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10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주변에 모여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민들이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박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문체부 문책 인사 등 책임 인정 안했지만
이정미 권한대행 “박대통령, 최씨 국정개입 철저히 숨겨”


최순실이 갈랐다. 헌법재판소는 세월호 참사 관련 책임 등에 대해선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최씨 국정개입에 함께 했다며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10일 박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청구 사건 선고에서 국회 탄핵소추 의결 과정 적법했는지 여부에 대해 “탄핵소추사실이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돼있다”며 “사실관계 조사 여부도 국회의 재량”이라고 말했다. 또 토론 없이 국회 표결 이뤄진 점에 대해서도 “국회법상 반드시 토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 8인으로 이 사건을 심리하는 점에 대해서도 “8명이 심리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권한대행은 국회가 “직업공무원제도와 대통령의 공무원 임면권에 관한 헌법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문책성 인사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됐기 때문에 문체부 공무원 인사를 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고, 유진룡 전 장관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6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치 않다”고 밝혔다. 또,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 해임에 압력을 행사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증거를 종합해도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했는지 분명하지 않고, 박 대통령이 관여했다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 의무에 관해서는 탄핵 소추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권한대행은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라고 해서 대통령이 직접 구조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추상적 의무규정을 위반한 이유로 탄핵 소추를 하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파면으로 이끈 건 최순실이었다. 이 권한대행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공무수행을 투명하게 공개해야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개입을 숨겼고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덮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의 견제와 언론의 감시가 제대로 작동 안됐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통령의 헌법·법률 위배는 재임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져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들 단속했다”며 “박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규명에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 조사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 압수수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이런 이유를 들어 “박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밝혔다.

<김원철 박태우 기자>


옛날에는 가구를 하나 조립하려고 해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사못을 하나 박으려고 해도 손으로 일일이 드라이버를 수 십 번씩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 드라이버를 사용하면 드르륵 소리 한 번에 나사못이 쑥~ 들어간다. 이처럼 좋은 연장이 있으니 일을 빨리하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전도에 있어서도 전기 드라이버와 같은 역할을 하는 좋은 도구가 스포츠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려면 먼저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스포츠를 매우 좋아하므로 스포츠를 매개로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필자는 매년 중미 니카라과에 단기선교를 가는데 아무 동네에 들어가도 축구공 하나만 들고 가면 어린이나 청소년 몇 십 명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다. 30분 만 같이 축구를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금방 친해진다. 운동을 잠깐 쉬면서 그늘나무 밑에 앉아서 수박을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선교지 아이들은 내가 누군지? 어디에 사는지? 자기 나라에 왜 왔는지? 관심이 많다. 그들의 가득한 호기심을 풀어 주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함에 있어서 또 다른 장점은 교회에 처음 나오는 초신자들에게 계속해서 교회를 나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초신자가 교회에 처음 오면 모든 것이 낯설기 마련이다. 찬송도 기도도 호칭도 모두 그들에겐 생소하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탁구나 등산이나 농구나 축구나 골프가 그 교회에 있어서 정기적으로 적절히 실시되고 있으면 초신자들은 스포츠를 통해서 기성 교인들과 금방 친할 수 있고 재미도 있어서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 가는 것이 훨씬 쉬워진다. 게다가 초신자가 성숙한 교인이 되려면 꽤 긴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기간 동안 초신자들이 계속 교회에 재미를 붙이고 올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서도 교회스포츠는 큰 장점이 있다.


물론 교회가 스포츠를 실시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몸에 좋은 약도 꼭 적절히 복용해야만 좋은 결과가 있듯이 교회 스포츠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스포츠 사역이 단지 스포츠를 위한 스포츠가 되면 교회에 유익이 없다. 지나치게 경쟁이 되거나 부담이 될 만한 내기 위주로 흘러가면 스포츠 때문에 오히려 상처를 받고 교회에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필자와 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탁구를 치는 모임이 있다.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나면 몸에 열이 나면서 땀이 난다.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탁구를 처음 시작한 사람에게는 기술이 좋고 경력이 많은 사람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며 봉사를 한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탁구를 마치기 전에는 단체전 시합을 하여 지는 팀에서 커피를 한 잔 산다. 따뜻한 커피를 같이 마시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도 나누고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찾아 오셔서 베푸시는 은혜를 나누고 있으면 살아 있음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포츠는 교회의 전도와 교제와 단합에 유익을 줄 수 있는 참 좋은 도구이다.

