 특혜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의대협이 언급한 ‘학사정상화’는 의대교육 시간을 압축하고 줄이는 학사유연화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이 비대위원장은 “계속해서 얘기 나오는 학사유연화와 같은 특혜와는 다른 입장이라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비대위원장은 또 “교육 총량이나 질적 차원에서 전 정부가 해왔던 학사유연화나 달리 압축이나 날림없이 제대로 교육받을 것”이라며 “다만 의대 교육이 느슨했던 여백기인 예과 교육기간, 본과 4학년 2학기, 방학이나 계절학기 등을 모두 이용해 교육의 질적 하락이나 총량 감소없이 교육받겠다는 의지의 표명드린 것”이라고 했다.

 

의대협 측은 의대생들이 대거 수업에 참여하면 이미 복귀한 학생들이 괴롭힘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의료계)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이 지나치게 일반화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비대위원장은 “다수가 소수를 싫어한다는 구도로 기사가 나오고 있고, 마치 모두가 (이미 복귀한 학생을) 싫어한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최대한 화해와 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국회·대한의사협회·의대협의 공동입장문에 담긴 의대생 복귀 발표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복귀시기나 방법 등은 대학과 교육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10시30분쯤 낸 입장문에서 “의대협이 국회와 정부를 믿고 학생 전원이 학교에 돌아오겠다고 발표한 것을 환영한다”면서도“복귀시기와 복귀방법 등을 포함한 복귀 방안은 대학학사일정과 교육여건, 의대교육과정의 특성을 고려해 실제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 관계부처와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다.  < 김원진 기자 >

 

12일 오후 8시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대강당에서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김택우 의협 회장,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왼쪽부터)이 ‘의과대학 교육 정상화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여전히 공격받는 불굴의 '내부 고발자' 임은정

● COREA 2025. 7. 12. 23:4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프레임 작동시켜 검찰 개혁 막으려는 친검 언론

검찰 수사권 분리 반대하며 '소신' 바뀐 안 검사
언론의 또다른 단골 소재인 김예원 변호사 주장
'사회적 약자 위해 검찰 수사권 지키자'는 기만극

불굴의 용기로 내부 고발해 온 임은정 검사의 길
무소불위 검찰-언론 카르텔에 맞선 기적의 시간

 

며칠 전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검찰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족벌언론들과 친검찰 언론과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기사를 써서 올리며 '이렇게 소신 있는 정의로운 검사도 비판하고 있으니 역시 임은정은 친민주당 정치검사일 뿐'이라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안 검사는 "검사장님께서 검찰이 바뀌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발견한 현답을 후배들에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했지만, "정치로부터 독립이 검찰 개혁"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임 지검장을 비판했다. 임 지검장이 취임 후 '검찰 장의사'를 자처하며 검찰 해체 수준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안 검사의 주장을 이용해 임 지검장을 공격하는 언론들은 모두 안 검사가 과거에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검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만들어낸 '소신파 검사'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정치적 효과를 높이려는 노골적 의도가 드러난다. 하지만 안 검사의 이러한 이미지는 다소 과장된 점이 있다.  

 

임은정(오른쪽) 검사장과 안미현 검사.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안미현 검사가 강원랜드 사건 때 검찰 수뇌부의 외압에 반기를 들고 용기 있게 거물 정치인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수사한 것은 사실이고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 안 검사는 친검 언론, 족벌언론, 검찰 권력 내부에서 집중적인 공격과 왕따를 당하면서 점차 자신의 입장을 조절하거나 침묵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직후인 2019년 '조국사태'(윤석열 사단의 연성쿠데타) 때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당신은 조국을 편드는 것이냐'라는 의심이 나오자, 안미현 검사는 '나는 간담회 자리에서 조국 장관에게 가족 수사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했다'라고 변명했다. 검찰 권력의 문제점과 수사권 남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기에 별다른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셈이다.

 

2019년의 전 사회적 조국몰이의 광풍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극히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나중에 2022년에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이른바 '검수완박)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안미현 검사가 검찰의 수사권 유지를 강력히 주장하며 검찰의 기득권 옹호에 나선 것은 변명해주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안 검사는 과거 자신이 담당했던 '계곡 살인사건'에서 졸속적인 수사 종결이 문제였다는 족벌언론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검찰 수사권 분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족벌언론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개인적 잘못을 난데없이 감찰 개혁이 낳은 문제로 책임을 돌려버리는 잘못된 대응이었다.

 

그러자 당시 검찰 지도부는 태도를 바꾸어 안 검사의 "용기"를 칭찬했고, 친검찰 성향의 족벌언론과 보수 매체들은 이러한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톡톡히 우려먹었다. '검찰을 비판했던 안미현 검사도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라는 프레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안 검사는 검찰 수사권을 지키려고 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검찰과 언론에 의해 활용됐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 검찰의 '장의사'를 자처한 임은정 검사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그 후 안 검사는 '검찰 강점기'라고 불릴 정도로 검찰 권력의 폭정과 전횡이 넘쳐났던 윤석열 정부 내내 별다른 공개적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권력의 중심인 서울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 검사가 정말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통한 개혁'을 소신으로 가지고 있다면, 가장 그것이 필요한 시기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안미현 검사의 주장은 지금 검찰 개혁의 가장 상징적 인물인 임은정 검사를 흠집 내면서 검찰 권력의 옹호자들과 그 하수인들에게 개혁에 저항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사단이 막장으로 보여 준 검찰 권력의 문제와 폐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의지는 찾기보기 어렵다. 

