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그 한 선수 때문에…

● 칼럼 2018. 7. 3. 19:19 Posted by SisaHan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다.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구어지는 도시가 토론토이다. 차마다 자기 나라 국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또 이긴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며 돌아다닐 것이다. 나는 또 그 때, 그 날처럼 태극기가 토론토 거리에 물결치고 대한민국이 울려 퍼지기를 꿈꾼다. 그러나 한국팀도 선전했으나 이제 세계 최강이라는 독일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지난 두 경기, 스웨덴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한 골 차로 졌다. 한국 선수들이 참 잘 싸웠다. 객관적으로 볼 때 두 팀 다 한국보다 한 수 위인 팀이다. 우리는 흔히 정신력과 투지를 이야기하는데 엄연한 실력 차가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축구공이 아무리 둥글다 하지만 꿈은 매번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늘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합이 끝난 지 얼마 안되어 인터넷 상에 어느 한 선수를 표적으로 공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자꾸 떠오르는 동영상을 보면, 그 선수가 상대팀에 골을 헌납한 것처럼 보이고, 그 선수의 실수만 없었다면 우리가 이겼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이미 한 선수를 표적으로 만들어 비난하기에 열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 그럴까? 그 한 선수 때문에 우리가 졌고, 그 선수가 없었다면 우리가 두 경기 다 이겼을까? 나는 그런 글들과 영상을 보며 2년 전에 리오 올림픽이 생각났다.

‘시합에 이기리라 믿었는데 진 결과에 대해, 실수한, 또는 실수한 것처럼 보이는 선수에게 무자비한 비평과 공격을 하는 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중략) 설사 실수였다 해도 비난도 좋지만 격려도 하여 다음에 더 잘 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패배의 원인이 그 선수 때문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2년 전 리오 올림픽 때 한국 여자배구팀의 패배에 대해 한 선수를 표적으로 삼아 인터넷에서 공격하는 것을 보고 내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글이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른 면도 많다. 그 때는 객관적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팀에 패했고, 이번 경우 우리 보다 훨씬 전력이 강한 팀이라 생각한다. 배구에서 한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축구에서 한 점은 정말 중요하다. 많은 경기의 경우 한 골 차로 승부가 결정 된다. 결국 두 시합 다 한 골 차로 졌다.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고 하이라이트만 본다면 분명 이길 수 있는 경기이다. 더구나 페널티 킥을 불필요하게 허용했다. 이제 실낱 같은 희망도 사라지고 우승후보라는 독일에 패하여 16강 진출에 실패하면 사람들은 심판의 오심을 이야기 하고, 감독의 전술과 선수기용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감독이 실력이 부족하고 많은 단점이 지적된 그 선수를 기용한 것은 그와의 인맥 때문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이러다 또 한국축구의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며 축구협회에 화살이 날아갈 것이다.

근데 이 시나리오가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각본 같다. 아마 4년 후에도 똑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박지성 선수의 말이 가슴에 닿는다.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이야기 하지만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고… 선수도 바뀌어야 하고, 감독도 바뀌어야 하고, 축구협회까지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바꾸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한국민들이 아닐까? 평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열렬 축구팬이 되고 비평가가 되고 해설가가 되어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그들은 축구를 사랑한다 말하면서 평소 대학교, 고등학교 시합은 물론 한국내의 K리그엔 관심도 없고, 구경도 가지 않는다. 아니 축구 자체를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가 월드컵 때만 되면 국가대표 팀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꿈이 이루어졌던 2002년을 생각하며….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JP와 ‘충청 핫바지’ 영면

● 칼럼 2018. 7. 3. 19:18 Posted by SisaHan

김종필(92)씨가 별세했다. 전 국무총리, 9선 국회의원, 당 총재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지만 그의 이름을 딴 ‘제이피’(JP)가 익숙하다.
그가 떠나면서 디제이(DJ) 김대중, 와이에스(YS)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구가했던 ‘3김 시대’도 막을 내렸다. 두 김은 권력 꼭대기에 올랐지만 제이피만은 끝내 이인자에 머물렀다.
그의 죽음은 충청에선 더욱 각별하다. 권력 언저리에 머문 풍운아, 영원한 이인자로 불렸지만, 적어도 충청에서 그는 언제나 일인자였다. 충청에서 나고 자란 지연 끄나풀에 기인하지만, 우리도 대권을 한번 잡아야 한다는 충청의 막연한 기대감은 일찌감치 그에게 절대지존이란 훈장을 수여했다. 이른바 ‘충청 대망’이란 암묵적 합의였다.


영호남 패권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충청은 ‘대권 허기’를 ‘충청 대망론’이란 허상으로 달랬다. 허기는 선거 때 더했다. 이를 유효적절하게 이용한 이가 제이피였다. 영호남은 물론 수도권에도 없는 ‘대망’이란 똬리는 선거 때마다 충청 표를 모았다. 표 냄새를 맡고, 표를 모으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닌 그는 때마다 충청을 자극했고, 대망에 배고픈 충청은 당하는 줄도 모르고 표를 내줬다. 권력을 좇은 합당·야합 등으로 대권 기대는 번번이 물거품이 됐지만 “그나마 제이피가 인물이여”라는 자조는 반발을 눌렀다.
‘충청도 핫바지론’이 정점을 찍었다.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 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천안역 유세에서)