< 임수택 목사 -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발하기 때문에, 교회가 촛대 (일곱 금촛대)로 표상(表象) 하는 것이었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며 그의 <복음>이 우리의 등불이 된다. 교회는 순금에 필적할 수 있을만큼 귀중하며, 순전해야 하기 때문에 금촛대가 되는것이다. 만일에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분히 여기시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은 교회와 죄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홀연히 그리고 놀라웁게 임하시어 교회의 특권을 박탈할 것이며, 그들로부터 복음의 말씀과, 목사들과 사역자들의 예배의식을 거두어 가실 것이다. 누가 복있는 자와 복되게 될 자들 일까요? 이들은 주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다. 즉 그리스도 때문에 죽었거나 또는 그리스도와 생명으로 연합되기 위하여 죽은 자들을 말한다. 추수의 주인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추수의 작업을 그의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는 작업을 하시게 될 것이다.

낫은 주 하나님의 <공의의 검>이며 밭은 <세상>을 의미한다. 그럼 주님께서의 추수의 때는 곡식이 익은 때 곧 사람들의 죄가 관영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 때이다. 현명한 <목회자(사역자)>는 주의 깊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고, 그리스도의 권속들에게 그들이 차지할 <몫>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가장 순진하고 진실한 크리스천들은 죄의 용서함을 받고, 정직하고, 순진하고, 진실한 성도의 친교는 죄의 용서로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가 알고있는 주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신 분이요, 나를 구속하신 자요, 나에게 복음을 전해 주신자요, 나의 죄를 용서하신 자요, 나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나에게 영생을 부여하신 분이시다. 믿음으로 주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자! 더욱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속 순종하며 살아가자! 우리가 진실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흠없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죄가 없는 곳에는 슬픔이 없으며, 온전한 거룩함이 있는 곳에는 온전한 기쁨이 있게 된다.

거짓 선생들(사역자)은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최악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어물 어물하며 거짓을 위장하고, 분명치 못한 말씀 증거와 표리부동한 행동은 사람들을 곁길로 이끄는 자들이다. <주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며 인간의 영혼을 저버리는 자들>은 성도들을 일깨워 주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며, 선한 교인들을 그들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꾐에 빠진 교인들은, 그들의 마음이 전적으로 불안에 쌓여있고,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파도와 같이 항상 변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있어, 이곳 저곳 신실하고 은혜에서 자라날수 있는 교회를 찾게 된다. 주 하나님의 용서를 받기위해 행해야 할 바 의무는 우리가 죄를 자백하는 일이다. 죄를 통회자복하며 또한 그 죄를 인정함은 성도들의 임무요 죄에서부터 <구원>을 받은 수단이 된다. 우리는 때때로 <영>에 대한 분별을 하고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한 1서 4:1)>. <진리>는 허위와 거짓에 대한 반증이 됨을 알자! <성령>과 영감을 빙자한 모든 거짓된 것과 이에 대한 어떠한 해명도 믿어서는 안된다.

주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성령>을 허락하신다. <이성>은 이러한 식별을 위해 주어졌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낳고,하나님에 의해 가르침을 받으며, 주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고, 악한 미혹으로 부터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다. 저희들(세상사람)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다. 그들 안에 있는 영은 세상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 빠져있다. 그들은 허영과 쾌락과 세상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만 한다. <교훈이 순수하고 거룩하면 할수록 이는 더욱 하나님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같은 성령으로 일치한 믿음의 형제, 자매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한1서 4:7). <주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요, 창시자요, 부모요, 명령자이심을 알자!>.

하나님의 영은 사랑의 <영>이시다. 신자들의 성품의 성격과 외형은 <사랑>으로 나타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다.”(갈5:22). 사랑은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전>이 된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1500자 칼럼] 탁구, 그 재미