 

덧붙여 또한 최근 친검찰적인 족벌언론과 종편 방송들이 검찰 개혁 반대를 위해서 툭하면 인용하고 불러내서 우려먹고 있는 것에는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도 있다. 김예원 변호사가 장애인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동해 온 진정성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하지만, '이렇게 정의롭고 진보적인 변호사도 검찰 개혁을 반대하지 않냐?'는 게 저들이 노리는 효과이다.

 

김예원 변호사도 오래전부터 검찰 수사권 분리나 검찰 개혁법안들에 반대해 왔는데, 그 논리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먼저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 검찰 수사권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라는 주장부터 우리의 경험적 사실과 맞지가 않다. 검찰 수사권의 선택적 사용이 권력자들을 위해 남용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한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보복 기소까지 하던 검사들, ‘룸살롱 99만 원’ 접대받은 검사들,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으로 몰아서 구속하던 검사들이 이제 와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을 활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검찰개혁 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김예원 변호사가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2025.7.9. 연합
2022년 임은정 검사의 '시사인' 인터뷰 내용중에서 

 

김예원 변호사는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정치 경찰', '경찰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며 "국가 폭망법"이라는 과도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 시절에 '정치 검찰'이나 '검찰 국가'의 폐해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 김예원 변호사가 현재와 같은 적극적인 비판과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지면서 생긴 문제점과 경찰 수사의 부족함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검찰 수사권의 유지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경찰 수사의 전문성 강화, 중립적 기관을 통한 수사의 공정성 감독, 피해자 이의 신청권과 시민 통제 강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언론 카르텔의 힘이 무시할 수 없게 남아있고, 그들이 안미현 검사나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을 입맛대로 활용해 개혁을 막아서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거의 20여 년간 검찰 내부에서 온갖 구박, 왕따,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검찰 권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과 고발을 해 온 임은정 검사의 존재는 너무 소중하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인 임은정 검사의 고발은 항상 직설적이고 통렬했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정말 많은 전현직 검사들이 구속될 가능성이 저는 높다고 보고 지금까지 수사의 성역이었던 검찰을 수사한다면 여기는 황금어장이다. 그물만 내리면 범죄자들이 잡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물고기입니다', '저 물고기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고발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런 역할을 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2020년 인터뷰) 

 

임은정 검사는 이미 2020년에 검찰이 불법비리를 저지른 검사들로 가득하다고 고발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로 이어지는 4개의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 개혁에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사람은 그것이 어느 정부이고 어느 정당이든 임은정 검사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임은정 검사는 "검찰 개혁이 안 되는 것은 언론과의 협업 때문"이라며 "검찰 간부들의 속기사 역할"을 하는 친검찰 언론과 기자들에 대해서도 사정없이 비판해 왔다.

 

자기 자신조차 개혁돼야 할 검찰 권력과 적폐의 일부라는 성찰과 자각도 잊지 않았다. “역사의 심판에서 피고인석에 앉을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모든 검사들일 테고, 저도 검사이니 심판을 피할 길이 없네요.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를 염치가 없습니다.”(2020년 경향신문 칼럼) 이처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도부와 선후배 동료들에게 밉보이면서 왕따의 고통을 자초하게 되고,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고 파괴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조직이 검찰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고, 대통령까지 배출하고, 언론과 손잡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조직과 등을 돌린다는 말이 된다.

 

모든 폐쇄적 상명하복 조직에서는 수뇌부의 눈 밖에 나면 곧바로 멋대로 짓이겨도 되는 사람이 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우르르 돌을 던지며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하는데, 이러한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검찰이다. 이 공포에 가까운 엄청난 압력과 맞서면서 검찰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임은정 검사는 조직에 반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검찰 내부 문화를 드라마 '글로리'와 비교한 적이 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런데, 그 기적을 정말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람이 바로 임은정 검사였다. 실제로 임은정 검사는 검찰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고 몇 번이나 징계와 적격심사의 대상이 되었고, 승진에서 밀려나고 여기저기 지방으로 쫓겨 다니며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선후배나 동기들이 임은정 검사와 거리를 두고 있고 왕따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시련의 세월을 임은정 검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 계단을 걸어와서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신발 벗을 정신도 없었고요. 그냥 주저앉아서 울었지요 …. 한참 울다가 방에 기어들어가 자고 그랬어요"라면서 돌아본 적이 있다. 2022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너무 힘들어요"라고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은정 검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은 혼자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길게 늘어선 줄의 앞자리에서 가고 있는 겁니다. … 숱한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과 땀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어 역사가 되지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 다짐했지요. 돌멩이만도 못한 그런 검사장이 아니라 할 말 하는 검사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이 불굴의 용기는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끝까지 응원해야 한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은 거대한 암초를 만나도 타고 넘어서고, 끝내 암초를 부수어 모래를 만들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 연한 살이 찢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진주조개가 되듯, 우리 모두의 고통이 검찰 개혁이라는 영롱한 진주로 거듭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2019년 '조국 사태' 때 임은정 검사의 글)  < 전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