이 말은 충청 표심을 결집했고, 그가 만든 자유민주연합이 충남의 기초·광역 단체장을 싹쓸이하는 등 충청에서 ‘자민련 광풍’을 일으켰다. 이듬해 열린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분위기를 이어갔다. 대전·충남 선거구 20곳 가운데 19석을 석권하는 등 충청은 자민련 공화국이 됐다. 뒷날 ‘충청도 핫바지’는 본말이 바뀐 그의 정치적 수사였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그의 정치 순발력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표를 긁어모았지만 충청에선 “우리 자존심을 지킨 건 제이피”라며 그를 두둔했고, 적어도 이곳에선 상식처럼 통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표를 챙긴 이들은 충청권 안에 머무른 채 확장하지 못했다. 영호남 패권의 중간 지대를 차지했을 뿐 핫바지가 아니라는 것을 정책으로 증명하지도, 대안 세력이 되지도 못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났지만 충청의 꿈을 지피지 못하는 도깨비불 같았다. 결국 그와 함께 자민련이라는 정당도 역사 속으로 사그라졌다. 자민련 사후 충청은 그나마 전국 민심의 척도라는 자리를 찾았지만 상실·낭패감은 컸다.


그가 정계를 떠난 뒤에도 무수한 정객들이 충청 대망이란 허깨비를 좇아 기웃거리다 결국 기진했다. 이른바 ‘포스트 제이피’였다. 충청에 뿌리를 둔 야심들은 부나비처럼 제이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전 의원이 그랬다. 지난 대선 때는 반기문씨가 뒤를 이었다. 대선 유력 후보로 떠오른 2016년 5월 유엔 사무총장 신분으로 제이피의 집을 찾아 비밀 얘기를 나눴다. 사실상 정치 행보였다. 이 무렵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제이피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 이들 모두 대권 시야에서 사라졌다. 제이피도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이제 지역주의에 기댄 ‘충청도 핫바지론’, 허상을 좇는 ‘충청 대망론’도 영면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 오윤주 - 한겨레신문 충청 강원팀 기자 >


남북은 오는 8월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했다. 남북은 22일 금강산호텔에서 적십자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다. 고령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봉자에 한해 1명의 가족을 동반하도록 했다. 이로써 이산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열리게 됐다. 분단으로 수십년간 생이별한 채 가족 상봉을 학수고대해온 수많은 이산가족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북이 8·15 계기 이산상봉 등 4·27 판문점선언 합의를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도 의미가 크다.


이산상봉은 남북 현안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인도적 과제다. 이산가족들은 70세가 넘은 고령자들로, 이산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고려하면 어떤 돌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나 한반도 상황은 이런 요구를 외면해왔다. 상봉 행사가 자주 열리지 못했고, 어쩌다 열리더라도 일회성으로 끝나버렸다.
오는 8월 상봉 행사도 한계가 뚜렷하다.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은 고작 남북 각 100명씩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으로는 5만7000여명의 이산가족 모두가 상봉하려면 수백차례 행사가 열려야 한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산상봉 행사를 정례화하고, 매번 상봉 규모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봉에 주력하되 생사확인이나 서신교환, 화상상봉 등 이산의 아픔을 달래주기 위한 다양한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남북은 20여개의 화상상봉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간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 협소한 상봉 장소와 운영 문제의 해결도 시급하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상시운영과 제2면회소 건립을 적극 검토하고 2003년 중단된 서신교환을 재개해야 한다.


남북은 반세기 넘게 지속돼온 분단과 냉전을 허무는 등 한반도 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 같은 정세 변화는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번영하는 삶을 살게 하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분단의 가장 큰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진정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구축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가급적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이산상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남북 당국이 대담하고 창의적인 접근을 하기 바란다.


근육성 및 혈관성 이명

근육성 이명은 중이내의 이소골에 부착된 작은 근육에 경련이 있을 때, 또는 이관에 연결된 근육에 경련이 있을 때 이명이 들릴 수 있습니다.
중이 내에는 두 개의 근육이 있습니다. 각각 추골과 등골에 부착된 근육이 그것인데, 정상에서 이들은 아주 커다란 소리에 의해 일시적으로 수축합니다.
하지만 때때로 특별한 원인이 없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이들 근육이 소리뼈에 부착되어 있기에 이 규칙적인 수축에 의해 귀 안에서는 ‘딱딱’하는, 반복되는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이 소리는 조금 불편할 수는 있지만 나쁜 것은 아니며, 대개는 특별한 치료 없이도 가라앉는 것이 보통입니다.
만약 이 근육 경련이 계속 된다면 근육이완제와 같은 약물요법이나, 경련을 절단하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관에 부착된 근육에 경련이 생겨 들리는 이명은 흔치 않지만 역시 귀에서 규칙적인 이명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구개근 경련이라 하며 대개는 근육이완제가 도움이 됩니다.
혈관성 이명은 중이와 내이는 경정맥과 경동맥이란 굵은 두개의 혈관이 아주 가까이 인접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에서 맥박이 뛰는 소리나 ‘숙쉭’하는, 피가 혈관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이 심하거나, 중이 내에 염증이 있을 때, 또는 아주 심한 운동을 한 후에 이들 이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 혈관성 이명을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나이가 들면서 혈관 벽이 두꺼워진 경우, 혈관이 꼬인 경우, 또는 혈관 벽에 혹이 자란 경우 입니다. 이와 같이 흔치 않은 경우에는 원인 및 치료를 위해 다른 검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 김호찬 - 김 보청기 대표, CK Hearing Centre >
상담 및 문의: 416-961-4848