● 칼럼 2017. 3. 7. 21:03 Posted by SisaHan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어떻게 하면 우아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고, 어떻게 살면 품위와 아름다움으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어느 모임에서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과 운동이 화제의 중심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를 어찌 다 믿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마음건강을 신체건강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 온지 오래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몸도 따라 아팠으니 말이다. 소화도 안되고, 스트레스로 인한 수면장애가 와서 하루 종일 정신이 맑지 못하고, 아무 일도 집중하지 못해 끝내 우울증에 빠져 들곤 하였다.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신뢰하는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긍정적 마인드로 살려는 노력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터널같이 길고 지루한 겨울철을 콘도에 갇혀 보내는 일은 고역이다. 답답한 몸과 마음을 풀어줄 적당한 운동을 찾아 나섰다. 때론 산책이나 헬스 센터에 가기도 했지만, 이왕이면 여러 사람이 함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센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커뮤니티센터로 들어서면 ‘아이, 아야야, 어~, 아유~, 햐이’ 탁구장을 가득 채운 낯익은 의성어가 밖으로 새어 나온다. 그 정다운 소리에 나도 모르게 쌓인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마치 이른 새벽 생선시장에나 간 듯 팔팔한 생명감이 느껴온다. 탁구 치는 모습도 사람 얼굴 다르듯 모두 달라 각 사람의 개성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심심치 않다. 몇 해 전 탁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붙인 내 별명은 꽃사슴이다. 사슴처럼 몸과 발을 펄쩍펄쩍 뛰며 공을 받는 내 모습을 빗댄 재미있는 표현이다. 어찌 나뿐이겠는가. 모두에게 별명을 붙일 수 있을 만큼 특징이 있다. 번번히 공을 놓치면서도 폼만 좋은 폼순이, 탁구대에 삐죽 붙어 서서 공을 받는 뻐쩡녀, 한 자리에 버티고 서서 절대로 탁구공을 놓치지 않는 탁순이, 자기 게임보다 남의 볼만 찾아주고 있는 오지랖남, 매번 공을 놓친 아쉬움을 소리로 표현하는 애석남… 등등.


내 똑딱볼을 군말 없이 받아주는 남편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니 운동의 효과뿐만 아니라 삶을 성찰하는 기회도 만나고 있다. 어떤 이는 양쪽 코너로 힘없이 짧게 보내는 약 올리는 볼을 치는가 하면, 내지르는 볼을 주면서 마치 애완견 훈련시키듯 양쪽 방향으로 번갈아 보내는 이도 있다. 그럴 때 잠시라도 상대방을 얕잡아보거나 내 기분을 상할라치면 금세 실점으로 이어진다. 마치 선입견을 갖고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 잘난 체하다가 제풀에 망신을 당하는 격이다. 감정조절은 필수다. 어떤 이는 길게 힘찬 볼을 건넨다. 이럴 댄 탁구대에 가까이 서지 말고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멀리 보고 공을 받아야 실수를 줄인다. 마치 가까이 서있는 나무만 보지 말고, 먼 숲을 바라보듯 삶을 관조해야 하는 것과 동일하다. 힘찬 볼은 상대적으로 힘을 빼고 받아야지 같은 강도로 되받으면 영락없이 아웃 볼을 치게 된다. 그러나 때론 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대하는 관계의 기술이 탁구에서도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숙련된 이가 아니면 어설프게 따라 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이다. 어떤 이는 볼을 돌려 친다. 분명히 눈 앞에 떨어지는 볼을 보고 되받았는데 엉뚱한 방향에 볼이 있어 헛손질하기 일쑤다. 이럴 땐 서두르지 말고 잠시 탁구대에 떨어진 볼이 튀는 방향을 보고 되받아야 한다. 마치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을 대하듯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어떤 볼이 날아오든 먼저 흥분하여 서두르면 낭패를 본다. 빨리 날아오는 볼을 보고 잠시 숨을 고르며 되받아야 하나, 실력이 떨어질 수록 반격하는 속도가 빨라져 실점할 수 뿐이 없다. 또한 나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면 여전히 낭패하기 십상이다. 마치 자기 성질대로 감정대로 다급하게 일을 처리하다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모든 운동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모자라는 실력으로 득점만 앞세우는 무모한 공격은 영락없이 실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이 허술해 보일 때를 기회로 삼아 그의 실점을 유도하는 것이 상책임을 실수로 배우고 있다. 그러려면 어떤 상대를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본실력부터 연마하는 것이 우선이지 싶다. 특히 볼이 약할 때는 강하게 받고, 강한 볼은 약하게 되받는 힘의 강약조절과 몸의 유연함을 훈련해야 할 것 같다. 이즈음은 운동도 될뿐더러 일상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시작한 탁구로 잃어버린 열정과 도전을 되찾아간다. 건강한 활기를 샘솟게 만드는 탁구, 겨울이 저만치 물러나있다.

< 원옥재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원, 전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